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왜 한나라당에서 정치를 시작했는지부터 차근히 다시 묻기로 했다. "대한민국의 보수정당은 개혁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양측이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달아 국가 비용이 많이 들고 또 많은 비극을 낳을 수가 있다. 그런 점에서 내가 보수 내에서부터 수동 혁명을 일으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지금의 선진국들도 대다수의 합의를 수용하며 점진적인 개선을 해갔으니까 선진국이 된 거 아닌가? 그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놓고 보니까 참...(웃음)"
그런 마음이 그를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게 했을까. 그런데 왜 굳이 친이계의 손을 잡았을까. "당대표가 되어 하고 싶었던 일은 새로운 좋은 인물들을 한나라당에 영입하는 것, 그리고 젊은 층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한나라당의 활동이나 풍토를 바꾸는 것, 그 다음 정책을 친서민적으로 바꾸는 것 정도였다. 어차피 당대표를 1~2년 정도하는 거면 내가 한나라당에 들어온 지 12년차니까 중간결산 차원에서 한번 내 모든 정치생명과 무게를 걸고 해 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이 한나라당을 바꿀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개혁을 하고 싶지만 세력이 없는 현실에서 어떻게 세력을 만들 것이냐, 그 질문에서 친이 세력과 손잡고 개혁을 이루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지난 당대회를 통해 그가 잃은 것은 무엇이고, 얻은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잃은 것은 주류와 손잡고 타협한, 그러면서 실패한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사실 성공 신화를 쌓아나가야 된다는 부분에서 대중에게 실망도 많이 시켰을 것이고 이 사람의 색깔이 무엇일까란 의문점도 남았을 것이다. 얻은 거라면 재충전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다. 여의도에 들어온 지 12년 지나고 보니 나름대로 동력이 많이 쇠해졌다. 숲에 들어오니 숲이 제대로 보이지 않더라. 여의도를 나가면 국회의원 배지가 떨어졌을 때의 금단 증상에 대해서 '원희룡 관찰 리포트'를 쓸 예정이다.(웃음) 그리고 밖에서 여의도를 보면서 여의도나 국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되는지 전직 경험자이자 일반 국민의 시각에서 보고 공부할 예정이다. 그리고 청년 실업부터 시작해서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주요 문제 현장으로 가고 싶다. 또 다른 10년을 가야하는데 그 시간을 왜 가야하고, 어떤 정치를 해야 하고, 또 누구랑 함께 해야 하는지, 12년간 몸담고 굴러봤지만 여기서의 풀지 못했던 문제들을 앞으로는 어떤 방법을 가지고 풀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방법을 갖고 오겠다."라고 이야기한다. 실패가 그를 단련하는 도구라면, 그 특유의 낙천성은 그 단련을 웃으며 감내케 해주는 내면의 좋은 벗인 것 같았다.
"정치인의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우선 각오했던 것보다 훨씬 핍박과 소외가 오래 갈 때 더 그렇다. 국민들은 순수하기만 한 지도자를 원하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는 지도자를 원한다. 근본적인 순수성 혹은 영혼을 팔아먹지 않으면서, 내적 동기에서 우러난 에너지를 가지고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과 감정을 담아내는 것, 그 그릇의 크기와 능력이 중요한 거다. 눈부신 순수함과 세상을 이끌고자 하는 꿈,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노련함과 치열함이 양립이 돼 있어야 하는데, 참 어려운 얘기다."
그래 참 어렵다. 그런 정치인이 되기도 어렵지만 그런 정치인을 가지기도 참 어렵다. 그래서 막스 베버가 "(정치란) 열정과 균형감각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뚫는 작업"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열정이 있는데 균형 감각이 없어 널빤지를 뚫지 못하고 그만 부셔버렸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쉽겠던가. 그래서 앞으로의 시간이 그로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일희일비하지 않고, 탁월한 균형감각으로 널빤지를 서서히 뚫어 낼 수 있는 내공을 길러주는 축복의 장이 되어주길 간절히 바래마지 않았다.
▲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 ⓒ김형욱 |
Why 한나라당? What 한나라당?
민주화운동세대로 흔히들 민주당 같은 민주나 진보정당이 아닌 한나라당에서 정치를 시작하게 된 이유가 있나?
현대는 다양화된 사회이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세력만 대한민국을 독점한다고 볼 수 없다. 사실 우리 사회에는 국가의 성장과 안정적인 사회통합을 바라면서 우파적 발전의 가치들을 현실에 반영해야 한다는 욕구를 가진 세력들이 분명히 있다. 이것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기득권 부패 억압으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우파적 입장만 가지고는 대다수의 사회 개혁요구를 담을 수가 없다. 나는 양측이 서로 긴장과 균형을 유지하면서 언제든지 국민들의 선택과 평가에 따라서 정권이 바뀔 수 있고 정권이 교체됐을 때에도 사회적으로 안정된 국가체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보수파도 수구 기득권이 되기보다는 지금 용어로 보수혁신을 이뤄야 한다. 보수와 진보가 경쟁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국민적인 합의가 된 부분은 보수가 수용하기도 하면서 사회를 이끌어야한다. 그게 소위 우리 386세대들의 보수와 진보가 갖추어야 할 성숙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내가 정치에 입문할 당시에 양측으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았다. 민주당에서는 이제 민주와 진보의 힘을 실어야 된다는 명분이었고 한나라당에서는 보수가 개혁을 해야 되는데 기존의 한나라당내 인물만으로는 안 되니까 새로운 인물이 들어와서 서로 접목해 가며 보수당이 개혁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고민을 1년 넘게 많이 했다. 그 동안 내 안에서 많은 생각의 변화가 있었는데 우파 보수정당, 건강한 우파 보수 정도면 내가 그걸 수용하지 못 할 이유가 없었고 대신 여기에 대해서는 기존의 모습을 바꿔야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당을 변화시키려면 혼자서는 안 되니까 세력을 이루어 한나라당 내에 개혁블록을 만들고 싶었다. 그때 당시 한나라당에 김부겸, 김영춘, 손학규, 이부영이 있었는데 지금 우리가 한나라당내 비주류지만 한 10년 하면 보수정당의 개혁이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어서 한나라당에서 시작한 거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좀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면도 있었다.
