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의 한미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감돌았던 전운은 일단 걷혀졌다. 그러나 부시 미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극히 부정적 인식을 고집하고 있으며 9.11테러 이후 미국의 군사력우선정책이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결코 낙관할 수 없는 형국이다.
프레시안은 관련 전문가들의 글을 통해 한미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정세의 현주소와 대처 방안 등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
지난 2월 19일에서 20일까지 이틀간 있었던 김대중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이, 충분히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라 해도 일단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끝났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공격적 대북 정책의 무한정한 전개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회담에 임한 김대중 대통령의 노력은 의미 있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다만 김대중 대통령 개인의 외교적 역량만이 아니라, 격렬한 반미시위로 나타난 한국 대중들의 평화와 자주에 대한 열망에 힘입은 바 크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에서 미국에게 가장 강력한 발언권을 가진 실체는 바로 우리 대중들의 올바른 정세관에 기초한 단결된 민족 자주와 평화 통일 의지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외견상 자세 변화는 대중들의 자주·평화 열망이 이끌어낸 것**
물론 안심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미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자신들의 전쟁정책이 한반도에서 좌절될 수 있는 조건들을 직접 파악하는 기회를 가짐으로써, 새로운 방식의 패권전략 추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강성 확전 전략에 대한 부시 정권의 집착 수준으로 볼 때 전쟁 정책의 본질적 포기가 아니라, 보다 교묘한 여론 조작과 자신의 의사를 대리 관철할 세력의 집권에 대한 정치공작을 통해 전쟁정책 지지의 환경을 만드는 작업에 역량을 집중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작업의 일부는 이미 진행 중에 있다. 따라서,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후 거세진 '반미여론'을 염두에 둔 유화적 제스처 속에 담겨 있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전략의 실체를 지속적으로 꿰뚫어 봐야 하며 특히 향후 대선의 과정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정책을 한반도에서 구체화하려는지 날카롭게 경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와 함께, 대북 대화제의 속에 내장된 미국의 장기적 의도도 매우 면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한국에 방문하기 전 체류한 일본에서는 북한에 대해 여전히 공격적인 표현을 구사했고, 이를 근거로 미사일 방어망 구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의 대북 접근에 있어서 근본적인 변화가 없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부시 대통령이 북한정권과의 대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북한정권의 변화가 자신의 태도 변화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대화의 여건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던 것이다. 이를테면 '대화의 자격론'을 내세운 셈이다. 결국 북한과 미국의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책임은 어디까지나 북한에게 있다는 논리를 구사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언급한 북한의 변화는 사실상 북한체제의 변화를 의미하는 수준까지 이르렀기 때문에 결코 북한이 받아들일 수 있는 '대화론'이라고 할 수 없었다. 이는, 지금까지 주로 언급했던 미사일 문제 등의 타결압박에서 한층 더 나아가 북한 정권을 북한 주민들과 대립하는 체제로 부각시키고 이의 근본적 변화까지 요구했다는 점에서 미국의 대북 정책에 있어서 대화의 벽은 더 높아진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남과 북이 '대화를 통해' 6.15 공동성명의 합의에 이르고, 수준의 조절을 전제로 대한민국의 연합국가론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연방제론 사이의 절충에 대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1)현재의 남북 체제에 대한 상호인정과 비방 중지 (2)내정간섭 배제의 원칙이 존재한다. 그런 각도에서 보자면 부시 대통령의 북에 대한 언급은 이 두 가지 원칙을 모두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자간의 대화를 위한 기본조건이 형성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대북 대화론은 북한 체제 보장 거부를 의미 - 사실상 대화의 벽 높인 셈**
다시 말해서 부시 정권의 북한 인식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수장으로 하는 북한의 기존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표명을 담고 있다. 따라서 이는 클린턴 정권 말기 이루어졌던 북한과 미국간의 '조-미 공동 코뮤니케'에 담겨 있는 기본정신, 즉 "상호 따질 것은 많으나 적대관계의 청산에 대한 '정치적 결단을 우선'하는 접근"이라는 대결관계의 해소 원칙과도 거리가 멀다.
북한으로서는 미국과의 대화에 가장 중점을 두는 문제가 바로 자신의 체제안전에 대한 보장을 미국이 하고, 이를 기초로 안심하고 교류와 관계 정상화를 해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조-미 공동 코뮤니케'의 대화기조를 인정하지 않고 북한의 정치적 실체를 정면으로 부정해버린 부시 대통령의 대화제의를 북한이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는 일인 것이다.
