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사태 이후 일시적 경제난 때문인 것으로 치부됐던 20대 구직난이 점차 구조화되고 있다. 20대 실업률이 7.5%로 전체 실업률 3.4%의 2배가 넘을 정도다. '인재는 키워 쓰는 것'이라는 기업의 경영철학이 최근 들어 '곧바로 써먹을 수 있는 인재만 뽑아 쓴다'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명문대 졸업장만으로는 좋은 직장을 구하기 힘든 시대가 됐다.
'청년失業 시대'. 그 사례와 원인, 대책 등을 3회에 걸쳐 알아본다. 편집자
명문 K대 정외과를 졸업한 K씨(28)는 수십군데에 취업원서를 냈으나 한군데도 통과하지 못한 전형적인 ‘취업낙제형’이다. 김씨는 명문대라는 점 외에는 내세울만한 경력이 부족하다. 그는 “더이상 학력만으로는 취업이 불가능한 현실에 대처하지 못하고 준비를 게을리한 탓”이라고 후회한다.
서울의 중하위권 대학이나 지방대학 졸업생들은 학교차별이라는 짐까지 떠안아야 한다. 어학연수, 봉사활동 등 다양한 경험을 쌓고 취업을 준비중인 지방 S대의 J씨(25)는 “실력이나 경력과 상관없이 학교 때문에 서류전형에서 계속 미끄러진다고 느낄 때가 많다”고 푸념했다.
대학시절의 전공이 장애가 되기도 한다. 물류유통에 관심이 많아 관련 자격증을 따며 취업을 준비하던 A씨(28)는 물류유통관련 기업에 수십차례 응시했지만 계속 고배를 마셨다. 기업이 원하는 상경계열 전공이 아닌 것이 가장 큰 문제. 그는 “면접 때 면접관들로부터 ‘정치학을 공부했으면 그쪽으로 가지 왜 여기에 왔느냐?’는 핀잔조의 질문을 받고 당황하기 일쑤였다”고 말한다.
J씨나 A씨의 경우와 같은 ‘취업낙제형’이 되지 않기 위해 각 대학마다 편입학이나 복수전공을 지원하는 학생들이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취업무풍지대’라고 여겨졌던 서울대조차도 복수전공 신청자가 지난 4년새 5배 가까이 늘어났다. 대부분의 대학에서 학과 선택에 있어서도 경영대나 법대 등 취업에 유리한 쪽으로만 몰리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들은 학교생활을 오래 하면서 취업가능성을 찾는 ‘모라토리엄형’이다.
서울 소재 C대학을 졸업한 L씨(92학번, 30)는 99년 초 벤처열풍에 편승해 벤처회사에 취직했지만, 이듬해 회사가 문을 닫자 다시 백수 신세로 전락했다. 그후 몇 군데 회사를 옮겨다니다 지금은 해외취업이라도 하려고 외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상태다. L씨의 경우는 취업난 속에서 가까스로 직업을 구했으나 결국 정착에 실패한 '부메랑형'이다.
각 대학에서 열리는 취업설명회나 기업의 채용박람회는 구직자들로 넘쳐난다. 지난해 9월 노동부와 경제5단체, 주한 미국상공회의소가 개최한 채용박람회에는 이틀동안 2만 5천명이 몰려들었다.
한편 ‘모라토리엄형’과 ‘부메랑형’ 구직자들은 또다른 고민이 있다. 학교생활이나, 직장생활을 오래 해서 어쩔 수 없이 많아져 버린 나이다.
지방소재 공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지난해 초 서울 K대 신방과에 편입한 Y씨(29)는 “뒤늦게 적성을 찾아 공부하고 있지만 연령제한에 쫓겨 취업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나와 같이 자기 전공에 대한 긴 탐색이나 어학연수 등으로 학교를 오래 다니는 학생이 계속 늘어가는데 아직도 연령을 제한하는 회사가 많아 기회의 폭이 줄어드는 것 같아 초조하다”고 말했다.
한양대 취업센터 관계자도 “취업희망자 중 나이 때문에 불안해하는 학생들이 많다”며 “어떤 경우는 아예 국가고시로 발을 돌리기도 한다”고 전했다.
11일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1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20대 실업률은 7.5%로 전체실업률 3.4%의 두 배가 넘었다. 20대 실업자수도 32만 2천명으로 전체 실업자수 76만 2천명의 42%에 달했다. 그나마 이 통계도 완전실업자만을 나타낸 수치다. 1주일에 1시간 이상 임시직이라도 일한 사람은 이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다.
지난해 5월 인터넷 채용정보업체 리크루트가 2백 26명의 구직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구직유형에 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취업은 하고 싶지만 계속 떨어지는 ‘취업낙제형’이 41.4%, 취업했다가 다시 무직상태가 되는 ‘부메랑형’이 27.3%, 대학원 등으로 재학기간을 늘려 취업기회를 타진하는 ‘모라토리엄형’이 15.9%였다.
기업은 이제 ‘뽑아놓고 가르치는 식’이 아닌 ‘완성품’을 원한다. 따라서 대졸 구직자들에게는 보다 일찍 자신의 적성과 진로를 파악하고 충분히 준비해 한단계씩 경력을 쌓아나가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학생들은 개인적인 노력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동안 받아온 교육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S대 3학년 김상현 씨(25)는 “많은 친구들이 입시위주의 교육만 받다가 대학에 와서도 일단 학점이나 영어에만 신경쓰다보니 자기가 뭘 원하고 잘하는지를 충분하게 생각하기 어렵다”며 “방향설정도 제대로 못해보고, 절대적으로 일자리도 부족한 상황에서 자기에게 맞는 일을 일찌감치 찾아 알맞게 취업을 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올해 대학 4학년인 신동환 씨(26)는 “학원수강이니 자격증이니 해서 취직을 위해 개인이 들이는 돈이 엄청나다”며 “반면 비싼 등록금을 내는 학교에서는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실무능력을 키우기 위해 얼마나 잘 배우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솔직히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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