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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신화의 이면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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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신화의 이면 <13>

최문순 전 언론노조 위원장 - "DJ 정부, 언론개혁 자격 없다"

1998년 말부터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을 이끌어 왔던 최문순 위원장이 지난 해 연말 위원장직을 사퇴했다. 임기 도중의 사퇴라는 점에서, 아니 그보다는 취임 후 언론노동운동의 숙원이었던 산별노조인 전국언론노조로의 전환을 2000년 11월 이루어냈으며 지난 해에는 누구보다도 언론개혁운동에 앞장섰던 그였기에 사퇴 배경이 궁금했다.

위원장 사퇴 후 한달 가까이 일산 자택에 칩거해 있던 그를 지난 달 29일 오후 시내 한 커피집에서 만났다. 약 4시간에 걸쳐 그동안 언론노동운동을 이끌면서 느꼈던 그의 생각들을 들었다. 최문순 위원장은 지난해 언론개혁운동을 실패로 규정하면서 도덕성 없는 정권이 언론개혁에 나선 것을 그 첫번째 원인으로 꼽았다. 언론노조로서는 정부측의 언론개혁 의지와 능력을 과신한 것을 잘못으로 꼽았다.

언론노조는 오늘 새 위원장을 선출한다. 지난해 들불처럼 번졌던 언론개혁운동은 현재 안티조선시민연대 등 일부 시민단체의 활동을 제외하고는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다. 언론개혁이 완수된 것은 절대 아닌데 언론운동이 정체성과 목표를 상실하고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본래 최문순 위원장과의 만남은 보도를 전제로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언론개혁운동도 새로운 방향설정과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또 지난 3년간 언론노조운동을 이끌어 온 그의 경험은 한국언론의 쇄신을 염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공유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라는 점에서 그의 솔직한 생각들을 가감없이 전하기로 한다. 편집자

***언론개혁운동 현 정부와의 관계설정에 실수**

지난해 언론노조와 시민단체들이 주도한 언론개혁운동은 나름대로 성과도 있었으나 각종 게이트 등으로 인해 현 정부의 부도덕성이 드러나면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결국 현 정부의 도덕성을 어느 정도 신뢰했던 언론노조와 시민단체의 결합체인 신문개혁국민행동이 정부 주도 언론개혁프로그램에 들러리를 선 꼴이 돼 버렸다는 자괴감이 앞선다.

언론개혁운동 자체가 실패한 것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지난해 정부에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 실시를 촉구하며 이끌어냈던 언론개혁이라는 화두가 지금 실종된 것처럼 보이는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일단 언론을 개혁하겠다고 나선 현 정부가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세무조사 등 언론개혁 프로그램을 이끌어온 현 정부의 주도세력들이 모두 부정부패 연루 등으로 자리에서 물러났거나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안정남 전 국세청장의 부동산 투기의혹, 신승남 전 검찰총장 동생의 이용호 게이트 연루, 박준영 전 공보수석의 윤태식 게이트 연루 의혹 등이 현 정부가 언론개혁을 주도할 수 있는 도덕적 기반과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두 번째 이유는 현 정부가 주도한 언론개혁 프로그램이 준비부족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언론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언론개혁에 대한 국민여론과 합의를 이끌어냈어야 하는데 정부가 추진한 언론사에 대한 공정거래위 조사나 국세청 세무조사가 너무 두서없이 진행돼 왔다.

세 번째는 언론사 세무조사 이후 결과처리에 형평성을 결여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조·중·동 3사에 8백억원대의 추징금을 일제히 부과하면서 문제가 많은 것으로 얘기되는 한국일보와 SBS 등 일부 언론에는 아주 가벼운 처벌을 내린 것이다. 이러한 형평성 상실은 결국 정부의 정치적 목적을 드러나게 해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데 한계가 있었다.

네 번째는 언론사주구속 등 세무조사 뒷처리 과정에서 끝까지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사법부가 기득권 세력 편에 서서 언론사주들을 석방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하나 문제의 본질은 정부가 애초부터 공정하지 못한 정치적 의도를 드러내며 그러한 빌미를 제공했다는 데 있다. 병역과 세금 문제는 국가유지의 근본이기 때문에 세금포탈 문제의 경우 사법부가 독자적으로 판단해 누구 편을 드는 결정을 할 수가 없다. 언론문제에 대한 정부의 아마추어적 접근으로 의도가 쉽게 드러났고 언론사주 석방으로 실질적으로 정부의 기가 꺾이기 시작했다.

