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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권 민주화 도와라

전쟁으론 반미 지하드 막을 수 없어

지난 11일 아침부터 내내 이런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왜?,왜 그랬을까,도대체 무엇이 평범한 미국인 수천명을 살상하고 그들 자신의 목숨조차 버리게 만들 정도의 열병 같은 분노와 광기로 이들을 내몰았을까”. 약 20명 정도로 추정되는 이번 공격의 가해자들이 당일 아침 그들이 그날 죽게 될 것이라고 되뇌였다고 생각해보자. 사람들을 그 정도의 분노 상태로까지 몰아갈 수 있는 어떤 것을 생각해내는 것 자체가 우리 미국인들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관리, 늘상 등장하는 사계의 전문가들도 문제의 핵심을 회피하려고만 하지, 우리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대신 우리가 듣는 얘기는 확인이 안된 '테러리스트들'과 '적들'에 관한 것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을 이해해야만 한다. 적어도 우리 자신과 세계를 이런 종류의 대량살상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한다면 말이다.

9월 11일 우리가 목도한 사건과 유력한 용의자들에 관해 알려진 사실들만을 기초로 판단해 보면, 사고 여객기를 납치한 이들은-'그들의' 관점에서 본다면-미국에 대한 성전을 치르고 있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이번 사건은 정신적으로는 강하고 단호하지만 군사력에서는 약체인 그들과 정신적으로 약하고 부패하지만 군사력은 강한 자와의 전쟁이다. 역사를 통틀어서 정신적으로 강하고 군사력에서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무기는 소위 테러리즘이었다. 테러리즘은 강자에 대항하는 약자의 전쟁수단이다.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면 전쟁을 수행할 것이고 군대가 없다면 자살 폭격 또는 다른 종류의 테러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기억하라. 군사적 강자였던 대영제국에게 1775년의 미국의 독립혁명이 바로 이와 같았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미국에 대한 이런 전쟁의 목적는 무엇인가.

이들의 목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동과 구체적으로는 걸프지역에서의 미국의 역할과 존재를 되짚어봐야 한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걸프지역-좀더 정확히는 이 지역의 석유-은 미국의 안보에 필수적인 존재다. 이는 이란혁명 직후인 1980년 1월 23일 발표된 “카터 독트린”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카터는 “걸프 지역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그 어떠한 외부세력의 시도도 미합중국의 사활적 이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될 것이며 군사력을 포함한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격퇴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선언은 1991년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사막의 폭풍작전 전개, 그리고 지난 8년간 클린턴 전 대통령의 걸프지역 미군 주둔확대정책의 근간을 이뤘다.

***미국, 석유 확보 위해 사우디 왕조 감싸**

걸프지역에서의 미군의 역할을 살펴보면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에 특별한 관심이 쏠리게 될 수밖에 없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그저 많은 산유국들 중의 하나가 아니다. 이 나라는 전세계적으로 현재까지 알려진 석유매장량의 4분의 1을 보유하고 있다. 석유 매장량에서 그 어떤 나라도 사우디 아라비아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사우디 아라비아가 공급하는 싸고 풍부한 석유가 없었다면 서방세계는 지난 수십년동안의 성장과 번영을 이뤄낼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석유자원이 고갈되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도 서방세계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없이는 번영을 이루기가 더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해서 미국의 걸프지역 정책은 늘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전개됐으며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양국의 이러한 특별한 관계는 1945년, 당시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 대통령이 현 사우디 왕조를 수립한 압델 아지즈 이븐 사우드 왕을 만나면서 처음으로 형성됐다. 이 만남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븐 사우드 왕과 특별한 거래를 이끌어냈다. 사우디 석유에 대한 무제한적이고 영속적인 공급을 보장받는 대신 미국은 사우디의 왕족들을 외부는 물론 내부의 적들로부터 보호해준다는 것이었다.

