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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은 우측통행, 한국 철도는 왜 좌측통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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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지하철은 우측통행, 한국 철도는 왜 좌측통행?

[달리는 철도에서 본 세계]<12> 말이 만든 교통 문화

초등학교나 중학교 시절의 도덕 교과서에는 비무장 지대에 녹슬어 버려진 증기기관차 사진이 있었다. 이 사진이 실린 장에서는 '북한의 적화통일 야욕을 분쇄하고 통일을 이루려면 온 국민이 반공정신으로 뭉쳐야 한다'고 강조하는 교육을 받았다. 또 하나 단골로 등장하는 사진이 있었으니 철도 중단점의 사진이었다. 선로 끝에 차단목이 설치되어있고 커다란 간판에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철마는 기차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똑같이 기차를 철마라고 부른다. 철도가 인류사에 등장하면서 대체한 것이 마차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차를 쇠로된 말이라고 불렀다.

앞의 연재에서 철도의 궤도 폭이 마차의 바퀴 폭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은 이미 밝힌 바 있다. 그런데 궤도 폭만이 아니라 철도의 여러 가지들이 마차 운행의 관습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 현재 한국 철도의 주력 여객차량은 KTX를 비롯한 신형 전기기관차들이다. 그러나 고속전철이 들어오기 전의 한국 철도는 전철화율이 낮아 전기 공급선이 필요 없는 디젤 기관차가 주력 기종이었다. 아직도 일반철도 노선에서는 디젤 기관차의 운행 비율이 상당히 높다. 간혹 일본이나 유럽에서 온 관광객들 중 철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이 디젤 기관차를 신기하게 바라본다. 전기철도가 일반화된 대부분의 유럽국가와 일본의 철도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기관차이기 때문이다.

▲ 경원선 남쪽 구간의 철도 중단점 모습. 사람들은 기차를 '쇠로 된 말'이라고 부를 만큼, 마차 문화가 기차에 준 영향은 크다. ⓒ구글

마차가 좌측통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한국에서 자동차를 운전할 때 도로의 오른쪽을 통행하고 운전석은 차의 왼쪽에 있다. 그런데 영국은 정반대다. 영국의 오른쪽 운전석 전통은 마차에서 이전됐다. 마차에서 마부의 자리는 오른쪽이어야 했다. 왜냐하면 왼손으로는 말을 다룰 수 있게 고삐를 잡아야했고 오른 손으로는 채찍을 잡아야 했다. 그런데 마부가 왼쪽 자리에 앉으면 오른쪽의 마부석 옆자리 사람에게 채찍으로 해를 입힐 수도 있고 채찍질도 부자연스럽기에 마차의 운전석은 오른쪽에 있어야 했다. 마차가 좌측통행을 한 이유도 채찍 때문이다. 우측통행을 할 경우 오른 쪽 마부석의 긴 채찍이 길가의 행인을 때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 철도 디젤 기관차의 운전석은 어느 쪽에 있을까? 영국의 자동차나 열차와 같이 오른쪽에 있다. 철도 종주국 영국의 흔적이 한국 철도의 디젤기관차 운전석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영국 철도를 전수받은 일본 철도의 영향을 받아 한국 철도는 도로와 달리 열차가 좌측 선로를 달린다. 한때 국철 구간이라고 부르고 지금은 수도권 광역 전철구간으로 불리는 철도공사 관할 구역의 전철은 좌측통행을 한다. 그런데 나중에 새로 개통된 서울 지하철은 우측통행 방식으로 건설되었다. 철도공사 관할 구역이 긴 지하철 1호선과 연장된 의정부에서 인천이나 천안에 이르는 노선의 전철은 좌측선로를 달린다. 서울 메트로 노선만 있는 지하철 2호선은 우측통행을 한다. 2호선 지하철 홍대역에서 시청방향으로 달리는 열차는 서울 지하철 통행 방식으로 우측 선로를 달리고, 같은 홍대역이지만 코레일이 관할하는 경의선 전철은 좌측 선로를 달린다. 지하철 홍대역에서 경의선을 타고 일산이나 문산 쪽으로 가려면 환승 통로에서 열차 진행 방향 좌측 승강장으로 올라가야 한다.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 자신이 탄 지하철의 운행 방향 선로가 이용하는 구간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당역에서 오이도 가면 우측통행하다 좌측통행한다

