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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폴리널리스트를 만들어내는가 : 수치, 참담, 위구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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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폴리널리스트를 만들어내는가 : 수치, 참담, 위구 ②

[윤재석의 '갑론을박'] 비리의 저수지 '조·중·동', 그 안에선 무슨 일이?

부끄러움과 참담함, 그리고 두려움으로 "김두우·홍상표·신재민…'폴리널리스트', 그 추악한 실체"를 내보냈다. 정권 말기가 되기도 전에 이른바 폴리널리스트(polinalist) 출신 고위 공직자들이 비리에 연루돼 줄줄이 사법 처리 대상이 되어가는 상황을 그저 바라볼 수만은 없어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을 겨우 가다듬으며 사죄와 함께 사태의 흐름을 짚어본 것이다.

이번 회(回)엔 언론인 출신 고위 공직자들이 판박이처럼 비리에 연루되게 된 원인을 살펴보기로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들이 공직에 진출하고 나아가 별다른 양심의 가책 없이 비리를 저지르게 된 가장 큰 원인 제공자는 이들이 속해 있던 언론사의 사주라는 것이다.

너무 심한 비약 내지 명예훼손 아니냐고 항의를 할 법도 하다. 하지만 이제부터 제가 풀어나가는 얘기를 들으신다면 대략 고개를 끄덕이시리라 확신한다.

언론사, 소속 기자의 정계 진출에 관대한 이유는

먼저 폴리널리스트 비리 공직자 전 소속사의 귀책사유론(歸責事由論). 전 대통령실 홍보수석 김두우가 구속됐으니, 그의 소속사였던 <중앙일보>를 중심으로 얘기를 풀어가겠다.

전편에서도 언급했듯 김두우의 행보 중 상궤(常軌)를 벗어난 부분을 복기해보자.

金은 정치부장 시절인 2004년 4월 제17대 어간 한나라당으로부터 경북 지역 공천제의를 받고 사표를 냈다. 그러다 낙천되자 회사 복귀를 청했고, 회사는 金을 다시 받아들였다. 내가 <중앙일보>에 20년 동안 근무해봐서 잘 아는데(이거 누군가 자주 써먹는 밥맛없는 상투어네), 중앙 사규(社規) 정말 엄격했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으나 사규를 제대로 지키자면 거의 도덕군자가 되어야 했다. 심지어 출입처 기자단 간사도 맡지 못하게 했다. 기자직이 다른 직종보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직종이니 신문사의 사규가 까다로운 건 상당히 바람직한 일이다. 아니 어느 면 당연지사다. 문제는 그처럼 까다로운 사규도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으로 적용됐다는 점이다.

도덕군자(道德君子)급 사규로 후배 희생

먼저 1992년 이른바 '보사부 촌지사건'이 발생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한겨레신문>의 폭로로 불거진 이 사건으로 중앙에도 2명의 연루자가 생겼다. 하지만 까놓고 말해 <중앙일보>와 <중앙경제> 보건사회부 출입기자는 당해 사건과 관련된 죄질이 아주 경미했다. 게다가 두 후배 모두 심성도 착하고 실력도 출중한 기자들이었다.

보사부 촌지 사건

1991년 11월 보건사회부 출입 기자들이 대우재단과 아산재단에서 9000여만 원의 후원금을 받아 국외 취재를 다녀온 사건. 취재를 빙자한 사실상 공짜 여행이었다. 당시 정부 기관이나 관공서를 출입하던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외유가 관행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겨레>가 이를 보도하면서 기자단의 촌지 수수가 공개적으로 드러났다. 이후 각 언론사는 자체 윤리강령을 만들어 자정 정화에 나섰고, 권력과 언론 유착의 상징이었던 '촌지'가 점차 사라지는 계기가 됐다.


