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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언론인 정경희씨 고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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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언론인 정경희씨 고소에 대하여

이효성의 언론마당 <6>

한나라당은 지난 17일 언론인 정경희씨가 한겨레 6월 3일치에 쓴 "대쪽-귀족-언론"이라는 칼럼이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필자인 정경희 씨를 상대로 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은 공인에 대한 논평의 자유 즉 언론자유와 공인의 명예권이 충돌한 사건이다.

언론과 언론인은 누구나 자유롭게 비판하려 하고, 개인이나 단체는 자신들의 명예 즉 사회적 평가를 지키기 위해 언론에 의해 나쁜 빛으로 묘사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따라서 언론자유와 명예권은 자주 충돌하게 된다. 이 경우 법은 일반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된 사람이 사인(私人)인 경우에는 언론자유보다는 그의 명예를 더 보호하는 반면, 비판의 대상이 공인(公人)인 경우에는 그의 명예보다는 언론자유를 더 보호한다. 공인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서다. 공인은 또 언론에 쉽게 접근해서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나 논평에 대해 반론을 펼 수도 있다는 점도 고려된다. 정경희씨의 칼럼에 대해 한나라당은 한겨레 6월 5일치에 반론을 게재했다.

공인은 사회적 강자이며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를 결정하거나 그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그의 말과 행동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비판의 대상이 된다. 이런 공인들의 명예권을 존중하여 언론자유를 제한한다면 그들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게 되어 그들의 특권이 강화되고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 때문에 공인에 관한 보도나 논평은 그것이 명백하게 허위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면 그 내용이 공인에게 아무리 불리한 것이라 하더라도 명예훼손으로 단죄하지 않는다. 또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글을 쓸 당시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또 사소한 부분에서 오류가 있다 하더라도 큰 부분이 진실이면 역시 명예훼손은 성립되지 않는다.

논평은 특히 더 명예훼손으로부터 자유롭다. 언론의 명예훼손적인 내용이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지 않는 면책사유의 하나로, 우리나라에서도 준용되는, 이른바 '공정한 논평의 규칙'(fair comment rule)이라는 것이 있다. '공정한 논평'은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이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스포츠 등과 같이 일반 공중의 관심사인 사항에 관해서는 누구라도 논평의 기회를 갖는 것이며 그것이 공적 활동과 관계없는 사생활을 폭로하는 것이거나 인신공격이 아니면 그리고 그 논평이 공정한 한 그 언어나 표현이 아무리 격렬하고 신랄하다고 해도, 또 그 결과로서 논평의 대상자가 사회에서 받는 평가가 저하된다고 해도, 논평자가 명예훼손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일종의 명예훼손 면제요건이라 할 수 있다.

논평이 공인 특히 공직자에 관한 내용인 경우에는 명예훼손의 책임이 더욱더 완화된다. 미 연방대법원은 1964년의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에서 공직자가 언론의 명예훼손적인 내용에 대해 승소하려면 언론이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를 가지고--즉 그 내용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또는 그것이 거짓인지 아닌지를 전혀 개의치 않고서--그런 내용을 게재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그런데 원고(즉 공직자)가 피고(즉 언론 또는 언론인)의 '현실적 악의'를 증명하기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며 따라서 공직자를 포함하여 공인이 논평과 관련하여 언론을 상대로 명예훼손소송에서 승소하기가 지난하다. 이 판결은 "공공의 문제에 관한 논의는 무제한적이고, 강건하고, 널리 열려 있어야 한다는 그리고 그것은 정부와 공무원에 대한 강렬하고, 신랄하고, 때로는 불쾌하리 만치 날카로운 공격을 포함할 수도 있다"는 공공의 문제에 관한 언론자유의 원칙을 확인한 것이었다.

문제가 된 정경희 씨의 글은 논평이며 이회창 후보에 관련된 의혹들에 관해 언론들이 제대로 검증보도를 하지 않는다는 언론들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 글이 이 후보에게 불리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 내용들은 이미 언론에서 많이 다루어진 것들로 사실이거나 강한 의혹으로 남아 있는 것들이다.

그 글 어디에도 '현실적 악의'를 가지고 썼다고 할 수 있는 내용을 찾기는 어렵다. 공인 그것도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시되는 제1당의 후보에 관한 의혹들을 거론하면서 그에 대해 언론이 밝혀야 한다는 글은 명예훼손으로 문제삼을 수 없는 '공정한 논평' 활동이며 언론자유로 보호받아 마땅하다. 대통령이 유력시되는 사람에 관한 의혹들을 파헤치는 것은 언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법인)이나 이회창 후보는 한국 최대의 공인이다. 한국의 제1당과 그 대통령 후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공인은 명백한 허위에 기초하지 않은 글에 대해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해서도 안 되고, 제기해봤자 소송에서 이길 수도 없다. 이 점은 한나라당도 잘 알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그나마 지방자치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직후, 언론사도 아닌 일 개인에 대해 명예훼손혐의로 5억원이라는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최근 공정성이 적용되지 않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공정성 시비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 일련의 행동은 비판적인 언론활동에 재갈을 물리려는 언론자유 침해행위로 비판받고 있다.

제1당이 언론자유를 위축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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