서울 지하철의 신기한 구간이 있다. 바로 4호선이다. 4호선의 강북 구간에서 남태령역까지는 서울 지하철 방식의 우측통행으로 열차가 달리다 사당역을 지나 남태령역과 선바위역 사이에서 운행 진로를 바꿔 오이도역까지는 코레일 관할 구간으로 좌측통행을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비밀은 남태령역과 선바위역 사이 구간에 있다. 서로 다른 통행방식의 호환을 위하여 앞에 말한 구간에서 선로가 X자로 교차하게 했다. 이 X자 교차 방식을 위해 특별한 설계와 시공이 이루어 졌다. 안산이나 과천 쪽에서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서울 시내로 오는 승객들은 진행 방향의 왼쪽으로 달리던 열차가 서울시계를 지나 오른쪽을 달리게 되는 일을 자신도 모르게 경험하는 셈이다. 일반인들의 상식으로는 굳이 지하구간에서 X자로 교차하는 것보다는 그냥 어는 한 쪽의 방식으로 통일하는 것이 나은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이런 현실만 봐도 네트워크의 특성을 갖고 있는 철도시스템은 호환성과 통일성이 중요한 것을 알 수 있다.

서울 지하철과 수도권 광역전철망은 통행방식만 다른 게 아니라 열차에 공급하는 전력 방식도 다르다. 직류 1500볼트를 사용하는 서울 지하철과 교류 2만2000볼트를 사용하는 코레일 광역전철은 서로의 경계 지점을 통과 할 때마다 전력 공급방식을 전환해주어야 한다. 옛날에는 기관사들이 깜빡 실수로 이 전력 공급방식을 전환하지 않아 지하철이 정지한 채 상당시간 움직이지 못해서 불편을 초래했던 일이 종종 있었다. 그나마 궤간이 같아 상호 직결 운행할 수 있게 된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기관차가 객차를 끌 수 있는 힘을 마력이라고 한다. 마력 단위는 자동차에도 쓰이는데 이것은 기차에 쓰이는 방식을 자동차에까지 확대한 것이다. 마력은 무엇을 의미하나? 영어로는 HORSE POWER, 단위로는 HP를 쓴다. 1마력은 말 한마리가 낼 수 있는 힘의 크기를 말한다. 철도가 막 등장하던 시절 마차를 대신했던 기차는 과연 몇 마리의 말이 끌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가 관심사였다. 이 결과 1800년대 영국산 말 한 마리가 낼 수 있는 힘을 기준으로 기관차의 견인력이 측정되었고 이후 육상 교통수단의 엔진 능력을 나타내는 단위로 자리 잡아 현재까지 오고 있다. 당신이 몰고 있는 승용차는 몇 마력짜리 엔진이 탑재되어 있는가? 100마력짜리 엔진이라면 운전할 때 말 100마리가 차를 끌고 있다고 상상을 해보시라.

기관차의 어원 '미쳐 날 뛰다'

영국에서 철도가 확장되면서 스테이션(station), 레일웨이(railway), 트레인(train), 로코모티브(locomotive)같은 말들이 주요 사용 어휘로 등장했다. 이중에는 오늘날의 컴퓨터나 아이폰처럼 신조어도 생겼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기관차를 뜻하는 locomotive이다. loco란 단어는 영어로 미쳤다는 뜻이다. motive는 움직임을 뜻하는 말로 초등학생들도 아는 단어다. 미친 움직임, 혹은 미쳐 날 뛴다는 의미의 단어가 기관차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영국 철도의 아버지인 조지 스티븐슨이 스탁턴-달링턴 노선을 운행하기 위해 만든 기관차 이름을 로코모션(Locomotion)호라고 지었다. 최초의 철도를 견인한 기관차 이름을 "미친달림이"라고 지었던 데는, 당시 기관차를 최초로 본 사람들이 기관차를 거대한 괴물이나 미친 거인으로 여기고 놀라기도 했던 이유도 있었다. 기관사는 영어로 트레인 드라이버(train driver)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로코모티브 엔지니어(locomotive engineer)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쳐 날뛰는 쇳덩어리 야생말, 기관차와 그것이 견인하는 세상이 인간의 손에 잡혔다. 인간이 기계력을 바탕으로 자연의 일부에서 빠져 나온 시대가 열렸다. 우리가 근대라고 부르는.

세계 각국의 역사가 깊은 기차역들은 모두 그 도시의 중심부에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기차역이 도시의 중심부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도시의 입장에서 보면 철도란 이질적인 요소였다. 근대 이전의 교통이었던 마차는 달리는 내내 주변의 경관과 호흡을 같이 했다. 공간의 한 요소였고 출발 지점과 도착 지점도 그 도시의 일상적인 생활이 이루어지는 일부분 중의 한 곳이었다. 마차와 도시와의 관계, 또는 마차와 도로와의 관계는 공간과의 완벽한 일체를 통해서 존재했다. 마차가 도착하는 역마차 정거장은 도시의 중앙에 있는 여러 집들 중 하나였고 건축양식이나 크기에서 다른 집들과 구별되지 않았다. 또 역마차 정거장이 아니라도 마차를 사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말들과 마차가 있는 집이라고 해서 반드시 역마차 정거장인 것은 아니었다. 마차는 모든 것의 일부였다. 도시의 일부였고 달리는 동안은 자연의 일부였다.

