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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기자 정치꾼'을 색출하라!

[윤재석의 '갑론을박'] 수치, 참담, 위구③

2회에 걸쳐 '폴리널리스트의 추악한 실체'와 '폴리널리스트를 양산하는 환경'에 대해 살펴 봤다. 온라인 상으로 오프라인 상으로 적지 않은 피드 백을 받았다. "심하다"는 반응도 없지 않았으나, 대부분 언론계의 어두운 그림자를 쾌도난마로 풀었다며 과분한 상찬을 해 줬다. 폴리널리스트와 관련된 제보도 더러 받았다. 사실 확인(fact check)이 필요하지만, 정황상 신빙성 있는 것들이 대부분. 이번 회에는 아주 고약한 인간 군상을 대상으로 얘기를 풀어가려 한다. 현역 기자로 특정 캠프나 특정인에게 줄을 대,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도움을 받는 등 부적절한 공생관계를 유지해 온(또는 오고 있는) 자들 말이다. 이들에겐 폴리널리스트란 호칭조차 사치스럽다. 그래서 '기자 정치꾼'으로 부르겠다.

장터 선거꾼보다 더 치졸한 기자 정치꾼

선거가 가까워 오면 바빠지는 직종이 있다. 충무로의 다 쓰러져가는 인쇄소로부터 제법 그럴듯한 홍보물 제작업체, 여론조사기관, 선거에 나설 정치인의 저서를 대필할 고스트 라이터(ghost writer), 선거를 총체적으로 자문해줄 자문역(또는 자문팀) 등 수다한 군상이 떡고물을 털어먹기 위해 마냥 몰려다닌다. 이 와중에 치열한 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래도 이들은 선거에 있어 필수불가결의 존재다. 따라서 지탄의 대상은 아니다.

이른바 '장터 선거꾼' 역시 장마다 꼴뚜기라고 선거때 안 보이면 섭섭한 존재. 이들은 평소엔 어디서 뭘 해먹고 사는 인간인지도 모를 정도로 신분이 모호하다. 그러나 선거철이 가까워지면 어느 진영이든 가리지 않고 느닷없이 나타나 "내가 동원할 수 있는 표가 최소 몇 천표"라는 둥의 허풍으로 후보들을 압박한다.

아무리 봐도 뻥 같은데, 그렇다고 박대하자니 켕기는 게 있다. 그 자가 몇천 표는 아니더라도 다만 몇백 표, 아니 몇십 표만이라도 모을 수 있는 자라면 문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 자가 경쟁 후보에게 갈 경우, 곱절의 손해를 보게 되는 것 아닌가. 몇 대 국회의원 선거에선가 단 세 표 차로 아깝게 진 후보가 선거 후 '○ 세 표'라는 별호(別號)를 얻은 적이 있는데, 이 경우, 두 표 짜리 장터 선거꾼 한 사람만 확보했어도 한 표차로 이길 수 있었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게다가 아군 진영에 대한 마타도어(흑색선전) 작전의 선봉에 선다면 사태는 설상가상이다. 그래서 본인의 허풍에 대한 검증도 없이(검증할 수도 없다) 우리 편으로 묶어 두어야 한다. 물론 선거법이 엄격해진 뒤, 이들을 다루기(물론 돈이다)가 엄청 힘들어졌다.

장터 선거꾼은 그래도 필요악적 존재다. 아니 양반이다. 진짜 골치 아픈 건 기자 선거꾼이다. 이건 우선 은밀하다. 그런데 폴리널리스트란 용어조차 과분한 이들은 이리 떼라기보다 '하이에나 떼'라고 해야 할 정도로 지저분하고 치졸하다.

이들이 도처에서 암약(暗躍)하고 있다. 총선을 6개월, 대선을 1년 남짓 앞둔 시점에,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까지 겹쳐 이들 하이에나에게 때 이른 대목이 찾아온 셈이다.