처음에 나는 사태를 가볍게 생각했다. 대충 견책 내지, 심해야 3개월 감봉 정도 때리려니 예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사측의 태도가 의외로 완강했다. 당시 노조위원장이었던 나는 대표였던 김동익 선배를 매일 찾아가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근데 내가 뭘 잘못했나!). 그런데 김 선배의 입장은 회사의 입장만큼이나 완강했다. "이건 파면감이야!"

촌지 받은 게 잘못이긴 하지만, '파면' 소리를 하는 게 하도 화가 나서 "정치부 기자 출신인 김 선배 예전에 촌지 안 받았나요?"라고 대거리를 했다. 샤프하게 생겼지만, 마음 약한 김 선배는 안경을 연신 쓸어 올리면서 당혹스러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를 꽤나 좋아하는 내가 예상외로 너무 세게 나왔으니까.

그러나 사측과의 협상은 씨도 안 먹혔다. 노조 쪽에서 히든카드를 슬쩍슬쩍 내보이면서 가진 사측과의 거듭된 딜(deal)을 통해 겨우 도달한 게 정직 3개월이었다. 타사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무거운 징벌이었다. 그 3개월 동안 난 두 후배를 위로하느라 다른 저녁 약속을 거의 포기했고, 두 후배의 급여는 조합비에서 보전해주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90년대 초만 해도 촌지 관행이 있었다. 관행이라고 해도 촌지를 수수한 행위는 벌 받아 마땅한다. 하지만 돈 몇푼 받은 게 3개월 동안 급여를 받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잘못인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납득이 가질 않는다. 참, 잊을 뻔했다. 당시 <중앙일보> 보사부 출입기자는 3년 뒤 중앙 노조위원장에 선출됐음을 참고로 말씀드린다.

양상군자(梁上君子)엔 너그러운 사규

그런 중앙일보가 정계에 입문했다가 바로 다시 복귀하겠다는 자의 요청을 흔쾌히(?) 들어줬다? 그것도 대명천지 21세기 하고도 4년이 지난 2004년에 말이다.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귀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그죠!'(KBS2 '개그콘서트' 여당당 대표 김영희 버전)

한데, 곰곰 생각해 보면 김두우에 대한 회사의 배려는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건 사규를 뛰어넘는 고도의 정책적, 정치적 배려이기 때문이다. 그럼 중앙은 왜 사규를 무시하면서까지 金에게 파격적인 배려를 한 것일까.

<MBC> 이상호, "홍석현 돈배달꾼" 보도

이해를 돕기 위해 6년 전 정국을 들썩였던 <MBC> 기자 이상호의 이른바 '삼성 X파일 사건'을 반추해 보자.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가 특기인 엄기영이 앵커였던 2005년 7월22일 9시 뉴스데스크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내용을 장시간 보도했다. 삼성 X파일에 관한 내용이었다.

▲ 2006년 11월 8일 '안기부 X-파일'을 입수·보도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가 무죄 판결을 받은 MBC 이상호 기자. ⓒ연합
삼성 X파일은 97년 격변의 대선정국 와중에서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 전신)의 미림팀이 도청한 내용을 담은 90여분짜리 테이프와 이를 풀어서 만든 내부 문건 3종류를 통칭한다. X파일엔 97년 4월, 9월, 10월로 이어지는 정국 변화와 그에 따른 <삼성그룹>의 전방위 로비 실태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이 녹취록은 미림팀장을 통해 한 재미교포에게 전달됐고, 이상호는 2004년 말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도미해 이를 입수한다. 李는 6개월에 걸쳐 성문분석까지 동원하는 용의주도한 방식으로 X파일의 진위를 파악하는가 하면, 관련 보충 취재까지 곁들인 끝에 7월 22일 <MBC> 뉴스데스크를 통해 이를 공개한다.

그러나 녹음테이프의 육성이나 문건의 상세한 내용은 보도하지 못했다. 당시 주미대사였던 홍석현과 <삼성>이 전격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이 이를 수용했기 때문이다.

