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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를 떠나며..."

손문상 화백의 애정과 비판이 담긴 '퇴사의 변'

동아일보 보도방향과의 갈등으로 지난 9일 갑자기 사표를 제출하고 회사를 떠난 손문상 화백이 10일 동아일보에 애절한 동아사랑과 비판이 담긴 '동아일보를 떠나며...'란 퇴사의 변을 보냈다. 손 화백의 글은 현재 동아일보 사내게시판에 게재중이다.

<사진 동아희평 9일자(사진설명: 신문사의 보도방향과 만평방향이 달라 고민하다 회사를 떠난 손문상 동아일보 화백의 마지막 작품이 된 '동아희평' 9일자.)>

손 화백은 이 글을 통해 "내게 있어서 동아는 열정과 희망으로 바라보며 동경하던 내 청년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유일한 신문이자 그 '6월의 우리모두'를 아우러냈던 '거리의 신문' '광장의 신문' 이었다"며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우리가 싸움의 주체가 돼 버린 최근의 기사는 지난 세무조사 때보다도 내용면에선 완결성을 갖추고 있지만 질적으로는 매우 악의적이고 의도적인 위험한 보도태도가 짙게 함의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애정과 비판을 동시에 담아냈다.

다음은 동아일보 사내게시판에 올라온 손 화백의 글 전문.

한 시대가 저물어 갑니다.
어느 시인은 '세기말의 우울'을 노래했지만
이제사 저는 한 세기를 지나 천년을 넘어온 오늘, 소멸해가는 '지난 시대의 우울'을
고통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희망'으로 그저 바라봅니다.
하여...

우선 저를 아껴주고, 아니 언제나 그 이상의 사랑과 감동을 보여주셨던 동아일보의 선후배 동료들께 떠남의 변을 고작 이런 식으로밖에 할 수 없음을 머리 숙여 용서 빕니다.
제가 동아일보에서 있었던 시간만을 따진다면 만 2년 4개월을 못 다 채웠습니다.
그러나 내게 있어서 동아는 열정과 희망으로 바라보며 동경하던 내 청년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유일한 신문이자 그 '6월의 우리모두'를 아우러냈던 '거리의 신문' '광장의 신문' 이었습니다.
예컨대 적어도 동아에 대한 애정을 논한다면 동아에 얼마나 있었는가를 따지는 그런 물리적인 시간의 길고 짧음이 결코 내게는 중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후 십수년이 지난 어느날 동아희평을 그리고 있는 나 스스로를 발견한 것은 그야말로 꿈같은 현실이었습니다.

내가 알기로는 오래전도 아닌 불과 6,7년 전 동아는 진정 최고의 신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최고의 신문이란 발행 부수도 아니고 광고단가도 아닌, '영향력' '공정성' '정확성' 모두가 공히 종합평가 일등의 신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동아의 수많은 선배들이 남겨놓은 무한한 자산이자 또 그것을 계승해야 할 후배들을 살찌우는 풍요로운 덕목들이 넘치는 신문이었고 신문의 외형을 넘어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사내외를 포함한 전체한국의 기자사회를 향도하는 도덕적, 심리적 우위를 우리 동아의 기자들이 선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제... 그런 동아일보를 떠났습니다.
여러 사례들과 이유들을 들어 퇴사의 변을 늘어놓고 싶지는 않습니다.
화도 내고 비관하며 통음했던 시간들과 그간의 사건들이 유독 저 하나만 겪어온 것도 아닐 뿐더러 유별나게 저만 가슴 시리게 아파했던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견딜 수 없는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제 마음속에 무언가 때가 되었다는 비애가 퇴사의 결심을 굳히게 했습니다. 결심을 하게 한 그 무엇이란, 내 가슴에 뭉쳐있어 자꾸만 되뇌이고 나를 웅얼거리게 했던 그 소리...
동아에 있으면서 언제부터인가 수많은 시간을 나 스스로에게 동어반복하듯 되뇌이게 만든, 마치 '주문'처럼 내 안에서 나지막하게 들려오던 그 소리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만들 수 있어"...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만들 수 있어"... 그 웅얼거림에 이제는 동의할 수 없게된 '나' 였습니다.

이런 결심을 하기까지 최근 일련의 보도에 대해 시시콜콜 문제를 제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저의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우리가 싸움의 주체가 돼 버린 최근의 기사는 지난 세무조사 때보다도 내용면에선 완결성을 갖추고 있지만 질적으로는 매우 악의적이고 의도적인 위험한 보도태도가 짙게 함의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의 관점에서 문제는, 회사보다도 다시 '나'였고 '우리'였습니다. 이미 상황논리의 함정에 깊숙이 빠져있어 이제는 스스로조차도 얼마나 비겁해지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나와 우리들을 보았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혹자는 말할 겁니다. 이런 류의 '신파조'는 이미 오래전에 동아가 용도 폐기한 가치들이고 이제 그만 징징대고 정신차리라고 말할겁니다. 이제는 기능적으로 뛰어나고 사고의 경쾌함을 갖춘 유능한 정보세일즈맨이 새 시대에 필요한 기자상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회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렇게 가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전적으로 그 논리에 동의한다 쳐도 왜 동아는 그 사이 3등으로 전락한 것이며 그 책임은 어느 누가 졌냐는 것입니다.
.......

사랑하는 동아의 선후배 동료 여러분...
결코 훌륭한 그림을 그려내진 못했지만 최선을 다해 제가 믿어왔던 가치들을 놓지 않고 고민하며 열심히 그렸습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입니다.

얼마전 한 선배가 제게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야! 손문상, 너 여기 왜 왔어!"
"네?...."
"어디서 '동아일보' 같은 놈이 와 가지고... 정체를 모르겠어?"
저는 아직도 그 말의 속뜻을 착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2002. 4. 10
용인땅 운학골에서 손문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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