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슬람 근본주의가 본래부터 적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슬람근본주의는 미국의 재정 및 군사지원을 바탕으로 성장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자가 적대적 관계로 돌아선 것은 걸프전 이후였다. 걸프전을 계기로 미군이 사우디 아라비아에 주둔하면서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은 미국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냉전의 종식으로 소련이라는 공동의 적이 사라진 것도 양자간 관계 악화의 주요 요인 중 하나다.
사실 미국은 지난 50년대부터 소련과 아랍인들의 민족주의에 대항하는 한 방편으로 이슬람 근본주의를 조직적으로 지원해 왔다. 오사마 빈 라덴도 80년대부터 90년대초까지 약 12년간 미 CIA의 정보원 역할을 해 왔다. 따라서 오랜 기간동안 이슬람 근본주의를 키워 온 미국이 이들의 움직임을 전혀 몰랐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주장이다.
***미, 50년대부터 이슬람근본주의 지원**
미국은 지난 1950년대부터 이집트 등의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들에 재정적인 지원을 해 왔다. 당시 아랍권을 풍미했던 나세르의 범아랍 민족주의, 사우디 유전을 중심으로 한 아랍 노동자들의 사회주의적 경향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미국은 이번 9.11테러의 범인들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중동지역에서의 미 국익의 관철을 위해 과격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후원하고 이용한 것이다.
한 분석가는 이렇게 말한다.
“미 국무부가 중동에서의 공산주의자들의 위협을 과장하기 시작한 때는 1958년에서 60년 사이이다. ARAMCO(미국과 사우디간의 합작 석유회사), 베이루트와 카이로의 CIA 지부 등은 이집트 나세르와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지원했다. 부분적으로 이는 무슬림 조직(Fadayeen Islam)을 이용해 이란의 모사데크 정권을 전복시킨 킴 루스벨트의 전략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아프간전쟁 계기로 미 지원 대폭 확대**
미국과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의 관계는 아프간 내전의 발발과 더불어 질적.양적으로 확대된다. 1979년 12월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하기 이전에 이미 미국은 아프간 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재정적, 군사적으로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1978년 4월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카불정권의 친소적 경향을 경계한 것이다.
당시 미 국가안보 보좌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아프간에서의 전면전이 ‘소련의 베트남전’이 될 것을 기대했다. 카터 행정부는 극단적 우익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무기와 자금을 공급하기 시작했으며 이들은 후에 탈레반과 오사마 빈 라덴의 이념적 선봉이 된다.
카터의 뒤를 이은 레이건은 근본주의자들을 열렬하게 환영했다. 레이건이 ‘자유의 투사’라며 열광적으로 맞이했던 이 정치조직은 아프간을 중세적 이슬람 규율 - 노예제, 여성억압, 범법자에 대한 야만적 고문으로 대표되는 종교독재 -에 따라 다스리려고 했다.
***알 카에다의 진정한 설립자는 윌리엄 케이시**
그러나 알 카에다 조직의 진정한 설립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레이건 정부의 CIA 국장 윌리엄 케이시다. 그는 세계 각지의 이슬람 과격파들을 아프간으로 끌어모아 소련에 맞서 싸우게 하는 작전을 시작했다. 모로코, 인도네시아, 심지어 미국의 흑인 무술림에 이르기까지 세계 수십개국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CIA의 지원 아래 군사훈련을 받고 미국이 지원한 무기로 전투에 참여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탄생한 인물중의 하나가 바로 오사마 빈 라덴이다. 그가 처음 아프간에 온 것은 1980년대 초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무자헤딘의 동조자였던 그는 건축업에서 쌓은 경험과 자금으로 아프간 반군의 도로와 군사시설 건설 등을 도왔다. 후에 9.11 테러를 가능하게 한 이슬람 근본주의자와의 인연은 여기서 시작됐다. 지금 부시 행정부와 미 언론이 전세계적 음모를 획책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라며 악마처럼 묘사하고 있는 이들은 사실 미국 정부 자신들에 의해 창조된 프랑켄슈타인 괴물인 것이다.
미 제국주의의 전략가들은 이 과정을 누구보다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수년전 브레진스키는 미국이 중동과 전세계에서의 국익을 지키려면 알 카에다 정도의 대가는 치러야 한다고 냉소적으로 말한 바 있다.
그는 한 프랑스 주간지의 인터뷰에서 “탈레반의 등장과 소련 제국의 몰락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소수의 이슬람 과격파 탄생이 두려워 중부유럽의 자유와 냉전의 종식을 포기하란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누벨 옵서바튀르, 1998년 1월 15-21일)
***알 카에다와 CIA**
잘 알려져 있다시피 빈 라덴이 미국에 등을 돌린 것은 걸프전을 계기로 이 지역에 파견됐던 미군이 91-92년경부터 사우디아라비아에 영구주둔했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설명에 따르면 이로써 알 카에다를 조직한 이슬람 근본주의자와 미국 정보기관 간의 모든 관계는 끝장을 보았다.