X파일의 내용은 어찌 보면 간단하다. <삼성>이 대선 정국에서 거액의 보험금을 신한국당 대선 후보(경선후보 포함)와 검찰, 언론사에 뿌리기 위한 기획 회의 대화록이니까.

더욱 관심을 끄는 것은 테이프 속 대화에 등장하는 인물이 <중앙일보> 사장(폭로 당시 주미대사) 홍석현과 이건희의 심복인 <삼성그룹> 비서실장 이학수라는 점이다. 이들은 97년 9월 9일 한 호텔의 일식집에서 <삼성그룹>과 <중앙일보>가 당시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 이회창에게 어떻게 대선 자금을 전달할 것인지와 검찰 고위직에 대한 떡값 배부 등을 놓고 심도 있게 논의했다. 이를 테면 <삼성>이 구축하고 있는 '정·검·경(政·檢·經) 커넥션'의 리모델링을 위한 비밀 회동인 셈이었다.

'그까이 꺼 뭐 대충' 무혐의 처리

홍석현과 <삼성>이 낸 방송금치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졌지만, 여론이 엄청 나빠지자 국민정서법상 검찰은 수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사가 한창 속도를 낼 시점에 <삼성> 회장 이건희가 돌연 출국해버린다. 검찰 출두를 누구보다 싫어한다는 그로선 당연한 행보.

아무튼 그렇게 X파일 사건은 유야무야 되어 갔고, 이학수와 홍석현은 검찰의 소환에 끝내 불응한다. 검찰은 YS 정부와 DJ 정부시절 국정원장을 비롯한 국정원 도청 관련자들을 수사하고, 12월 14일 서둘러 수사결과를 발표한다.

회사 돈을 빼돌려 불법 정치자금 100억원을 이회창 후보 측에 제공한 의혹을 받고 있는 이건희 등 <삼성>측 관련자에 대해서는 증거 불충분과 공소시효 만료 등을 이유로 전원 무혐의 처리했다.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전현직 검사들에 대해서도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모두 무혐의 처리했다. 그야말로 '그까이 꺼 뭐, 대애~충 하고 손 씼지'식이었다.

사건이 종결되자 이건희는 도피 5개월 만인 2006년 2월 4일 밤 담요를 덮은 채 휠체어에 앉은 초췌한 모습으로 김포공항 입국장에 나타난다. "작년 1년 여러 가지 소란을 끼쳐 죄송하게 생각하고 전적으로 책임은 나 개인한테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적으로 책임 있다는 자가 도피는 왜 했누? 일본에서 산책 중 넘어져 다리를 다쳤다는데, 그걸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화면에 비치는 불쌍한 모습은 과연 진실이었을까?

대법원, "고자질한 놈이 더 나빠!"

X파일의 주인공들이 면죄부를 받은 데 비해, 정작 이를 폭로한 이상호와 당시 진보신당 국회의원 노회찬은 유죄를 받았다.

검찰은 2005년 12월 14일 이상호와 <조선일보> 월간조선 편집장(현 대통령실 정무 1비서관) 김연광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기소했고, 2007년 5월 21일 떡값 수수 검사를 실명 공개한 노회찬을 명예훼손, 통비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대법원은 올 3월 17일 전원합의체 재판에서 이들에 대해 통비법 위반으로 모두 유죄 판결을 내렸다.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것은 유죄 판결 이유. "실제로 떡값이 오간 것이 아니라 떡값을 줄 것을 논의했던 것이며 이미 8년이 지난 일이라 보도가 시급하지도 않았다"는 것. 아울러 "보도 내용이 공공의 관심 사안이지만 실명을 써서 대화내용을 직접 인용한 것은 방법의 정당성을 결여했다"는 것이다.

