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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암동에 휘날리는 한반도기가 보고 싶다"

<기자의 눈> 6.25 와 월드컵, 한ㆍ독전을 기다리며

"내일은 민족분단의 비극인 6.25입니다.
우리가 맞붙을 팀이 통일된 독일입니다.
내일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6월 25일 통일을 맛본 독일과의 경기에
한반도기와 태극기가 휘날린다면 전세계에 우리의 통일의지를 알리지 않겠는지요."(광주에서 권영덕)

"내일은 뭐죠???
6.25입니다. 바로 그 6.25.
60억이 지켜보는 가운데 분단 국가였던 독일과 상암경기장에서 싸우다니 전율을 느낍니다. 이건 우연을 넘어 역사적 필연성입니다. 경기의 승패보다 카드섹션이 더 기다려집니다.
'6.25 Unification Korea'
이미 다른 카드섹션을 만들었겠지요? 그래도 방법이 없을까요."(하양까망)

한국·독일전을 하루 앞둔 24일 본지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이다. 우리 국민이 일각에서 우려하듯, 우리 사회가 직면해 있는 현실적 과제들을 잊은 채 월드컵에 함몰돼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동·서독 단일팀의 통일 자축 '90년 월드컵 우승'**

6.25 52주년 기념일에 치르는 한국과 독일의 준결승전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두 나라는 2차 세계대전후 분단국가라는 역사적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독일이 동서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룬 지는 불과 12년. 당시 동·서독 단일팀은 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3번째 월드컵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그해 10월 3일 탄생한 '통일 독일'을 미리 축하한 바 있다. 독일의 당시 월드컵 승리에 대해 세계 일각에서는 "두 차례나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저력이 월드컵 우승으로 나타났다"며 통일 독일에 대한 큰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독일 통일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갑작스러운 사태였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에도 서독인들과 동독인들조차 통일이란 말은 입밖으로 꺼내지도 않던 상황이었으며 미·소 등 주변 국가들 역시 동유럽의 붕괴가 독일 통일로 연결될 것이라는 예상은 하지 않고 있었다.

당시 동독인들이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동서독의 관문인 브란덴부르크 광장에 모여 외치던 소리는 단지 "우리는 게르만 민족이다(Wir sind das Volk)"였다. 베를린 장벽 붕괴로 게르만 민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스러워 했을 뿐, 곧바로 통일을 이루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압도적이었던 것이다.

이때 독일 통일을 외치고 나선 사람은 바로 콘라트 아데나워를 넘어 독일 최장수 총리의 기록을 경신한 헬무트 콜 당시 독일 총리였다. 콜은 브란덴부르크 광장에서 "우리는 게르만 민족"이라고 외치는 군중들 앞에서 "우리는 한 민족이다(Wir sind ein Volk)"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콜 총리의 "우리는 한 민족" 발언, 독일 통일 초석**

모든 독일인들이 깜짝 놀랐다. 서독인들이 누리던 경제적 풍요를 부러워하며 자유로운 왕래와 경제지원 등의 소박한 꿈을 안고 있던 동독인들은 콜 총리의 입에서 '한 민족'이라는 말이 나오고 나서야 드디어 통일이라는 구호를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콜 총리의 당시 연설은 연설문에도 없었던, 그리고 기민당 등 집권 여당 각료중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정치인이자 역사학자였던 콜의 결단이었다는 게 독일인들의 평가다.

콜은 결국 통일이라는 독일 민족의 과업을 이뤄냈다. 지난 90년 12월 독일총선에서 기민당·기사당 연합은 콜 총리의 이 한마디로 사민당을 크게 누르며 완승했고, 콜은 그 결과 최장수 독일 총리란 영예를 누리게 됐다.

당시 오스카 라퐁텐 사민당 당수는 "독일 통일은 예상보다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라며 통일을 늦춰야 한다고 발언해 독일인들의 통일열망에 부응치 못했고, 결과적으로 총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당수 자리를 내놓았다.

분단을 극복하는 10여년의 과정에서 많은 서독인들은 당시 라퐁텐의 예언이 정확했다는 것을 깨닫고 통일비용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지만, 독일 통일 자체가 잘못됐다고 시비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치러야 했을 비용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이제 전 세계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분단국가는 한국이다. 독일은 자신들이 시작한 전쟁의 결과로 분단됐다고 하지만, 한국은 말 그대로 열강들의 밀실거래에 의해 남북으로 갈라졌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잘 아는 독일인들은 "분단현실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왜 우리보다 못한가"를 이해 못하겠다고 말한다.

