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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ㆍ일 월드컵이 세계를 멈추게 했다"

역대 월드컵을 통해 본 축구의 교훈

오늘(5월 31일) 개막되는 2002 월드컵은 사상 최초로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떠나 아시아라는 중립지에서 펼쳐지는 대륙간 전쟁이다. 한일 월드컵은 또 역대 월드컵과 달리 주최국이 우승후보 예상국가군에서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 열리는 대회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끈다.

세계 언론의 시선이 한국과 일본으로 집중돼 '월드컵이 세계를 멈추게 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지난 4-5월 한국 언론의 지면과 화면을 독식하던 비리와 게이트가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세계 각국의 언론도 월드컵 특집을 마련하는 등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

사상 최초의 공동개최 등 유난히 '최초'라는 단어를 많이 수반하고 있는 2002 월드컵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독일 쥐드도이체차이퉁(SZ)이 29일 보도한 '대륙간 전쟁'이란 기사는 월드컵의 지난 발자취와 더불어 월드컵이라는 축구경기를 통해 배워야 할 점이 무엇인지를 소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월드컵은 세계인이 축구공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하나임을 알게 해준 대회다. 1930년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에서 열린 제1회 월드컵을 통해 유럽인들은 남미 축구도 똑같이 '별다른 재료없이 물로만 요리한다(공만 갖고 운동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제1회 우루과이 "월드컵 배삯도 없었다"**

제1회 우루과이 월드컵에 참여했던 국가는 모두 13개국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은 시간상의 제약으로 3주간 배를 타고 수천km 떨어진 남미로 이동하기가 쉽지 않았고, 배삯을 지불할 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루과이 월드컵은 세계 최대의 스포츠 행사로서 처음으로 남미와 유럽의 축구세계 비교를 가능하도록 만들어준 대회라는 점에서 오늘날까지도 많은 축구팬들의 깊숙한 마음 한 곳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 월드컵 대회는 매 대회마다 거의 똑같은 팀들이 출전하고 팬들은 출전선수가 어떤 면도용 크림을 애용하는지 알고 있을 정도로 새로울 게 없는 행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4년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의 축구공 마술사들이 펼쳐 보이는 월드컵 쇼는 항상 새로운 자극을 준다.

1974년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던 독일 국가대표팀의 파울 브라이트너는 2002 월드컵 우승후보로 브라질을 꼽고 있다. 그는 브라질이 이전에 했던 실수들을 되풀이하지 않고 선수 개개인이 갖고 있는 모든 힘을 팀을 위해 집중한다면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브라이트너는 브라질외에 포르투갈에도 베팅을 하겠다고 말했다.

***"2002 한일월드컵은 남미·유럽의 홈그라운드 이점을 떠난 최초의 객관적 평가의 장"**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떠나 아시아에서 처음 개최되는 2002 월드컵은 세계축구의 산실격인 양 대륙이 처음으로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떠나 제대로 된 실력을 평가받는 대회가 될 것이다.

일견하건대 유럽축구는 지금까지 남미 축구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 이는 재능있는 많은 남미 선수들이 상당한 몸값 지불능력을 갖고 있는 유럽 프로리그의 명문팀에서 뛰고 있는 현실만을 보더라도 자명하다. 상대적으로 남미에서 뛰고 있는 유럽 선수는 거의 없다.

예를 들어 독일 분데스리가 챔피언을 꿈꾸는 모든 우승후보 팀들은 브라질 선수를 보유하고 있다. 브라질 선수 스카우트를 독일 프로축구의 거의 의무화된 전통으로 계승시킨 스카우터가 바로 차범근 전 감독이 활약했던 바이어 레버쿠젠의 노르베르트 치글러다.

이태리 AS Rom의 조르진호 티타 에머슨, 혹은 아르헨티나 선수인 디에고 플라센트 등을 스카우트한 치글러는 이들을 독일로 스카우트하기 전에 브라질 아르헨티나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 선수들을 오랜 기간 비디오 분석 등을 통해 면밀히 주시해왔다. 그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축구는 그동안 (돈을 벌 수 있는) 성과를 내는 방향으로 집중해온 것이 분명하다. 그 방향은 바로 유럽"이라고 말했다.

***남미 축구선수들의 유럽지향 "출세가 보장된다"**

이같은 현상이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다. 파울 브라이트너는 월드컵 역사상 가장 형편없는 대회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 1978년 대회를 떠올리며 당시 남미 선수들은 정체성 혼란에 빠져 있었다고 말했다.

