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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신화의 이면 <5>

"언론도 몸통이다"

무려 25명의 언론인이 연루된 윤태식게이트에 대해 한국 언론은 전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자사 소속 언론인이 구속됐음에도 사과는커녕 검찰에 대해 '몸통을 찾아내라'며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 오늘(11일)은 김대중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을 통해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한 지 만 1년이 되는 날이다. 과연 지난 1년을 거치면서 한국언론은 국민들이 믿어도 좋을 만큼 개혁됐다는 것일까.

***반성하지 않는 언론**

이제까지 윤태식 게이트와 관련해 구속된 언론인은 정수용 SBS 전 PD와 이계진 매일경제 기자 등 2명이다. 구속 언론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그런데도 해당 언론사는 이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하기는커녕 이들이 자사 소속 언론인이라는 사실조차 밝히지 않았다.

지난 6일 자사 PD가 구속된 SBS의 경우 메인뉴스인 <8시뉴스>에서 ‘윤태식 로비의혹 정통부 국장 내일 소환’이란 제목으로 보도하면서 기사 말미에 “검찰은 오늘 윤씨에게 불리한 방송을 막아주겠다며 패스21의 주식과 현금 4천만원 등 모두 2억 5천만원 어치를 받은 전 방송 PD 정모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고 보도했다. 정 전 PD의 실명과 어느 방송사 직원인지를 밝히지 않은 것이다.

8일 자사 기자가 구속된 매일경제도 같은 보도태도를 보였다. 매경은 지난 9일자 <패스21 주식 소유 정통부 국장 영장>이란 1단기사에서 기사말미에 “언론사 전 기자 이모씨가 패스21 주식을 무상 또는 액면으로 제공받은 사실을 확인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며 신문사와 기자 실명을 빼고 간략하게 보도하는 데 그쳤다. 한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식의 보도태도를 보인 것이다.

10여년전 당시 보사부 출입기자들의 촌지수수사건 때 해당 기자들을 징계하고 독자들에게 사과했던 것과는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태도다. 촌지수수와, 보도 등을 대가로 한 억 단위의 주식 및 현금 수수는 죄질이 하늘땅 만큼의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는커녕 자사 소속 언론인의 범죄사실조차 은폐하려 한 것은 지난 10여년간 우리 언론의 도덕성이 더욱더 후퇴했음을 보여주는 극명한 증거다.

***책임 회피에 급급한 언론**

지난 연말 언론인 연루 사실이 밝혀진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일부 신문들은 이른바 '몸통론'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지난 4일자 동아일보 <패스21 ‘몸통’ 밝혀라>와 5일자 국민일보 <‘윤게이트’ 수사방향 맞나>, 7일자 조선일보 <‘윤태식 사건’ 또 본질 호도하나> 중앙일보 <언론이 윤게이트 본질인가> 한국일보 <변질돼 가는 윤태식 사건> 등이다. 결론은 비슷하지만 나름대로 언론의 책임을 강조한 사설도 있었다. 지난 4일자 세계일보 <‘벤처-언론 유착’ 사실인가>와 5일자 경향신문 <'윤게이트'와 언론인 주식투자> 등이다.

한마디로 언론은 '깃털'이니까 애꿎은 언론만 괴롭힐 것이 아니라 정·관계의 몸통을 찾아내라는 주장이다. 또 지난 해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해 '언론 길들이기'라며 반발한 것과 맥락을 같이하는 태도다.

언론의 책임을 강조하며 공정보도를 촉구하고‘벤언유착’의 실상을 철저히 수사하라는 사설도 있었다. 지난 4일자 중앙일보 <윤게이트에 얽힌 언론>, 5일자 대한매일 <윤게이트·언론인 유착 밝혀야>와 한국일보 <부끄러운 언론인 연루>, 10일자 동아일보 <대가성 보도와 언론윤리> 한겨레 <부끄러운 언론의 모습>이 그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언론은 이번 사건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하기보다는 '우리와는 관계없는 일' '그게 무슨 문제가 되나' 식의 반응을 보였다. 그나마 반성의 태도를 공개적으로 표명한 것은 언론노조, 기자협회, PD연합회 등 일선 언론인들 뿐이었다. 신문협회나 방송협회, 편집인협회 등 언론 경영진이나 고위간부들은 아무런 입장도 보이지 않고 있다.

***언론은 '깃털'이 아니다**

언론사 사장이 윤태식을 국정원 원장에 소개시켜 선처를 부탁하고 기자 1명이 '패스 21' 관련기사를 30건이나 토해내면서 주가 띄우기에 일조했음에도 언론은 이번 사건의 깃털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언론의 바람잡이 역할이 없었다면 지난 2000년 이후 우리 사회를 휩쓸었던 벤처 광풍이 과연 가능했을까.

