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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극우파 부상의 원동력은 정치불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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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극우파 부상의 원동력은 정치불신

프랑스 정치사의 대지진 - 극우파 르펜 대선 결선진출

현직 대통령과 현직 총리가 맞붙은 프랑스 대선에서 인종주의자이자 극우파인 장-마리 르펜이 2위를 차지, 2차 투표에 진출하면서 온 유럽이 들끓고 있다. 유럽의 언론들은 '프랑스 수치의 날' '프랑스 민주주의의 패배' 등의 표현으로 르펜의 득세에 분노와 수치를 드러내고 있다. 반면 정계은퇴를 선언한 리오넬 죠스팽 사회당 후보에 대해서는 '기품있고 양심적인 정치인의 중도 사퇴'라며 연민과 동정을 보내고 있다.

오는 5월 5일 치러질 2차 투표에서 르펜이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러나 괴짜 정치인 르펜의 예상외 득세는 유럽 정치판에 작지 않은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한국 사회의 '노무현 신드롬'과, 극우파로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프랑스 대선 1차 투표를 통과한 르펜의 전격 부상은 바람의 방향과 성격이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예전부터 해오던 방식(business as usual)대로의 정치로는 더 이상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을 수 없다는 점에서 반면교사의 역할은 할 수 있을 것같다.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이란 공통점이 그것이다.

<사진 프랑스 대선>

***기존 정치세력에 대한 불신과 환멸이 공통점**

영국 BBC와 독일 쥐드도이체차이퉁(SZ) 등 유럽 언론들은 극우파 르펜의 대선 1차 관문 통과를 '프랑스 정치사의 대지진'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유력한 경쟁자로 지목돼온 집권 사회당의 리오넬 죠스팽 총리의 결선투표 진출 좌절로 시라크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은 그만큼 커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30여년간 좌우균형을 이뤄온 프랑스 정치의 한 축을 담당해온 좌파의 몰락은 단순한 득표율 하락 이상의 상징적인 사건이다.

좌파 후보 9명을 포함해 16명이란 기록적인 최다후보가 난립한 가운데 치러진 21일 프랑스 대선 1차 투표 결과 우파인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19.67%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고, 극우주의자 장-마리 르펜은 17.02%의 지지로 2위를 확보했다. 이 두 사람은 1차 투표 최다득표자 1, 2등만이 참여하는 5월 5일 최종 결선투표에서 자웅을 겨루게 됐다. 좌파의 대표격인 죠스팽 총리는 16.07% 로 3위에 그쳐 결선 진출이 좌절됐다.

프랑스 내무부는 전체 4천만 유권자중 27.63%가 투표에 불참함으로써 새로운 불참률 기록을 경신했다고 발표했다. 이 결과에는 아직까지 해외거주자 등 국외투표분은 반영되지 않았으나 사실상의 확정치로 보아도 무방하다.

예기치 못한 르펜 국민전선(Front National, FN) 당수의 급부상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국내 치안부재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불만이 첫 번째 원인으로 지적된다. 국내치안 등 안전문제를 제1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는 르펜은 '프랑스를 프랑스인에게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프랑스의 극적인 범죄율 증가원인이 불법체류자 등 외국인들에게 있음을 강조하며 프랑스인들을 선동해 인기몰이를 해왔다.

***르펜 '불법체류자 추방' '사형제 부활' 등 유권자 선동**

르펜은 국내 치안부재의 책임이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리오넬 죠스팽 총리 양자에게 있다는 것을 선거기간동안 강조해 왔는데 이번 투표결과는 이러한 선동술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음을 보여준다. 르펜의 선거공약은 '프랑스내 외국인 불법체류자는 즉각 추방돼야 한다' '프랑스인만 사회보장제도 혜택을 받아야 한다' 등으로 극우파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르펜은 이를 위해 지난 81년 폐지된 사형제 부활을 주장하고 있으며, 유럽통합에도 반대 목소리를 높여 유럽통합을 위한 마스트리히트 조약 등 3대 조약으로부터의 탈퇴와 유로화 통용중지 등을 약속하는 등 국수주의적 노선을 분명히 하고 있다.

'프랑스 민주주의의 패배'로까지 일컬어지는 르펜의 부상에는 이외에도 화창한 날씨와 방학, 그리고 프랑스인들의 정치환멸 등에서 비롯된 기록적인 투표불참률이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으며 좌파에서만 9명의 후보가 난립해 좌파의 대표격인 죠스팽 총리의 표가 분산된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또 1위로 1차 투표를 통과한 자크 시라크 대통령도 진정한 승리자는 아니라는 게 유럽 언론들의 분석이다. 시라크 대통령 또한 측근들이 각종 부패의혹에 노출된 상황이라 재선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앞으로 많은 정치적 악재들을 헤쳐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독일 SZ는 22일 '극우주의자의 승리'란 논평에서 "1위를 차지한 자크 시라크는 '슬픈 승리'를 얻었다"며 "시라크는 국민들이 불안감이란 주제에 대해 공분하는 데 일조함으로써 자신의 표를 갉아먹었을 뿐만 아니라 유권자들을 르펜에게 가도록 유도했다"고 비판했다.

