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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뚜껑 우습게 여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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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솥뚜껑 우습게 여기지 마라

[김민웅 칼럼]<69>나경원 검증론

박원순에 대한 질문은 의혹제기와 검증이고, 같은 질문이 나경원에게 던져지면 그건 흑색선전과 음해인 네거티브란다. 네거티브가 네거티브하게 쓰이고 있는 셈이다. 그 바람에 선거 구도의 초중반은 어어 하다가 "박원순 검증"이 주도하고 말았다. 이러는 사이에 나경원에 대한 문제제기는 종적을 감추다시피 한 게 아닌가?

자, 그렇다면 이제는 나경원 검증을 보다 본격적으로 해 볼일이다. 그래야 그나마 형식상으로도 균형이 맞지 않겠는가?

주부 폄하 나경원인가?

선거 초반, 박원순에 대한 나경원 캠프의 독설은 "행정 경험 없는 솥뚜껑"이라는 표현에 압축되었다. 솥뚜껑? 듣는 솥뚜껑 기분 좋지 않을 것이다. 누굴 말하는가? 한국사회에서 이 말은 주부를 일컫는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운전자가 여성일 경우, 남자들은 이 말을 상대에게 내뱉는다. 집에서 솥뚜껑이나 운전하고 있을 일이지 어디서 차를 끌고 나와서 교통 혼잡을 만들고 난리냐는 거다.

주부 알기를 이렇게 우습게 알고도 어떻게 여성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이 한 발언이 아니라도 자기 캠프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면 당장에 취소시키든지 아니면 사과할 일이 아닌가?

"솥뚜껑 알기를 우습게 아는, 주부 폄하 나경원"이라는 반격을 박원순 캠프에서 한다면 유구무언이 될 것이다. 이걸 듣는 주부들, "아 그래 너는 잘나서 판사 하고 국회의원 하고 시장 후보까지 하니 손에 물 묻힐 일이 없겠지. 솥뚜껑 운전할 일이 없어 그러나 봐?"라고 한다면?

그런 식으로 주부를 생각하고 있으면서 엄마 마음으로 시장 선거에 나서겠다고 하니, 이 말을 누가 곧이곧대로 듣겠는가? 솥뚜껑 운전사인 주부들 심정도 제대로 모르면서, 상대후보를 "경험 없는 솥뚜껑 후보"라고 몰아치는 것은 엄연한 주권자인 주부들에 대한 멸시 아닌가? 당장에 솥뚜껑 부대라도 결성되어 규탄할 일이다.

소통불능의 태도

지난 주 MBC 백분토론(10월 13일)은 60분만 했다. 박-나 두 사람의 대결 토론으로 세간의 흥미를 모았다. 여기서 나경원은 어떤 방식의 소통을 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우선,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는다. 상대에게 주어진 제한 시간에 이루어지는 발언에 계속 개입해서 말을 자르는 태도의 반복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시정의 지휘자로서 매우 중대한 결격사유가 된다. 시민들과의 소통이나 시청직원들과의 대화에서 이런 방식의 자세가 적용된다면 서울시의 미래는 우울해진다.

게다가 나경원은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그치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주었다. 이게 힘의 관계가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다면 상대는 주눅이 들고 제대로 뭔가 표현하고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상황이 종료될 수 있다. 소통불능 상태로 돌입하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상대 후보가 구체적인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어도 여전히 구체적이지 않다고 반박한다. 어찌해서 구체적이 아닌지 설명이 없는 채로 말이다. 이는 의도적인 딴전이거나 악의적인 대응 내지는 이해력 부족을 드러내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만든다. 그 어느 경우이든 시정의 책임자로서는 위태로운 대화법이다.

자신이 예측가능한 후보라고 주장했듯이 정말 예측 가능해진다. 소통 불능의 인물이 시정의 지휘탑에 있게 된다면, 우리는 이명박 정권 이후 경험하고 있는 상황이 닮은꼴로 재현되는 것을 뻔히 내다보일 것이다. 서울 시민이 바라는 것은 이게 아니다.

역사의식 없는 정치인

자위대 창설 50주년 기념식 참석과 관련한 애초의 거짓말은 동영상으로 판명이 나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더 깊은 곳에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항의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 대해 사후라도 역사의식을 가지고 성찰한 바가 없다는 점이다. 모르고 참석했다면 용서가 되리라 여겼는지 모르나, 국회의원이 어디 참석하면서 그걸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고, 지금처럼 이리 저리 따지는 모습은 그런 주장과 맞지도 않는다.

설혹 그때는 그랬다고 해도, 그러면 그 시기에는 매우 멍청한 정치인이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몰랐다 해도 나중에 자위대 문제를 제기해야 옳고, 알았다면 더 큰 문제다.