기자란 자들이 '나경원 사모 모임'까지

서울시장 선거 얘기가 나왔으니 하나 짚고 넘어가자. 한나라당 후보로 나선 나경원 의원(서울 중구)에 관한 얘기다. 연전 국회 출입기자들 사이에 이른바 '나사모'라는 게 있었다. 눈치 빠르신 분은 벌써 아시겠지만 17대 국회 때 나경원이 여성대변인이었던 시절 만들어진 '나경원을 사모하는 모임'이었다.

일부 한나라당 출입 기자에 일부 국회 출입 사진기자까지 가세한 이 황당한 사조직(?)은 현존하는 나경원 홈페이지 하단 우편에 있는 '나경원 팬클럽'이나 그 전신인 '나경원 국회의원을 사랑하는 모임'(카페 폐쇄)과는 별도다. '나사모' 멤버들은 나경원이 비례대표 출신 초선 의원인데도 야당(당시) 대변인으로 또박또박 논평하는 모습이 보기 좋고, 인물도 좋아 친목 차원에서 만든 infomal(비공식) 모임이라고 해명하곤 했다.

이 얘길 처음 들었을 때, 흡사 내가 그 모임에 끼기라도 한 양 부끄러웠다. 곧이어 씁쓸했다. 내 개인 취향으론 나경원의 어디가 예쁜지 어디에 매력이 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기자도 사람이니 같은 여자 국회의원이라도 호랑이상에 걸걸한 이보다는 토끼같은 외모에 조곤조곤 말 잘하는 이에게 호감을 느끼는 게 인지상정이라 봐줄 수 있다. 그렇다고 '나사모'까지?

국회의 경우 여당이나 야당을 막론하고 출입기자와 출입처(특정당) 간의 밀착 의혹이 왕왕 문제가 돼 왔다. 그런 풍토에서 이처럼 노골적이고 편향적 행태가 자행된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경원 사진 왜 예쁘나 했더니

사진기자의 '나사모' 가입 문제는 어느 면 더 심각한 사태였다. 선수들 사이에선 뭐 새로울 것도 없지만, 국회의원 생사여탈권은 사진기자가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문 정치면에 어느 국회의원이 졸고 있는 모습이라도 나면, 그 의원은 지역구민들의 항의 전화에 시달려야 한다. 심한 경우 차기 공천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국감 현장에서 비례대표 여성의원이 흉측한 몰골로 피감자를 닦달하는 모습이 TV 뉴스화면에 나오면,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다음 선거에서 지역구 배정 받을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진다고 봐야 한다.

'나사모' 가입 사진기자의 존재 의미가 어떤 건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가 갈 것이다. '볼펜'과 '카메라(무비카메라 포함)'의 적극적 구애에도 불구하고, 정작 나경원은 '웃기만 할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후문.

문제는 이들의 소속사다. 그 쯤 되면, '보사부 촌지사건'(2편에 언급)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심각한 사안이었음에도 공론화된 적이 없다. 국회 근처 직장에서 근무한 것 외에 정보원 하나 없는 내가 지득할 정도로 '공개된 정보'를 각 언론사가 몰랐다면 그것도 큰일이고, 그걸 알고도 묵인했다면 더 큰 문제다.

'나사모'는 18대 국회에 들어와 흐지부지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만약 10·26 서울시장 보선에서 일부 기자 정치꾼에 의해 다시 은밀하게 부활이라도 된다면, 야권단일 후보인 박원순은 언론 플레이에서 이미 한 수 접히고 들어가는 셈이다. 그건 차기 서울시장의 성별(性別)이 바뀌는 중대한 변수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각 언론사는 지금이라도 '나사모'에 참여했던 자들을 가려 서울시장 후보 나경원 취재에서 제외하는 게, 당해 언론의 공신력을 유지하고 서울시장 보선 과정을 공정 보도하는 첩경일 것이다.

대목 맞은 기자 정치꾼들 벌써부터 곳곳서 暗躍

다시 기자 정치꾼 얘기로 돌아오자. 앞서 '최근 도처에서 이들이 암약(暗躍)하고 있다'면서, 이들을 '하이에나'로까지 묘사한 것에 대해 같은 언론인으로서 그럴 수 있느냐는 태클이 들어올 수도 있겠다. 그래도 기어이 이들을 하이에나로 부르겠다.