ⓒ김형욱 |
학생운동권으로서 한나라당에 들어간 것은 어떻게 보면 스스로 비주류의 길을 택한 것이기도 하다. 진보적인 정당에서 정치를 시작했으면 개인적으로는 좀 편했을 텐데, 보수 세력 내에서 비주류로 시작하기로 결심하게 된 용기는 어디서 비롯되었나?
무모한 사명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웃음) 나는 권력을 차지하는 것, 그 자체에 대해서는 좀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보수 혁신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도전한 결과물이 설령 안 좋다 하더라고 도전 그 차제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도전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긴장감이랄까, 그 가운데 있었던 치열함이 인생의 핵심이 아니냐 싶다. 너무 멋지게 포장했나.(웃음)
그렇다면 현재는 어떤가? 한나라당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 만족하고 있나?
그때는 한나라당에서 개혁파를 잘 도와주고 역할도 많이 줄 것처럼 영입 제의를 한 것이기 때문에 반은 속고 반은 각오한 거였다. 사실 각오한 것이 더 컸다. 결코 쉬울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개혁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시간이 걸리고 어렵긴 하겠지만 최소한 우리 세대가 사회 주류가 되면 새로운 보수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큰 틀에서 보면 정계 개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좀 답답한 것은 한나라당의 자기 혁신 동력이 부족하고 정계 개편도 동력이 부족하다. 유럽에서 보듯이 보수와 진보가 서로 쌍두마차로 갈 수 있는 체제로 가야 된다. 그 부분에 대한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
여타 정당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한나라당 내에 계파정치라는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현재의 한나라당을 어떻게 보는가? 소속 정당인 한나라당을 성찰해 본다면?
정당 내 계파는 현실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다. 계파라는 것이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정치적 행동 및 프로그램을 공유하는 것이라 본다. 한국이 다당제가 아닌 실질적인 양당제에 가깝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포괄하는 세력분포가 넓다. 그것은 민주당도 마찬가지라 본다. 심지어 민주노동당 내에도 계파는 있지 않은가. 다수의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더 긴밀하고 가깝게 행동하는 소집단을 형성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문제는 그 계파의 기능이 얼마나 순기능적인가, 아니면 역기능적인가하는 것이다. 가치와 노선에 따른 계파 형성과 기능이 아닌 공천에 의한, 연고에 의한 계파가 형성이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기능이 드러날 때, 후진적 계파정치가 나타나고 당이 나눠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 같다.
현재 한나라당을 살펴보면, 한나라당의 계파라는 것이 처음 출발은 지난 대통령 선거, 경선에서부터 출발해서 지금은 현직 대통령과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인 박근혜 의원을 중심으로 나눠져 있고, 힘이 한 쪽으로 쏠리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한나라당 내 계파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현 정부의 정책노선에 대해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차별화를 이루려고 한다는 거다. 그러한 점들은 긍정적이라 본다. 문제는 서로의 토론과 조율과정이 없이 너무 배타적이라는 것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현재의 계파들이 계파 간 세력다툼이 아닌 다양한 국민들의 요구와 시대의 변화를 대변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해줘야 한다. 서로 다른 시각과 차이점을 조율해 가면서 더 큰 틀의 집단의사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 과정을 잘 해 나아가야지만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관련하여 한나라당의 정당 정체성은 무엇이라 보는가?
한나라당의 정체성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현대사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 즉 발전적 현대사관을 가진 정당이라는 것이 그 기본 정체성이라 생각한다. 남북으로 분단이 되면서 남쪽에 수립된 한미동맹에 근거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성립, 그리고 6.25를 거치며 반공에 기초한 안보, 60년대 이후 개방형 수출경제에 의한 경제성장 등이 한나라당의 뿌리이자 강점이라 생각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입각한 발전적 보수라는 것이 현재 한나라당의 정체성이라 본다.
그러나 고민해야 할 점은 역사 속에서 많은 과오들과 부정적인 모습들이 한나라당에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을 어떻게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느냐, 자정작용이 있느냐. 사실 이런 부분에서 부족하고 아픈 점이 많이 있다. 존경받을 수 있고 신뢰받을 수 있는 보수가 아닌 자기와 돈만 알고, 또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힘 있는 쪽에 붙는 수구 기득권으로 지적을 받는다. 이런 지적은 한나라당으로써는 뼈아픈 현실이다. 보수라는 것은 수구 기득권으로 항상 빨려들어 갈 수 있는 유혹 앞에 있다. 그런 만큼 자기성찰, 자기 긴장이 필요하고, 국민 대다수의 요구를 보다 합리적이고, 개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개방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개혁파 원희룡에 대한 기대
개혁적인 성향을 보인 행보들과 배치되는 몇 특정한 사건들이 많은 이들에게 비판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특히 전두환 전 대통령에서 찾아가 큰 절을 한 사건은 두고두고 이야기가 된다. 그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사실 그 때 김대중, 김영삼, 전두환 전 대통령 모두를 연초에 찾아가서 세배했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세배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전두환 전 대통령한테 세배한 것만 이슈가 된 것이다. 그 당시 내 생각은 김정일이랑 화해도 하는 마당에 전두환을 찬양한 것도 아니고 설날에 서로 세배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냐는 것이 그 때의 내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의미를 부여해서 사람들이 속상해하는 것을 보면서 내 생각이 부족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 때 공식적으로 사과를 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안 간다.(웃음)
원희룡이란 정치인에게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와 상충되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한다.
그렇다. 내 아내부터 분해서 잠을 못 자더라. 그렇지 않아도 전두환을 안 봤으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그 앞에 가서 큰 절을 했으니 모두의 짜증이 폭발됐다. 벌집을 건드린 내 잘못이 크다.(웃음) 그런데 그 때 세배하러 간 것은 전두환을 정당화한다든지 찬양한다든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보면 같이 맞절하고 있지 않는가. 그때가 1월 2일인가 3일었다. 대통령 경선 후보 출마할 때라 후보 일정을 짜면서 전직 국가원수들과 종교 지도자들을 예방하러 가야했다. 전두환하고는 악수하고 끝냈어야 하는데 가니까 보료랑 방석이랑 너무 잘 깔려있더다.(웃음) 완전 세배 모드로 세팅이 되어 있어 그 자리를 물릴 수도 없고 해서 그냥 세배를 했다. 그리곤 자릴 옮겨서 얘기를 나눴는데, 그 집을 나올 때쯤 되니까 인터넷에서 벌써들 흥분하기 시작하더라. 처음엔 원래 그런 뜻이 아니었으니까 버틸까 생각도 했지만 내 생각이 짧았기 때문에 바로 사과했다.