도대체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 노력한 바가 있기를 하나, 친일파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기를 하나, 자위대에 대한 비판적인 논란을 벌여본 바가 있나. 이런 식으로 역사의식이 부재한 상태이니 500년 도읍지인 서울의 미래와 관련해서 역사성을 회복하는 발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직업 창출을 위한 관광을 들고 나오나, 역사의식 없는 시장후보가 무엇으로 관광을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명박, 오세훈으로 이어지는 서울시 개발정책이 서울의 문화적 역량과 역사적 풍경을 제거해버린 것에 그 문제점이 집중되어 드러나고 있는 판에, 우리 역사의 고난과 가치에 대해 의식하지 못하는 후보가 어떻게 서울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인지 종잡기 어렵다.

이런 비판이 억울하다면, 나경원은 먼저 자신의 역사관을 검증받아야 옳다. 자위대 문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밝히는 것이 순서다. 박원순은 이걸 나경원에게 반드시 물어야 한다.

일제시대 강점기는 자발적 복종의 결과인가?

이 문제는 사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박원순의 병역 문제를 거론하면서 그 조부형제의 강제징용 여부를 따지는 논란에서 신지호 의원은 강제가 아닌 기업의 모집에 자발적으로 응한 것이라고 반론을 편다.

이게 말이 되는가? 강도가 다스리는 나라에서 자발성이 있는가? 한 나라와 민족, 한 시대가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강점되고 있는데 자발적 응모 운운은 역사의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 태도가 아닌가? 농민들이 궁핍에 몰려 징용 모집에 응했다면 그것이 자발적인 것인가? 일제강점의 결과로 가난에 처한 농민들의 강제적 자구책이 아니던가? 그래서 사할린으로, 만주로 떠났던 것이 아닌가? 이게 자발적인가? 자기가 알아서 그리 했으니?

몰리고 몰려서 이 땅을 떠나 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한 시대의 슬픔과 비극을 지닌 가족사를 그런 식으로 난도질하면서 어쩌구저쩌구 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일제시대 전체의 강제적 점령상태에 대한 의식이 부재한 이런 논리에 대해 나경원은 아직 한 마디 자성의 발언이 없다. 일제강점시기의 자발성이라면 친일 외에는 없다.

그런 나경원의 경우,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해명하지 않겠다고 입을 다문다. 상대 후보의 아버지, 할아버지까지 싸잡아 모욕을 준 뒤 자신은 사학비리 문제와 얽힌 가족사 의혹 제기에 대해 일절 대응하지 않겠다니, 경우가 없지 않은가?

약자를 위한 정책?

약자를 위한 정책을 펴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은 그 삶이 먼저 약자들을 위해 헌신해온 세월로 입증되는 법이다. 과연 그러한가?

판사와 국회의원, 그리고 사학재벌의 가문 출신이 무엇이 아쉬워 3층짜리 상가를 굴려 몇 년 안에 십 수억의 차익을 남기는가? 이걸 투기요, 투자요, 합법이요, 불법이요 하고 논란을 벌이는 사태의 본질이 사라진다. 이건 탐욕스러운 삶이지, 약자를 위해 살아온 삶이 아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사회적 기부를 했다거나 약자들을 위해 쓴 바가 있다면 공개하는 편이 낫다. 상대후보는 자신의 경제력의 대부분을 기부로 돌리고 있는 것과는 너무 대조되지 않는가? 약자를 위해 살아왔다기보다는 약자 위에 군림해온 삶이 어떻게 약자를 위한 시정책임자의 경력이 될 수 있을까?

이번 선거는 무상급식 반대 시장 퇴출 이후 치러지는 선거다

우리는 왜 이번 선거를 치르게 되었는가? 그건 무상급식에 대한 오세훈의 반대가 가져온 결과 아닌가? 시민들의 복지정책 확대에 반대한 시장이 시민들의 거부로 퇴출된 상황을 수습하는 선거라는 점을 망각한다면 이 선거가 가진 의미가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다.

나경원은 여전히 무상급식 반대론자다. 시민들이 선택한 무상급식에 대해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다. 이미 퇴출된 전 시장의 정책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복지정책에 대한 기본자세를 가지고 있는 후보의 등장은 그래서 시대 역행적인 사태다.

자기 아이는 이미 비싼 학비가 드는 외국으로 조기유학을 보내고 있는 상태에서 무슨 엄마 마음이요, 교육 복지요, 무상급식 논란이요, 약자를 위한 정책이요, 할 수 있을까?

살아온 삶과 내놓는 말이 서로 엇갈리고, 그나마 그 발언이라는 것도 소통능력 부재의 모델이다시피 할 정도이니 이제 서울시민들은 제대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끊임없이 시민들과 소통하면서 새로운 발상을 구체화해온 시민운동가 출신의 시장후보와, 일방적 소통에 익숙하고 약자의 삶에 대해 관심을 별로 보여 온 바가 없는 기득권 체제 출신의 후보. 이 양자 대결에서 어느 쪽에 손을 들어줄 것인지에 따라 서울의 미래만이 아니라 한국정치의 좌표가 달라질 것이다.

아, 정말이지 솥뚜껑 얼마나 무서운지 확실히 보여야 할 때가 아닐까? 여성 정치인으로부터 폄하 당한 주부들, 이대로 그냥 계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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