지난 80년대 재건축주택조합 결성에서 최근의 벤처 광풍에 이르기까지 이런저런 이권에는 거의 반드시 언론이 약방의 감초처럼 끼어들었다. 적어도 언론은 부정과 비리라는 몸통의 일부였던 것이다.

***한겨레의 침묵**

그런데 지난해 3월 언론개혁시리즈 <심층해부 언론권력> 등 언론개혁 운동을 적극 이끌었던 한겨레신문이 윤태식 게이트의 언론인 연루문제와 관련해서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보도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이광이 편집국장은 “기소전 비보도를 원칙으로 한겨레가 조심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언론인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지금 지나치게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오히려 의아스럽다”며 “이럴 때 언론개혁을 촉구하던 한겨레가 재발방지를 위한 언론사내 자체시스템 마련 등을 위해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실제로 윤태식 게이트에 서울경제 김영렬 사장이 연루됐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한 지난해 12월 20일부터 지난 7일까지 한겨레는 모두 25건의 윤태식과 언론인 관련보도를 하는데 그쳐 종합일간지 10개지중 가장 적은 횟수의 관련기사를 게재했다.(이 횟수는 기사를 작성한 시점인 1월10일 오후 18시까지 '윤태식&언론인'이라는 검색어로 집계된 결과로, 이후 카인즈의 데이타 업데이트로 기사 건수에 변화가 있었으며 한겨레는 22일 확인결과 모두 33건의 관련기사를 게재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른 일간지들의 경우 문화일보는 같은 기간 54건, 국민일보 48건, 대한매일 44건, 중앙일보 41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 각 39건, 동아일보 38건, 세계일보 34건, 조선일보 30건 등으로 한겨레보다 많은 관련기사를 보도했다.(한국언론재단 카인즈 검색결과, www.kinds.or.kr) 물론 기사의 꼭지수나 양이 어떤 사건에 대한 한 신문사의 관점과 논조, 그리고 기사의 질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겨레가 윤태식 게이트의 언론인 연루문제와 관련해 소극적인 보도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이에 대해 한겨레의 한 기자는 “지난해 언론개혁을 부르짖으면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국면이었음에도 이를 무릅쓰고 언론개혁시리즈를 했는데 큰 성과가 없었다는 점에서 기자들의 힘이 빠진 상태”라며 “편집국 전체가 회사 경영사정 등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사기가 떨어져 있다는 게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 기자도 윤게이트에 연루된 것 아니냐는 오해도 있었으나 확인 결과 그런 사람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언론개혁 주역'들의 퇴장**

언론개혁이 사회적 화두로 자리잡았던 지난 1년간 우리 사회에는 어떠한 변화가 있었을까.

정부주도의 언론개혁 프로그램이라 일컬어지던 언론사 세무조사 등을 지휘하던 안정남 전 국세청장은 지난해 9월 7일 건설교통부 장관 자리에 앉은 지 한달도 지나지 않아 부동산 투기의혹으로 사퇴했다. 현 정부 언론정책의 핵심으로 알려진 박지원 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은 지난해 11월 민주당 쇄신파의 사퇴권유로 야인이 됐다.

청와대 공보수석을 지낸 박준영 국정홍보처장도 9일 윤태식씨를 수차례 만난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표를 냈다. 이른바 정부주도 언론개혁정책의 사령탑이 모두 비리사건 등과 연루돼 물러난 것이다. 도덕성의 위기, 신뢰의 위기가 언론의 문제만은 아님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같은 상황변화는 정부에만 그치지 않는다. 언론개혁을 촉구하던 언론·시민단체들도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언론개혁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전국언론노조 최문순 위원장이 개인적 이유로 사퇴했고 김주언 전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한국언론재단 연구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언론개혁운동 진영에도 상당한 위기감이 감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언론개혁은 이제 시작**

그렇다면 언론개혁은 이제 완결된 과제인가. 윤태식 게이트에 상당수 언론인이 연루돼 구속되거나 징계를 받고 있는 오늘의 사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해 '언론개혁'의 성과가 있었다면 그것은 우리 언론에 그토록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보다 많은 국민들에게 확산시켰다는 점이다. 이번 윤태식게이트로 정부의 도덕성에도 치명적 약점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그것이 언론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비판과 감시를 주 임무로 하는 언론에게는 다른 어떤 사회세력보다도 엄격한 도덕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윤태식 게이트는 언론개혁이 여전히 화급한 과제임을 보여준다. 정부측의 비리 여부와는 관계없이 윤게이트는 다시 한번 언론인들의 도덕성을 뿌리부터 의심받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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