그 때 대중의 비난을 받을 때 어떠했나?
비참하고 잔인하다. 대중 여론이란 게 잔인하다. 그런데 이런 대중을 잘 아울러 나가는 게 정치인의 몫이기 때문에 원망할 순 없는 거다. 솔직히 인간 대 인간으로는 좀 심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설명해도 설명이 안 통하니까. 하지만 인간 대 인간이란 말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 내가 정치인이 아니었으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정치인으로서의 행보였기에 비난을 받으면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의 질문과 연결지어 지난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친이계의 주자로 나온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아함을 느꼈다. 혹자는 실망하기도 했고. 솔직히 어떤 면에서는 이미 레임덕 현상을 보이는 친이계의 손을 잡아줄 필요가 있었나 싶었다. 오히려 더 내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자신의 정치적 자산이 깎이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굳이 친이계의 지지를 받고 당대표에 나서야 할 만큼 중요한 사안 혹은 명분이 있었나? 있었다면 무엇이었나?
솔직히 나는 친이계는 아니다. 친이계에서 내세울 주자가 없는 상황이 되었고 내가 사무총장으로 당직이랑 보직 등 일들을 해왔으니까 어차피 당대표 맡길 사람도 없는데 나에게 맡기면 어느 정도 서로 간에 조율된 부분에 대해서는 지키고 하겠구나하는 최소한의 신뢰와 안심이 있었기에 친이계 쪽에서 나를 내세우려고 했던 거였다. 하지만 친이계 쪽에서 그런 제안들을 받았을 때 많은 고민을 했다. 개인으로써 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고 내년 총선, 내가 4선이 되는 길도 충분히 감안하고 있었다. 그런 때 당대표에 출마하게 된 거다.
당대표가 되어 하고 싶었던 일은 새로운 좋은 인물들을 한나라당에 영입하는 것, 그리고 젊은 층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한나라당의 활동이나 풍토를 바꾸는 것, 그 다음 정책을 친서민적으로 바꾸는 것 정도였다. 어차피 당대표를 1~2년 정도하는 거면 내가 한나라당에 들어온 지 12년차니까 중간결산차원에서 한번 내 모든 정치생명과 무게를 걸고 해 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이 한나라당을 바꿀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꾸 친이계라 하니까 청와대의 하수인이 된 것처럼 사람들이 비판을 많이 했다. 가령 이재오의 아바타라느니 하며, 그런데 그건 그냥 표면상의 이유고 실제 원희룡을 안 밀고 홍준표를 밀고 들어간 이유는 지나치게 대폭 물갈이가 될 것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공천 약속을 하나도 안 했으니까. 일부 친이쪽 인사들도 공천 약속을 받고 홍준표를 밀었다. 원희룡 대 홍준표의 대결 구도에서 내가 당대표가 되고 난 이후 있을 대폭 물갈이에 대한 공포를 나에게 가졌던 것 같다. 거기다 내가 불출마 선언까지 해버리니까 본인도 안 나오는데 얼마나 혹독하게 물갈이를 하겠냐 싶었을 거다.(웃음)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아직은 당대표로 40대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부분이 많이 작용을 했던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해선 친이쪽도 판단을 잘못한거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똘똘 뭉쳐서 밀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나를 출마시킨건데 실제는 자신들의 표도 분산됐으니까. 그 부분에 대해선 나도 판단 착오를 했고.
어차피 나는 친이라는 세력과는 타협한 거다. 당을 바꾸기 위해 총선 불출마까지 선언하고 당대표에 출마한 거고 친이쪽도 어차피 이대로 가면 지리멸렬이기 때문에 당을 대폭 바꿔보자란 의식이 있었기에 서로 타협이 된 거다. 그런데 막상 표를 열어보니까 국회의원들 같은 경우는 자기 공천이 보장되는 쪽으로 표가 갔고, 그래서 원래 예측했던 것보다 성적표가 훨씬 안 좋았던 거다. 나의 도전 혹은 모험이 이번에 잘 안 맞았던 것 같다.(웃음)
ⓒ김형욱 |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내가 갑자기 친박하면 더 이상하지 않는가?(웃음) 내가 당대표가 되기 위해서 소신이나 내 모든 걸 바꿔서 간 거라면 모를까, 어차피 친이쪽에서 친이는 아니지만 사람이 없으니까 같이 가자라고 한 부분에 대해 나 역시 서로 솔직하게 생각을 말하고 쌍방 간에 타협을 한 것이고, 그 타협을 통해서 40대 개혁적인 당대표로 당을 개혁해보자고 모험을 한 것인데, 그 도전이 실패한 거다. 실패한 것은 감수해야 한다. 그 누군가에게는 판세를 읽는 능력이 없어보였을 수가 있지만 나에게는 도전했지만 실패한 거였다. 그걸 가지고 계속 징징거릴 수 없는 거지 않나.(웃음)
'타협'이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했는데, 타협이라는 건 내가 상대방에 말려들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당대표가 되면 상대인 친이쪽에 말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나?
그렇다. 비록 증명할 수는 없게 되었지만 말이다.(웃음)
살짝 빗나간 이야기일 수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특히 정치인이 자신의 소신과 다른 누군가와 타협을 한다는 것은 부정적으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 그런 면에서 타협 혹은 모험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이번의 타협은 사실 세력과의 타협이란 면이 있고 또 어떻게 보면 역사적인 흐름에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YS가 민자당 들어간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물론 삼당합당을 비판하는 또 하나의 큰 흐름도 있지만 말이다.(웃음) 어쨌든 그렇게 선택의 문제란 생각이 들었다. 개혁을 하고 싶지만 세력이 없는 현실에서 어떻게 세력을 만들 것이냐, 그 질문에서 친이 세력과 손잡고 개혁을 이루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그러니 이제 다른 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나.(웃음)
바라는 바가 어떠했든 결과적으로 지난 전당대회는 정치인 원희룡에게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았던 싸움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가장 크게 잃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얻은 것 또한 있을 것 같다. 가장 크게 얻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잃은 것은 주류와 손잡고 타협한, 그러면서 실패한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사실 성공 신화를 쌓아나가야 된다는 부분에서 대중에게 실망도 많이 시켰을 것이고 이 사람의 색깔이 무엇일까란 의문점도 남았을 것이다. 재밌는 것은 그동안 한나라당 내에서 나를 개혁적이거나 진보적이라고 욕하던 사람들이 주류와 타협하고 결과가 안 좋으니까 원희룡은 색깔을 잃어버렸다고 한다.(웃음)
얻은 거라면 재충전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다. 당대표 출마할 때 내년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는데 그건 조건부가 아니라 원래 구상하고 있던 거였다. 여의도에 들어온 지 12년 지나고 보니 나름대로 동력이 많이 쇠해졌다. 숲에 들어오니 숲이 제대로 보이지 않더라. 자꾸 여의도 정치권 내부의 시각으로 젖어 들어가고 있는 날 보게 되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원래의 초심을 잊어버리겠다 싶어 단절과 재충전이 필요하다란 생각에 당분간 굿바이 여의도를 선언할 예정이었다. 애초에 한나라당이라는 곳에 한자리 하려고 온 게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더 그랬다.(웃음) 그래서 이제는 민심 속으로 들어가려 한다.
