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최초의 반테러전쟁인 아프간전쟁에서 반미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는 외에 중앙아시아 석유자원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확보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이제 전세계로의 반테러전 확대를 꾀하면서 미국이 눈독을 들이는 나라가 또 하나 있다. 바로 남미의 콜롬비아이다.
이달 초 부시 정부는 콜롬비아 정부군에 대한 9천8백만 달러 규모의 군사원조를 내년도 국방예산안에 포함시켰다. 이 군사원조는 콜롬비아 내에 있는 미 석유회사 소유의 송유관을 지키는 콜롬비아 정부군에 각종 미제 무기와 통신설비를 공급하고 군사훈련을 시키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마약과의 전쟁에서 테러와의 전쟁으로**
이에 앞서 이달 초 부시 정부는 미 기업 소유의 송유관 보호를 전담할 2천-4천 병력규모의 ‘핵심 인프라 보호 여단(CIB)'의 창설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콜롬비아 군인으로 구성되는 이 특수여단은 콜롬미아 북동부의 카노 리몬 유전에서 카리브해 코베나스항에 이르는 약 8백km의 송유관 보호를 전담할 예정이다.
로스앤젤레스에 본부를 둔 미 석유기업 옥시덴탈 페트롤륨 소유의 이 송유관은 그동안 콜롬비아 좌익 반군과 우익 민병대로부터 빈번하게 습격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40년동안 내전 상태에 있는 콜롬비아에 대한 미국의 무력개입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2년전인 지난 2000년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콜롬비아군에 대한 13억 달러 규모의 원조 계획을 시작한 바 있다.
‘플랜 콜롬비아’로 명명된 이 군사원조의 명분은 ‘마약과의 전쟁’이었다. 콜롬비아는 남미 최대의 마약생산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 정부가 마약 생산 근절에만 목표를 두어 온 것은 아니다. 마약은 콜롬비아 국토의 약 40%를 장악하고 있는 좌익 반군들의 주요한 수입원이다. 따라서 마약과의 전쟁의 곧 반군과의 전쟁이기도 한 셈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최근까지 콜롬비아 정부군에 대한 지원을 ‘마약과의 전쟁’을 위한 것이라고 말해 왔다. 9.11테러를 거치면서 이러한 미 정부의 테러는 결정적으로 바뀌었다. 노골적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표방하고 나선 것이다.
***“좌익 반군을 소탕하라”**
언론 보도에 따르면 부시 행정부는 9천8백만 달러의 군사원조 외에 약 10억 달러 규모의 추가 군사원조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또 미 특전사 병력(그린 베레)이 ‘군사 고문’ 자격으로 콜롬비아 현지에 투입돼 반군 소탕작전에 가세할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공군 지원과 함께 반군에 관한 각종 정보를 콜롬비아 정부군측에 공급하면서 함께 반군 소탕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마약과의 전쟁’은 이제 ‘테러와의 전쟁’ ‘미 석유 이익의 보호를 위한 전쟁’, 나아가 ‘반미 세력 소탕을 위한 작전’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콜롬비아의 마약은 미국의 큰 골칫거리가 돼왔다. 미국에서 유통되는 코카인의 90%가 콜롬비아산(産)일 정도로 엄청난 양의 마약이 콜롬비아에서 미국으로 흘러들어간다. 마약의 재배와 거래는 대부분 반미, 반정부를 외치며 무장투쟁을 벌이고 있는 좌익반군 ‘콜롬비아 해방군(FARC)'과 ’국민해방군(ELN)'의 비호 아래 이루어지고 있다. 마약업자들은 좌익반군에게 정기적으로 세금을 바치며 보호를 받고 있다. 마약문제가 심각한 미국이 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 없다.
미국의 대(對)콜롬비아 원조규모는 해마다 증가해 올해는 하루 1백5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2000년 클린턴 정부는 마약산업을 뿌리뽑고 사회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해 콜롬비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콜롬비아 계획(Plan Colombia)'에 13억 달러를 지원했다.