***국가권력에 기댄 것이 잘못**

현 정부가 가진 문제가 근본적일 수 있겠으나 언론운동 진영의 문제도 있었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언론개혁이 정치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율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최상인데 언론개혁운동 진영이 세무조사 등의 국가개입을 촉구했다는 점이다.

사실 언론권력은 50여년간의 분단체제를 이용해 강고한 기득권세력으로 자리잡아 국민에게 국가권력보다 더 큰 피해를 입혔다. DJ도 언론의 피해자 중 한명으로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섰던 인물이 아닌가. 그래서 언론운동진영은 이 정권에는 도덕성이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기반으로 국가권력의 언론문제 개입을 촉구했던 것이다.

언론사 세무조사 실시 등은 사실 정권초기부터 요구해온 것인데 현 정부는 초기에는 언론에 대해 'cash & whiskey' 정책을 펴다가 안 되니까 뒤늦게 언론개혁에 덤벼들었다. 시점의 문제가 있었던 것이나 그래도 당시까지는 언론개혁을 위해 전술적으로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다. 그런데 현 정부의 도덕성 부패가 상상 이상으로 심각하게 드러나며 결과적으로 엄청난 실망감을 안겨줬다.

현재 언론개혁운동진영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언론개혁 선봉에 섰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이탈하고 있는 현상은 앞서 말했듯이 결과적으로 정권에 동원됐다는 느낌에서 비롯된 ‘쪽팔림’의 결과다. 언론개혁운동진영의 주장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으나 정권과의 관계설정에서 미스가 있었던 것이다.

현 DJ정부는 그래도 남북정상회담과 언론개혁 등에 있어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다고 볼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미숙한 뒷처리로 어렵게 이뤄낸 성과를 희석시켰다. 그래서 현 정부 정책을 지지했던 찬성자들도 쪽팔리게 했다. 현 정부에 대한 혹독한 배신감을 느낀다.

***정치권력 아닌 국가 공권력의 개입 요구**

물론 언론개혁운동 진영이 요구한 것은 정치권력의 개입은 아니었다. 국가 공권력의 개입을 요구한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이회창씨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는 계속 실시해야만 하는 것이다. 지금은 국가권력의 힘이 점점 약해지고 시장과 언론의 힘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시민단체나 운동단체는 국가 공권력의 역할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결국 언론개혁문제는 국제기자연맹(IFJ) 강령처럼 언론내부 구성원들의 조직적인 힘으로 했어야 하는데, 안되니까 정권을 끌어들이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언론개혁운동은 다시 언론내부 구성원들의 힘을 확보하기 위해 다시 출발해야 한다. 외부에서도(시민단체나 국민들) 이런 시각에서 언론운동을 도와줘야 한다.

사실 모든 것은 언론 자신의 문제다. 언론인의 윤리의식과 올곧은 생각이 있으면 된다. 또 이 때문에 발생하는 인사상 불이익 등을 감수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 언론의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 윤태식 게이트에 연루된 언론인 문제는 기자의 권력이 비대해지면서 발생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언론사회 조직의 논리는 언론 본연의 임무를 다하는 것인데 그걸 안하고 있다는 게 보다 본질적인 문제다.

특히 족벌언론의 문제점은 더욱 심각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반성이 없다는 점이며 세무조사에서 드러났듯이 온갖 탈세의 온상이었다는 점이다. 권력과 자본에 대해 감시기능을 수행하는 언론이 스스로 너무 썩어있으면서도 큰 소리만 치고 자기반성은 하지 않고 있다.

***족벌언론사주 구속은 친일주의에서 비롯돼 냉전체제 붕괴가 이뤄낸 결과물**

운동의 본질적 차원에서 보면 언론사주 구속은 사실 냉전체제의 해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세계적으로 수십년 지속돼온 냉전체제가 붕괴되고 국내에서는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또 언론내부에도 한겨레가 창간된 이후 경향신문 등 독립신문이 등장했고 방송이 상당부분 정치권력과 자본 등 기득권으로부터 독립됐다는 게 원동력이 된 것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언론사주 구속은 현 정부의 의도만으로 이뤄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은 이 사안(언론사주 구속 등 족벌언론문제)을 언론내부의 문제로만 보기 어려우며 전체 체제의 문제와 관련돼있다고 봐야 한다. 기득권 체제 문제는 결국 친일세력 반공주의 친미주의 지역주의 고착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사실 민주화과정을 거쳐 이제야 친일 친미 반공 등으로 이어지는 기득권 세력에 대한 반대세력이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언론문제의 본격적 제기는 성과**

지난해 언론개혁운동의 결과만을 놓고 볼 때 지금은 졌다고 보지만 저쪽(언론사주쪽)도 상처를 입었으며 언론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은 성과라 할 수 있다. 다만 시장논리가 점차 강화되는 상황에서 독립신문들이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등 발전적 미래에 대한 조급함이 있다는 점은 우려할 일이다.

