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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신화의 이면<14> CBS,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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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신화의 이면<14> CBS, 어디로 가나

"목사님 이제 그만하시죠"

20일과 21일 발행된 기독공보 기독교신문 연합공보 등 전국 기독교계 신문에 눈에 띄는 의견광고 하나가 게재됐다.

전국언론노조 CBS지부(위원장 민경중)가 낸 '기독교방송(CBS) 재단이사회와 한국교회에 드리는 사과문'이다. 이 사과문은 지난 17일로 임기 만료된 현 권호경 사장의 3연임 포기를 권유하면서 지난 99년부터 만 3년간에 걸친 CBS의 노사갈등을 치유하고 새로운 출발과 도약을 기약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진 CBS>

노조의 사과문은 오랜 파업사태를 겪은 CBS의 현실을 회고하며 "그 동안 경영진의 잘못을, 이사회의 무관심을 질타해오기도 했지만, 그보다 먼저 저희 기독교방송 노동조합의 부족함이 컸음을 고백합니다"라고 고백하면서 "누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 이제 이 일을 접으려고 합니다"라고 밝혔다.

노조는 먼저 한국교회와 청취자에게 사과와 감사를 표시하고 CBS 재단이사회에는 그동안 이사회를 무산시킨 무례 등을 용서해달라고 부탁했다.

사장퇴진운동을 통해 첨예한 갈등관계에 놓여있던 권호경 사장에게는 '노사대립과정에서 권 사장의 명예를 손상한 점을 사과하고 이제는 신앙 안에서 '목사님'으로 부르고 싶다'고 밝혔다.

노조는 또 '사장 재임 8년동안 권 사장이 험난했던 IMF의 터널을 무사히 지나게 했고 CBS 지방네트워크 구축과 영상시대 개막이라는 큰 일을 해냈다'며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다"는 치사도 곁들였다. 그리고 "앞으로는 CBS의 새로운 출발과 도약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줄 것을 믿는다"고 간청했다.

노조의 사과문은 그동안 CBS가 겪었던 사태의 원인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모두 담고 있는 하나의 상징물이다. 세 번째 사장 연임을 희망하고 있는 권 사장에게, 또 이를 추인하려는 재단이사회에 사과를 통해 각각 결별과 변화를 촉구함으로써 CBS가 본래의 주인인 한국교회와 청취자에게 돌아가겠다는 선언문인 것이다.

***"CBS사태는 노동운동과 언론개혁운동의 연장선"**

한국언론사상 최장인 2백65일간의 파업을 거친 CBS는 지난 18일부터 권호경 사장을 대신해 경영본부장인 한국연 상무가 사장직무대리를 수행중이다. 지난 94년부터 8년간 사장으로 재직한 권호경 사장의 후임이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지난 15일 차기 사장선임을 위해 열릴 예정이었던 재단이사회는 파업수단까지 동원한 노조에 의해 무산됐다.

노사갈등으로 표면화된 CBS 사태의 본질은 종교재단의 언론지배에서 비롯된 소유와 경영의 폐쇄성에서 출발한다. CBS 노조가 장기간 조합원들의 생계를 담보로 권 사장 퇴진운동을 펼치며 파업을 벌인 배경도 권 사장 개인에 대한 문제제기라기보다는 소유주인 CBS 재단이사회와 경영진의 지배구조를 합리화해 사회적 공기인 방송으로서의 CBS 정체성을 되찾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김준옥 노조사무국장은 "CBS 사태는 노동운동과 언론개혁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다"며 "노사가 사장 청빙위원회 도입과 경영자문위원회 구성, 전문인 이사 선임 등을 골자로 합의한 재단개혁안은 회사의 경영합리화를 위해 노조와 조직원들의 참여를 명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운동의 연장이다. 또 언론사의 폐쇄적 지배구조에 대해 변화를 촉구하는 파업이었다는 점에서 언론개혁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노조가 요구하는 CBS의 재단이사회와 경영구조 개선은 이미 2000년 4월 노사가 합의한 정관개정안에 나타나 있다. 이 안은 당시 재단이사회 전권대표였던 김상근 목사가 제시한 안으로 노조가 전격 수용했으나 재단이사회의 인준과정에서 권 사장과 표용은 이사장 등 이사회내 반대세력에 의해 지금까지 실행에 옮겨지지 않고 있다.

