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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조항' 투성이 기초연금법, 안 하느니만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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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조항' 투성이 기초연금법, 안 하느니만 못해"

[복지국가SOCIETY]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과 '국면 전환의 달인'

정치인에게 좋은 이미지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한 자산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떻게 그런 이미지를 구축해 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여하튼 그런 이미지를 내세우며 대통령 선거를 치렀던 것은 분명하다. 동시에 복지국가와 경제 민주화라는 시대정신을 따라 화려한 정책 공약들을 내걸었다. 우리나라 보수 정당의 후보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개혁적인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당연히 그 진정성이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이라며 믿어달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이런 선거 전략에 힘입어 지금의 '제왕적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박근혜 정권은 공약 이행이 아닌 국면 전환의 달인

박근혜 당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나는 <세상을 바꾸는 약속, 책임 있는 변화>라는 제목의 새누리당 정책 공약집을 구해다가 책상머리에 놓아두었다. 우리 국민이 선거라는 정치 과정을 통해서 얻은 '어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국민이 원치 않고 잘못된 공약이라고 판단하면 물릴 수는 있으나, 약속한 쪽에서 먼저 물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공약의 원래적 의미라고 지금도 믿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고약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의 정책 공약이 그대로 실현되는 것은 거의 없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는 대표 공약마저 이렇게 저렇게 변질되고 있다. (☞관련 기사 : 대선공약, 딴소리 제압할 의무는 박근혜에게 있다)

▲ 2012년 4월 30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국민행복 실천 다짐대회'를 열고 약속한 공약을 실천하겠다고 선서하는 새누리당 의원들. ⓒ연합뉴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고 있는 것만 해도 화가 머리끝까지 날 지경인데, 대통령과 집권 여당은 이것이 약속 파기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내용을 꼼꼼히 따져보고 얼마나 달라졌는지, 이렇게 해도 좋은지 서로 이야기를 해 보아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그런 기회를 도무지 주지 않는다. 뭘 좀 따져보려고 하면,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건이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건을 들고 나와 흔들어대며 국민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끌어당긴다. 한마디로 판을 바꿔버리는 전략이다. 여기 어디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이 있는가? 내가 보기엔, '국면 전환의 달인'만 보일 뿐이다.

바람직하고 절실한 선택이었던 '기초연금 대선 공약'

정부는 '기초연금법' 제정안을 입법 예고하였다. 지금은 전 국민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 법안이 과연 타당한 법안인지를 꼼꼼히 따져 물어야할 시간이다. 모든 노인들에게 국민연금이 정한 평균임금(A값)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지금 시점에서는 약 2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당초의 대선 공약은 바람직한 공약이었나? 물론이다. 그렇다. 가난한 사람들만 골라서 지원하는 것을 더 진보적인 제도라고 볼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널리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금 많이 낸 사람들을 수혜 대상에서 굳이 배제하지 않더라도 일정하게 같은 액수를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분배 효과가 있으며, 급여 지급 행정의 단순화로 얻는 이득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기초연금 월 20만 원 지급이라는 대선 공약은 노후 소득 보장 체계를 기초연금과 소득비례연금(국민연금)의 결합으로 만들어 간다는 큰 틀의 비전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현행 기초노령연금 제도도 2028년에는 급여액이 A값의 10%인 현재 가치로 20만 원까지 인상되도록 설계되어 있지만, 그 시기를 앞당겨 당장 실시하고 수혜 대상을 70%가 아닌 전체 노인으로 확대한다는 것이 당초 대선 공약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전체 노인 인구의 절반가량이 빈곤 인구에 속하고, 노인 자살률이 다른 선진국의 3-5배나 되어 2등을 멀찍이 따돌린 1등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절실한 선택이기도 했다.

노후 소득 보장 체계의 근간을 허물 위험한 '기초연금법' 제정안

입법 예고된 기초연금제도 안은 당초 공약과는 전혀 다른 제도일 뿐 아니라, 현행 기초노령연금 제도보다도 못한 제도임이 분명하다. 물론 현세대 노인들만 생각하면, 애초 약속에는 못 미치지만 현재 급여액보다 줄어드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제도의 타당성을 당장 이익 보는 사람의 수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기초연금법' 제정안은 장기적으로 노후 소득 보장 체계의 근간을 허물 위험성이 큰 독소 조항들을 포함하고 있다. 두 가지 점에서 그러하다.

첫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안은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해서 기초연금이 담당하는 역할을 점차 줄여나가겠다는 방안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고 했던가? 급여액을 평균 임금에 연동시키는 것과 물가에 연동시키는 것의 차이는 크다. 급여액이 물가 인상분만 반영하여 정해진다면, 우리나라 국민 소득이 향상되고 선진국이 되더라도 기초연금의 가치는 20만 원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현행 기초노령연금 제도는 급여를 '임금 상승률'에 연동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입법 예고안은 '물가 상승률'에 연동하도록 규정한다. 그런데 기획재정부 소속 '장기 재정 전망협의회'는 2014-2040년 임금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보다 3% 더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즉, 현 정부안이 통과된다면, 기초연금 수급자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기존 기초노령연금 제도 때보다 조금씩 손해를 본다. <편집자>)

둘째, 이 안은 국민연금의 제도적 안정성을 위협한다. 안 그래도 미가입자가 아직 많아서 이들을 국민연금의 제도 범위 안으로 끌어들여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이 시급한 과제인데, 오히려 장기 가입자에게 불리한 요소를 도입하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필요한 정부 예산이 아주 조금 줄어든다는 점 이외에 다른 이유를 도무지 발견할 수가 없다. 국민연금 임의 가입자들의 탈퇴 행렬을 보면서 의무 가입자들의 속은 얼마나 답답할 것인가?

요컨대, 지금은 우리 국민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상황을 주시해야 할 때이다. 지난 대선 때 약속했던 복지 공약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 좋은 일자리는 제대로 만들고 있는지, 국민의 자유와 인권과 민주주의가 흔들림 없이 지켜지고 있는지, 묻고 따질 때이다. 현 정부가 대선 공약을 지킴으로써 민생 불안을 해결하려는 대신에, 이리저리 엉뚱한 깃발을 흔들어대면서 국민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모습을 보인다면, 우리는 이를 결코 좌시해서는 안 된다. 다시 한 번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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