정말 '귀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DJ 정권 시절인 99년 검찰이 (홍석현이 오너인) 보광그룹 탈세혐의로 洪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회창 동생 이회성으로부터 60억원이 아닌 30억원을 받았다는 증언을 확보했고, 그것은 결국 洪이 절반을 'in my pocket'하는 배달사고임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삼성과 洪이 신한국당 대선후보 이회창 측에 떡값을 준 게 아니라 줄 것을 논의했던 것이라고 판단하는 대법원. 더욱이 스스로 '온 국민의 관심 사안'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실명을 써서 대화내용을 직접 인용한 것은 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는 대법원. 정말 대한민국 대법원 맞나. 국민의 대법원인가, 아니면 <삼성>의 대법원, <중앙일보>의 대법원인가. 대법원은 과연 '국민의 알권리'가 뭔지 알고나 있는 걸까.

97대선 때 <中央>은 '집단 히스테리'

참고로 이상호의 폭로로 불거진 삼성 X파일 사건이 실제로 진행되던 97년 즈음 <중앙일보> 내부에선 한편의 씁쓸한 블랙 코미디가 진행되고 있었다. 바로 신한국당 당보 만들기. 이 문제는 먼저 내가 2005년 7월23일 저녁 <CBS> 시사프로그램 '시사자키'에 출연해 진행자 김어준과 대담했던 내용을 토대로 상황을 재구성 해본다.(☞관련기사 바로가기)

97년 10월로 기억되는데, 이때부터 <중앙일보>의 대선 관련 논조가 노골적으로 편향되기 시작한다. 신문을 보면, <중앙일보>가 아니라 <신한국당 당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아무리 '회창객(會昌客)'을 밀어주고 싶다 해도, 또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 입장에서 '당연하거나', '자연스러운' 것이라 해도 상궤(常軌)라는 게 있지 않은가, 상궤가. 각 언론사에 비치된 마이크로필름을 찾아보면 참고가 될 것이다.

그래서 당시 심의위원이던 나를 비롯해 기자 몇몇이 <중앙일보>의 보도 편향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이러다가 큰일 난다"고. 불행히도 두 가지 예견은 모두 들어맞았다. 대선 이후 <중앙일보>는 망신을 당했고, 사주는 2년 후 탈세혐의로 구속됐다.

▲ <중앙일보> 1997년 12월 15일 자 1면

아무튼 이때 <중앙일보>의 메인 스트림은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하고 있었다. 우리처럼 눈치 없는 놈 몇은 빼고. 15대 대통령선거 당일 있었던 해프닝을 소개하는 것으로 <중앙일보>의 정치편향성 소개를 끝내겠다.

97년 12월 18일 저녁, 난 다음날 <KBS> 1라디오 라디오24시 '환경코너'에서 떠들 '제15대 대통령당선자의 환경정책' 원고를 만들기 위해 자리에 남아 있었다. 앨 고어가 92년 미국대선에 빌 클린턴의 러닝메이트로 나오면서 선거용으로 내놓은 'Earth in the Balance'를 보면서.

오후 6시. 투표가 종료되자 지상파 TV는 일제히 자체 출구조사(exit poll) 결과를 보도하는 것으로 대선 특집방송의 포문을 열었다. 당시 <MBC>가 'DJ의 약간 우세를', <KBS>는 '회창객의 약간 우세를' 각각 출구조사 결과로 내놓은 것으로 기억한다. 양대 방송의 대선 결과 보도는 첫 투표함 개봉 결과가 들어오기 전까지 같은 톤으로 유지됐다.

그런데 6시 45분쯤 나는 충격적인 한 마디를 듣게 된다. 저 쪽 국제팀에서 팀장이라는 자(이 자, 기자 출신이다)가 이렇게 말하는 거였다. "야, 우리가 이기고 있으니 밥이나 먹으러 가자."

걔네는 헛다리 출구조사 결과를 손에 쥔 <KBS>를 틀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우·리·가· 이기고 있다"니. 언제나처럼 그날 대선에서도 제3후보에게 표를 던졌던 나지만, 정말 구역질이 나고 토할 것만 같았다. 아, 이 회사가 집단 히스테리에 걸려있구나.