철도는 이전의 마차가 도시와 자연에 대해 갖고 있던 것과는 완전히 이질적인 것으로 등장했다. 철도역들은 건설 당시부터 도시의 성 밖에 건설됐다. 역과 선로를 놓기 위해서는 기존의 건물이나 도로를 해체해야하는데, 땅이나 건물 소유주의 높은 보상 요구와 도시 거주자들의 거부감을 해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철도역은 역마차 정거장과는 규모에서부터 달라서 마차역이 도시 건물의 자연스런 일부였다면 철도역은 이질적인 건축물이었다. 역에서 나는 소음은 말 울음 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굉음이었다. 철도 노선은 도시를 분리시키는 장벽이 되었다. 철도는 기존의 모든 것을 해체하거나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 내는 장치가 되어 버렸다.

이질적인 두 공간, 대합실과 승강장

근대의 철도역은 두 가지 이질적인 공간으로 결합되어 있다. 하나는 대합실로 부르는 역의 현관 역할을 하는 곳이다. 매표소나 역 직원들의 사무실들이 있고 시간표가 걸려 있으며 여행을 시작하거나 마친 사람들이 섞여 있는 공간이다. 과거의 역들은 이 대합실을 포함한 공간을 석조 건물로 지었다. 유럽의 유서 깊은 중앙역들은 아직도 고색창연한 대리석 기둥과 붉은 벽돌로 쌓아올린 외관을 자랑하고 있다. 일본의 동경역과 그것을 본 따 지은 옛 서울역 건물도 화려한 석조 건물이다. 이 석조 건물을 나가면 열차를 탈 수 있는 승강장이 있는 공간이 나온다.

▲ 웅장한 중세식 건축물인 파리북역사의 모습. ⓒ박흥수
▲ 중세의 성을 연상시키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중앙역. ⓒ박흥수

마치 다른 두 세계의 연결고리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개찰구다. 역무원이 게이트에 서있고 여행객은 역무원에게 표를 내어 보이고 개찰구를 통과했다는 확인 펀칭을 받는다. 역무원은 여행객이 내민 표를 받아들어 정식으로 열차에 탈 수 있는 승객인지 확인하고는 들고 있는 펀칭 가위로 표에 작은 구멍을 뚫어준다. 공항에서 여권과 항공권을 들고 공항 로비에서 탑승장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2단계 구조의 역사는 200년도 안된 셈이다. 이 같이 자연의 힘을 뛰어넘는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시공간의 전환 공간인 역은 건축물의 형태도 2중 구조로 돼 있다. 열차 탑승 승인을 거친 승객이 마주하는 공간은 미지의 세계로 뻗어있는 선로가 놓여있는 승강장이다. 이 승강장을 덮은 구조물은 역의 또 다른 공간인데 거대 철골구조와 유리로 덮인 새로운 건축 양식의 건물이다. 철도망이 확장되자 초기 나무 지붕의 승강장들은 철골과 유리로 대체돼 그 규모가 점점 커졌고, 역사 건축에 있어서도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기원전 5세기에 시작되었다는 철기 시대가 철을 녹여 만든 기계 장치를 장착한 기차와 거대 철골 역사로 비로소 완성된다. 산업 혁명은 철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대체하는 과정이었다. 열차, 역, 선로, 배, 고층 빌딩, 신형무기 모두 철이 없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철소가 중요한 산업의 핵으로 떠올랐고 철강자본은 돈을 긁어모았다. 근현대는 신철기시대의 다른 말이다.

상업적 유리 건축물의 출현을 도왔다는 1851년 런던의 유리궁전의 성공은 바로 기차역으로 이전되었고 유리와 철골의 조화를 이룬 새로운 시대의 건축물이 철도노선의 출발지와 도착지에 들어섰다. 여행자들은 역에 도착해서 자신이 사는 도시와 닮은꼴 형태인 석조 건물을 통과해 전혀 낮선 철골 구조물의 건물로 이동하는 동안 근대 기계 문명의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반(半)궁전, 반(半) 공장의 형태를 띤 철도역에 대해 단 하나의 건물에 형식적으로 또 근본적으로 다른 두 부분이 통합되어 있는 건축양식은 철도역 이전엔 존재하지 않았다고 건축가들은 말한다. 철도역은 야누스의 얼굴을 한 근대의 출입구 같은 것이었다.