한편 서울시장 보선으로 이들 하이에나가 때이른 대목을 보게 됐다고 한 부분은 수정해야겠다. 왜냐하면 그들은 훨씬 전부터 암약해 왔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아주 오래된, 혹은 지금도 상시(常時)로 게걸대는 하이에나들의 암약 실태를 살펴보자.

하이에나의 암약 행태는 대략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기사나 칼럼을 통한 암약, 다른 하나는 몸을 던져 행하는 암약.

먼저 기사나 칼럼을 통해 특정 정당이나 잠룡(또는 캠프)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우. 이 같은 행태는 일반 독자로선 감별이 쉽지 않다. 하지만 동업자들은 즉각 알아차린다. 당해 회사 구성원들은 더 쉽게 정체를 파악할 수 있다. 이 말은 회사에서 묵인하지 않는 한, 그 같은 행위를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차라리 노골적으로 성향을 드러내면 오히려 낫다. 독자도 그 자의 성향을 읽고 그를 지지하든지 배타하든지 양단간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솔직한 게 낫다

▲ 2002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방북 당시 김정일 국방 위원장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프레시안(자료)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정치전문기자 김진이 쓰는 '김진의 시시각각'을 보자! 대표적 극우보수 논객이자 논조도 상당히 거친 김진은 종종 여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전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에게 '이래라 저래라', '이러면 안된다' 대놓고 주문한다.

지난 1월 3일자 '이변이 없는 한 올해 한국사회 최대 화제의 인물은 박근혜 전 대표일 것이다(하지만 이변은 생겼다)'로 시작하는 칼럼은 제목부터 섹시하다. '박근혜가 경계해야 할 것'

칼럼은 박근혜가 경계해야 할 첫 번 째 그룹으로 '철새'를 꼽았다. 각론으로 국정농단의 원흉인 간신(奸臣), 사리(私利)를 위해 조직의 정보나 가치를 권력과 바꾸는 거간꾼, 권력 중심에 진입하려 날개싸움 벌이는 선착순형 철새 등. 그리고 여우, 즉 '인의 장막'으로 권력자의 눈·귀를 가리고 권력을 전횡하는 호가호위형(狐假虎威型) 여우도 경계하라고 주문한다.

4월 4일자엔 MB정권 주요 실정의 하나인 가덕도와 밀양간의 극렬한 신공항 유치 줄다리기 사태에 즈음, 박근혜가 '신공항' 공약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작년 12월 27일자 '김정일에 침묵하는 박근혜'에선 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 등 북한의 도발에 단호한 조치를 촉구하면서도 정작 악행의 근원인 김정일에 대해 침묵하는 박근혜를 매섭게 질타한다. 그러면서도 종국엔 박근혜가 나서면 김정일이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애정어린 자문도 한다. 2월 28일자 '다시 박근혜의 침묵에 대하여'에서도 북한 문제나 구제역 등 초미의 현안에 침묵하는 박근혜를 따끔하게 꾸짖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대부분의 김진 칼럼에 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실 모든 잠룡에게 해당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칼럼의 제목과 본문에 나오는 '박근혜' 이름에 다른 잠룡, 이를테면 김문수, 손학규, 오세훈, 유시민, 이회창, 정동영, 정몽준, 한명숙(가나다 順), 심지어 최근 떠오른 안철수까지 번갈아 치환시켜도 각각의 모두에게 근사(近似)하게 들어맞는다.

선수들 아는데, 교묘하게 속이려 해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닌 척 하면서 특정 정당이나 특정인(또는 특정 캠프)을 교묘하게 편드는 칼럼이나 기사다. 불행히도 선수들은 알고 있다, 그 자가 어떤 얘기를 하고 있는지를. 그 자들은 김진이 1월3일자 칼럼에서 지적한 내용 중 '국정농단의 원흉인 간신(奸臣)'이 되거나 '권력을 전횡하는 호가호위형(狐假虎威型) 여우'가 될 가능성이 농후한 자들이다.