***노사합의 정관개정안이 CBS의 미래**

CBS의 미래가 담겼다는 정관개정안을 살펴보면 CBS가 가려는 길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개정안은 일단 현재의 '재단법인 기독교방송'이라는 명칭을 'CBS'로 통일하자고 명시하고 사업부문중 방송선교사업을 방송사업으로, 기타사업 등을 문화선교사업으로 확대하자고 제시하고 있다.

영문으로는 같은 CBS지만 '재단법인 기독교방송'이라는 관료적 호칭을 변화시켜 방송사로서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선교사업으로 국한된 사업부문을 방송과 문화사업 전반으로 확산하자는 것이다.

정관개정안의 핵심은 5조 이사선임방법과 11조 경영자문위원회 설치, 12조 사장 청빙위원회 구성을 통한 사장 선임방법 변경 등이다. 골자는 방송학자나 언론인, 경영인 등 전문인 이사 5명을 이사회에 포함시켜 방송사로서의 경영전문성을 높이고, 이사회와 직원대표가 함께 참여하는 경영자문위원회 구성을 통해 사장의 업무를 보좌하자는 것이다. 역시 이사회와 직원대표가 공동 참여하는 사장 청빙위원회는 사장 후보를 복수로 추천하는 역할을 하는데 최종 사장 임명권은 이사회가 갖게 된다.

이 개정안의 방향은 CBS가 단순한 선교목적의 방송차원을 넘어 하나의 독립 언론과 방송으로 역할을 확대해 지평을 넓혀야 한다는 데 있다. 기독교의 '복음'을 순수 선교차원의 협의로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유와 진리, 정의의 전파라는 광의의 개념으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노조는 지난 99년 CBS의 본직절 변화를 위해 현재 재단법인으로 돼 있는 회사소유구조를 주식회사로 변경하자는 안까지 제시하기도 했으나 무산됐다. 현재 CBS의 사장 선임 등 변화를 결정할 수 있는 조직은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재단이사회인데 예수교장로회, 기독교감리회, 기독교장로회 등 3대 교단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이사회는 기본적으로 노조의 경영참여는 용인할 수 없다며 원칙적인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재단이사회는 노조의 사장 선임을 위한 사장 청빙위원회 구성 등 경영참여요구를 '교권에 대한 침해'로 규정하고 '한국교회에 대한 반기'라고 묵살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교회의 권위와 권력을 상징하는 교권을 CBS 재단이사회 이사들이 아전인수격으로 자기들 것이라며 '나눔의 진리'를 거부하고 노조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형국이다.

CBS의 한 고위간부는 사장 문제에 대해 "현실적으로 CBS 재단이사회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한국의 각 교회가 아니라 교회의 행정기관 성격을 띠고 있는 각 교단들이다. 실제로 웬만한 교회 담임목사들은 정년까지의 임기가 보장된 자기 교회라는 단단한 기반을 갖고 있어 기독교를 대표하는 방송이라는 CBS 문제에는 관심도 없다"고 말했다. 재단이사회 이사들이 실질적으로 한국교회를 대표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말이다.

***한국교회와 시청자에게 돌아가자**

물론 재단이사회가 방송으로서의 CBS 역사에 부정적인 기능만을 해온 것은 아니다. 재단이사회가 최종 인사권과 경영권을 갖고 있는 구조는 편집권 참여를 최소화하는 긍정적 기능을 가지고 있어 CBS 기자나 PD들이 다른 족벌언론과 달리 보도를 하거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 간섭을 최소화하는, 즉 편집권 독립이 지켜질 수 있는 현실적 기반을 제공해왔다.

