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공영제 확대방안을 만들면서 가장 고민을 했던 부분이 바로 정치현실과 이상과의 접목이었다. 그러나 잘못된 현실과 타협하다 보면 정치개혁은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김호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관리실장)
올해 12월 치러질 대통령선거의 공명선거 실현을 위한 선거개혁방안에 대한 논의가 선거공영제 확대를 중심으로 본격화되고 있다. 30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연수원 강당에서 ‘선거개혁방안에 관한 토론회’를 개최하고 저비용 고효율을 지향하는 선거공영제의 추진방향과 미디어의 선거활용 확대, 정치자금 투명화 등 구체적인 실현방안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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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공영제 확대는 저비용 고효율 정치로의 디딤돌"**
김호열 중앙선관위 선거관리실장이 발표한 ‘제16대 대통령선거의 공명선거 실현을 위한 선거개혁방안’은 기본적으로 국가부담에 의한 선거운동 확대, 돈 드는 선거운동방법 대폭 축소, 선거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국고지원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실현방안으로는 후보자의 신문·방송 광고·연설비용 국고지원, 공영방송 주관 정책토론회 의무화 등 정당의 정강·정책홍보 지원확대를 제시했다. 선거비용 축소를 위한 방안에는 정당연설회와 대통령후보자의 거리연설폐지, 유급사무원제 폐지, 집회를 통한 의정보고활동 제한과 경조사 축·부의금품 제공 금지가 포함됐다.
선거관련비용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서는 선거비용과 정치자금 관리의 일원화 및 정치비용 공개, 선거·정치자금 기부시 수표 및 1인 1계좌 사용, 정치자금 모금 및 내역공개, 선거범죄로 인한 당선무효 사유조정, 허위영수증 발급 및 증언에 대한 제재강화 방안을 제시했다.
이 방안은 특히 10만원 이상의 정치자금 지출시 수표나 카드사용 의무화, 연간 1백만원 이상의 정치자금 기부자의 인적 사항 및 기부금액 공개 의무화 규정 등을 포함하고 있다.
***정치자금 투명성 확보 위해 법인의 정치자금 기부는 이사회 사전승인 거치도록**
성공적 선거개혁을 위한 정당제도 개선안은 중앙당 조직과 기능의 축소, 의원총회 중심의 정당운영, 지구당의 구 시 군당 체제 전환, 선거보조금 폐지, 후원회 모금한도 3억원에서 1억5천만원으로 축소, 이사회 사전승인을 통한 법인의 정치자금 기부 통제, 불법정치자금 조성 및 사용에 관한 처벌 강화, 불법 정치자금 수수에 대한 조사의 실효성 제고 등을 강조했다.
하지만 김호열 실장의 주제발표에 이어 길종섭 KBS 대기자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에서 각 당을 대표해 참석한 3명의 국회의원들은 한결같이 선거공영제의 기본적인 취지와 방향에는 찬성하지만 구체적인 각론들은 현실적으로 적용하기가 어렵다고 주장했다. 선관위가 제시한 선거공영제 방안이 국회의 입법과정을 거치며 변질될 가능성이 클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한나라당을 대표해 나온 허태열 의원은 아직 당론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선거공영제의 기본적인 취지와 방향에는 찬성하지만 현실적인 정치기반과 거리가 있는 요소가 많다”고 말했다.
미디어선거를 통한 연출, 윤색 등의 문제점을 강조한 허 의원은 “초등학생에게 미적분 문제를 풀라고 요구하는 무리다. 너무 높은 경지에서 현실에 대해 왜 안 좇아오느냐고 말하는 것은 정치에 대한 국민불신만 가중시킨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을 대표한 이강래 의원 또한 당론을 정할 시간이 없었다며 “큰 틀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뜯어보면 이상적인 면이 있어 다소 괴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미디어선거에만 의존하면 후보가 유권자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없다. 특히 군소후보들은 거리유세를 통해 뉴스거리를 제공해 왔는데 이를 완전히 없앤다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정치자금 투명성과 관련해 “백만원 이상의 기부자 공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정치인이 죄인인 게 현실인데 죄인을 후원하는 사람이 뭐 그리 떳떳하다고 공개하려 하겠느냐”고 현실 정치인의 입장을 토로했다.
