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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교전과 언론의 강경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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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교전과 언론의 강경론

이효성의 언론마당 <7>

해마다 꽃게잡이 철이 되면 꽃게 황금어장이기도 하며 남북간의 경계수역이 위치하기도 한, 그래서 양측의 꽃게 잡이 배들과 이 배들을 지도하는 양측의 경비정이 자주 출몰하는,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는 긴장이 높아진다. 그리고 그 긴장이 지나치면 1999년이나 금년과 같이 남북의 해군 경비정간에 교전이 일어나기도 한다. 1999년의 교전에서는 우리측의 피해 없이 북측의 피해만 있었기에 우리 내부에서 큰 반향이 없었으나 이번에는 우리측의 피해가 커서 우리 내부에서 커다란 반향이 일고 있다.

그 반향 가운데에는 우리가 마땅히 수용하고 실행해야 할 그런 것들도 있다. 즉 아무런 경고도 없이 선제공격을 감행하여 우리측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북한에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해야 한다거나 그런 사태가 원천적으로 일어날 수 없도록 북측과 공동어로수역 같은 것을 정하는 교섭을 벌여야 한다거나 하는 주장 등이다. 그리고 전사하거나 부상한 우리 장병들을 충분히 보상하고 위로해야 한다는 것은 췌언이 불필요한 당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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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비이성적인 반향도 없지 않다. 북한 경비정을 침몰시키지 못한 데 대하여 군부와 정부를 비난하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군 책임자들을 문책해야 한다거나 금강산 관광사업이나 북한에 대한 지원도 즉각 중단해야 한다는 등의 강경론도 비이성적 반향이다. 심지어는 북한과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는 등의 무모하고 무책임한 극단적이고 전쟁광적인 강경론도 있었다. 이런 강경론 가운데에는 은근슬쩍 햇볕정책을 서해교전의 원인으로 돌려 햇볕정책을 무력화시키고 햇볕정책을 추구한 정권을 좌파정권으로 몰려는 추악한 냉전적 색깔공세도 있었다.

이런 강경론은 대중들에게 잘 먹히고 따라서 인기 있는 발언이 된다. 그러나 강경론은 매우 무책임하고 비이성적인 것이기도 하다. 사람이 화나는 대로 행동하면 매일 싸우게 될 것이다. 국가가 국제관계에서 특히 남북과 같이 군사적으로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는 처지에서 감정적으로 대처하면 전쟁을 밥먹듯이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쟁은 심심풀이로 하는 놀이가 아니다. 수십만, 아니 수백만이 죽거나 부상을 당하게 되는 일이다. 어쩌면 우리 민족 모두의 생존을 위협하는 일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남북 적대 관계를 정치에 악용했던 전두환 군사정권조차도 아웅산 사건과 같은 엄청난 북측의 도발을 당하고도 보복은커녕 거의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아무리 인기 있는 일이라 하더라고 강경 대응을 요구하고 부추기는 것은 지극히 무책임하고 무모한 일이다. 더구나 제 자신이나 제 자식들이 국방의 의무도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자들이 강경론을 부추기는 꼬락서니라니.

이 때문에 한편에서는 강경 대응만이 능사가 아니고 신중하고 이성적인 대처가 더 바람직하다는 신중론 또는 온건론도 제시되고 있다. 신중론은 한 마디로 서해교전과 관련하여 흑백논리에 빠져 단순반응을 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특히 서해교전이 일어난 지역이 남북간의 합의된 뚜렷한 경계선이 없는 일종의 분쟁지역이고, 우리 어민들이 더 많은 꽃게를 잡기 위해 북방한계선 가까이 가서 조업한 탓으로 그 수역의 긴장이 고조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긴장이 높아진 분쟁지역에서는 우발적인 교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주장에 앞서 진상의 파악이 더 중요한 소이다. 그런 지역에서 교전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어쩌다 교전 사태가 일어나더라도 확전되지 않도록 자제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번 교전에서 우리 해군의 대처는 아주 현명한 것이었다. 비록 우리가 먼저 공격을 당했고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적당한 선에서 응전하고 확전의 위험을 피했다는 것은 정말 칭찬받을 일이다. 우리 초계함이 접근하자 북측의 함대함 스틱스 미사일이 공격 태세에 돌입했었다는 사실에서 보듯이, 우리가 강력하게 대응했더라면 확전의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전은 곧바로 전면전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 사라예보의 총성 한 방이 1차 세계 대전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을 안 우리 해군이 확전을 피하기 위해 자제한 것이다. 그것은 칭찬받을 일이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따라서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인기에 편승하려는 포퓰리즘적 강경론을 경계해야 할 일이다. 오히려 인기가 없다 하더라도 온건론을 유도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최소한 온건론과 강경론의 양측 주장과 그 논리를 다 소개했어야 했다. 그리고 독자들로 하여금 이들 상이한 견해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서해교전이 햇볕정책의 탓이라는 주장을 하려면, 햇볕정책 덕택에 서해교전 사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쟁을 염려하지 않게 되었다는 의견에도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 그것이 공정하고 이성적인 언론의 자세일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 몇몇 신문들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부터 일방적으로 강경론만을 대변하고 부추겼다. 이들 언론은 사태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보도하는 저널리즘적 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사태를 특정 방향으로 몰고 가는 정파적 행동을 한 것이다. 이들 언론은 언론의 모습보다는 정치세력의 모습을 보인 것이다. 자신이 언론인지 정치세력인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저급한 언론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언론이 사설에서 강경론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성적인 언론이라면 강경론을 주장하더라도 여러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했어야 한다. 그리고 보도만큼은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해야 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몇몇 보수 언론들은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기도 전에 오히려 강경론을 선도했다.

사설에서만이 아니라 보도에서조차도 그러했다. 게다가 그런 강경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새로이 드러나는 진상을 외면하거나 폄하하는 보도로 일관했다. 그러면서 진상을 말하는 보도에 대해 조선일보 7월 4일자 사설은 "북한의 책임을 희석시키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위협했다. 또 하나의 색깔 공세와 매카시즘적 마녀사냥을 예비하는 듯한 저급한 정치적 발언이다.

이들 언론들은 안보상업주의와 포퓰리즘적 강경론에 편승하여 무책임하고 비이성적인 '흑백논리적 단순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7월5일자 사설에서 적반하장으로 신중론을 '흑백논리적 단순반응'으로 몰면서 그런 신중론이 오히려 전쟁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궤변으로 강경론을 비호했다.

확전과 전면전의 위험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북한의 경비정을 격침시키지 않은 것을 나무라고, 게다가 우리 어선들이 북방한계선 가까이에서 조업을 한 탓에 그 수역의 긴장이 높아졌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을 애써 외면하고, 그런 사실을 말하는 것을 북한의 책임을 희석시키는 행위로 모는 강경론이야말로 '흑백논리적 단순반응'이 아니고 무엇인가.

'흑백논리적 단순반응'을 배격하자는 신중론을 오히려 '흑백논리적 단순반응'으로 매도하는 일부 언론의 저 무도함과 뻔뻔스러움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한반도의 미래는 암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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