정치를 시작하고자 했던 초심과 그 동안의 정치 경험을 연결시켜 새롭게 가야할 방향을 설정하려고 한다. 또 다른 10년을 가야하는데 그 시간을 왜 가야하고, 어떤 정치를 해야 하고, 또 누구랑 함께 해야 하는지, 12년간 몸담고 굴러봤지만 여기서의 풀지 못했던 문제들을 앞으로는 어떤 방법을 가지고 풀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방법을 갖고 오겠다.
어차피 내 스토리를 이어가더라도 제대로 이어 가야겠다란 생각으로 자발적인 실업을 할 예정이었다. 이왕이면 당대표가 되어서 그동안 원 없이 하고 싶었던 당개혁을 하고 가면 좋았겠지만, 대표가 되는 데 실패를 했으니 어쩔 수 없다. 비록 반 토막이 된 거긴 하지만 그래도 원래 가고자 하는 방향대로 변함없이 가볼까 한다.(웃음)
요즘 안철수 원장과 박원순 변호사의 등장이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정치인에게는 정치인으로서의 근육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며 이들의 등장을 기대반, 걱정반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나라당 최고위원 회의 때 안철수 원장을 영입해야 한다고 이야기했고, 최근에는 안철수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정치권이 읽을 줄 알아야한다고도 이야기했다. 안철수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안철수 시장 출마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만만치 않은 폭풍을 불러일으키겠다고 느끼고 있었다. 50%의 지지를 받는 사람이 5%의 후보에게 양보한 것에 국민들은 감동했다. 콘텐츠와 감동이 국민의 정서에 딱 맞아 떨어진 형태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그것을 모르고 자꾸 네거티브 공격을 해서 흠집을 내려고 하니까 문제이다. 한나라당의 고정 지지층은 모르겠지만 일반 국민들이 볼 때는 한나라당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당리당략에 빠져 있구나, 그런 비난을 받기 딱 알맞은 것이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정치인들은 왜 안철수처럼 하지 못했나? 안철수 바람에는 그가 사람들, 특히 청년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을 찾아가 위로한 것이 밑바탕으로 작용한 것이 아닌가? 정치인들이 원래 이런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현실 정치인이 되는 순간 소속 정당, 그 사람이 해온 정치 행보 등으로부터 워낙 많은 규제를 당하게 된다. 하지만 안철수의 경우는 그것들로부터 자유롭다. 그리고 정치인이 콘서트를 열면 사람들이 그렇게 오지도 않는다. 3000명씩 누가 오겠는가. 그게 한나라당이면 더더욱 안 올거고.(웃음) 민주당이어도 안오고, 유시민이라도 안 오는데. 하지만 안철수는 다르다. 바닥에서부터 찬찬히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 속에 들어가 자신의 이름을 알려왔기 때문에 지금의 흐름을 타고 정치를 하게 되면 바람을 탈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그에게 기존 정치권에서는 볼 수 없던 진정성, 내용의 충실성이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이 가능했다. 형식, 내용, 구조가 다른 상황에서 안철수가 했던 일을 정치인들은 왜 못했냐고 활동방식자체를 바로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은 것 같다.
이왕 정치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김에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자. 내년 총선 및 대선은 복지담론 등 진보적 아젠다가 주요 이슈로 등장하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 또는 한나라당이 가져야 하는 철학은 무엇이라 보는가?
복지확대는 시대적 당위라 생각한다. 1997년 IMF 이후 위기가 보여 주었듯이 현재 세계적 차원에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 IMF 위기 이후 금융세계화, FTA 등 일국경제가 아닌 세계경제에 한국경제도 편입이 되면서 양극화로 인한 신빈곤층이 확대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는 국민들의 당위적 요구이다. 더욱이 양극화는 복지만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현재 논의되는 복지는 좁은 의미의 복지로 2차적 분배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생산과정 내에서의 1차 분배과정을 보다 공정하고, 공존의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자본주의의 진화가 필요하다.
또 일시적으로 생산과정에서 일탈하거나 노동능력이 없는 계층에 대한 복지의 확대까지 준비가 되어야 한다. 현재 양극화 문제를 더 방치하게 되면 사회적 갈등이 격화되는 것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경제 자체에 생산성이 떨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내부 선순환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부에서 자원분배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가 없다. 이런 면에서 자본주의 진화와 복지의 확대는 시대의 필연적 과정이자 과제라 본다.
하지만 현재 논의되는 복지의 문제는 담론은 있지만 국민적 합의가 없다는 것이다. 고복지면 고부담을 전제해야 한다. 복지에 따른 부담을 고민해봐야 한다. 상대적 빈곤에 따른 타인에 대한 부담만 이야기가 될 뿐, 자기부담에 대한 동참은 보이지 않는다. 이 부분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보수, 진보 양측 공동의 책임이자 풀어야 할 숙제라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생산성이 확대되면서 복지가 동반되어 간다는 것이 보수의 입장이라 본다.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한 복지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진보 진영과의 지속적인 담론 논쟁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복지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나라당이나 보수 진영이 선성장 · 후복지라는 과거의 성장주의식 모델을 가지고 복지를 반대하는 것은 더 이상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보수진영은 보다 적극적으로 복지확대 정책을 만들어낼 방안을 찾아야 한다. 보수 세력 집권의 장점이라는 것이 보다 치밀하고 현실성이 있다는 것인데, 그러한 장점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복지의 현실성과 치밀함을 가지고 신뢰를 얻어내야 한다. 반대로 야당이나 진보 진영의 과제는 복지 모델에서의 부담과 복지와의 관계, 복지에 대한 우선순위, 정확하고 정직한 설계가 전제되어야 하고, 입증이 되어야 한다.
