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간 KBS의 대표적 시사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해온 '추적60분'이 오는 10월 가을개편을 앞두고 존폐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사회고발 시사프로그램으로서의 정체성 논란과 3%대까지 떨어진 시청률 하락.
KBS측은 아직까지 '추적60분' 폐지와 관련해 결정된 바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과거 KBS의 공영성을 대표하던 프로그램으로서의 위상이 현저하게 떨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제작진은 추적60분의 위상하락에 대해 경영진이 자초한 결과라고 보고 있다. 잦은 시간대 변경과 주요 아이템에 대한 간섭으로 프로그램이 연성화되며 시청자로부터 외면을 받게 됐다는 지적이다.
<사진 '추적60분' 등 KBS의 공영성을 대표하는 시사프로그램들이 'PD수첩' 등 MBC 프로그램과 비교해 연성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왜 한국의 대표적 공영방송인 KBS에서 이같은 일들이 발생할까. KBS 시사프로그램의 정체성 위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한 일말의 해답을 지난 5일 전국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민실위)가 발표한 'KBS MBC 시사프로그램의 비교분석'이란 보고서가 제시하고 있다.
***민실위 "연성아이템으로 경도된 KBS 시사프로그램"**
언론노조 민실위 보고서는 먼저 '많은 사람들이 KBS의 시사프로그램이 이전과 비교해 연성아이템으로 경도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는 머리말로 시작한다.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민실위는 지난 5월 1일부터 8월 30일까지 4개월간 방영된 KBS와 MBC의 각 4개 시사프로그램에 대한 비교분석을 실시했다.
비교대상은 KBS '일요스페셜' '취재파일4321' '시사포커스' '추적60분'과 MBC 'MBC스페셜' '시사매거진2580' '미디어비평' 'PD수첩' 등이다. 민실위는 보고서의 한계로 분석대상을 4개월 분량으로 제한함으로써 각 프로그램의 변화과정을 추적하지 못했다는 점을 전제했다.
민실위는 우선 KBS 시사프로그램의 문제점으로 '취재파일'과 '추적60분'의 경우 연성아이템으로 가득하며 차별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추적60분'이 지난 4개월 방송한 아이템중 경성아이템으로 분류할만한 내용은 5월 18일 '특혜의혹 분당 파크뷰, 무슨 일이 있었나' 8월 10일 '병원분규 80일, 장기파업의 속사정' 등이 고작이라는 것이다.
***"차별성 없는 KBS의 시사프로그램들"**
민실위는 시사종합프로그램인 '시사포커스'의 경우 섹션별 주제별로 프로그램이 진행돼 언뜻 차별성을 갖춘 듯 보이나 한 주간의 사건과 이슈를 정리한다는 점에서 '추적60분'과 그리 다른 형식이 아니며 섹션별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취재파일'과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시사포커스'가 가진 차별성으로 '미디어비평' 코너를 들 수 있으나 이 또한 MBC '미디어비평'과 비교했을 경우 양적으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민실위는 결론적으로 "KBS 시사프로그램의 가장 큰 문제는 자사 프로그램간 차별성이 거의 없고, 오로지 시청률만 의식한 듯 연성아이템만 선정 제작하면서 단지 프로그램의 포맷이나 형식만 다르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민실위는 특히 KBS 시사프로그램의 연성화에 가장 크게 기여한 프로그램으로 '추적60분'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었다. '추적60분'이 가지고 있던 옛 명성은 사라지고 초라한 몰골만 남아있다는 것이다. '취재파일'식 연성뉴스와 '일요스페셜'식의 기획심층취재가 뒤섞이며 결국 '추적60분'만의 독특한 자기 색깔을 잃어버린 게 주요한 이유라는 지적이다.
민실위는 KBS 시사프로그램중 가장 선전하는 프로그램으로 '일요스페셜'을 꼽았다. '일요스페셜'과 'MBC스페셜'이 심층취재라는 제작방식에서 유사하지만 '일요스페셜'은 선진사례를 현장감있게 다룬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문제부터 사회적인 문제까지 한 주간의 주요 사건들을 다루는 'MBC스페셜'과 차별성을 갖는 다는 것이다.
***"KBS 최고의 시사프로그램은 '일요스페셜'"**
민실위는 '일요스페셜'의 강점으로 제작의도에 충실한 외국 현지취재(8월 4일 '오사마 빈 라덴은 왜 알 자지라 TV를 선택했나', 8월 11일 '북한 지금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8월 17일 이후 '신 중국대장정 시리즈')를 꼽았다. 또 인물중심으로 접근한 5월 12일 'PGA 챔프 최경주가 말한다', 6월 9일 '질주, 죠셉 박의 월스트리트 도전, 7월 14일 '거장 백남준-호랑이는 살아 있다'도 좋은 내용이었다고 평가했다.
민실위는 그러나 '일요스페셜'과 'MBC스페셜'이 보여준 문제점으로 지나친 월드컵 편중을 들었다. 지난 4개월간 '일요스페셜'이 8건, 'MBC스페셜'은 7건을 할애할 정도로 월드컵 아이템이 너무 많았다는 지적이다.
