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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언론사 여론조사보도 믿지 말라"

언개연 토론회 '여론조사보도, 어떻게 볼 것인가'

'한편의 코미디' '세계 선거여론조사 사상 최악의 우둔한 결과'. 지난 96년 총선에서 16억원을 들여 출구여론조사를 실시한 방송3사의 여론조사에 대한 로이터 등 외신들의 평가다.

그런데 6년이 지나 선거의 해인 올해 봇물을 이루고 있는 각 언론사의 여론조사 역시 정확성이 크게 떨어져 유권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한국은 이미 96년 총선 여론조사의 참담한 실패 이후 2000년 4.13 총선에서 다시 한번 국제적인 망신을 자초하기도 했다. 미국의 경우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당선자 예측을 잘못했던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란 조사회사는 문을 닫기도 했으나 한국은 잘못된 조사결과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하는 조사회사도 없는 실정이다.(이를 보도한 방송3사는 사과방송을 했다.)

<사진>

권혁남 전북대 신방과 교수는 5일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주최한 '여론조사 보도,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 발제를 통해 한국의 선거여론조사가 본격화된 것이 이제 겨우 10여년에 불과하다고는 하지만 연속적인 참패는 매우 충격적인 결과라고 지적했다.

***거듭되는 언론사 여론조사의 실패 원인은**

'우리나라 선거여론조사 보도 실태와 과제'란 주제로 발제를 맡은 권 교수는 올해 치러질 4대 지방선거와 대선을 앞두고 언론의 선거여론조사에 대해 벌써부터 많은 비판들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최근의 예로 지난 3월 민주당의 제주, 울산지역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거의 모든 언론사 여론조사가 이인제 노무현 후보가 단연 앞설 것으로 예측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혀 예상밖으로 제주에서 한화갑 후보가 1위를 차지했고 울산의 경우 김중권 후보가 크게 선전할 것을 예상한 언론사는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194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갤럽을 비롯한 여러 조사회사들이 듀이 후보가 트루만 후보를 누르고 당선될 것이라고 예측했다가 실패를 맛보았다며 오명을 떨쳐버리는 데 무려 12년의 세월이 필요했다는 사례를 들었다. 권 교수는 그러나 한국의 경우 계속 참담한 패배를 경험했으면서도 선거 때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과거의 실패를 쉽게 잊어버린다고 비판했다.

권 교수는 선거여론조사 실태의 내용분석을 위해 올해 1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 보도된 10개 중앙일간지의 여론조사를 분석대상으로 삼았다. 분석결과에 따르면 10개지가 보도한 여론조사 관련기사는 모두 98건으로 조선일보 19건, 한국일보 12건, 중앙일보 경향신문이 각각 11건, 한겨레 문화일보 각 9건, 동아일보 세계일보 각 8건, 국민일보 6건, 대한매일 5건이다.

조사가 집중된 시점은 노픙이 불기 시작한 3월과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직전인 5월이 똑같이 34건을 기록해 가장 많았다. 각 언론사의 자체여론조사는 59건으로 60.2%를 차지했고 33건이 타 언론사 여론조사 인용, 3건은 계열사 여론조사 인용보도로 나타났다.

언론사가 직접 조사한 경우는 상대적으로 경제여건이 좋은 편인 조선 중앙 동아일보가 각각 13건, 9건, 8건으로 가장 많았고 경향신문과 대한매일은 각 1건에 불과했다. 특이한 결과는 1건을 자체조사한 경향신문이 11건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다는 점과 8건 자체조사한 동아일보가 타 언론사 여론조사는 단 한번도 인용보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선에 밀린 지방선거 여론조사 보도**

권 교수는 선거여론조사의 편향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6.13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중앙지들은 오직 12월 대통령선거에만 매달리고 있을 뿐, 지방선거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분석대상 여론조사 보도중 62.2%(61건)가 정당간 대선후보 지지도에 관한 조사이고 15.3%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여론조사, 3.1%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여론조사였다.

이에 반해 6.13 지방선거와 관련된 여론조사는 18.4%(18건)에 불과했으며 지방선거와 대선을 동시에 조사한 기사가 1건 있었다. 지방선거와 관련된 18건의 여론조사중에는 무려 12건이 지방선거 공식선거운동 시작일 직전인 5월 20일부터 28일 사이에 집중됐다.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은 한겨레가 전체 8건의 여론조사 보도중 4건을 차지해 상대적으로 가장 높았고 경향신문과 대한매일은 지방선거 관련기사가 한 건도 없었다.

