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자와 '노자'
(4) 노자는 송(宋)나라 패(沛)지방에 살았으며 장자(莊子)도 역시 송나라 사람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송나라는 은(殷)나라 유민(遺民)들이 세운 나라이기 때문에 송나라 특유의 사상적 특징을 갖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패배(敗北)의 미학이며, 은둔자(隱遁者)의 사상이라는 것이지요.
노장(老莊)의 반문화(反文化)사상도 그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봅니다. 원죄의식(原罪意識)을 갖지 않은 동양 특유의 체관(諦觀)과 달관(達觀)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인도(印度) 특히 불교적인 사상내용 때문에 서방(西方) 전래(傳來)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근거는 없습니다.
'노자' 주석은 3천여 가(家)가 주(註)를 달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이름이 전해지고 있는 것만 1천여 개나 되며, 현재 3백46종의 주석(註釋)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주석 중 최고(最古)의 것이 하상공(河上公)의 주와 왕필(王弼)의 주입니다. 하상공은 한대(漢代) 사람으로 노자를 주로 도교적(道敎的) 관점에서 주하였으며, 왕필은 위진(魏晋)시기의 주로서 현학(玄學)의 일환으로 씌어진 것입니다.
왕필(AD.226-AD.249)의 나이 16-18세에 씌어졌다고 알려진 노자주(老子註)는 글자의 수가 1만1천8백90자로서 누가 누구를 주했는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지요.
왕필은 노자를 주(注)한 목적이 숭본식말(崇本息末)에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즉 본(本)을 높이고 말(末)을 종식시키기 위함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왕필이 말하는 본(本)이란 자연을 의미하며 말(末)이란 유법(儒法)의 인위적(人爲的) 규제(規制)를 의미하는 것이지요. 왕필은 지난번 주역강의에서 이야기하였듯이 23세 때 주역(周易)을 주(注)하여 노역(老易)을 회통(會通)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노자'는 '주역'과 그 형식에 있어서는 극히 대조적입니다. '주역'은 우리가 이미 보았던 것처럼 효(爻)와 괘(卦)라는 부호(符號)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물상(物象)의 세계입니다. 물(水), 불(火), 산(山), 하늘(天), 땅(地) 등 매우 구체적(具體的)인 세계를 서술하고 있는 것이지요. 추상적인 부호로써 구체적인 물상의 세계를 서술하고 있는 것이 '주역'입니다.
이에 비하여 '노자(老子)'는 정 반대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언어(言語)를 기본으로 합니다. 이 언어는 그것이 산문이든 운문이든 '주역'의 부호에 비하여 매우 구체적 개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언어로 서술하고 있는 세계는 매우 추상적입니다. 현학(玄學)의 세계입니다. 무(無)와 유(有), 위(爲)와 무위(無爲) 등 추상적(抽象的) 담론입니다. 소위 담현(談玄)입니다.
나는 '주역'과 '노자'를 대비하면서 그림과 글씨의 차이를 연상합니다. 그림이란 예를 들어 산수화 한 폭을 예를 들어봅시다. 그 형식은 매우 구체적입니다. 나무와 산과 바위, 물, 새, 사람 등 매우 구체적인 물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그림이 이야기하는 서술의 세계는 매우 추상적입니다. 아예 서술구조가 없거나 사의(寫意)가 막연한 그림이 대부분입니다.
이에 비하여 서예(書藝)는 그 형식이 매우 추상적입니다. 비록 한자(漢字)가 상형문자(象形文字)라 하더라도 거의 기호화(記號化)되어 있습니다. 한글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완벽한 발음기호의 조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예의 경우 서술내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분명하지만 그 형식은 추상적이기 그지없습니다.
'주역'과 '노자'를 읽을 때에는 바로 이러한 점에 유의해서 경우에 따라서는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하고, 철학적 추상력을 발휘하기도 해야 합니다.
특히 '노자'의 독법에는 구체적인 단어가 문장으로 조합되면서 만들어내는 그 추상적 진술(陳述)에 구체성을 입히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현대적 과제와 연결시키는 이른바 현재성을 조명해내는 노력도 함께 해야 되는 것이지요.
왕필의 노자주(老子註)가 지금까지 노자해석의 기본이 되고 있습니다. 왕필은 '노자'와 '주역'을 회통(會通)하고 있는데 왕필의 시대적 상황이 노자의 그것과 닮았다는 데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왕필이 노자주를 달았던 시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국지(三國志)의 시대입니다. 조조(曹操) 유비(劉備) 제갈공명(諸葛孔明)이 역사무대를 누비던 시기입니다.