실질적으로 프랑스의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결과들은 르펜을 대통령으로 인정하겠다는 유권자가 9%에 불과함을 보여주는데 르펜은 그럼에도 기존 정치인들보다 프랑스 국민들의 걱정과 우려를 더 잘 이해하는 인물로 상징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르펜은 지난 99년 유럽의회 선거도중 상대후보를 모욕하고 폭행한 죄로 유럽의원직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르펜은 이번 성공으로 대권도전 네 번만에 결선에 진출하게 됐다. 1958년 발효된 프랑스 5공화국 헌법 이후 최초의 극우파 결선진출인데 전직 교수인 르펜은 지금까지 0.7%(1974년), 14.4%(1988), 15.1%(1995)의 지지를 얻었다.

***프랑스 좌파 30여년만의 치욕 "찍을 후보가 없다"**

반면 결선진출이 유력했던 죠스팽 총리의 몰락에는 9명의 좌파후보 난립을 포함해 트로츠키파의 극좌파 후보 부상, 현 정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발, 친근하지 않은 개인적 이미지, 중도우파적 선거공약 등 명확치 않은 정책방향에 대한 전통좌파의 비판 등이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유럽 언론들의 분석이다. 결국 좌파의 세 결집에 실패한 죠스팽 총리는 중간집계 결과 패배가 확실시되자 21일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르펜의 부상과 죠스팽의 몰락이 정치적 지각변동으로 일컬어지는 이유는 직접선거가 도입된 1962년 이후 프랑스 정치사에서 좌우파의 역학구도가 근본적으로 깨지는 상황이 초래됐기 때문이다. 당장 다음달 5일 치러지는 선거에서 평균 50%에 달하는 좌파지지 유권자들은 찍을 후보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프랑스의 좌우파 양립정치구도를 토대로 지탱해온 5공화국의 헌법 자체가 틈새시장을 노린 르펜의 약진으로 새로운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1972년 극우정당인 국민전선당을 설립하며 정계에 입문한 르펜의 급부상은 최근 유럽내 불고 있는 우경화 현상의 연장으로도 해석된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덴마크 벨기에 등의 선거에서 극우파가 득세하거나 정권을 잡고 있는 상황이 프랑스에서도 일부 재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같은 현상은 특히 9.11 테러 이후 미국의 군사패권주의에 대항하려는 유럽의 홀로서기와도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는데 르펜의 부상은 유럽연합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보다 국수적인 정치현상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럽내 많은 국가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파시즘을 막자" 유럽 각국·언론 일제히 우려**

르펜의 결선진출이 확정되자 이미 파리를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파시즘에 대항해 싸우자' 등의 슬로건을 내세운 시위대들이 극우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5월 1일 대규모 집회도 계획중이다.

또 유럽연합을 비롯한 각국 행정부와 언론들은 "유권자들이 여러 갈래로 흩어지면 결국 우파와 극우파,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어부지리를 얻게 된다"(닐 키녹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부위원장)고 경고하거나 '프랑스 수치의 날'(영국 선) '프랑스 극우파의 승리가 주는 충격'(영국 BBC) '극우파의 승리'(독일 SZ)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프랑스 좌파 정당과 정치인들은 "결선투표에서 극우파를 막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쳐야 한다"(로랑 파비우스 프랑스 재무장관) "끔찍하고 불공정한 패배"(프랑소와 홀랜드 프랑스 사회당 당수)라고 말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극우주의자이자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불리는 르펜의 예선통과가 주는 의미는 프랑스인들의 기존정치에 대한 환멸, 미국의 팽창주의에 대한 국수주의적 대항의식의 분출, 치안부재로 인한 외국인 혐오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르펜의 결선통과 가능성은 다행스럽게도 전후 상황을 살펴볼 때 결코 밝지 않다. 결선에서 상대적 중도파라 할 수 있는 시라크 대통령에게로 표가 결집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구 정치질서 타파하고 유권자 기대 부응해야**

극단적·배타적 민족주의로 집약되는 르펜의 정치철학에서 한국이 배울 것은 없다. 그러나 예상을 뛰어넘은 그의 부상은 현실에 안주하는 정치는 언젠가는 예기치 못한 패배를 당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남기고 있다. 지난 4년간 대세론에 안주해온 이인제 후보가 돌연한 노풍 앞에 허무하게 무너진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사회학자들이 분석하는 '노풍'의 근원도 사실은 기존 정치판의 지역주의와 정실주의, 부패에 대한 반발이자 기대의 발로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바람이 정치판의 기존 상식을 단번에 뒤집어 버린 것이다. 르펜의 부상과 노풍이 분명히 다르면서도 같을 수 있는 교집합이다.

명성과 전통을 자랑하며 안주하던 프랑스 좌파가 찍을 후보조차 내지 못한 오늘의 현실이 한국 대선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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