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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노동자 대통령' 눈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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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브라질, '노동자 대통령' 눈앞에

<브라질 大選 참관기> 한국 민노당이 본 브라질 노동자당

***민주노동당, 브라질에 가다**

브라질은 정말로 먼 곳이었다. 비행기로 무려 27시간이나 되었고, 기내의 생활은 한마디로 먹고 자고 하는 환상적(?)인 것이었다. 브라질은 일반적으로 축구와 삼바로 유명하지만, 세계 진보운동에 대해서 지식이 있는 사람이면 노동자당(PT)과 노동총연맹(CUT)이 친근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아직은 국회에 의석이 없지만, 결국 정당은 집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기에 노동자당의 경험은 매우 소중한 것이기도 했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사무총장을 단장으로 하는 민주노총 5인을 포함한 15인의 브라질 연수단은 9월 22일 일요일 새벽 7시에야 상파울로 공항에 도착하였다. 일주일간 강행군의 시작이었다. 공항에는 한국에 온 적도 있으며 영어가 유창한 브라질 노동총연맹 국제국장인 야콥슨이 마중 나와 있었다. 호텔에 여장을 푼 후에 호텔 인근을 둘러 본 후에야 원기를 회복할 수 있었다.

일정은 빡빡하게 진행되었는데, 대부분은 노동자당과 노동총동맹을 방문하여 현황을 듣고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 시간이었다. 6일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이 유력시되는 노동당 대통령 후보 룰라의 유세도 참관하는 시간이 있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계속되는 강행군이었지만, 노동자당의 성의 있는 준비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브라질은 인구와 면적이 세계 5위, 경제규모 8위인 대국이다. 뿐만 아니라 풍부한 천연자원, 경쟁력 있는 농업, 현대적 산업 등을 갖추고 있어 라틴아메리카에서 명실상부한 대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맹률이 16%, 빈곤선 이하가 40%, 굶는 사람이 20%에 달하고, 상위 20%와 하위 20% 소득차이가 무려 25배에 달하고 있을 정도로 빈부격차가 심하다. 참고로 한국은 상위 20%와 하위 20%의 소득격차가 원래 3배 정도 되었는데, IMF 이후에 6배 가까이로 확대되었다.

***룰라와 노동자당**

현재 노동자당은 집권을 바라보고 있다. 노동자당의 대통령 후보인 룰라는 여론조사에서 42%의 지지율을 올리고 있어 집권 사회민주당의 세라를 20% 포인트 차이로 따돌리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대선에서 결선투표제가 있는데, 노동자당의 간부들은 내심 1차 투표에서 승리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이미 노동자당은 상파울로시를 포함한 주요 대도시를 포함한 187개 기초자치단체를 장악하고 있었고, 그 자치단체의 총인구가 5천5백만명에 달하고 있었으며, 의회에서도 사실상 제1야당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룰라는 1970년대 후반 브라질의 주요 산업지대를 휩쓸며 브라질 민주화의 기초가 되었던 소위 'ABC 파업'의 지도자로 자동차공장 노동자 출신이다. 파업 주도로 인하여 투옥되기도 하였는 바, 당시 탁월한 지도력으로 단숨에 지도자로 떠올랐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권용목이나 단병호에 비유될 수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87년 대파업의 상징적인 인물인 권용목은 민주당에 입당하여 이인제를 지지하였고, 단병호는 감옥에 있는 데 반해서 룰라는 대통령을 눈 앞에 두고 있다. 단순하게 그 차이를 말하면 브라질의 노동자계급은 노동자당을 보다 빨리 만들었고,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정당을 너무 늦게 만든 것이 아닌가했다.

연수단은 룰라의 유세를 참관하였다. 수만 명이 모여 있는 대규모 군중집회였다. 룰라가 처음 주지사 선거에 기호 3번으로 나왔을 때는 "3번에게 투표하라. 나머지는 부르조아다"라는 선명한 구호로 임하였다면, 현재는 "이제는 룰라다"라는 아주 경륜있는 구호로 임하고 있다. 룰라는 전형적 투사에서 온화하고 경륜 있어 보이는 얼굴로 변해 있었다.

상파울로 인근에서 열린 유세에 룰라가 입장하기 전에 룰라는 노회찬 민주노동당 사무총장과 반갑게 악수를 하였고, 노 총장은 준비해 간 선물인 '인삼차'를 전달하였다. 몇몇 재빠른 사람들은 룰라와 악수를 했지만, 평소 행동이 둔한 필자는 그리하지는 못했다.

특히, 모 위원장은 다음 총선 때 쓸 사진을 놓쳤다고 안타까워 했다. 기자들은 인삼차를 선물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관심 있게 물었고, 발빠른 국제국장은 인삼은 한국에서 "power"의 상징이라고 대답하였다. 이 장면은 다음날 아침 텔레비전에 방영되었다.

***신선한 유세**

브라질 유세는 한국과 비교하면 여러모로 특이하였다. 노동자당 내 거물이자 현 연방하원의원인 제노이노(Genoino)라는 상파울로 주지사 후보의 길거리 유세를 참관하였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니 간편하게 옷을 입은 중년의 미남형 사내가 주로 경기장에서 응원용으로 사용하는, 입으로 불면 소리가 나면서 튀어나오는 도구를 입에다 물고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그 다음부터는 우리 개념으로 말하면 소란 그 자체였다. 박수를 치면서 행진하면서 왁자지껄하게 사람들과 악수를 하고, 지나가는 아가씨들하고 뽀뽀를 하고... 아마 한국에서 이렇게 하였다면 감표사유가 됐을 것이다.

