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비판하는 언론의 길이 어려운 이유는 언론이 스스로에게도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며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KBS는 <일요스페셜 ‘네덜란드의 기적…DUTCH MIRACLE: 1부 인간을 위한 자본주의’>에서 윤태식 게이트 등 한국의 각종 비리사건과 관련해 중요한 원칙 하나를 제시했다.
이 프로그램은 ‘낙오자가 없는 기적’을 가능하게 했던 네덜란드 기적의 비밀을 국민적 합의와 신뢰, 그리고 정치의 투명성과 사회지도층의 도덕성, 경제위기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사회복지제도에서 찾았다. “그 결과 근로자는 스스로 정리해고를 결정하고 기업과 정부는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는 ‘인간을 위한 자본주의’가 탄생됐다”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네덜란드가 사회지도층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가능케 한 사례로 ‘네덜란드 최대의 정치스캔들, 16년에 4백만원, 장관의 판공비사건’을 들고 있다. “시장으로서 16년동안 로테르담 번영의 견인차였던 페퍼 내무장관. 16년동안 영수증이 확실치 않은 4백만원의 판공비 때문에 그는 물러나야 했고 전 네덜란드가 들끓었다”는 사례로 윤태식 게이트 연루자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도덕불감증에 경종을 울려준다.
그런데 이렇게 귀감이 되는 사례를 소개한 KBS에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윤태식 게이트에 연루된 KBS 고위간부 2명과 PD 1명, 카메라기자 1명 등 4명에 대해 박권상 사장이 당초 강경한 징계의지와는 달리 검찰수사 후 인사조치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KBS의 한 간부는 “이번 사건 연루자들이 주식을 매입할 의사가 없었다면서 주민등록등본을 보내줬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오해받을 일을 한 것 자체가 문제 아니냐는 게 박 사장의 생각이었다”며 “그러나 무슨 영문인지 최근에는 검찰수사를 지켜본 후 이들에 대한 인사문제를 처리하겠다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한 중견기자는 “이상하다. 처음의 강경한 문책분위기에서 변화가 있었다. 여러 간부들이 박 사장에게 검찰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데 사내 인사조치를 먼저 하면 수사방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애초 공영방송으로서의 도덕적 모범을 강조하던 박 사장의 비리척결 의지가 KBS라는 조직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한 조직논리로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KBS 감사실은 자체감사를 통해 관련자들의 대가성 여부를 조사해 박권상 사장에게 보고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지난 2000년 1월 <경제전망대>란 프로그램에서 패스21에 대한 호의적 보도를 담당했던 K모 MC, H모 PD, K모 카메라기자, 그리고 당시 보도본부 K모 해설위원이 윤태식씨가 대주주인 패스21 주식을 보유한 사실 등이 이미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이들은 <경제전망대> 프로그램 방영 직후 50주에서 1백주 정도의 주식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2000년 1, 2월 전후는 패스21 주식의 장외시세가 급등하던 시점으로 주당 20만원 이상을 호가하기도 했다. 50주만 해도 1천만원 정도에 해당하는 금품으로 16년동안 4백만원의 판공비 영수증 처리가 확실치 않 물러난 네덜란드 로테르담 시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건이다.
박 사장은 최근에도 지난 8일 열렸던 확대간부회의에서 윤태식 게이트에 일부 KBS 직원이 연루된 사실에 대해 분노하고 강한 어조로 관련자들에 대한 문책을 강조하며 “KBS의 임직원은 언론인으로서 높은 도덕성으로 무장해 독립적 위치에서 윤리적이고 깨끗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KBS 자체 감사결과 윤태식 게이트에 연루된 KBS 관계자들의 혐의가 박 사장이 강조한 ‘언론인으로서의 높은 도덕성’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는지는 확실치 않다. KBS 관계자는 이에 대해 “검찰수사결과를 지켜본 후 인사문제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 사장외에는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박 사장의 처리방향과 의지는 검찰수사 눈치만을 살피고 있는 다른 언론사의 윤태식 게이트 연루자 인사조치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도덕성을 강조하는 박 사장이 언론인으로서, 국가기간방송인 공영방송 KBS의 수장으로서 어떤 결단을 내릴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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