한말(漢末) 북방이 전란에 휩싸이자 왕필 일가는 동문인 형주자사(荊州刺史) 유표(劉表)를 찾아가 의탁하게 됩니다. 형주는 유표 사후에 조조(曹操)에게 귀속되는 곳입니다. 그리고 당시는 조조가 군림하다가 조조 사후에 사마의(司馬懿)의 정변으로 위(魏)가 멸망하고 다시 진(晋)의 건국으로 이어지는 급격한 변화가 바로 이 형주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물론 당시는 대제국인 한(漢)의 피폐와 붕괴 그리고 대규모 농민반란으로 이어지는 그야말로 삼국지 시대입니다. 또 하나의 춘추전국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극상(下剋上)과 혼란(混亂)의 시대였습니다.
한대(漢代)의 명교적(名敎的) 질서가 무너지고, 영원불변한 강상적(綱常的) 질서가 흔들리는 시기입니다. 절대적이고 영원한 천도(天道)가 부정되는 시기입니다. 천도와 대일통(大一統)의 관념이 부정되고, 개방적이고 능동적인 사고로 변화하는 격동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대(漢代)의 명교체제(名敎體制)와는 다른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것이 시대사조로 자리 잡았던 것이지요. 바로 이러한 변화된 시대적 상황에서 왕필은 당시의 현학(顯學)이던 법(法) 명(名) 유(留) 묵(墨) 잡가(雜家) 등은 모두가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추구하는, 그 어미를 버리고 자식을 취하는 '기모용자(棄母用子)'의 사상이라는 비판적 입장을 취하게 됩니다. 이것이 춘추전국시대의 노자의 입장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왕필은 노자와 마찬가지로 근본적 사유(思惟) 즉 철학적 문제의식에 충실했던 것이지요. 결론적으로 왕필은 거대하고 복잡한 명교체제와 번망(繁妄)한 한대경학(漢代經學)에 대한 반성을 통하여 근본적인 것을 추구함으로써 욕망의 소종래(所從來)와 명교의 소이연(所以然)을 밝히는 참된 도(道)를 찾았던 것이지요.
그것이 곧 무(無)를 근본으로 하는 이무위본(以無爲本)의 철학체계입니다. 이것이 왕필의 기본적 철학입니다. 아까 이야기한 숭본말식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곧 간단한 것으로 복잡한 것을 정리한다(以簡御繁)는 것입니다.
무(無)를 본(本)으로 삼고 유(有)를 말(末)로 삼는 귀무론(貴無論)이 노자독법(老子讀法)의 기본이 되고 있습니다. 왕필의 노자주가 노자를 가장 정확하게 읽고 있다고 하는 이유입니다.
왕필의 이러한 근본적 관점은 '주역'의 해석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이 이른바 주효론(主爻論)과 득의망상론(得意忘象論)입니다. 이 문제는 '주역' 편에서 언급했다고 생각됩니다. 이처럼 왕필의 시대와 왕필의 철학적 입장이 노자에 대한 가장 핍진(逼眞)한 독해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왕필의 '노자'가 금본(今本) '노자'이며 왕필의 노자주가 노자 해석의 기본이 되고 있습니다. 왕필은 노자를 주(註)하였다기보다는 '노자'를 편집하였다고 해야 합니다. 여러 가지로 전승되어 오던 '노자' 텍스트를 자기의 입장, 주석(註釋)적 입장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자기의 입장과 관점에서 정리하고 편집하여 금본 '노자'를 만들어 낸 것이지요.
물론 왕필본의 '노자'가 사실은 백본(帛本) '노자'나 죽간본(竹簡本) '노자'와는 다른 또 하나의 전승된 노자 텍스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지요.
'노자'는 산문(散文)이라기보다는 운문(韻文)입니다. 5천여 자에 불과한 매우 함축적인 글이며 서술내용 역시 담현(談玄)입니다. 더욱이 노자(老子)사상은 상식과 기존의 고정관념을 근본적으로 반성하게 하는 고도의 철학적 주제입니다. 그 위에 간결한 수사법은 여타 철학적 논술에 비하여 월등한 경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자'의 독법은 방금 이야기한 바와 같이 최대한의 상상력을 동원하여야 합니다. 앞으로 예제를 읽으면서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지요.
'노자'는 무위(無爲)와 관조(觀照)라는 동양적 사유(思惟)의 근저를 이루고 있는 사상일 뿐 아니라 과학, 문화, 예술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세기에 서구에 소개된 이후 현재 약 60여종의 번역본이 있으며 현대 서구사상에도 매우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노자 강의를 통하여 질주하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의 계기를 여러분들이 얻게 되기 바랍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