룰라의 유세 또한 그러하였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광장보다 2~3미터 높은 단상에 사람들이 한꺼번에 서서 유세를 하는데, 사회자와 주요 인사들이 앞줄에 선다. 한 명이 연설을 하는 도중 단상 위의 나머지 사람들은 이야기를 하거나 악수를 하고 목이 마르면 뒤에 가서 물을 마시고, 작전을 짜고, 한마디로 한국에서와 같은 엄숙주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그런 광경이었다.

중간 중간에 후보 이름을 딴 로고송이 나오면 그 노래에 맞추어 같이 춤을 추다가 다시 아주 높은 톤으로 연설을 하였다. 연설이 끝나자 아마도 브라질의 유명 가수로 추정되는 남성 2인조 가수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노소를 불문하고 여자들은 눈물을 흘리거나 혼절을 하는 사태가 속출하였다.

***노동자당의 힘**

의회나 지방자치단체에 대표자를 가지고 있는 것 뿐만 아니라 노동자 당의 강력한 힘은 두가지에서 나왔다. 하나는 노동자당의 주요 멤버가 창립한 브라질 노동총연맹(CUT)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운동과 결합이었다. 노동총연맹은 민주노총과 같은 조직으로 법외단체이기는 하지만 정부로서 실질적 협상 파트너로 인정받고 있는 조직이다. 노동자당과 분리된 조직이고 구성원 중에는 공산당을 지지하는 사람도 있지만 협력관계 이상의 긴밀한 조직적 동질성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노동자 당 내에서는 사회운동을 책임지는 부서가 있었는데 주거, 교육, 장애, 보건, 스포츠, 라디오, 교통, 성적(性的) 소수자, 원주민 등 거의 모든 사회운동을 포괄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참여연대 같은 시민단체가 노동자 당의 한 부서로 위치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풀뿌리 사회운동과의 결합은 노동자당의 주요한 기반 중의 하나였고, 노동자당이 자치단체를 장악해 나가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노동자당에는 대학을 졸업한 유능하고 젊은 인재들이 넘친다는 인상을 받았다. 활동가의 보수가 최저임금에 10배에 달하는 월 2천헤알, 우리 돈으로 80만원에 달하는데, 아마도 실업율이 15%인 상황에서 브라질 노동자당에서 일하는 것이 상당히 '유망한' 직업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를 안내한 PT 국제국 소송의 쟝(Jean)도 마찬가지였다. 자칭 기독교공산주의자(Christian Communist)라고 이야기하였는데, 영어를 비교적 자유롭게 구사하고 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했다는 이 친구는 이제 23살에 청년에 불과했으나 그 식견에 있어 부족한 점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진보정당은 과연 어떻게 후속세대를 성장시킬 것인가?

***집권 후 노동자당의 어려움**

룰라는 아마도 집권할지도 모르겠다. 과격한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하여 기업가출신을 부통령 후보로 들이고, 부동층인 40%를 끌어들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문제는 집권 후일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자금 지원을 하는 대신 매년 3.77%의 예산 흑자를 내어 이를 적립하도록 조건을 달았고, 노동자당 또한 이 조건을 수락한 상태이다. 또한, 민영화된 산업의 재국유화나 변동환율제에 대한 변경도 하지 않겠다고 천명하였다. 아마도 이러한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현재 노동자당은 팽창적인 재정정책이나 인위적인 이자율 하락 정책을 쓰기가 대단히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문제는 노동자당이 그동안 내걸었던 사회복지의 확대에 대해서 어떠한 해결책이 있는가이다. 정책적으로 노동자당의 해법은 수입대체 촉진, 수출지원을 통한 경쟁력 있는 산업을 육성하여 성장으로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경제조정관 프라도와 개인적으로 나눈 대화에 의하면 그는 한국이 성공한 것처럼 브라질도 가능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였다. 한국의 진보운동권들에게는 씁쓸한 것이겠지만, 제3세계에서 한국의 발전모델은 거의 유일한 대안인 것 같았다.

성장은 시일이 걸리는 것이고 아마도 IMF에 지친 브라질의 대중들은 즉각적인 결과를 요구할지도 모른다. 여기에 어떤 특별한 답이 있을 수 없다. 22년간 닦아온 룰라와 노동자당의 리더쉽만이 그래도 해답일지 모른다.

***마치며**

유람차 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브라질에 대한 인상이 딱딱했는지 모르겠다. 브라질은 다인종 사회로 미국보다는 훨씬 인종차별도 적은 것 같았고, 사람들도 친절해 보였다. 일정이 너무 빡빡하고 언어의 장벽이 있어 현지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해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대중운동과 노동운동을 아우르는 깨끗하고 활력있는 진보정당운동이 집권을 바라보고 있는 브라질 상황은 분명히 부러운 것이었다. 언제까지만 부러워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갈 길은 멀지만 계획을 세워서 전진할 때이다. 한국보다 훨씬 악조건인 브라질도 해내지 않았는가. 다시 27시간을 걸려 돌아 온 한국은 다시 한 번 분투를 요청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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