복지국가를 만들어 가는데 한나라당의 개혁파인 원희룡 의원에게 주어진 몫이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나?
국가적인 발전모델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에 대해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한국사회의 인구구조를 보면 1950년대 출생했던 베이비 붐 시대들이 은퇴를 하고 있고, 현재 그 자녀들이 청년실업을 겪고 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노동력 부족사태에 부딪히게 된다. 고령화에 따른 노후대비와 청년들의 청년실업 등 국가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한국의 지속발전 가능한 대안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
고도성장세대 이후에 국가발전모델에 대한 담론이 제시되어야 하고, 진보는 진보대로 보수는 보수대로 담론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 부분에서 나 스스로는 큰 방향과 구체적인 정책패키지들을 앞으로 몇 년 내에 제시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또 시대의 변화와 국민들의 분노, 아픔을 담고 있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정치가 제대로 다루고 있지 못한 부분에서 체험하고 토론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그것을 가지고 대안을 성찰하고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보수, 진보 틀을 넘어서서, 여의도를 벗어나 이후 세대가 국가적으로 지녀야 할 보수와 진보의 내용을 함께 준비하는 것도 앞으로 해야 할 부분이다. 정계에 입문할 때 보수의 개혁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자는 것이 내 나름의 청춘 후반기 인생 사명이었다. 이런 측면에서도 막바지 본격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소선거구 1위대표제는 여러모로 한국 정치 발전을 이루는데 큰 장애물로 인식되고 있다. 무엇이 문제라 보는가? 선거제도개혁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사실 지금처럼 타협이 불가능하고 다양성이 인정되지 않는 정치 구도를 깨기 위해서는 개헌이 더 근본적이라 본다. 그러나 개헌이 워낙 큰 문제여서 정치제도를 통해 어느 정도 국민들의 다양한 대표성을 띠는 정치인들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다. 선진정치의 틀로 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국민들의 요구가 반영될 수 있는 정치제도가 시급히 도입되어야 한다. 또 정치권 내에서 다양성의 공존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본격적으로 선거제도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기존 거대정당들이 기득권을 포기 하지 않기 때문에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이전에도 쭉 있어 왔지만 계속 진척이 안 되고 있다. 한나라당 소속이지만 이런 논의에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노력을 하고 있다.
국회 선거제도개혁방안연구회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의 1위다수대표제 중심의 선거제도를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로 개혁하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는 연구회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선거제도 개혁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다면?
사실 선거제도 개혁 논의, 특히 비례대표를 늘리자는 것은 주로 진보 진영 쪽에서 많이 제기해 왔다. 한국 정치현실에서 보시다시피 대통령들이 집권해서 국가운영을 해 나갈 때 야당과 타협을 이루기가 매우 힘들다. 또 여야 간 타협을 볼 수 없는 것도 상당한 문제이다.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한시적 정권유지 차원을 넘어서 지속적인 운동으로 선거제도 개혁을 해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386 세대들이 여야의 주축이 되는 시기, 그런 시기가 온다면 충분히 정치제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권 안팎으로도 이 부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 분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면서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정치인 원희룡, 개인 원희룡
다시 정치인 원희룡, 개인 원희룡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앞서 안철수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정치인으로서의 근육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12년 가까이 정치인으로 살아오면서 어떤 정치 근육이 발달한 것 같은가?
ⓒ김형욱 |
순수해서 그런 것 아닌가?
좋게 말하면 순수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순진성에 머물러 있는 거다. 사실은 더 치열하게 변신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아직도 내 안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국민들은 순수하기만 한 지도자를 원하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는 지도자를 원한다. 근본적인 순수성 혹은 영혼을 팔아먹지 않으면서, 내적 동기에서 우러난 에너지를 가지고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과 감정을 담아내는 것, 그 그릇의 크기와 능력이 중요한 거다. 속된 마음을 갖고 있으면 그렇게 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순수하다는 것은 '그래도 당신은 좋은 정치인이다'란 점에서는 위로가 될 말일지 모르겠지만, 국가 경영을 꿈꾸는 입장에서는 '당신은 자질이 없는 것 같아'와 비슷한 말일 수 있다. 눈부신 순수함과 세상을 이끌고자 하는 꿈,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노련함과 치열함이 양립이 돼 있어야 하는데, 참 어려운 얘기다.
막스 베버는 "정치에 관여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악마적 힘과 거래를 하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공익추구라는 선을 위해 악마와 손을 잡았지만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보통 내공이 필요한 게 아닐 것 같다. 어떤가?
그렇다. 제일 어려운 것은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해야 되나. 난 안해도 돼.'라는 마음이 들 때이다. 그런데 정치라는 게 공동체의 공적인 일들을 관장하고 처리를 해나가는 건데, 공적인 사명과 책임에 대해 '내 순수성을 위해서는 저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이런 건 아니지 않은가.
자기 하나 간수하기도 힘들고 내 마음 내가 수양하기도 힘든데 이렇게 똑똑한 5천만 국민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운영해 나간다는 게 쉬울 리가 없다. 성공한 대통령이 드믄 이유가 그거다. 이것은 보수, 진보의 문제도 아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거고. 그런데 모순을 느끼는 게 정말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사람은 그걸 막 뚫고 나간다. 그런데 공적인 마인드와 정말 순수한 영혼을 갖고 있는 사람은 '무얼 저렇게까지 해'라며 진흙탕에 발을 내딛지를 않는다. 이게 항상 당면하게 되는 딜레마인데, 정 안되는 거면 몰라도 어차피 사명감을 가지고 정치를 하겠다고 왔기 때문에, 나를 버리고 더 변화해야한다는 쪽으로 채찍질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것도 기운이 있고, 옆에서 도와주는 힘들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답도 없는 나락 속으로 빠져 버리기 너무 쉬운 곳이 정치판인 것 같다. 실제로 정치하다가 몸도 버리고 마음도 버린 사람들 많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나는 이미 세상에서 누린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 개인적 성취에 대한 욕구를 거의 제로에 가깝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렇게 해야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역의원이 총선에 불출마한다는 게 쉬워 보이지만 사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겁 없이 일할 수 있는 그 과정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한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닥쳐올지 모르겠지만, 당장 내가 쥘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가 아닌,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나에 초점을 많이 맞추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군데군데 좀 있어야 사람들이 미친 척 하고 역사의 굽이굽이에서 각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정치인 원희룡과 개인 원희룡이 서로 충돌할 때는 언제인가?