아 근데, 앞에서 상찬(?)했던 김진이 수상해졌다. 그가 <중앙일보> 10월 10일자 칼럼에서 여당 후보를 교묘하게 지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박원순, 독수리인가 기린인가' 제하의 칼럼은 박정희를 넓게 조망한 독수리로, 민주화세력을 나무만 보는 기린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칼럼을 시작한다.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적극 옹호하고, 민주화 세력의 자유화 요구 및 노동 운동 등을 폄하한 것이다. 고약한 건 전두환 노태우를 직선제와 민주화를 단행한 독수리로 표현한 데 반해, 87년 대선 야권 후보 단일화에 실패한 YS·DJ를 기린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한술 더 떠 지역감정과 싸우고 사회적 약자를 보듬었던 가슴 따뜻한 새끼 독수리 노무현이 대통령 된 이후 국가보다 진보·좌파의 들녘만 바라보는 기린으로 전락하더니 나중에 절벽에서 뛰·어·내·렸·다·는 극악한 표현을 썼다. 이건 '박원순 때리기'를 위한 어설픈 도입부다.

김진은 서울을 국가중추부, 한미동맹 사령부로 지칭한 뒤, "이런 곳에서 촛불집회 같은 폭력시위나 해방구 상태가 발생하면 안된다"는 식의 표현으로 朴을 패기 시작한다(설마 박원순과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박원석을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서울의 지도자는 복지에 앞서 안보와 성장을 선결과제로 삼아야 독수리가 될 수 있다며 서울 시장으로서 朴의 부적격성을 질타한다.

그러면서 들이대는 사례가 황당하다. 성장을 위해선 재개발도 (적극적으로) 해야 하고 산업과 일자리를 키워야 하는데, 양화대교 밑으로 유람선이 다녀야 일자리가 생긴단다. 그리곤 朴을 종북·반미세력, 불법 낙천·낙선운동을 벌인 탈법 자행자로 단정하고 정당과 기득권이 혐오스럽다고 무소속(기린)이 독수리 되는 건 아니라고 결론짓는다. 궤변의 연속인 이 칼럼, 틀린 팩트까지 보이는(박원순은 단순한 무소속이 아니라 제1야당을 비롯한 야권이 뽑은 단일후보다) 이 해괴한 칼럼의 목적은 바로 지지율 부진한 '나경원 살리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김진 칼럼에 편향성 문제가 없다'는 앞서의 판단을 이 시점 수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칼럼이나 기사로 특정세력 은밀히 편들기하는 사례로 돌아오자. 일일이 열거할 시간이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각 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0.5초 안에' 색출이 가능하다. 그건 마치 엿바꿔 먹은 경제 기사 찾기만큼이나 쉽다. 그래도 색출이 쉽지 않다고 생각되면, 자사 온라인 아카이브(archive)를 꼼꼼히 뒤져보라. 그리하여 정치 관련 칼럼이나 기사의 냄새를 맡아보라.

물론 사주가 한통속이라면 색출하지도 벌을 주지도 않겠지만. 아니 오히려 특진이나 고과점수 올려주기, 성과급 등의 상급을 내릴지도 모르지. 하지만 두고 보시라. 그런 자들은 머지않아 친정 망신 톡톡히 시킬, 새는 바가지일 터이니.

2007년 대선 때보다 더 심한 기자 정치꾼들의 입질

더 고약한 건 특정 정당이나 잠룡(또는 캠프)에 몸을 던져 암약하는 경우다. 2007년 대선 공간에서 야당 캠프에서도 왕왕 있었던 경우다. 여당 대통령 후보인 정동영이 워낙 약세를 보이자 야당 대선 후보 캠프엔 전직 언론인들이 언론특보 자리 하나 차지하하러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그 와중에 현역들도 꿀 냄새 맡은 파리처럼 은밀히 끼어들었던 바, 메이저 언론사나 방송사 소속 뿐 아니라 정체성에서 전혀 상반되는 언론사 소속도 참여했다. 대선이 끝난 후 그들이 엽관(獵官)의 달콤한 꿀을 빨아 먹은 건 물문가지다.