이 거래는 이후 미국의 외교 및 군사정책의 근간이 됐다. 처음에 미국은 당시 이 지역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영국에 주로 의존해 미국의 이익을 보호했다. 그러나 영국 세력이 떠난 1972년 이후 미국은 사우디 정권 보호의 책임을 직접 지게 됐다. 이는 1990년 8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공격했을 때 극명하게 드러났다. 당시 부시행정부가 8월 3~4일 캠프 데이비드 회동을 통해 걸프전 개입을 결정하게 한 원인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이 아니었다. 사담 후세인이 사우디 아라비아 접수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불안이었다. 사막의 폭풍 작전의 서막이었던 사막의 방패 작전의 원래 계획은 쿠웨이트에 있는 이라크군과 사우디 아라비아의 주요 유전지대 사이에 방어군을 배치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었다. 그때 이후로 미국은 걸프지역에 군대를 유지하고 주둔범위를 확장시켜 오고 있으며 주둔군의 목표는 장래 일어날지도 모른 이란 또는 이라크의 사우디에 대한 공격을 방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개입중 외부의 위협에 대비한 군사행동이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미국은 사우디 정권을 내부의 적으로부터 보호하는 데도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온 것이다. 사우디의 내부 안보를 지키는 주요조직은 사우디아라비아 국가방위군(SANG;Saudi Arabian National Guard)이다. 이 조직은 전적으로 미국에 의해 무장되고, 훈련되고, 관리된다(주로 군수업체들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이뤄진다). 1981년 사우디에서 반정권 세력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사우디 국가방위군이 이를 간단히 진압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이 당시의 사건에 대해 기자회견을 통해 “본인은 사우디 아라비아가 제2의 이란이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1979년 이란처럼 사우디 정권이 전복되는 것을 미국은 좌시하지도, 허용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성전의 대상 된 '반이슬람적' 사우디 왕조**

이것이 바로 사우디에 대한 미국 정책의 근간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의 현재의 문제가 시작된다. 미국이 지원하는 사우디 정부,즉 사우디 왕족들은 독재적이고 전제적인 정권으로 반정부 의견의 공표를 용인하지 않는다. 헌법도, 권리장전도, 정당도, 언론과 집회의 자유도, 의회도 존재하지 않는다. 반정부 의견을 어떤 형태로든 나타내는 사람들은 체포, 구금되고 처형되거나 추방된다(오사마 빈 라덴의 경우처럼). 이러한 환경에서는 정권에 대한 어떤 형태의 반대운동이라도, 지향점에 상관없이, 지하로 숨어들고 비밀리에 진행되기 마련이다.

