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빠른 뉴스'를 자랑으로 내세우고 있는 SBS '8시 뉴스'를 두고 한 대학교수와 SBS 현직기자가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언론학계와 현업을 각각 대표하는 대학교수와 기자들은 속으로는 서로를 비방하기에 바쁘지만 관례적으로는 공개적인 신문지면 등을 통해 내놓고 공방을 벌이는 경우가 매우 드물기 때문에 이번 사례는 특히 관심을 끈다.
한편 한겨레신문의 토론면인 '왜냐면'을 통해 진행 중인 이번 공방을 두고 SBS 내에서도 '자성하자'는 내부 구성원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SBS 뉴스가 새롭게 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인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사진 '1시간 빠른 뉴스'를 표방하는 SBS '8시뉴스'의 저널리즘 의식을 둘러싸고 한겨레 토론면인 '왜냐면'에서 대학교수와 현직 기자간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은 축구이야기로 '도배'를 했다는 비판을 받은 지난 5월 26일자 SBS '8시뉴스'.>
이번 공방은 최영묵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한겨레 5월 31일자 35면(방송면) 칼럼 'TV안 TV밖 '1시간 빠른 뉴스' 넘치고 치우치고'를 통해 SBS 메인뉴스인 '8시 뉴스'를 비판하면서 비롯됐다. 최 교수의 칼럼은 "SBS는 8시에 메인뉴스를 내보낸다. 9시대에는 별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는 통렬한 비판으로 시작된다.
최 교수는 SBS '8시뉴스'가 가치중립과 생활밀착형 정보로의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가치'나 '생활'을 찾기는 어렵고, 그리 공정한 것 같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가 '8시뉴스'의 넘치고 치우치는 예로 적시한 것은 세 가지.
***최영묵 교수 "SBS '8시뉴스' 보신주의 지나치다" 비판**
첫째는 지난 5월 26일 '8시뉴스'의 16개 뉴스아이템중 14개가 월드컵이야기로 도배됐다는 것으로 미스코리아의 축구관전과 대표선수와의 미팅이야기까지 기사 소재로 삼은 것은 지나쳤다는 지적이다. KBS와 MBC도 축구 관련기사가 많기는 했지만 SBS처럼 "'도배'를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는 '8시뉴스'의 대선관련 보도가 노골적으로 편향됐다는 비판이다. 보도분량이나 형식은 나름대로 공정하지만 화면이나 카메라 앵글, 보도내용 등은 확연히 편파적이라는 것이다. 최 교수는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3월말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10% 이상 크게 앞섰다는 SBS 자체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아예 보도하지 않았던 일을 들었다.
반면 지난 5월 15일에는 '오차범위 접전'이란 보도를 통해 "당선가능성에서는 이회창 후보가 노무현 후보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보도하며 후속아이템도 편성했다는 것이다.
셋째 5월 28일자 '너무 살 빼면 불임'과 '미녀들도 축구관전' 등과 같은 눈에 띄는 연성아이템을 통해 차별화를 시도하면서 주요 쟁점이나 비리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무시하거나 면피성 보도로 일관하는 것은 SBS 노조 스스로 "지나친 '보신주의'"라고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SBS를 대신해 총대를 메고 나선 사람은 정명원 기자. 정 기자는 한겨레 4일자 '왜냐면'에 '최영묵 교수의 게으른 비판'이란 반론을 싣고 최 교수가 모니터도 제대로 하지 않고 마음대로 칼럼을 썼다며 "최 교수는 SBS 기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정명원 SBS 기자 "최 교수 칼럼은 게으른 모니터링 결과" 반박**
정 기자는 "최 교수는 'SBS 8시뉴스'에 대한 모니터 비평을 하면서 신문방송학 전공 교수로서의 날카로움을 보여주지 못하고 비꼬는 수사와 구체적이지 못한 지적으로 일관했다"며 SBS 기자들의 고발노력과 공익적인 기사의 예로 SBS가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이달의 기자상'을 석달 연속 수상한 경력을 들었다.