다행히도 당시 상당수의 <중앙> 기자들은 까탈스런 사규만큼이나 깔끔하고 젠틀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도 언론자유, 정의 사회 구현을 위해 애쓰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듬해 1월 나는 '희망퇴직'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이름으로 20년 봉직한 <중앙일보>를 떠났다.

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 '비리는 전염된다'

그런 일이 중앙일보에만 국한된 것일까? 당사자들은 떠올리기조차 싫겠지만, 이번 사안과 관련이 있으니 조·중·동 탈세혐의 수사 사건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상처에 고춧가루 뿌릴 일 없으니 홍석현 부분은 '됐고', <조선일보> 방상훈과 <동아일보> 김병관 부분을 따져보자.

2006년 6월29일 대법원 1부(주심 고현철)는 회삿돈을 횡령하고 세금을 포탈한 혐의(조세범처벌법 위반 등)로 기소된 <조선일보> 사장 방상훈의 상고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아버지인 방우영씨의 조선일보사 주식 6만5천주를 명의신탁 형태로 아들에게 물려주는 방식으로 23억5천만원의 증여세를 포탈하고 △복리후생비를 지출한 것처럼 거짓 전표를 꾸며 법인세 1억7천만원을 포탈하고 △회삿돈 25억7천만원을 사주일가 명의로 <조광출판>이나 <스포츠조선> 등의 계열사 증자대금으로 사용한 혐의에 대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의 판단은 옳다"고 밝혔다.

2001년 9월 구속 기소된 方은 같은 해 11월 보석으로 풀려난 뒤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법정구속은 면했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방상훈은 2004년 1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한편 대법원 3부(주심 이규홍 대법관)는 2005년 6월 10일 조세포탈 및 횡령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전 <동아일보> 명예회장 김병관에 대한 상고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30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김병관의 '법인세 포탈' 행위에 대해 "조세의 부과, 징수를 불능 또는 현저하게 곤란하게 하는 위계 기타 적극적인 부정행위로서 조세범처벌법 제9조 제1항의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업무상 횡령' 혐의에 대해 "피고인이 업무상 보관하던 <동아일보>의 자금을 마치 개인 돈인 것처럼 사용한 이상 피고인에게 그 횡령의 범의가 없었다고 할 수 없다"며 "피고인이 <동아일보>를 위해 사용한 개인 자금이 더 많았다 하더라도 그런 사정이 업무상 횡령죄를 인정함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朝 복리 후생비, 東 취재조사비 轉用

이들에 대한 준엄한 꾸중은 2002년 9월 4일 서울지법 형사합의21부(박용규 부장판사)가 김병관에게 행한 선고 발언으로 대신하겠다.

"피고인들은 언론사 대주주의 지위를 남용해 회사자금을 횡령하거나 그 과정에서 법인세, 종합소득세 등을 포탈했을 뿐만 아니라 회사주식을 자식에게 대물림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 거액의 증여세를 포탈했다. 누구보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피고인들이 신분에 따르는 '도의상의 의무'(Noblesse Oblige)를 망각한 채 탈법적인 방법으로 조세를 포탈한 것은 어떤 주장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어 실형에 처한다."

조중동 사주 범죄와 관련해 가끔씩 쓴웃음이 날 때가 있다. 바로 이들 신문에서 탈세나 불법 증여, 사기 사건을 대서특필하면서 분기탱천할 때다.

'나눔은 전염된다'는 말이 있다. '사랑은 전염된다'는 말도 있다. 그렇다면 '비리는 전염된다'는 말은 어떨까? 불행히도 대한민국 메이저 언론이라는 곳에서 벌어진 행태와 그곳 출신들이 공직에 들어와 벌이는 행태를 보면 이 속설 또한 기각할 수밖에 없는 귀무가설(歸無假說)이다.