***3당 국회의원 "총론엔 찬성, 각론은 반대"**
김학원 자민련 의원은 아직 당론이 결정된 것은 아니나 자신이 선거공영제와 관련된 자민련 안을 만드는데 정책위의장으로 깊숙이 관여했기 때문에 자신의 말이 상당부분 당론과 일치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말을 이었다.
김 의원 역시 선거공영제의 전체적인 골격이 자민련 안과 일치하지만 부분적으로 견해가 다르다며 “이념적 정책정당으로 가야지 현재의 보스중심 지역구도 중심 정치가 계속되는 한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정치자금 투명성 확보에 대해 김 의원은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울 수 있다”며 “잘못하면 국세청 등을 동원한 야당탄압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국회의원들의 정치자금 투명성 확보 반대 등 반론에 대해 김호열 선거관리실장은 “선거공영제 확대를 위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선거공영제는 국민들의 세금부담이 늘어나는 것인데 정치권이 정치발전을 위해 정치자금 투명성 확보 등의 제도를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야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민단체를 대표해 토론에 나선 신철영 경실련 사무총장은 “선관위의 선거공영제 확대방안이 시민단체의 요구사항을 많이 담고 있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선거공영제 실시를 위한 전제조건이 충실하게 보장돼야 한다. 정치자금 투명성 확보를 특히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경실련 "사이버매체도 미디어에 포함시켜야"**
신 사무총장은 “사이버 매체도 신문 방송 등 매체의 대상에 포함시켜 선거광고와 토론도 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미디어선거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대통령 후보가 거리를 돌아다니는 건 놔둬도 괜찮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자는 점과 단체의 정치활동금지 조항의 폐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박원순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은 “정치인들이 총론은 동의하는데 각론은 안되겠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은 안하겠다는 것이 아니냐. 법안의 미래가 걱정된다”며 “이 안이 요구하는 건 미적분이 아니라 1+1=2라는 가장 기초적인 것이다. 국민을 초등학생에 비유한 것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박 위원장은 “정치인들은 교도소 담벼락 위를 걷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불법 정치자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이라도 태워 새로운 것을 내놓아야 한다. 선관위가 너무 정치권 눈치를 본다. 선관위에 정치자금에 대한 조사권과 계좌추적권까지 부여해야 하며 선관위는 권한이 주어지면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이라도 태워야"**
박 위원장은 중앙당 조직축소와 관련해 “우리나라만큼 큰 당사를 갖고 있는 정당이 어디 있느냐. 국회공간을 활용해야 한다”며 “정치발전을 위해 공익적 시민단체들의 유권자활동을 보장해야 한다. 시민단체 낙선운동을 보장해 감시권한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학계를 대표한 권영설 중앙대 교수는 “우리나라 헌법이 이미 선거공영제를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수익자부담원칙 때문에 제한적인 선거공영제가 실시돼왔다. 현재 뒤섞여 있는 것이 많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사전선거운동과 합법적 선거운동기간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밖에 없다. 하지만 일본은 정치 선진국이 아니다. 현실적이지 않은 기간을 규정해 규제하고 있는 것은 문제다. 이미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대통령 후보를 선출했는데 그들의 활동이 선거운동이 아니라고 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사전선거운동 금지기간 규정의 맹점 등 현행 선거법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권 교수는 “선관위 안이 규정하고 있는 법인의 정치자금 제공시 이사회 사전승인 문제는 상법상의 문제와 충돌이 예상된다”며 “미디어활용시간 확대방안 등도 선거불감증 등 역작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학계 "대선 앞둔 지금이 정치개혁 최적기, 비현실적 선거법 규정은 고쳐야"**
김영래 아주대 교수는 “실패한 대통령인 YS와 실패할 가능성이 큰 DJ의 공통점이 아들들이 비리에 연루됐다는 점인데 바로 정치자금 문제다. 이는 정치권이 풀어야 할 문제다. 총론에선 동의하고 각론에선 이견이 있다고 하는데 정치개혁에 대한 시대적 흐름 때문에 이견은 극복할 수 있다. 대선을 앞둔 지금이 정치권의 표 의식 때문에 정치개혁을 위한 최적기다. 11월 중순까지 시민단체 등에서 정치권에 지속적인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중앙선관위는 선거공영제 확대방안을 장기적인 과제와 단기적인 과제로 나눠 접근해야 한다. 정치자금 실명제 등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과제 몇 가지만 골라서 접근해야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정치권과 시민단체 학계로 구성된 정치개혁 특위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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