실로, "대북 적대 내지 압살 정책의 근본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의 대화란 미국이 북한을 굴복시키기 위한 조건을 계속 추가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대북 대화 제의의 본질적 성격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에 부시 대통령이 주장한 것처럼 미국은 대화를 하려고 하나 북한은 이를 거부한다는 식의 논리가 일반화되고 이에 따라 어느 시기에 이르면 대화 시도의 한계가 왔다는 빌미를 내세워 또다시 대북 전쟁정책의 정당성을 강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각도에서 볼 때 현재와 같은 방식의 대북 대화 제의는 결국 대북 압박정책의 목표를 관철하기 위한 전술적 변형이 될 수 있으며, 미국이 정한 기준에 따라 북한체제가 변화할 때만이 대화의 자격을 부여하겠다는 결론이 되고 만다.
이것은 실상 대화가 아니라, 미국의 지침에 굴종하라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점에서 북한과 미국간의 대결관계를 종식시킬 수 있는 현실적 접근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미국의 접근에 한국 정부가 동조하여 대북 대화 요구를 하게 되는 것은 결국, 상호 체제 존중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남북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게 된다.
북한 정권과 북한 지도자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인식은 이라크 후세인 체제에 대한 이해와 동일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이라크의 경우 후세인 정권 교체를 위한 군사행동까지 불사하겠다는 자세를 보여 왔다는 점에서 부시 정권의 '북한 붕괴론' 내지는 '대북 공격론'의 근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님을 주시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부시 대통령의 대북관은 "냉전시기 진영 대립의 산물로서의 '자유'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의 대북 정책의 공격적 성격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봐야 한다.
***부시의 '자유'개념은 냉전형 대결주의의 소산, 그 귀결은'적대진영 붕괴론'**
다 알다시피 냉전시기 미국이 주도해온 대결정책의 근본에는 '자유진영과 전체주의 진영간의 대립'이라는 도식이 존재했다. 그리고 이러한 이분법에 의해 규정된 전체주의 진영에 속한 주민들은 이른바 자유진영에 의한 해방을 기다리는 구원의 대상으로서, 이들의 '억압적 처지'는 미국의 군사주의 노선 강화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조건이기도 했다.
여기서 자유진영이란 당연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체제이고, 전체주의 진영이란 사회주의 체제를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진영대립의 소산으로서 성립한 자유의 개념을 통해 미국은 자신의 패권에 철학적, 문명사적, 윤리적, 이념적 근거를 부여했고 적대진영의 정권붕괴를 양대 진영 내부의 모든 대중들이 지지하고 원하는 최종목표인 것처럼 삼을 수 있었다.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과 적대적인 대북 인식, 그리고 그의 자유에 대한 개념은 이러한 진영대립의 반복이라는 점에서 한반도에서 그가 추진하려는 정책의 성격은 '냉전체제의 확대재생산'에 이바지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미국 언론들은 이번 부시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의 외교적 주안점을, '아시아 지역에서의 반 테러 전선 결성'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부시 대통령이 일본을 기점으로 해서 이른바 <'자유' 태평양 지역>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미국의 '확전 정책'을 아시아 국가들에게 설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부시 대통령은 '자유 수호를 위한 공동의 대응'이라는 논리로 '신 냉전형 진영 짜기'에 돌입하는 노력을 시도했다. 그런데, 그가 지향하는 '자유'는 어디까지나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에 줄을 서는 국가에게만 인정되는 정치적 덕목'이라는 점에서 독일의 피셔 외무장관이 신랄하게 지적했듯이 동맹국이라는 이름 아래 다른 나라들을 '미국의 위성국가'로 전락시키는 이념적 장치의 기능을 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 자신이 그 자유를 스스로 유린하는, '기본권 제약을 위한' 여러 가지 제도적, 법적 조처를 강구해가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는 사실 자기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이는 특히 미국정부가 언론과 사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는 여론조작 기구의 설치까지 진행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부시정권이 말하는 자유의 정체가 과연 무엇인지 따지고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의 확전 논리, 전쟁정책에 대한 세계 도처의 반발이 심해지면서 미 국방부가 날조된 잘못된 정보까지 가공해서라도 "여론전"을 수행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겠다고 나서서 논란이 되고 있다. 국방부는 최근 '전략영향국(Office of Strategic Influence)'을 창설했는데, 이 조직의 기능은 언론기관을 비롯해서 종교인, 시민운동가, 외국 정치지도자 등 여론, 정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집단이나 조직, 개인 등에게 조작된 정보를 포함한 보도자료를 전달해서 미국의 전쟁정책을 지지 옹호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날조된 정보로 미 전쟁정책에 대한 지지 유도**