***좌익 반군, 콜롬비아 국토의 40% 지배**
이 중 대부분이 남부 콜롬비아에서 마약소탕작전을 벌이고 있는 콜롬비아 정부군을 위한 무기제공과 훈련에 쓰여졌다. 콜롬비아는 이스라엘, 이집트에 이어 미국에게 세 번째로 많은 군사 원조를 받는 나라이다.
콜롬비아의 좌익반군 FARC와 ELN의 역사는 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FARC는 1966년 대지주와 군사정권의 탄압에 대항하기 위해 농민 무장조직들이 연합해 형성됐다. ELN은 쿠바 사회주의 혁명의 영향을 받은 지식인 및 학생을 중심으로 64년 결성됐다. 좌익반군의 규모는 FARC가 1만7천명, ELN이 3천명에 이른다. 이들은 정부군을 능가하는 재정과 조직력을 갖추며 콜롬비아 국토의 40%를 장악하고 있다.
98년 취임한 파스트라나 대통령은 내전종식과 평화정착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75억달러를 들여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콜롬비아 계획(Plan Colombia)'도 파스트라나 정부의 작품이다. 그는 지난 3년간 반군지도자들과 꾸준히 대화하면서 정부군 포로의 석방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초 FARC와의 휴전협상이 결렬되는 등 평화를 위한 노력은 다시 난관에 부딪치고 있다. 특히 강경파 군부와 극우세력의 반발이 평화의 큰 걸림돌이다.
한편 정부측에서 이들에 대항하는 약 1만 병력 규모의 우익 민병대(paramilitaries)는 좌파 지식인과 시민의 납치, 고문, 암살로 악명높은 무장조직이다. 엠네스티 국제 인권위원회는 콜롬비아 내전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의 70%가 이들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군부와 기득권층은 좌익 반군과 싸우는 대가로 이들의 행동을 묵인하고 있는 상태다.
좌.우 무장 게릴라의 준동과 힘을 잃은 공권력 사이의 최대 피해자는 무고한 시민이다. 매년 3천5백명이 내전의 틈바구니에서 희생된다. 이중 75%가 집과 일터, 혹은 거리에서 죄없이 살해된 시민이다.
몸값을 노린 납치도 기승을 부린다. 매년 3천건 이상 일어나는 납치, 유괴사건은 이른바 ‘K&R(Kidnapping & Ransom)산업’으로 불리며 FARC와 ELN에게 엄청난 수입을 안겨주고 있다. 시도때도 없이 발생하는 납치극 때문에 오랫동안 좌익반군의 표적이 돼왔던 부자들은 물론, 이제는 일반 시민들까지 납치공포에 떨고 있다.
***콜롬비아 정부군이 미 기업 소유 송유관 보호**
부시 정부의 이번 콜롬비아 지원 계획에는 반군 소탕과 함께 송유관 보호 목적도 있다. 여기에는 미국의 대외정책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 석유기업들의 이해관계가 숨어 있다.
콜롬비아의 송유관은 좌익반군의 주요 공격대상이다. 좌익반군은 미국 석유기업을 약탈자로 여기고 송유관 파괴와 기술자 납치에 주력했다. 지난해 1년간 좌익반군이 저지른 송유관 폭발테러는 1백70회에 달했다.
미국의 석유기업 옥시덴탈 페트롤륨(OXY)은 이같은 폭발테러로 약 5억달러의 손실을 입었을 것으로 예상했다. 콜롬비아 석유회사 에코페트롤(Ecopetrol)은 좌익 반군의 시설파괴로 지난해 2천4백만 배럴의 원유생산이 차질을 빚었다고 밝혔다. 송유관 파괴는 심각한 환경오염까지 낳고 있다. 환경단체 아마존 워치는 지난 16년간 1천회 이상의 송유관 폭발테러로 2백5십만 배럴의 원유가 산과 강으로 흘러들어갔다고 주장했다.