정 기자는 5월 26일 한국-프랑스 평가전 당시 국민들의 관심은 온통 축구에 있었다며 SBS가 그 관심을 충족시킨 것이 잘못이냐고 되묻고 KBS와 MBC 역시 각각 12꼭지와 13꼭지씩 관련보도를 했다고 반론했다. 정 기자는 대선관련 편파보도에 대한 지적에 대해 "'노풍'의 시작을 알린 여론조사가 SBS에서 제일 먼저 나갔다는 사실도 같이 언급해야 옳았다"고 반박했다.
정 기자는 "이건 회사 문제라기보다는 우리 조합원의 자존심에 관한 문제"라며 "문제의 칼럼은 최 교수에게 어떤 의도가 있었든지, 아니면 선입견에 사로잡혀 쓴 글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최 교수 "한 골 넣은 선수라고 반칙도 용인할 순 없다"**
정 기자의 반론 이후 최 교수는 한겨레 6일자 '왜냐면'에 '맹목적 '조직이기주의'를 개탄한다'는 재반론을 통해 5월 26일 뉴스중 KBS와 MBC도 월드컵 관련보도가 많았다는 정 기자의 주장은 전체를 비교하지 못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즉 SBS '8시뉴스'가 14꼭지를 축구에 할애하고 일반기사는 2꼭지만 다룬 반면. KBS '뉴스9'는 당일 기사아이템 25개중 12꼭지를 일반뉴스에 할애했고 MBC는 23꼭지 가운데 9꼭지가 일반뉴스였다는 것이다.
노무현 후보 여론조사 보도불방과 관련 SBS가 '노풍'을 최초 보도했다는 정 기자의 지적에 대해 최 교수는 선제골을 넣은 뒤 비신사적인 행위를 한 축구 선수의 예를 들어 골을 넣은 선수의 비신사적 행위를 봐줘야 한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최 교수는 SBS 뉴스에서 생활밀착형 정보를 찾기 어렵다는 자신의 비판은 최근 국민의 가장 큰 관심사가 돼야 하는 것은 선거인데 "요즘 SBS '8시뉴스'를 보니 표방하고 있는 '가치'와는 달리 특정 후보 편들기 양상이 나타나고 있고 서울지역에 밀착한 보도를 찾기 어렵다"는 점을 선거보도감시연대회의 모니터 보고서 등을 참조해 쓴 것이라고 밝혔다.
최 교수는 끝으로 "모니터도 하지 않고 칼럼을 썼다는 단정과 여기서 근거하는 게으른 지식인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에 대한 정 기자의 '공정'하고 '부지런한' 해명을 기다리겠다"며 정 기자의 재답변을 요구했다.
***정 기자 "최 교수는 SBS 기자들에게 사과해야"**
정 기자의 답변은 11일자 한겨레 '왜냐면'에 보도된 '또다시 최 교수의 '게으름'을 지적한다'는 글을 통해 볼 수 있다.
정 기자는 먼저 자신이 최 교수의 글에 대해 지적한 것은 두 가지라고 간추렸다. 하나는 최 교수가 단지 며칠간의 뉴스만 판단근거로 삼은 채 SBS 뉴스를 만드는 2백여명의 기자들이 저널리즘이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게으름'이었고, 다른 하나는 신문방송학과 교수로서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비판이 아닌 자신의 편견에 따라 칼럼을 썼다는 점이라는 것이다.
정 기자의 지적은 최 교수가 5월 26일 SBS '8시뉴스'와 노풍관련 '여론조사 보도'라는 두 가지 사례만을 근거로 "SBS '8시뉴스'는 저널리즘 의식이 없다"고 몰아세웠다는 것이다. SBS가 대통령 아들관련 비리내용을 특종보도했고 소외된 인권에 대한 보도로 기자상도 받았는데 어떻게 저널리즘이 없다고 비판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정 기자는 "기업활동을 하는 언론사는 공영방송을 제외하곤 모두 상업적일 수밖에 없다"며 상업방송은 저널리즘 없는 방송이라는 최 교수의 주장은 스스로의 가치판단 부여에 따른 주장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 기자는 또 "시청자의 관심을 충족시키는 보도를 해야 한다"는 게 방송뉴스의 기본원칙이라며 최 교수가 반론글에서 MBC의 월드컵 관련뉴스 꼭지 수를 스포츠뉴스를 제외한 채 써 사실관계를 왜곡했다고 비판했다.