이러한 계획이 알려지면서 당장에 두 가지 점에서 반발이 나오고 있다. 첫째는 그렇게 될 경우 국방부의 발표나 정보공개가 신뢰를 받을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국방부는 여론전쟁, 즉 심리전도 중요한 전쟁의 한 형태라는 점에서 이러한 작업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언론통제의 방식을 넘어서, 아예 언론에 미국의 전쟁정책에 유리한 자료와 정보를 공급, 언론에 미국의 사고내용을 원천적으로 입력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둘째로는 70년대 중반, 국방부와 CIA는 여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정책 프로파갠다를 할 수 없도록 법적으로 조처가 취해져 있는데 이를 위반한다는 것이다. 일단 이러한 작업이 허용되면 진실은 실종되고 정보는 독점되며 전쟁정책의 정당성과 그 효율성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기초와 근거가 허물어지고 만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국방부는 이미 <랜던 그룹(Rendon Group)>이라는 사설기관에 매달 10만 달러의 용역을 맡겨서 심리전 활동 전략을 짜고 있는데 일차 작업은 이락의 후세인 제거공작과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이 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국방부 내의 세력은 이러한 여론전을 잘 수행해야 확전 정책이 국제적인 지지를 충분히 받으면서 수행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미국 국방부의 여론조작 전술에서도 보게 되듯이, 미국은 '거짓 정보라도 퍼뜨려야 한다(disinformation)'는 전제 위에 있다는 점, 그리고 미국의 공격적 전쟁 정책의 대상이 되는 국가의 정권교체를 목적으로 결국에는 그 지역에 대한 미국의 지배를 관철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클린턴 정부 시기 국방장관을 지냈던 윌리암 코언(William Cohen)은 이러한 심리전과 관련해서, "미국 정부가 언론과 일반 여론, 그리고 외국 정부까지 포함해서 속이겠다는 것인데 이는 실수이다"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베트남 전쟁 당시 개전의 명분으로 삼았던 통킹만 사건의 재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월 20일자 뉴욕타임스는 이 전략영향국 설치와 관련해서 국방부가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아프가니스탄 민간인 사망자에 대해 입다물고 있으며, 법무부는 테러 사건 연루 혐의로 누가 어떤 경로로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되는 수가 체포 구금되었는지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을 문제 삼았다. 그러면서, 이러한 국방부의 여론 조작 심리전이 방치되면 언론의 보도와 비판 기능은 심각한 위기에 처할 것을 시사했다. 거짓말이 미국의 전략적 차원에서 의미가 있으면 공적으로 인정되고, 그에 따라 타국의 정권까지 교체하는 정책을 수행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니 경악스럽기 짝이 없다.
부시 대통령은 이러한 국방부의 전략영향국외에도, 국무부 소속의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 등 각종 미국 정부의 대 언론기구를 종합적으로 동원해서 최근 증가 일로에 있는 세계적 반미여론에 대응하고, 미국의 전쟁정책을 적극 홍보하기로 했다. 이 정책은 백악관 직속의 독립된 기구로 구체화될 예정에 있는데, 만일 이러한 미국 정부의 프로파갠더 정책이 강화될 경우 미국 언론이나 정부의 발표와 정보공개를 토대로 정세를 판단하는 일은 점점 더 불확실해질 것이며 미국이 겨냥대상으로 삼는 나라는 쉽지 않은 처지에 처할 수 있다.
랜던 그룹의 용역 내용에서도 드러나고 있듯이, 적대진영 내지 적대국가의 정권교체까지 시도하겠다는 미국 부시정부의 심리전이 북한의 경우 어떤 방식으로 적용될 것인지 사뭇 주시되는 바인데, 앞으로 국내 언론의 경우 미국 정부 기관의 정보를 판단 평가하는 일에 있어서 보다 세심한 접근이 더욱 요구된다고 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미국의 전쟁정책의 논리에 휘말려 민족 내부의 갈등과 대결을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따지고 확인해야 할 바**
이제 우리는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와 미완의 과제를 두루 살펴 어떤 문제를 제기하고 향후 어떤 방식으로 이번에 형성된 '반전 평화와 자주의 전선'을 지속적인 기반 위에 올려 발전시킬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적어도 다음의 세 가지를 김대중 정부에게 묻고 따지거나 또는 우리 모두의 새로운 과제로 설정해야 할 것이다.