오사마 빈 라덴과 추종자들이 부상하게 된 것은 이러한 억압과 비밀스러운 환경하에서다. 그들이 믿는 바에 대해 알려진 것들을 토대로 추정해 보면, 그들은 사우디 정권이 근본적으로 부패해 있으며 사악하다고 믿고 있다. 그들은 사우디 정권이 경제적으로도 부패해 있어 아랍국가의 부를 궁전과 다른 종류의 호사스러운 소비에 낭비하고 있으며 최소한의 생활을 근본으로 삼고 있는 아랍세계를 부정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또 윤리적인 면에서는 반이슬람국가인 이스라엘의 주요 후원국인 미국과 연계를 맺고 이교도인 미국의 군인들을 이슬람의 성스러운 땅에 들였다는 점이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들은 사우디 정권이 이처럼 부패하고 사악하기 때문에 반이슬람적이라고 믿고 있다. 또 사우디정권이 반이슬람적이기 때문에 성전에 의해 반드시 쓸어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바로 이런 사우디 정권의 보호자이므로 미군은 걸프지역에서 사라져야 하며 진정한 이슬람주의자들이 부패한 사우디 정권을 무너뜨리고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처럼 진정한 이슬람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미군을 쓸어내기 위해 성전을 벌이는 세력은 군사적으로 매우 약하기 때문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테러리즘에 의존해야만 한다.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서 빈 라덴 네트워크(그리고 그 연계세력)은 미국에 대항해 전쟁을 벌여 미국인들을 회교지역에서 추방해야 한다. 초기에 이러한 전쟁은 사우디 아라비아에 있는 미 군사시설을 목표로 행해졌다. 1995년 11월 리야드 소재 사우디 국가방위군 본부가 폭습을 당해 미군 5명이 사망했으며, 1996년 6월 다란 소재 코바르 타워에 대한 공격으로 19명의 미군이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 해도 미군이 물러가지 않자 이들은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 대사관 등을 공격했다. 이 방법도 듣지 않자 이들은 다시 미국 본토로 전쟁의 범위를 넓혔다. 그러나 어떤 경우건 목표는 동일하다. 사우디에서 미국을 몰아내는 것이다. 필자는 이들이 세계무역센터와 국방부를 공격함으로써 사우디에 미군을 계속해서 주둔시키겠다는 미국의 의지가 약화되는 것을 바라고 잇는 것으로 믿는다. 이들이 성공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필자는 분명 이들이 9월 11일 공격의 목표를 여기에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빠르고 쉽게 대답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필자는 9월 11일 공격 배후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언제고 다시 공격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들의 공격이 멈출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않는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공격의 형태는 달라지겠지만 공격 자체는 계속될 것이다. 미래의 또다른 폭력사태에 대비해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을 취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부시 행정부가 제안한 중동에서의 전쟁수행이 그 방법이 될 수 있을까. 전쟁을 일으킨다면 빈 라덴 일당의 행동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필자는 전쟁을 수행한다고 해서 빈 라덴의 공격역량이 제거될 것이라는 데는 강한 의심을 품고 있다. 빈 라덴의 세력은 활동반경이 워낙 넓은 데다 다양한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종류의 전쟁은 엄청난 숫자의 회교도 사상자를 낼 것이며, 종국에는 미국과 연계된 보수적인 중동의 군주국 체제가 신임을 잃어 수천의 새로운 빈 라덴 추종자들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접근방법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 조직되고 끈질긴 국제공조를 통해 빈 라덴의 세포들을 일일이 찾아내 하나씩 박멸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우리는 누구도 무고한 인명을 이런 식으로 앗을 수 없다는 이슬람 전통에 의거해 빈 라덴을 이슬람의 적으로 규정하면서 '그'에 대항한 도덕적 십자군운동을 벌여야만 한다. 그러나 이 방법이 성공하려면 우리는 걸프지역에서의 미국의 정책을 재평가함과 아울러 아랍 무슬림에 대한 더 많은 동정을 보여야 한다. 또 사우디 정권에 대해 기본적인 인권법을 제정하고 민주화의 일정표를 제시하도록 촉구해야 할 것이다. 사우디 인민들이 그들의 고충을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표출할 수 있을 때에만 반미 지하드의 위협을 제거하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

번역/고현석

석유자원의 확보라는 관점에서 미 중동정책의 뿌리를 파헤친 이 글(Asking "Why)의 저자 마이클 클레어(Michael T. Clare)는 미 동북부의 햄프셔대 등 5개 대학 연합으로 설립한 '평화와 세계 안보에 관한 연구소' 책임자로 재직하고 있으며 'American Arms Supermarkets', 'Rogue States and Nuclear Outlaws' 등 세계안보에 관해 다수의 저서를 갖고 있다. 그는 최근 펴낸 '자원전쟁'(Resource Wars)이란 저서를 통해 앞으로의 국제분쟁은 주로 자원확보와 관련해 일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글은 항공기 테러 직후인 지난 13일 미국의 민간 싱크탱크인 foreignpolicy-infocus에 게재된 것으로 원문은 www.foreignpolicy-infocus/commentary/0109why_body.html에서 볼 수 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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