작금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폴리널리스트, 그리고 앞으로 떠오를 인물들의 이력서를 꼼꼼히 챙겨볼 필요가 있겠다.

엽관제라지만 해도 너무해

요직에 기용되는 폴리널리스트 대부분은 MB 대선캠프의 언론특보 출신이다. 물론 그 자체가 시비나 지탄의 대상이 되는 건 아니다. 어차피 정권을 잡으면 엽관제(獵官制: spoils system)에 따라 자기 사람을 심는 게 인지상정이니까. 미국도 대선 헌금 10만 달러 낸 사람이 주(駐)벨기에 대사로 나가는 사례까지 있을 정도다.

문제는 '부적격인물'이나 '비리 시한폭탄'을 마구잡이로 기용했다가 MB 스스로 동반망신 당하는 것은 물론, 심각한 국정 난맥상까지 초래한다는 점이다.

공영 방송을 중심으로 사례를 살펴보자. MB 정권 출범 이후 들어선 수장 중 이병순 후임의 <KBS> 김인규를 제외한 대부분의 수장은 모두 실패 케이스였다. 그처럼 무능하고 딸랑이인 수장들을 세우니, 파업이 나고(<YTN>), 내분이 나는 것(<MBC>) 아닌가.

청와대 핵심 참모와 내각에 들어간 폴리널리스트들이 보여준 부끄러운 행태는 앞으로 줄줄이 나올 것 같으니 그 때가서 다시 살펴보기로 한다.

'비리 시한폭탄' 기용, 동반 망신

폴리널리스트 사태에 대한 MB의 마인드와 시각에도 심대한 문제가 있다. 26일 청와대 관계자는 최근 불거지고 있는 폴리널리스트 비리 의혹과 관련, 별거 아니라는 투로 사태의 심각성을 애써 축소했다. 그러나 MB는 바로 다음날인 27일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측근비리 의혹에 대해 한 점의 의혹도 없는 철저한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도대체 이 같은 난맥상은 어디로부터 온 걸까. 26일 청와대 관계자의 '얼떨리우스' 같은 발언에서 단초를 읽을 수 있다. 사실 MB 측근의 '줄줄이 사탕 비리'는 올 초부터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1월 함바(건설현장 식당) 비리 의혹으로 청와대 감찰팀장이었던 배건기가 사직하고, 2월 강원랜드 사장 최영 역시 비리 혐의로 구속되고 곧이어 방위사업청장 장수만이 사직한 바 있다. 지난 5월엔 전형적인 MB맨인 전 감사위원 은진수가, 지난 20일엔 역시 확실한 MB맨인 대통령실 정무비서관 김해수가 각각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된 바 있다.

▲ 은진수 전 감사원장(좌)과 김해수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우) ⓒ연합

이쯤 되면 감을 잡았어야 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27일까지도 "별 거 아니다"는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다가, 그날 밤 민심을 알아차렸는지 다음날 MB 입을 통해 철저한 수사 지시가 내려진 것이다.

그런 안일한 대응은 정권의 망신과 함께 조기 레임덕으로 화답된다. 아직도 3분의 1이나 남은 MB정권. 그러나 이제 MB정권에 기대를 걸거나 MB를 두려워하는 이는 별로 없다.

여기에 MB의 전공이라던 경제마저 엉망으로 돌아가자, 택시운전기사조차 정권 알기를 우습게 안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을 침 튀기며 비난했던 기사들은 요즘 MB 이름 뒤에 육두문자를 붙인다.

이 모두, 민심을 잘 읽고 대통령의 의중을 대중에게 잘 설파해야 할 언론 출신 고위 공직자들이 염불보다 잿밥에 한눈을 팔다 생긴 난맥상이다. 폴리널리스트의 농단으로 나라가 엉망된 것에 대해 언론계 선배의 한 사람으로서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

다음편은 "<3>정치꾼 기자를 색출하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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