OXY를 비롯한 미국 석유회사들은 콜롬비아 정부군과 연합해 송유관 보호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콜롬비아 정부군의 4분의 1이 송유관 보호에 투입되고 있다. 미국 석유회사들은 콜롬비아 정부에 배럴당 1달러 정도의 세금을 내는데, 이 수입은 대부분 콜롬비아 정부군을 위해 쓰여진다. 미국 거대 석유기업과 콜롬비아군은 이처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인권단체들은 미국의 석유기업과 부시 정부가 이런 이해관계 때문에 콜롬비아 정부군과 우익민병대의 인권침해를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8일 워싱턴의 인권감시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와 엠네스티 인권위원회는 콜롬비아 정부군이 학살과 고문을 일삼고 있는 우익민병대를 지지하고 있다며 미국이 대콜롬비아 지원을 중단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석유회사 소속 보안요원과 콜롬비아 정부군이 무고한 시민을 살해하는 사건도 빈발하고 있다.
부시 정부는 앞으로 콜롬비아에 대한 군사원조는 ‘마약소탕 전쟁’이 아닌 ‘반테러 전쟁’을 위해서 이루어질 것임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콜롬비아에서의 ‘반테러 전쟁’은 FARC, ELN 등모든 반미, 반정부 군사조직과의 전쟁을 의미한다.
***반군 소탕 쉽지 않을 것**
그러나 이들은 알카에다 같은 중동의 테러조직과는 차원이 다르다. 콜롬비아의 국내 상황도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미국의 민간 싱크탱크인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FPIF: Foreign Policy In Focus)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콜롬비아에서의 ‘반테러전쟁’이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첫째, 콜롬비아의 넓은 국토와 많은 인구다. 80년대 레이건 정부는 12년째 내전에 휩싸여있는 엘살바도르에 20억 달러의 군사지원을 했다. 결과는 7만명이 죽고 1백만명 이상이 국외로 빠져나간 채 별 소득없이 끝났다. 엘살바도르보다 국토나 53배나 크고 인구도 훨씬 많은 콜롬비아의 경우 미국은 엄청난 전비와 물자, 인력을 부담해야 할 것이다.
둘째, 군사적 지원이 무고한 시민에 대한 인권침해에 악용될 가능성이다. 콜롬비아군과 우익민병대의 유착관계를 볼 때 미국의 군사지원은 오히려 우익민병대의 잔학한 만행에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셋째, 콜롬비아 엘리트들의 비협조적 태도이다. 고등교육을 받은 콜롬비아 국민은 대부분 군대에 가지 않는다. 이는 가난하고 못 배운 국민들만으로 군사작전을 펼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의 조세수입도 턱없이 부족하다. 세계은행의 계산에 따르면 콜롬비아의 조세수입은 GDP의 10.1%에 불과해 라틴아메리카에서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군대는 매년 가솔린 연료를 정부에 구걸하다시피 요청해야하는 형편이다. 재정적으로 취약한 상황에서 기득권층의 도움이 없이 미국의 힘만으로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FPIF는 콜롬비아 정부군에 대한 일방적인 군사 지원만으로는 결코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부시 정부는 개혁집단, 인권운동가, 사법부, 언론 등 평화와 민주주의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40년 동안 내전에 시달린 콜롬비아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평화다. 그동안 평화협상을 위해 나름대로 많이 노력했던 파스트라나 대통령은 이제 1년 남짓 후면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다.
차기 유력 대선주자인 알바로 벨로스는 보수 강경파다.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 군사지원을 앞세운 부시 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이 과연 콜롬비아에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을지 의심하는 목소리가 높다. 부시 정부가 석유기업의 이해관계에 얽매여 군사력만을 앞세운 채 콜롬비아에 접근하기에는 콜롬비아의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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