기득권 세력에 대항하며 성장하던 반대세력이 꺾이기 시작한 전기는 IMF가 제공했다. 한국사회의 운동진영이라 볼 수 있는 한겨레나 MBC, 노동진영, DJ진영이 IMF라는 자본파업에 밀린 것이다. 운동진영이란 의미는 진지하게 사회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의미하는데 이 진영이 몰락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있다.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의 목소리가 언론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 점에서 시민운동도 언론개혁 운동의 피해자라 할 수 있다.

현재 사회의 전반적인 큰 흐름은 자본패권 경영패권에 있다. 일반 국민들도 IMF 이후 실직 등에 대한 두려움이 만연해 있어 변화보다는 안락함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결국 언론운동이 지속되기 위해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란 과제와 언론인의 각성이 전제돼야 한다. 시장이란 거대권력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언론산별노조는 자사이기주의 벗어나 공공의 이익 추구할 수 있는 기반**

이런 점에서 언론산별노조의 탄생은 의미가 있다. 과거 연맹체제에서는 단위노조들의 연대집회가 불가능했다. 산별노조하에서 보다 큰 공공의 이익을 위해 단위노조의 이익에 반하는 시위 등이 가능해진 것이다. 출발점은 됐다고 본다.(전국언론노조는 현재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산하 조직이나 전국언론노조 산하에 있는 산별전환을 마친 단위노조들의 임단협 교섭권과 체결권을 갖고 있다. 과거 연맹체제는 구속력이 없는 연대체제로 결속력이 약했다. 편집자)

산별노조 출범의 가장 큰 성과로는 개별사의 이익과는 다른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측면을 산별노조 전환후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인식하게 된 것인데 앞으로도 이 방향을 계속 유지하고 확대해야 자기 정체성을 뛰어 넘을 수 있고 언론사주들의 의식도 바꿀 수 있다. 다시 말해 언론노동자들은 ‘회사 종업원이 아니라 언론인으로서 우리 회사에 와 있는 사람들이란 점을 인식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KBS노조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과거에는 KBS란 거대조직의 힘과 동력이 없이는 연맹(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을 이끌어 나가기 어렵다는 생각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때 상황과는 엄연히 다르다. 언론노조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KBS노조 없이도 언론노조가 굳건하게 나가고 있는 것이다. 도리어 KBS노조 집행부가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는 언론노조로부터 탈퇴하겠다는 협박이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KBS노조 문제란 2000년 11월말 출범한 8대집행부 이용택 노조위원장이 창사기념품 선정과정에 개입해 군대동기가 운영하는 이앤텔이란 회사의 컨퍼런스폰을 선정하도록 로비를 했다는 것과 강철구 부위원장이 노조 상근 간사 등을 대상으로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사건을 말한다. KBS 조합원들은 이 문제와 관련해 지난해 두차례에 걸쳐 탄핵투표를 실시했는데 1차 투표는 탄핵통과에 5%가 부족한 62.2%의 찬성으로 부결에 그쳤으나 지난해 10월 실시된 2차 탄핵투표는 90.73%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그러나 이용택 위원장과 강철구 부위원장은 탄핵투표가 불법이었다며 물러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KBS노조는 사건이 불거진 지난해초부터 상급단체인 언론노조에 조합비를 납부하지 않고 있다.편집자)

언론개혁운동은 물론 계속돼야 한다. 운동을 하는 방법론에서 제도적 접근을 선택할 수도 있고 시위 등을 통한 투쟁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언론개혁운동이 투쟁방법을 선택한 것은 세무조사 실시로 이미 적군과 아군이 나뉘어진 상황이라 국회 입법 등을 통한 제도적 접근방법은 사실상 의미를 상실했기 때문이며 다른 대안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는 역사적 관점에서 운동의 방향을 모색할 거대담론들이 사라졌다. IMF 이후 이익의 주체가 종업원이 아니라 주주로 바뀌었다. 지금은 운동진영이 그냥 시장에 휩쓸려 뚜렷한 목표없이 무이념 상태로 가고 있는 상황이다.

운동진영 엘리트들의 이탈도 큰 문제다. 목표를 갖고 운동을 이끌어나갈 동아투위 출신 재야세력 등의 지도자들이 정권교체 이후 제도권에 편입되며 운동진영의 기반이 약해진 게 현실이다. 현 상황을 명확히 분석하고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통해 새로운 거대담론을 양산해 운동의 방향성을 새로이 설정해야 하는 전환기가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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