음.... 그런거다. 개인 원희룡은 사실 남한테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게 있다. 남한테 폐 끼치고 언젠가는 갚아줄 수 있겠지 하면서 툭툭 털고 갈 수 있는 낯 두꺼움이 약하다. 사실 좀 더 공격적이고 외향적이어야 하는데 내 기질상 자연스럽게 되지 않는다. 의식적으로 노력하는데, 자연스럽게 하는 거와 의식적으로 하는 건 틀리지 않은가. 그래서 그런 게 항상 두렵다. 정당대회 할 때도 그랬다. 예를 들어 아니다 싶으면 칼 같이 잘라야 하는데, 이래가나 저래가나 어차피 몸 던진건데라는 생각에 위험부담을 지나치게 안고 나서는 면이 있다. 이왕 그렇게 나서는거면 공천 약속 다해주고, 다 불러 들여서 나 되면 니네 가만 안 나둬 그럴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런 걸 옆에서 하자 그래도 못 하게 하니까 그런 게 문제다. 그런 게 충돌한다.
정치인의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는 없었는가? 있었다면? 그리고 그럴 때마다 어떻게 다시 정치인으로서의 소명을 회복하는가?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우선 각오했던 것보다 훨씬 핍박과 소외가 오래 갈 때 더 그렇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거에 대해선 사람이 워낙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편이라, 그리고 개인적인 욕구를 낮춰버리는 훈련이 잘 되어있어서 그나마 잘 버티는 편이다. 그래도 모아서 확하고 정리하고, 단기전으로 끝내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하지만 세상이 자기 성질대로 되는 게 어디 있겠는가. 이것도 나한테 주어진 훈련의 과정으로 겸허하게 잘 받아들여야 된다. 그리고 나한테 종교도 있고 하니까 순종의 마음, 특히 내 뜻과 다른 부분에 대해 나를 죽이고 순종해야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렇게 내면적으로 본의 아니게 수양을 하는 과정이 많다.(웃음)
예전에 아버지 학교에서 봉사하는 것과 몽고에 가서 나무심는 것, 그리고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기부금 모으기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정치하는 것보다 세상을 더욱더 아름답게 만들겠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그래서 실제로 심각하게 정치를 그만두고 위의 일들을 해보면 어떨까하고 주변에 의사를 피력한 적이 있는데 거의 박살이 났다.(웃음) 왜냐면 그 길이 더 어렵지만 정말 보람된 것이기 때문에 선택하는 거라면 훌륭하다고 박수를 쳐줄만하나, 지금 정치하는 것이 어려워서 그것을 선택하는 거라면 아니라는 것이다. 어차피 사람들이 나에게 정치하지 말라고 할 날이 올 테니까, 그전까지는 본인이 어렵다고 그만둔다 그러면 안 된다고 해서 그냥 깨갱하고 찌그러졌다.(웃음)
원희룡에게 정치란? 정치를 계속하는 이유는?
정치란 결국 우리 사회에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의사결정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고전적으로 가면 정치라는 것은 결국 수단은 권력이고 내용은 전체의 삶 아닌가? 우리 삶을 개선시키는 것을 권력을 통해 하는 것인데, 탈정치는 각자가 자기 분야의 생활을 하는 거니까 좋아 보이지만, 탈정치도 결국 누군가는 권력을 쥐게 되어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탈정치라는 말은 안 맞다.
권력을 민주화해야 하는 거고 권력을 우리 삶에 복종시키게끔 끌고 가야 하기 때문에 정치라는 것은 피하려야 피할 수 없다. 정치가 삶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서 진정성이 나오고 약자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감동, 이런 게 국민들이 원하는 정치가 되는 거다. 정치하면 우리는 권력 싸움 내지는 자기 이익을 위해 힘 있는 데에 붙거나 힘 있는 권력을 조종하기 위한 기술적 과정, 이렇게 부정적으로 생각을 한다.
그런 면에서, 정치를 보다 순화하고 좋은 쪽으로 만들어나가는 부분에 있어서 직접 무대 올라가서 하는 배우들 즉, 정치인들이 있는 거고 옆에서 도와주는 PD들도 있는 거고 이것을 심사하는 관객석의 심사위원들이 있는 거다. 그 중에서 나는 무대 위에서 뛰고 있는 배우다. 정치라는게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이왕이면 나쁜 정치가 아닌 좋은 정치가 우리 모두를 이롭게 하는 것, 이를 위해 내게 주어진 배역을 잘 감당하는 것, 그것이 여러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계속 정치를 하는 이유라면 이유다.
원희룡에게 절망이란?
정치를 하면서 보니까 사람이 있고 일이 있다.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일이 인생의 핵심에 배치돼 있어야 된다. 이게 하나든 둘이든. 이것만 있으면 사실 나머지는 굴곡이 있어도 그 어려움 짊어지고 갈 수 있다. 의무감으로 사람만나는 것을 잠시는 할 순 있지만 그것 때문에 자다가 벌떡 일어날 순 없지 않는가. 내가 의무적으로 하거나, 무엇인가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하는 일은 결코 크게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절망까지는 아닌데 하나의 수단이 되어야 될 것을 얻기 위해 사실은 다른 동기나 다른 관계들을 숨기고 있는,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는 이중적인 면들, 그런 것들을 현실에서 많이 마주칠 때 절망한다. 이게 바뀔까란 생각도 들고.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인간 본성에 대한 절망이기도 해서 머 새삼스러울 건 없다. 나부터 그러니까. 그렇지만 가끔 세상이 너무 그런 본성들로만 굴러가는 것처럼 보일 때 절망이다.(웃음)
원희룡에게 희망이란?