정 기자는 결론으로 "SBS가 노무현 후보에게 유리한 '노풍'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처음으로 발표한 것은 언급하지 않고, 뒤에 노무현 후보가 압도적으로 이회창 후보를 앞선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지 않은 것은 눈치보기라고 해석한 것은 공정하지 않다"며 "최 교수는 본인의 글이 의도와는 다르게 SBS 기자들에게 상처를 줬다면 그것을 '맹목적 조직이기주의'라고 매도할 것이 아니라 사과를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SBS 일부 기자들 "최 교수의 비판,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반성**
최영묵 교수가 특정방송사인 SBS 뉴스를 대상으로 정면 비판에 나선 것과 정명원 기자가 자사 보도국 기자들의 명예를 대신해 반론에 나서고 있는 모습은 어떤 면에선 언론학계와 현업계간의 새로운 토론문화를 개척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학계와 현업간의 치열한 공방을 통해 한국 언론이 한 걸음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명원 기자의 반박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 언론이 자신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는 데 지나치게 폐쇄적이라는 점이다. 즉 정 기자가 SBS 보도국 기자들의 명예를 대신해 최 교수를 비판하고 나선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정 기자의 반론에는 SBS 뉴스에 대한 자기반성이 깔려있지 않다는 점이다.
SBS가 '이달의 기자상'을 석달 연속 수상하며 특종을 한 것과 정치권에 대한 눈치보기 때문에 여론조사를 해 놓고도 보도하지 않은 사실, 그리고 SBS '8시뉴스'가 지나친 연성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전혀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할 별개의 사안들이기 때문이다. 특종기사가 몇 개 있었다고 해서 전체적인 뉴스편성의 문제점 자체가 용인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특히 SBS 사내게시판과 노조게시판에도 일부 SBS 뉴스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내부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 정 기자의 최 교수에 대한 사과요구는 지나친 자사이기주의라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오너있는 방송사인 상업방송 SBS가 일부 족벌체제로 운영되는 신문사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성해볼 일이다.
SBS의 한 중견기자는 이와 관련해 "SBS가 8시에 뉴스를 하는 것은 사실 KBS MBC 메인뉴스와는 경쟁하기 힘들기 때문이라는 것은 웬만한 SBS 기자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며 "한때 SBS가 메인뉴스 시간을 9시로 옮겼다가 다시 8시로 회귀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기자는 "최 교수의 비판 일부가 SBS 기자들의 자존심을 자극한 점이 없지는 않지만 전반적으로 올바른 지적"이라며 "사내에도 최 교수의 지적이 옳다고 생각하는 기자들이 상당 수 있다. SBS 기자들 스스로가 더 좋은 뉴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이제 간부나 경영진 눈치보기에 더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영묵 교수와 정명원 기자의 공방은 이제 2라운드를 마쳤다. 최 교수가 3라운드에서 어떤 내용으로 반론을 제기할지 주목된다.
***한겨레 '왜냐면' 오프라인 참여저널리즘 개척 눈길**
한편 최 교수와 정 기자의 공방에서 보듯이 기존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토론면 운영으로 한국 사회의 새로운 토론문화 지평을 열겠다는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 저자인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의 꿈이 독특한 편집방식으로 눈길을 끌고 있는 한겨레의 '왜냐면'을 통해 점차 현실화돼가고 있다.
자격제한이 없고 원고료가 없고 사진이 없다는 한겨레 '왜냐면'의 '3무원칙'은 일방적 정보공급이 주를 이루던 기존 언론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중고등학생들로부터 정부 정책담당자, 관련기관, 대학교수 등이 지면을 통해 논리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는 현상은 신문이라는 오프라인을 통해서도 참여저널리즘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는 사례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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