"CBS는 한국 언론의 바로미터"라는 한 CBS 기자의 평가는 그동안 CBS가 한국 언론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해왔다는 자부심의 표현이다. 실질적으로 지난 1954년 첫 전파를 쏘아올린 CBS는 1970∙80년대 암울한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도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매일 7시 30분, 11시 30분, 6시 30분에 방송되는 CBS 뉴스는 그날그날 KBS와 MBC 뉴스의 보도방향을 결정하는 등대 역할을 했다는 게 중견방송인들의 회고다. CBS는 80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언론통폐합으로 보도기능을 상실했지만 시사프로그램 등을 통해 끊임없이 사회와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기능을 수행해왔고, 87년 보도기능이 회복된 이후에는 라디오방송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많은 특종을 터뜨리기도 했다.

CBS의 역할이 단순한 기독교 선교방송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CBS의 방송내용중 순수기독교 선교에 관련된 부분은 20%가 채 안되며 나머지는 음악과 뉴스, 시사교양프로그램 등으로 채워져 있다.

CBS에 대한 사회적 기대 또한 순수선교방송으로서의 기독교방송은 아니다. 지난해 1월 CBS 청취자와 전∙현직 출연자들이 모여 'CBS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C사모)'을 결성하고 사장퇴진운동으로 촉발된 CBS사태의 해결을 전 사회적으로 촉구하고 나선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하겠다.

***"CBS의 성장은 70년대에서 멈췄다"**

그렇다면 CBS노조와 직원들은 사장퇴진을 요구하고 재단이사회의 변화를 바라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조는 "CBS가 방송사로서 변화하는 방송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려면 전문적인 식견과 비전을 갖춘 경영진과 이사회의 판단과 전략이 필요한데 현재 CBS 뉴스나 프로그램 구성은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폐지된 특파원 제도 부활과 직원연수제도 등을 통해 전문화 등을 위한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데 경영진은 현 상황을 유지하는 데 급급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다보니 프로그램 등을 통한 방송발전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기자는 "언론재단 등 외부기관에서 연수 기회를 받아와도 회사가 보내주지 않을 정도로 인적 투자에는 관심이 없다"고 지적했다.

한 중견PD는 "현재 CBS 프로그램 포맷이나 내용은 사실 70년대와 비교해 별 차이가 없다. 프로그램 제목이나 형식을 조금 변경한 것일 뿐 프로그램의 본질적 성격이나 내용은 당시와 똑같다"고 꼬집었다. 이 PD는 "CBS 사태는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재단이사회와 CBS 내부의 세대교체를 통해 앞으로도 수년간에 걸쳐 이뤄질 일"이라고 말했다.

이 PD는 또 "CBS는 장기적으로 올해 3월 출범하는 위성방송을 통해 영상시대를 준비하고 라디오 부분은 음악방송과 시사교양 표준FM방송으로 세분화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각 매체의 역할분담이 효율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현 경영진과 재단이사회는 적극적인 대처와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회사측은 권호경 사장이나 재단이사회 문제에 대해 노조와는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한 고위간부는 "권 사장이 94년 취임 이후 99년까지는 적자를 기록했으나 2000년과 지난해 각각 20억원대와 43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이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지금이라도 재단이사회가 열리면 권 사장이 다시 사장으로 선임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며 "퇴진하라는 노조 주장에 대해 권 사장이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이 간부는 정관개정과 관련 "노조의 경영참여 주장은 CBS운영의 전권을 갖고 있는 재단이사회에 일부 권한을 양도하라는 것인데 목사들로 구성된 재단이사회 입장에선 교권에 대한 도전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어 합의가 어렵다"며 "정관개정안에 대한 노사합의의 경우 재단이사회는 김상근 목사가 독자적으로 한 것이지 재단이사회의 공식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1년 43억원 흑자는 무노무임의 결과**

그러나 노조측은 회사측의 이같은 주장이 아무런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43억원의 흑자중 30억원이 파업으로 인해 무노동무임금이 적용되며 발생한 것이고 나머지는 지역국 설립으로 인해 광고단가가 오르며 이뤄진 것이지, 권 사장을 비롯한 현 경영진이 경영을 잘해서는 아니라는 것이다.