***지지도 묻는 똑같은 질문에 경마식 보도가 판쳐**

여론조사 내용의 천편일률적인 질문도 문제다. 98건의 여론조사중 95건이 후보의 지지도 등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추었고 후보들의 정책문제나 유권자들이 관심을 갖는 문제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책에 대한 여론조사 보도는 대북정책 국정과제가 각각 2.0%, 단체장의 선결과제가 1.0%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권 교수는 이렇게 후보 지지도 중심의 여론조사를 실시하다보니 기사 제목도 '3자대결' '가상대결' '광역단체장 판세분석' 등으로 후보간의 대결을 강조하고 경마식 게임식 표현이 지배적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이런 점에서 조선일보가 3월 5일 보도한 11명의 대선예비주자 장·단점 비교와 이미지 조사는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여론조사 보도가 지닌 문제점중 하나는 조사방법에 대한 정보제공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설문 내용의 공개는 거의 없었으며, 표본 수에 대한 정보공개는 52.0%, 표본오차 39.8%, 자료수집방법 33.7%, 그리고 표본추출방법에 대한 정보는 겨우 4.1%에 그쳤다." 권 교수는 신문사별로 볼 때 그래도 중앙일보가 비교적 조사방법에 대한 정보를 충실히 알려주는 편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또 선거를 앞두고 실시되는 언론사 여론조사들의 결과가 제각기 달라 유권자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며 조사의 정확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서울의 경우는 후보간의 차이가 거의 비슷하게 나타났지만 특히 대전 제주 지역의 경우 조사마다 후보자간의 순위가 바뀌고 있어 유권자들에게 혼동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표본의 크기가 작음에도 지나치게 계층별 분석을 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권 교수는 전국표본이 500명인 경우 강원도와 제주도에 할당되는 표본은 겨우 각각 20명, 7-8명에 불과한데 불과 20명의 의견으로 1백만 유권자의 의견을 정확히 예측하거나 7명으로 30만 제주도 유권자의 의견을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천명 이하의 표본을 갖고 조사할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해결책으로 전국적 표본을 크게 하거나 어렵다면 강원 제주 등의 지역에 한해서라도 적어도 2백-3백명 정도의 표본을 할당하고 조사하여 분석 시에는 인구비레에 의한 비중을 주어 실제 비율을 축소하는 방안이 있다고 제안했다.

***여론조사 설문·결과 이용한 지역감정 자극보도 여전**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여론조사 보도도 도마위에 올랐다. 권 교수는 사례로 지역별 분석도 모자라 원적지 분석까지 해 놓은 조선일보 3월 25일자 보도를 적시했다. 조선일보는 "안 후보는 원적이 서울과 호남출신의 응답자에서만 박 후보에게 조금 뒤졌을 뿐 연령, 교육, 직업을 기준으로 한 모든 판별분석에서 박 후보를 앞섰다"고 보도하며 평소 거의 사용되지 않는 개념인 원적지까지도 조사해 판세를 분석했다는 지적이다.

동아일보 5월 27일자가 "이같은 판세는 동서분할구도의 고착화를 넘어 호남고립화로까지 비쳐질 수 있는 결과"라며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여론조사 보도를 한 것도 하나의 사례로 지적됐다. 권 교수는 또 중앙일보 3월 2일자 "현재 경상도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누구인가(상위 5위)에 대해서는 이회창 24.6%, 노무현 19.8%, 박근혜 16.8%, 정몽준 8.5%, 김중권 2.5%의 순으로 조사됐다"는 보도 역시 문제가 있는 질문이라고 말했다.

근거없는 주관적 해석도 여론조사 보도의 문제점이다. 권 교수는 대표적인 예로 한겨레 3월 4일자 "여야 대선주자 가상대결에서는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지지자의 상당수가 무응답으로 돌아서면서 여야간 격차가 줄어드는 결과가 나타났다. 이런 결과는 박근혜 의원의 탈당과 친일 반민족 행위자 명단 공개에 한나라당이 부정적 태도를 보인 점이 이 총재의 지지도에 악재로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는 기사를 들었다.

권 교수는 "박근혜 의원의 탈당이 이 총재의 지지도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은 여러 조사에서 나타난 사실이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지만, 친일 반민족 행위자 명단공개에 대한 한나라당의 부정적 태도가 이 총재의 지지도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매우 주관적인 해석이라 생각된다"고 밝혔다.

***대안: 여론조사 결과를 머릿기사로 보도하지 말라**

권 교수는 여론조사 보도를 위한 대안으로 투표 가능성 지수 등을 만들어 조사의 정확도를 높일 것과 선거여론조사의 실패를 거듭하는 조사회사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을 주문한다.

권 교수는 또 정확치 않은 여론조사 보도가 절대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표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야 하며 뉴스에서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머릿기사로 주요하게 처리해서도 안된다고 말했다. 영국 BBC의 경우 단순히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지를 묻는 여론조사 결과를 뉴스나 프로그램의 머릿기사로 삼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설문에서도 후보들이 제기하는 정책이나 이슈보다는 유권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정책이나 이슈를 적극 발굴하고 비중있게 보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선거여론조사가 후보 지지도 조사에만 집중돼서는 안되며 소수 유권자를 대상으로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통해 심층적인 정보를 얻도록 해야 한다.

***출구조사 거리제한 규정 등 선거법 개정하라**

권 교수는 또 좀더 자유롭고 완전한 출구조사를 위해 출구조사의 거리제한 규정을 철폐해야 하며 공식 선거운동 기간의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조항이 완화되거나 폐지되는 등 선거 여론조사 관련 선거법의 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권 교수는 앞으로 조사회사들은 철저한 원칙에 입각해 최종 조사대상자를 선정하는 등 표본추출을 보다 정확히 하는 한편 비표본오차를 줄이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즉 응답자 접촉실패 비율이 높은 전화여론조사의 경우 언제 어떻게 재접촉시도를 할 것인지에 관한 나름대로의 조사원칙과 절차기준이 마련돼야 하며 조사결과 공표시 접촉실패율도 공개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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