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2-3개월 내에 남북관계가 대화와 협력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월드컵 행사 후 미국의 대북강경책이 과거보다 더 높은 강도로 복원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렇게 될 경우 2003년으로 예견되는 한반도 안보위기가 실제화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10일 성남 세종연구소에서 열린 ‘특사회담의 평가와 향후 과제’란 특별정책토론회에서 기조발제자로 나선 세종연구소 이종석 연구위원이 임동원 특사의 방북성과를 평가하며 한 말이다.
이 연구위원은 ‘2003년 한반도 위기론’을 거론한 배경으로 제네바 합의 이행문제와 관련해 미국이 북한에 대해 조기 핵 특별사찰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고, 북한 대포동 1호 미사일 발사시험 유예기간이 종료됨에 따라 북한의 중동미사일 수출을 문제삼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로 북미간에는 공해상에서 미국의 북한 상선 강제수색 등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북한에 대한 경제봉쇄 조치가 내려지면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위기는 현재 북한이 부시의 ‘악의 축’ 발언 이후 심각한 안보위협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이 연구위원의 분석이다.
이 연구위원은 그러나 이번 임 특사 방북을 통해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의 중재자적 역할이 부각됐다고 지적하면서 앞으로 이러한 위상을 계속 지켜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중재역할이 부각된 이유에 대해 “(북한은) 부시행정부 등장 이후 미국의 대북 요구수준이 너무 강경해 대화를 통해 기대하는 이익획득의 보장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미정상회담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의 대북강경정책을 일정하게 완화시키는 시도를 하게 되고 그 일환으로 대북대화를 시도하자 이를 대화로 나올 명분으로 삼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한반도 정세나 남북관계의 진전과 관련한 최대변수는 미국의 대북정책이라며 그동안 한반도 긴장을 야기시켰던 원인으로 2001년 1월 부시 행정부의 등장에 이은 2001년 3월 4차 남북장관급 회담의 연기, 2002년 1월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등을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현실적인 과제로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서는 대미협력관계의 구축이 절실히 필요하다”며 “특사회담 결과 설명과 북미대화의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 임동원 특보 혹은 고위급 인사의 조기 미국방문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평화정착 위해 미국ㆍ야당의 지지 끌어내야**
이 연구위원은 또 회담성과에 대한 국민적 지지확보를 위해 “국민 대다수는 이번 특사회담의 필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으며 결과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야당은 이번 성과가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않을까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야당에 이번 회담의 결과를 성의껏 설명하고 협조를 구해야 한다. 아울러 남북 국회의원 회담 등을 주선하여 남북관계 개선에 야당이 일정하게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북미관계 진전을 위한 이 연구위원의 제안은 “미사일 문제의 경우 클린턴 말기 협상 수준을 존중하면서 대화를 재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나 미국이 이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조건없는 북미대화를 통해 미국이 북한에게 새로운 대안을 명확히 제시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네바 합의 이행문제는 북한이 현 시점에서 특별사찰을 수용하고 한미일의 전력보상을 교환하는 정치적인 타협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 문제는 남북이 주도적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임을 미국에 설득해야 한다는 게 이 연구위원의 제안이다.
이 연구위원은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특별제언으로 임동원 특사 방북중 북한측의 주장으로 논란이 됐던 “국방백서상의 ‘주적’ 표현을 삭제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국방백서의 '주적' 표현을 삭제하고 94년 이전으로 돌아가자"**
그는 현재의 주적 표현이 “북한이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최대 요소라고 해서 그것을 ‘주적’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한가의 문제와, ‘주적’ 표현이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른 상황변화를 담아내지 못하면서 오히려 남북관계 개선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주적’ 문제는 개념이나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표현의 문제”라는 것이며 “따라서 공식적 국가문서이며 대외적으로 공개되는 ‘국방백서’에 ‘주적인 북한’이라는 표현을 명기하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는 말이다.
이 연구위원은 “우리 국어사전에서도 ‘주적’이라는 용어를 찾을 수 없다. 굳이 ‘주적’을 영어로 표현하자면 ‘primary enemy' 혹은 ’main enemy'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는 ‘전시에 복수의 적을 상대할 때 제1의 적을 부차적인 적과 구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적 표현 삭제 제안의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 세계 각국의 경우 국방백서에서 대체로 특정국가를 지목하지 않고 ‘위협요인’으로 명기하고 있으며 “북한의 경우도 ‘주적’ 용어를 명시적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게 이 위원의 설명이다. 특히 북한은 현재 우리에게 ‘적대적 형제’ 혹은 ‘경계와 협력의 대상’이라는 이중적인 단어로 다가와 있는 만큼 이를 ‘주적’이란 표현으로 담아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해결방안으로 “논리적으로 볼 때 ‘주적’ 표현을 삭제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나 이 문제는 논리와 합리성의 영역을 넘어서서 정치적, 이념적 갈등으로까지 확산돼있다”며 “현 상황에서는 차라리 논란이 야기되기 전의 ‘국방백서’ 내용으로 돌라가는 편이 차선의 방법으로 사료된다”고 말했다.
***국어사전에도 없는 '주적' 표현**
‘국방백서’ 창간본인 1988년 말부터 ‘국방백서 1992-1993’ 16쪽에는 국방목표를 “적의 무력침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고, 평화통일을 뒷받침하며, 지역적인 안정과 평화에 기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연구위원은 “이 경우 적이라는 표현은 살아 있으나 적이 누구인가는 내면적으로 규정할 수 있어도 외형적으로는 익명성을 갖게 되므로 현실적인 국민정서와 남북관계의 발전이라는 양자를 어느 정도 충족시킬 수 있지 않을까 사료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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