***1. 페리 프로세스는 폐기됐는가?**
첫째,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를 하겠다고 했는데, 전임 클린턴 정부 시기 마련된 북한과 미국간의 공동 코뮤니케를 없는 것으로 하고 다시 시작할 것인지, 아니면 이 당시 어렵게나마 이루어진 대화기조의 외교적 근거를 되살려 나갈 것인지를 미국 정부에게 확인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전자일 경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대화 상대자로 적합한지에 대한 직접적인 접근시도를 할 것인지 (이는 클린턴 정부 당시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북이 참고사례가 된다.), 후자일 경우, 공동 코뮤니케 실천을 위한 구체적인 조처가 어떤 단계로 준비되도록 할 것인지에 논의가 있었는지 우리는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미국이 한반도 문제에 대한 대화정책을 어떤 방식으로 실천하겠는가에 대한 실체를 파악하고, 그 내용을 채우는 작업에 우리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2. 미 MD 계획에 대한 한국의 입장은?**
둘째, 우리 정부가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Missile Defense: MD) 구축 요구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밝혀야 한다. 이것은 그간 논란이 되어왔던 무기 강매 요구에 대한 문제도 함께 정리하는 작업을 포함한다. 일단 이렇게 막강한 전쟁시스템이 장치되고 나면 이를 계속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한반도의 긴장은 쉽게 사라지지 못하게 되고 따라서 우리의 평화 시스템 마련에 중대한 장애가 생기고 만다. 그리고 이는 결국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지배를 수행하는 기구인 주한미군의 영구주둔을 가져오게 한다는 점에서도 심각하게 따지고 들어 공론화해야 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3. 한국의 대북 지원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셋째, 전력을 포함한 우리의 대북 지원, 경제협력과 관련해서 미국이 이를 저지하려 하는지 아니면 적극 지지하는지를 분명히 밝히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민족경제 수립을 위한 기초 마련에 있어서 전력과 식량 및 기타 합작사업의 확대는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만일 미국이 이를 반대하고 나서고 우리가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미국이 각종 경제적 압박을 가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남한의 대북 지원과 교류사업이 위축되고 만다. 따라서 이에 대한 미국의 태도와 정책이 어떻게 정리되었는지를 우리는 명백하게 알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는 지난 반세기 이상 우리와 미국 사이에 맺어진 각종 협정과 조약 그리고 기타 국제법적 관계에 대해서 하나하나 면밀하게 재검토해나가는 작업을 장기적 관점에서 해야 한다. 이는 우리 자신의 국가적, 민족적 행동반경의 내용을 아는 일임과 동시에 미국이 우리에게 가하는 제약을 본질적으로 해결하는 매우 중대한 근거와 기초가 될 것이다.
1948년 콜롬비아의 보고타(Bogota)에서는 제9차 "범 아메리카 국제회의(Pan-American Conference)"가 열렸다. 이 회의는 2차 대전 이후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패권적 지배질서를 규정하는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는 현장이었으며, 여기서 미국은 '자유와 기독교 문명권을 수호하기 위하여'라는 명분을 내세워 라틴아메리카를 자신의 주도권에 따르는 방식으로 결속시켰다. 무엇보다도 우선 미 달러화의 위력이 가져온 결과였다. 그리고 자유를 부인하는 전제국가들 - 미국에 반기를 든 사회주의 세력 -로부터 공동의 가치와 이상을 방어하기 위해 단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단합의 지침은 미국이 내리는 것이며 결속의 중심에는 마땅히 미국이 있는 것이었다.
***미국의 자유는 팍스 아메리카나를 위한 자유**
보고타 회의에서 미국과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간에 체결된 협약의 서문은 이렇게 되어 있다. "오늘날의 세계는 전제국가들의 패권주의 전술에 대항하기 위한 급박한 조처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러한 전제국가들이 아메리카 대륙의 인민들의 자유와 진정한 의사를 훼손하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들 전제국가들의 반민주적, 패권적 개입주의는 실로 미국적 자유의 개념과 공존할 수 없다.(...is incompatible with the concept of American freedom.)" 마지막 대목은 오늘날 부시 대통령의 발언과 인식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미국의 부시 정권은 자신이 주도하는 자유와 결속 이외의 것은 모두 반격의 대상이며 이른바 자신이 규정한 자유진영의 장래를 위협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보고타 회의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주권을 존중하는 아메리카 대륙 전체의 공정한 단결이 아니라, 20세기 중반에 들어서서 미국을 제국주의 패권국가로 내세우는, 그래서 힘으로 유지하는 폭력적 평화인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와 다를 바 없이, 우리와 미국간에 형성된 각종 협정과 조약, 기타 국제법적 약속들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일은 우리 자신의 민족적 자유를 확보하는 과정에 있어서 매우 중대한 작업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생명과 미래가 제국의 군림을 위한 '팍스 아메리카나'의 자유를 위해 희생당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약소 민족의 진정한 자유는 자주를 그 출발로 한다'는 것, 다름 아닌 우리의 일제 식민지 치하 40년의 역사가 웅변해주고 있음을 우리는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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