민실위는 한국의 대표적 PD저널리즘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 KBS '추적60분'과 MBC 'PD수첩'의 아이템 비교를 통해 '추적60분'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민실위는 두 프로그램을 과연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대상인지 확신이 서지 않을 정도로 판이한 차이를 보인다며 '추적60분'의 몰락을 안타까워했다.
<표1 '추적60분'과 'PD수첩' 아이템 비교>
민실위는 <표1>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MBC 'PD수첩'이 재미 한국인, 민주화, 권력비리, 정치자금, 진보정당, 미군범죄와 SOFA, 의약분업 등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부터 역사적인 사안까지 다루고 있는 반면 KBS '추적60분'은 권력층 비리와 병원파업 정도에서만 본래의 색깔을 찾을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민실위는 KBS '시사포커스'와 MBC '미디어비평'을 분석하며 단지 '시사포커스'가 '미디어비평' 코너를 가지고 있다는 점 때문에 MBC '미디어비평'과 비교할 수는 없다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월드컵 꽁무니만 쫓아다닌 KBS 시사프로그램들"**
민실위는 동일아이템에 대한 양적 질적 비교분석을 통해 KBS의 경우 4개 프로그램에서 모두 20회의 월드컵 관련 아이템을 방송한 반면 MBC는 10회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민실위는 "한국의 대표적인 공영방송으로 자부하는 KBS의 시사프로그램이 시청률의 유혹을 외면하지 못하고 월드컵 꽁무니만 쫓아 다녔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선거관련 아이템의 경우 분석대상인 각 4개의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KBS는 4건, MBC는 12건으로 크게 대조를 이루고 있다. 민실위는 또 3건을 방송한 '시사포커스'의 경우 대부분 내용이 판세분석 등 경마식 보도유형, 각 정치세력간 힘겨루기 등 전형적인 갈등지향적 보도, 정치불신 및 냉소주의를 조장하는 보도유형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여중생 사망사건과 SOFA 개정에 대한 KBS의 외면"**
지난 6월 13일 미 2사단 장갑차에 압사당한 두 여중생 사망사건과 관련해 KBS는 '취재파일'의 3꼭지중 한 꼭지를 통해 다룬 것이 전부였다. MBC는 'PD수첩'에서 2건, '미디어비평'에서 1건 등 모두 3건을 다뤘다. 시간으로 계산할 경우 KBS는 15분, MBC는 115분을 핼애한 셈인데 단순한 시간상의 많고 적음을 떠나 '미군범죄와 SOFA의 관계'에 대한 KBS의 무신경은 너무하다 싶다는 게 민실위의 지적이다.
민실위는 내용상으로도 한 꼭지를 다룬 KBS '취재파일'의 경우 정작 SOFA에 대해서는 왜 부당한지, 개선책은 무엇인지, 그동안 얼마나 많은 피해가 있었는지 등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이 결론만 "불평등한 SOFA를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MBC 'PD수첩'은 재판권 이양문제를 비롯한 SOFA의 부당성, 무엇이 불평등한 내용인지, 미국 대통령의 사과까지 받아낸 일본의 사례 설명을 통한 SOFA개정을 위한 여론조성은 왜 중요한지 등을 모두 지적했다고 평가했다.
AIDS관련 아이템 분석에서 민실위는 KBS와 MBC가 모두 '취재파일'과 'PD수첩'을 통해 한번씩 다루었는데 접근방법은 비슷하면서도 대안모색에서 전혀 다른 견해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즉 KBS '취재파일'은 학교교육을 대안으로 제시한 반면, MBC 'PD수첩'은 초보적인 의료시스템의 문제와 정부차원의 복지지원책 마련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민실위는 미군범죄와 AIDS라는 동일 주제에 대한 두 프로그램의 제작방식은 시간상의 제약으로 나타나는 양적인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필연적인 프로그램의 질 저하로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민실위는 예를 들어 '추적60분'이 이같은 경성아이템을 다루었다면 어떤 내용과 결과를 이끌어냈을지 궁금하다고 여운을 남겼다.
***"KBS 시사프로그램의 연성화는 경영진 잘못"**
민실위는 총평을 통해 경성아이템이 가지는 위험성과 제작의 어려움 등을 KBS 경영진이 충분히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너 책임질 수 있어' 등의 말을 경영진이 제작진에게 한다면 프로그램 아이템의 연성화는 피할 수 없는 결과라는 것이다.
따라서 KBS 경영진은 국민들의 알 권리 충족과 공영성이라는 측면에 대한 심각한 고려를 해야 한다는 게 민실위의 제안이다. 특히 KBS2 TV의 공영성을 담보하는 대표적 프로그램인 '추적60분'에 대해 아이템 선정과정과 제작과정에서 '자율적인 분위기'를 조성해주고 '정책적인 지원과 배려'를 진지하게 모색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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