아까 절망이란 연결된 부분이기도 한데 사람들에게 갖춰져 있는 폐쇄성, 그리고 그 안에 감쳐줘 있는 이익과 권력과 거기서 나오는 탐욕과 공격성 이런 부분에서 인간 본성의 한 면에 대해 절망을 느낀다. 그리고 그 반대에서 희망을 느낀다. 예를 들어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것, 이것은 인간에 대한 존중이 우러나오는 부분일 테고, 가진 사람들이 못가진 사람들을 위해 자기 이익을 희생할 수 있다든지, 권력도 자기만을 위해서 공격적으로 쓰는 게 아니라 사실은 화해하고 양보하기 위해 쓴다든지, 이런 부분들을 발견할 때에 희망을 느낀다. 그리고 그럴 때 감동이 있다. 이런 것들을 정치권에서 보고 싶은 것이 우리 국민들의 마음이다. 포용과 화합, 예를 들어 삼성 재벌이 청년 실업자들을 위해 자기 이익을 내놓을 때 얼마나 감동이 되겠는가. 아직 가진 사람과 힘 있는 사람들에겐 이런 게 안 보이지만 우리 보통 사람들에게선 이런 모습들이 많이 나타난다. 이런데서 나는 희망을 본다. 사실 우리 사회에 희망이 많은 것 같다.
원희룡이 꿈꾸는 보수란?
보수의 철학은 '인간은 이기적이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에 바탕을 둔다. 그리고 '지금까지 검증돼 있는 역사적인 사실, 성취들을 인정하고 가자. 그리고 점진적 사회를 바꿔가자'는 것이 보수다. 그런데 기득권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마음대로 지배하는 것도 용인해야하냐는 질문에 맞딱드리게 될 때, 기존 보수의 가치와 충돌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삼성이 하청업체 쥐어짜고 그들의 기술을 훔쳐가도 이것을 자유 혹은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옹호할거냐 여기서 충돌이 이루어진다. 연봉 8000받는 노동자들이 자기들과 똑같은 자동차에 똑같은 바퀴를 끼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3000만원도 못 받는 현실을 가만 내버려두거나 혹은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그 시스템을 강제하려고 하는 것을 자유 혹은 기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시킬 거냐. 이건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자기의 것을 지키기 위해 권력을 남용할 때 보수가 수구가 되고 국민들의 공적이 된다. 이게 보수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그런 점에서 보수가 사실은 대화와 타협 그리고 관용과 수용성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민주화나 복지국가도 비록 내가 처음부터 그것을 주장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사회적인 합의로 만들어진 것에 대해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런 점에서는 보수는 사회의 변화에 대해 수동 혁명의 성격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자꾸 보수의 혁신, 성찰하는 보수, 발전적 보수, 조화와 화합적 보수, 공동체 자유주의, 이렇게 얘기하는데 문제는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실천을 하느냐가 아니겠는가. 당장 한나라당 지지층을 보면 한 절반 정도는 아직도 반공 보수다. 무언가 포용적이고 중도적 입장을 이야기하면 '저거 색깔 이상하다' 이렇게 보는 게 많으니까 아직도 멀었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해결될 문제라고 보긴 하는데, 그렇다고 30년이 걸리면 안되지 않은가. 2,3년 내로 바뀌어야지.(웃음)
내년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했는데, 총선 이후 국회의원이 아닌 신분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가?
고민 중이다. 우선 여의도에 있다 여의도 밖으로 나가는 거니까 국회의원 배지가 떨어졌을 때의 금단 증상에 대해서 '원희룡 관찰 리포트'를 쓸 예정이다.(웃음) 그리고 밖에서 여의도를 보면서 여의도나 국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되는지 전직 경험자이자 일반 국민의 시각에서 보고 공부할 예정이다.
그리고 청년 실업부터 시작해서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주요 문제 현장으로 가고 싶다. 가서 당사자들과 직접 만나 현장의 고통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그 현장에서 대중들과 함께호흡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지역구도 없으니까 전국 어디를 가도 되고,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각계각층의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그렇게 여의도를 떠나서 여의도를 다시 보고 국민의 입장에서, 또 처음 정치를 시작하던 신인의 마음으로 초심을 되돌아보고, 우리 사회의 미래를 고민하고 싶다. 국회의원을 안 할 뿐이지 내용으로써나 과정으로썬 정치에 대해선 더 치열하게 고민해보려 한다. 일단 당분간은 그렇게 살겠단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식의 프로그램을 진행할지는 계속 고민 중이다.(웃음)
ⓒ김형욱 |
이 풍요로운 사회에서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고민들이 많은 것 사실 신기하다. 그런데 그렇게 얘기하니까 엉뚱하다는 반응들이 많다. 내가 이십대였을 때는 사실 물질적으로는 훨씬 어려웠지만 이상적 가치를 위해 내 열정을 바치겠다는 그런 게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닌 것 같다. 부모가 된 입장에서는 우리 애들 또래들이 아주 실리적으로 돼서 자기 앞가림을 잘 하고 그러면 안심은 된다. 그런데 입장을 바꿔 내가 그 입장이라면 조금은 그날그날의 일용한 양식을 위해 너무 비용을 들이는 것은 아닌가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연봉 1억이면 행복한가? 연봉 2천이면 행복한가? 물론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런 걸 해나간다 하더라고 결국 내면의 자유로움과 내공을 쌓지 않고 맨날 외적인 기준만 쫓아가다보면 내면적인 공허함이 생기게 된다. 그러다 매달려있던 것들을 이루지 못했을 때, 결국 스스로 무너지지 않겠나. 그렇다고 취직이나 그런 걸 가볍게 보라는 것은 아닌데 아직 젊으니까 나를 찾고 나의 자유를 얻기 위한 그런 과정에서 실패도 두려워하지 말고 연애도 많이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 답변은 사실은 머랄까 자기의 이익을 쫓아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청년들을 위한 답변인 거 같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공적인 가치를 위해 자발적 가난을 택한 청년들 또한 많이 있다. 그런데 간혹 사실은 자주 당혹스러운 점은 사회운동 영역에서조차 그들을 소모적으로 사용한다는데 있다. 청년들을 사회 변화의 주체로 세우지 않고, 주변화 내지는 도구화해버리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런 면에서 자신이 하는 운동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사회 운동 등을 떠나는 청년들 또한 많이 있다. 그 친구들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다면?