하지만 10년 이상 아프간 무자헤딘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CIA가 어느날 갑자기 이들에 관한 모든 정보와 차단되고, 자신들의 심복이나 다름없었던 이들이 무엇을 하는지조차 전혀 알 수 없게 되는 게 가능할까? 오랜 기간동안 긴밀하게 맺어진 CIA와 아프간 무자헤딘의 관계를 고려해 볼 때 모든 정보가 어느날 갑자기 완벽하게 차단된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CIA의 일이란 본래 협력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이다. 게다가 CIA는 빈 라덴과 그의 지지자 및 추종자들과 12년동안 함께 일했다. 서로 적대관계로 변한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국에 의해 빈 라덴의 측근으로 지목된 자들은 대부분 아프간 전쟁 중 과격화된 사우디와 이집트 출신의 근본주의자들이다.
사우디와 이집트는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가장 주요한 동맹국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CIA는 이들의 가족, 이들의 약점, 이들의 범죄 등을 속속들이 알고 있으며, 이들을 협박.회유하거나 이들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그런 정보들을 활용하는 것을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
빈 라덴과 미국 사이에 갈등이 없었다거나 알 카에다가 단순히 위장 조직이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9.11 테러 계획을 사전에 전혀 몰랐다는 미 정부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음모론을 동원할 필요도 없다.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재정적으로 튼튼한 정보기관이, 과거 자신들에 고용됐던 자들이 만든 조직에 전혀 침투할 수 없었다는 공식적인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미국은 빈 라덴의 조직이 대단한 비밀결사체인 것처럼 신비화하고 있지만 사실, 빈 라덴&컴퍼니 같은 그의 기업은 스탈린식 공산주의가 지배했던 북베트남이나 북한보다 훨씬 접근하기 쉬운 목표이다. 게다가 CIA는 이미 1950년대부터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사이에 정보원을 심어 왔다. 더 나아가 미국의 우방국인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이스라엘은 말할 것도 없다-등의 정보기관들도 나름대로 정보원을 갖고 있다.
***이전 테러에도 미국측 공작원 개입**
9.11 테러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전에 미국을 대상으로 한 테러들의 양상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1993년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폭탄테러나 1998년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 대사관 테러의 과정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두 경우 모두 미국측 공작원(agents provocateurs: 유력 용의자로 하여금 실제 범죄를 저지르도록 유도하는 정보 요원을 말함. 편집자)가 핵심적 역할을 했음이 드러났다. 이는 미 정보기관이 알 카에다에 침투할 수 없었다는 주장에 강한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나아가 9.11 테러에도 이러한 이중스파이가 관련되어 있지 않은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에마드 살렘의 경우**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를 비롯, 이후 뉴욕시의 다른 목표물을 폭파하려는 음모를 꾸민 자들은 대부분 아프간의 게릴라 전사들이었다. 이들은 미 정보기관의 은밀한 지원을 받아 미국에 들어왔다. 전 이집트 정보 요원으로 미국측 첩자인 에마드 살렘도 이런 사람 중의 하나이다. 그는 뉴욕 지역에 대한 폭발물 테러 계획의 주요 배후 인물로 밝혀졌다.
살렘과 FBI는 그가 1991년부터 92년사이, 그리고 93년 4월 이후에 정보제공자 역할을 했지만 93년 3월 테러(이 테러로 6명이 죽고 세계무역센터 지하실 일부가 파괴됐다) 당시에는 정보제공자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왜 FBI가 자신들의 첩자를 통해 테러 계획을 사전에 알았으면서도 이를 막기 위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피하려는, 속보이는 거짓말이다.
***케냐 미 대사관 테러 때도 2주전 사전경고 받아**
1998년 케냐 미 대사관 폭탄테러 당시에도 미 정부는 사건 2주전에 이미 테러경고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테러용의자 4명에 대한 재판에서, 피고측 변호사는 미국 관리들이 이같은 경고를 현지 대사관에 전달하지 않음으로써 현지인을 포함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음을 입증했다.
9.11테러에 대한 여러 사전경고 중 최소한 하나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서 나왔다. 게다가 케냐와 탄자니아 폭탄 테러범 중 한 명은 전 그린 베레 하사관이자 특수전 교육요원이었으며 또다른 한 명, 알리 모하메드는 전 이집트 보안 장교로 CIA의 특수 프로그램에 의해 미국에 들어와 시민권을 획득했다. 그는 미 정보기관의 주요한 정보제공자였다. 모하메드는 1991년 걸프전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졌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95년까지 미 정부에 밀고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탄테러에 관여한 자들과 1998년 케냐와 탄자니아 미 대사관 폭탄테러에 관계한 자들이 미국 정부를 공격하려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밀고꾼과 이중간첩들이 득실거리고 배신과 음모가 판을 치는 첩보전의 세계에서 이들 테러리스트들이 미 제국주의의 목적을 위해 이용당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다시 말해 9.11을 비롯한 여러 테러 사건들은 미국의 대외 군사력 확대와 국내 민주주의 압살을 위한 빌미로 의도적으로 촉발된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무고한 시민에 대한 테러는 동기나 구실이 무엇이든간에 정치적인 반동이다. 더 나아가 테러리즘은 대중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소수집단의 군사적 행동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미국측 첩자들이 명분을 앞세워 이들 조직에 침투,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정치적인 관점에서 미국 정보기관이 알 카에다에 침투할 수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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