정치를 하고 싶다면 사표 내고 캠프에 가면된다. <1>편에서 언급했듯 기자도 정치에 참여할 권리는 있다. 아니 다른 직종보다 더 잘 할 수도 있다. 기자 일이나 정치나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건대 정치하고 싶으면 양다리는 걸치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지금, 이 시간, 현재는 어떨까! 2007 대선 공간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못하지 않다. MB 정권의 레임덕이 조기에 도래한 상황에서 대선 구도마저 복잡해지니 기자 정치꾼들의 발걸음도 종종걸음이 된다.

그런 가운데, 어중이떠중이 다 나선다. 메이저로 불리는 한 언론사 소속 언론인을 보자. 정치와 상관없는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이 언론인은 작년부터 사내에서 공공연히 자신이 어느 캠프를 도와주고 있다며, 자문을 하기 위한 자문을 구하러 다닌다. 글은 인도주의자(humanitarian)의 극치를 보이는데, 정작 정체는 양두구육(羊頭狗肉)인 것이다. 아니 대중에게만 양두구육일뿐, 내부에선 이미 그 자가 구두구육(狗頭狗肉)이라는 걸 다 안다. 그가 소속된 언론사는 왜 그냥 놔두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건 그렇고 양다리 걸친 하이에나는 사내에서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마이너 페이퍼 소속자는 2007년 한 대선 캠프 진영의 경우처럼 정체성이 전혀 다른 정당에 선을 대고 있다.

하이에나의 입질은 제3 정당들에도 예외없다. 왜 discard(버려질) 카드에 돈을 거냐고? 절대 디스카운트되는 카드가 아니기 때문. 내년 4월 총선이 있지 않은가. 방송사 소속의 하이에나는 아직 체크하지 못했다. 실체적 진실은 어떨지 모르지만 아직은 없다고 믿고 싶다.

김진 논설위원이 칼럼에서 말한 '사리(私利)를 위해 조직의 정보나 가치를 권력과 바꾸는 거간꾼인 기자 정치꾼, 권력 중심에 진입하려 날개싸움 벌이는 선착순형 철새'. 이 자들을 어떻게 처리하나. 해결책은 제목에서 이미 말했다. 언론계의 하이에나를 철저히 솎아내는 것. 이를 위해 전 언론계가 나서야 한다. 특히 시민단체와 각 언론사가 눈을 부릅뜨고 기자정치꾼 색출에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론은 또 다시 도매금으로 지탄 받을 수밖에 없다.

▲ <조선일보>부국장 출신의 신재민 전 문광부 차관 ⓒ프레시안

기자 정치꾼 솎아내기는 언론사 책임

당초 예고한 제목은 '정치꾼 기자를 색출하자'였다. 그것을 '기자 정치꾼을 색출하라!'로 수정한 데엔 이유가 있다. 우선 이들에게 '정치꾼' 수식어를 붙여 '기자' 직함을 유지토록 하는 건 너무 너그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들이 비록 '기자'의 탈을 쓰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정치꾼'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기자 정치꾼'으로 호칭을 바꿨다. '~색출하자'를 '~색출하라!'로 바꾼 것은 일반 대중이 하이에나를 색출하기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결국 국민을 속이고 진실을 호도하는 쓰레기같은 하이에나를 솎아낼 책임이 해당 언론사에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添言> 그냥 있고 싶었다. 그냥 잊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같은 책무감이 어깨를 눌렀다. 무릇 어느 직업도 마찬가지지만, 언론인이 제 노릇을 못하면 힐난의 대상이 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해서는 안될 짓을 했을 때다. 그 단계에선 힐난을 넘어 질타의 대상이 된다. 대중은 참을성이 없다. 힐난과 질타의 단계를 지나면, 성토의 대상이 된다. 오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언론, 언론인은 듬직한 신뢰의 대상이 아니라 강력한 성토의 대상이다. 그런 사태가 '기자 정치꾼'으로 인해 더욱 악화됐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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