나도 한 때는 많이 부딪쳤는데 우리는 훨씬 격했고 열정이 컸으니까. 그런데 어차피 잘 아는 얘기겠지만 내 인생을 누가 규정을 하나? 나를 낳아준 부모님이 나를 규정할 수 있나? 내가 속해있는 공동체가 나를 규정할 수 있나? 이것은 도전하기 위함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의미를 추구하는 인생을 선택하는 순간 그 규정은 스스로 할 수 밖에 없다는 거다. 사실 '돈 때문에 너무 설움을 받았고 배고프니까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너무 괴롭더라. 내가 도둑질을 할 수는 없지 않냐. 열심히 살아서 없는 사람에게 물 한 바가지 나눠주며 살겠다.' 그것도 훌륭한 삶이다. 그런데 그렇게 살 수 있음에도 나름대로 사회에 참여하고 활동하는 것을 선택했다면 말이다.
그런데 쭉 가다보면 결국 어떤 문제에 부딪친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보면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의미와 현실적으로 부딪치는 상황들 가운데서 내면의 대답을 얻어야 한다. 구도자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그것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국 뒤뚱거리거나 넘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렇다고 거기에만 맡기면 안 된다. 가끔 일기 쓰거나, 기도할 때나 하지. 매일 구도자가 될 순 없는 거 아닌가.(웃음) 그래서 박원순 변호사가 아름다운 재단을 통해 사회 공익 활동을 한 것 아닌가.
NPO 활동 내지는 비영리 영역이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것에 비해 이 영역에서 일하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보상은 턱없이 부족하다. 소위 보수정부라는 것이 아스팔트 NGO들만 지원할게 아니라 제3섹터에 대한 지원 폭을 넓혀야 한다. NPO · NGO들이 우리 공동체를 위해 하고 있는 일들이 너무 많지 않은가. 그런 부분에서 인식을 바꿔 나가야 한다. 이 영역에서 일하는 청년들이 직면하는 여러 고민들 또한 이런 부분들과 함께 이루어질 때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원론적인 이야기만 한 것 같아 미안하다.
쭉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쩌면 원희룡의 실패도, 원희룡의 성공도 우리의 자산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현재 진행형이겠지만(웃음)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으면서 오히려 그들을 포용할 수 있는 내공을 기르게 되었고, 왜 한나라당에 있느냐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제대로 된 보수 만들겠다며 버티고 있는 점에서도 그렇고. 제대로 된 보수 정치인의 모델을 보고싶다. 혹시 꿈꾸고 있나?
보수는 안철수가 모델이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본인이 그 모델이 될 생각은 없나?
아니다. 나는 정치권에 오래 와 있다 보니 얼룩도 많이 묻었다. 안철수가 보수의 제대로 된 모델이다.
원희룡에게 자유란?
자유. 너무 어려운 문제만 준다.(웃음) 사실 자유라는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은 자꾸 어떤 외부로부터의 자유를 얘기하지만 실제 내가 인생을 부딪치면서 느낀 것은 외부로부터의 자유 때문에 내가 헤맸던 것 보다는, 나 때문에 헤맸던 것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내 욕구, 내 감정 때문에 얽매이게 되고, 결국엔 후회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심지어는 내가 가진 기존의 선입관이나 사고의 틀 이런 것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지 않나. 결국 진정한 자유란 자기로부터의 어떤 성숙, 자기로부터의 자유로움이 있어야 개인도 그렇고 우리 사회도 그렇고 훨씬 진짜 자유로워지는 게 아닌가 머 그런 생각이 든다.
누가 나에게 인생의 내공이 무엇인가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난 '세 가지 액체의 곱하기다'고 답했다. '눈물과 땀과 피' 그런데 곱하기이기 때문에 하나가 제로가 되어서는 꽝이고 그렇다고 하나만 커도 안 된다.(웃음)
테레사 수녀가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회의에 빠졌을 때를 썼던 일기 같은 것을 봤는데 공감이 많이 가더라. 사실 우리 모두가 그런 위인이 될 수는 없지만 그런 엑기스 한 방울이 딱 있어야 우리 인생이 가는 거다. 외적인 정치, 논리적인 정당화, 다른 사람들의 인정만으로는 불가능한 것 같다.
남들이 볼 때는 눈물덩어리인거 같고 물렁물렁해 보이고, 얕잡아 보이고 할 지 몰라도 김수환 추기경 같은, 테레사 수녀가 흘린 그런 엑기스가 우리 사회에 번져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면서 갈 수 있는 거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걸 많이 붙잡아야하는데.(웃음) 그런 면에서 자기를 바꾸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고 그래야지, 이것은 진보도 마찬가지고, 보수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진보면 얼마나 진보고 보수면 얼마나 보수겠는가. 보수, 진보라는 게 내 문제에 대해선 보수고 남의 문제에 대해서는 진보인 경우가 굉장히 많다. 남녀문제도 그렇고 운동권내 인간관계도 그렇고 많이 그렇지 않나. 흘러간 지도자들 개혁에 반대할 줄 아는가? 자기 빼고 다 바뀌어라 이거다. 자기부터 바뀌지 않으면서 강요하려 그러니까 설득력이 없어서 욕먹는 거다.
자유와 성숙은 같이 가는 거다. 그게 자기 성찰이고, 거기서 나오는 힘이라야 진정한 힘이다. 옆에서 선배들이 박수쳐주고 인정해주고 예뻐해 주면 멋모르고 따라하는데 몇 년은 갈 수 있을지 몰라도 어느덧 흘러간 세월과 함께 문득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며 후회하게 된다. 결국 자기인생은 자기가 규정하는 거고 그것은 절대자와 대면 속에서 할 수 밖에 없는 게 아닌가 싶다.
(인터뷰 및 정리: 정치경영연구소 김경미, 임지은, 조윤경)
정치경영연구소가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를 정치 및 정책적 맥락에서 찾아내는 일입니다. 과연 자유는 진보적인 걸까요? 그렇다면 그 구체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진보적 의미의 자유를 스스로 누리고 있거나 타인을 위하여 퍼트리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나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자유, 그리고 자유와 평등은 상호 어떠한 관계에 있어야 하는 걸까요? 정치경영연구소의 청년 연구원들이 자유와 관련된 이 많은 문제들을 현실에서 해결 또는 극복해가고 있는 분들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작정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자유 이론가 혹은 실천가 분들께 (자신과 타인을 위한) 자유를 실천하는 방식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여쭤보겠다는 겁니다. 아마도 그분들은 젊은 저희들에게 자신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겁니다. 앞으로 모든 인터뷰 내용은 잘 정리하여 여기 이 자리에 항상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저희와 함께 이 자유의 향연을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 이 연재는 한림국제대학원대 정치경영연구소의 기획, 취재, 집필에 의해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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