노조는 권 사장 취임 당시 2백억원대였던 부채규모가 최고 4백90억원까지 늘어났던 것을 예로 들며 "CBS의 경우 광고수입은 월 30억원에 달하나 임금비용은 8억원에 그쳐 웬만하면 흑자를 낼 수 있는 구조인데 6년동안 적자경영을 하다 무노무임으로 2년간 흑자를 낸 게 자랑일 수 있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기독교의 사랑을 전파하는 CBS에서 극에 달한 노사간의 불신이 대화의 간극을 좁히는 데 장애가 되고 있는 것이다. 왜 여기까지 왔을까.

CBS 사태는 지난 99년 33일간의 파업과 2000년 10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2백65일간의 파업을 거치며 첨예화된 CBS의 노사갈등을 말한다. 사태의 발단이 된 CBS노조의 권호경 사장 퇴진운동은 2000년 1월 24일 권 사장이 당시 민주당 신임 김옥두 사무총장에게 '축 총선승리'란 축하화분을 보내며 시작됐다.

<사진 CBS2>

노조는 권 사장이 언론사 사장으로서 해서는 안될 일을 했다며 이후 권 사장이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낸 충성편지 등을 공개하고 사장퇴진운동에 나섰다. 노조는 이후 회사측과의 임금협상 과정에서 결렬을 선언하고 2백65일간의 긴 파업에 들어갔다.

지난해 6월 26일 CBS 재단이사회 전권대표인 김상근 목사와 민경중 노조위원장이 노사를 대표해 사장 청빙위원회 구성 등을 골자로 한 정관개정에 합의하고 노조가 파업을 철회함으로써 일단락되는 듯이 보였던 CBS사태는 정관개정안이 재단이사회에 의해 묵살되고 지난 94년부터 사장으로 재임중인 권호경 목사의 3연임 문제가 불거지며 노조가 이사회를 저지시키는 등 다시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권 사장은 지난 17일로 8년간의 임기가 모두 끝난 상태지만 4년 임기의 세 번째 연임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권 사장외의 사장후보로는 고무송 기독공보 사장이 있다. 사장 선임이 시급한 상황이나 차기 이사회 일정은 아직 잡히지 않았으며 당분간은 현 사장직무대리 체제가 지속될 전망이다.

노조측은 권 사장이 노사합의에 따라 사장 청빙위원회 추천과정을 거친 후 사장으로 다시 온다면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일방적인 이사회 결정에 의한 권 사장의 연임은 무조건 반대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사회의 소외계층을 대변하는 빛과 소금이 되자"**

결국 남는 문제는 CBS가 어디로 갈 것이며 어디로 가야 하느냐는 것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방송인 CBS가 재단이사회 일부 이사들이나 권 사장의 전유물이 아니라면 그 방향은 재단이사회와 노조, 그리고 CBS를 아끼는 청취자들의 의견이 모두 수렴된 상태에서 결정돼야 한다.

'진리의 목소리는 처음에는 아주 세미한 음성으로 들려오나 결국은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는 한 중견기자는 "CBS는 우리사회의 소외된 자를 대변하는 소금의 역할을 하고 어두운 곳을 비추는 빛의 기능을 해야 한다는 게 CBS 직원들의 소망이다. 이제 권 사장 퇴진을 계기로 재단이사회와 노조가 노사화합의 정신을 다시 되살려야 한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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