브라이트너는 "그들은 당시 많은 훈련과 컨디션 조절을 필요로 하는 유럽이냐, 아니면 뛰어난 개인기를 발휘하고 그들의 경기이해 능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남미를 선택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에 빠져있었다"고 회상했다. 남미 선수들이 출세를 보장하는 유럽리그를 선택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했던 것이다.

1982년 월드컵 때 아르헨티나의 축구영웅 디에고 마라도나는 21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세계적 스타였다. 하지만 아르헨티나가 일찍 탈락하는 바람에 빛이 바랬다. 브라이트너는 당시 마라도나에게 부족했던 것은 축구는 혼자 하는 경기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 데 있었다고 지적한다.

***디에고 마라도나 "축구는 혼자 하는 경기가 아니다"**

그는 "마라도나는 스페인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후 개인플레이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즉 유명한 선수들만으로 구성된 큰 팀에서 무엇인가 보여줘야 한다는 사실을 배운 것이다"고 말했다.

스페인에서 2년간 선수생활을 보낸 후 마라도나는 SSC 네팔로 이적한다. 마라도나는 이후 1986년 월드컵에서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팀을 이끌며 독일과의 결승전에서 승리했다. 브라이트너는 또한 남미선수들이 유럽프로리그에서 뛴 경험이 남미 축구발전에도 많은 도움을 줬다고 믿는다.

"AS 로마에서 뛰고 있는 에머슨의 경우 물론 모든 기초실력을 갖추고 있었으나 레버쿠젠과 로마에서의 경험을 통해 프로근성을 배웠다. 이후 그는 아주 훌륭한 선수로 성장했다"

1958년 유럽에서 열린 월드컵은 역사상 처음으로 홈그라운드인 유럽 국가가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던 대회였다. 당시 브라질은 결승에서 5:2로 스웨덴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축구전문가들은 이제 유럽축구가 훈련과 전술뿐만이 아니라 기술적인 개인기 부문에서도 남미 선수들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인정하고 있다. 치글러 스카우터는 "프랑스를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질적으로 우수한 값진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는 프랑스는 전술적으로 잘 훈련됐을 뿐만 아니라 빠른 축구를 구사하면서도 수준높은 경기를 펼친다"고 말했다.

***유럽 축구, 남미 개인기를 뛰어 넘었다**

하지만 브라이트너는 프랑스의 성공은 두세 선수의 뛰어난 기량에 의존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는 1972년 유럽 챔피언이었던 당시 독일 축구대표팀이 유일하게 완벽한 축구를 구사했던 팀이라고 평가했다. 브라이트너는 그 이유로 "당시 독일 팀에는 혼자서도 경기를 완전히 장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5-6명의 선수들이 있었다. 상대편은 경기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했다. 승부는 이미 끝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브라이트너는 2002 월드컵에서 당시 독일팀과 비견할 만한 나라로 포르투갈을 꼽는다. 루이스 피구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포르투갈은 남미적 열정을 갖고 승리를 위해 그들이 얼마나 강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포르투갈은 또 1991년 20세 이하 청소년 세계청소년대회에서 우승했던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한편 감독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좋은 경기를 보여주느냐보다는 경기의 승패인 결과다. 공격보다 수비에 치중하는 감독들의 전술은 종종 관중들을 실망시킨다.

***성과 중시하는 현대 축구는 수비 지향적, 팬들은 불만**

수비축구를 지향하는 이탈리아와 브라질의 경우 슈퍼스타인 바죠와 호마리우를 대표팀에서 제외시켰다. 이탈리아 감독은 '바죠는 아직 몸 컨디션이 완전히 않아 탈락했다'고 설명했고 스칼라리 브라질 감독은 '호마리우의 경우 훈련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비축구를 지향하는 스칼라리 감독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는 "브라질은 이번에 처음으로 수비수 3명과 수비형 미드필더 2명으로 짜여진 3-5-2 전술을 구사한다. 하지만 많은 브라질 국민들은 다른 축구를 보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같은 시도가 브라질 대표팀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면서도 "최종적인 월드컵 승자는 결국 맨투맨 싸움에서 많이 이기는 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칼라리 감독이 지향하는 수비형 축구의 성과는 이미 1930년 제1회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4:2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한 우루과이를 통해 증명됐다. 당시 칠레의 엘 메르쿠리오 신문은 "우루과이는 충분한 챔피언 자격을 갖췄다. 우루과이 선수들의 개인능력은 수년전에 비해 떨어졌지만 경기를 통해 보여준 효과적이고 우아한 플레이가 월드컵 우승이라는 성과를 만들어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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