히틀러의 나치당 때문에 지금도 민족주의(나치오날리스무스, Nationalismus)란 단어를 쓰지 못하고 있는 독일보다 역사적으로 충분히 자유로울 자격이 있는 한국이면서 '빨갱이' '공산주의' '좌익' 등 수많은 '타부'의 굴레속에 스스로를 얽어매고 있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의 붉은 물결 '레드 컴플렉스' 물리쳤다**

독일과의 월드컵 준결승이 치러질 25일 우리나라에서는 7백만 이상이 붉은 옷을 입고 거리응원을 펼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50여년간 한국을 짓눌러온 '레드 컴플렉스'가 한국 대표팀의 월드컵 선전으로 드디어 무덤 속에 들어갈 준비를 마친 게 아닌가 싶다. 한국의 '붉은 악마'가 '레드 컴플레스'를 잡아먹고 있는 형국이다.

스포츠가 아름답고 한반도를 뒤덮고 있는 붉은 색깔이 광채를 발하는 이유는 어떠한 지역주의나 정치적 이합집산도 여기에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건국 이래 처음 한민족이 단합되어 '대~한민국'이란 국호를 마음껏 불러본다는 것은 더없이 소중한 경험이다.

하지만 처음 느껴보는 이 소중하면서도 낯선 경험의 실체는 무엇일까. 국가주의나 폐쇄적 민족주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으며, 일각에서는 "한풀이에 지나지 않는 이벤트에 불과하다"고 폄하하기도 한다. "정치권과 매스미디어의 유착에 의한 국민기만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붉은 군중의 함성 속으로 들어가 보자.
한국 국민들이 내뿜는 열정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모든 우려를 기우로 돌리는 '순수함'이다. 일각에서 과열과 광기가 목격되기도 하지만, 그같은 무질서가 어우러져 만드는 '광장의 질서'가 오히려 자연스럽다. 월드컵을 통해 그동안 잠자던 한국인들의 정열이 분출구를 찾아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레드 컴플레스' 이후 경제적 역량강화·한국 정체성 규명 시급**

걱정은 사실 지금부터다.

모처럼 지역감정, 계층불화, 세대갈등 등을 극복할 수 있는 분출구를 찾았으나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또 어렵게 찾은 분출구가 8월 재보선, 12월 대선 등 정치권 이벤트 과정에 발생할 수도 있는 극단적 대립과 갈등으로 인해 또다시 막혀버릴 수도 있는 일이다.

6.25 52주년을 맞아 한국인의 하나됨을 경험하고 있는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유대감의 강화'이다. 남북의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

독일식 흡수통일을 기대할 수 없는 한국 현실에서 6.25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우선 '레드 컴플렉스'로부터의 탈피다. 그 이후 향후 통일에 대비한 '경제적 역량' 강화이며, 아울러 한민족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명하고 방향을 제시할 것인가에 있다.

6.25 52주년이 되는 오늘, 통일 독일팀과 겨루는 이 역사적 경기가 단지 축구경기로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도 앞으로 우리가 짊어지고 나아가야 할 역사의 무게 때문일 것이다.

***상암동에 휘날리는 한반도기가 보고 싶다**

어쨌거나 오늘은 손꼽아 기다려 온 월드컵 4강전.

남녘땅 4천7백만 한민족은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은 물론이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목청껏 태극전사들을 응원할 것이다. 아니, 북녘땅 2천6백만 동포들도 소리죽여 태극전사들의 승리를 기원하고 있을지 모른다. 월드컵 개막 이래 이제까지 한국팀의 경기를 모른 체 해오던 북한 당국도 지난 23일 한국과 이탈리아의 경기를 방영했다지 않은가.

분단 한국과 통일 독일이 한판 승부를 벌이는 오늘, 상암동 경기장에 한반도기가 휘날리는 것을 보고 싶다. '통일 한국'이라고 씌어진 카드 섹션이 펼쳐지는 것을 보고 싶다.

이보다 더 가슴벅찬 통일운동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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