▲ 철골 구조물로 덮인 암스테르담 중앙역 승강장. ⓒ박흥수
▲ 붐비는 파리북역 승강장, 거대 철골 구조물은 유럽 대형역들의 공통점이다. ⓒ박흥수

철도, 새로운 세상을 열다

철도를 배척했던 도시 사람들의 생각들과 달리 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하자 철도역은 새로운 도시의 설계자가 되었다. 사람들이 왕래가 잦아지자 여행객들에게 물건을 팔고 싶은 상인들이 모여들었고 또 잠자리나 음식을 제공하고자 하는 사람들, 마차를 끄는 마부들이 몰려왔다. 철도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상권이 등장하고 도시가 확장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지도에는 도시나 거리이름에 NEW란 말이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하는데 철도가 만들어놓은 새로운 현상이었다. 철도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도시가 번성하고 옛 도시가 몰락하는 일들이 벌어졌고 철도노선의 진입을 반대하던 도시들은 철도역을 유치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의회와 철도회사를 설득했다.

목포역처럼 철도 노선의 끝에 있는 역들은 승강장 끝이 막혀있다. 목포역에서 선로를 넘어 가려면 승강장 위를 가로지르는 역사 구조물을 건너야 한다. 일종의 육교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아주 오래 전에는 많은 역에서 선로 위에 통로를 만들어 역직원이 열차가 다니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사람들을 이동시켰다. 초기 철도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선로와 승강장이 많지 않고 열차 운행횟수도 얼마 안 되는 상황에서는 선로를 횡단하는 게 별로 위험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철도 노선이 확장되고 한 역에 도착하거나 출발하는 열차가 많아지자 덩달아 선로가 늘어나고 승강장도 커져서 역은 점점 더 거대한 규모로 확장되었다. 유럽의 중앙역들은 거대한 철골과 유리 지붕 이외에도 승강장의 한 끝이 막힌 구조로 만들어 졌다. 이렇게 하면 육교나 지하도가 없이도 승강장의 끝에만 오면 다른 승강장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 역사에 들어선 이용객들은 승강장 번호와 행선지만 확인하면 자신이 탈 열차가 있는 승강장으로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 유럽의 중앙역들은 대개 시종착역의 역할을 하고 있었으므로 역을 통과해서 선로를 놓지 않아서 한쪽 끝이 막힌 승강장 구조를 갖는 역을 만들었다. 중세의 광장과 역사를 통과하면 근대의 거대 철골 구조물이 있고 그 아래 문어발처럼 여러 가닥으로 철길이 놓여있다. 여행자는 문어의 머리에 서 있다가 하나의 다리를 고르면 된다.

이제 근대 유럽의 철도 여행자가 되어보자. 마차에 내려 넓게 펼쳐진 역 광장을 가로질러 도시와 얼굴을 맞대고 도시의 일부가 되어버린 석조 건물로 들어간다. 표를 사고 높은 천정의 중앙홀에 달린 시계를 보면서 나무 의자에 앉아 열차 출발 시간을 기다린다. 시간이 조금 있으면 역 한쪽에 있는 카페테리아에 가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거나 서점에 들러 간단히 읽을 책을 고른다. 억양이 뭉개지는 모노톤의 스피커에서 개표 시작을 알리면 얼른 짐을 들고 개찰구로 간다.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역무원에게 표를 내보이고 개찰구를 통과하고 나면 눈앞에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는 선로와 승강장이 보인다. 어떤 승강장에선 증기기관이 내뿜는 수증기가 승강장을 덮어 사람들이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거대한 철골 구조물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유리창이 쏟아지는 비를 막아주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행선지 표시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열차가 서있는 승강장에 가서 열차에 오른다. 3등실 나무 의자에는 제법 여행자들이 많이 있다. 조금 더 한산하거나 조금 더 순해 보이는 인상을 가진 사람이 있는 자리를 찾아 한 칸, 한 칸 앞으로 가다가 철도회사 완장을 차고 있는 차장과 마주친다. 여기서 부터는 2등 객실이니 돌아가라고 한다. 다시 몸을 돌려 그동안 오면서 봐 놨던 자리 중에 가장 맘에 들었던 자리가 어디였는지 생각하며 걷는다. 겨우 마음에 드는 자리를 발견해 창가에 앉았는데 승강장에서 신문팔이 소년이 신문을 흔들어 대는 걸 보고는 창문을 열고 소년을 불러 신문 한 부를 산다.

철도와 인쇄술의 시너지

증기기관이 도입돼서 새로운 세상을 연 것은 철도만이 아니었다. <타임스>가 인쇄기계를 증기를 이용한 대량 인쇄 시스템으로 바꾼 뒤에 신문의 시대를 열었다. 신문의 시대를 여는데 철도의 역할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하룻밤 사이에 4000부 이상을 인쇄할 수 있는 인쇄기를 여러 대 갖고 있는 <타임스>의 인쇄소는 철도 운행시간에 맞춰 지방으로 배송될 신문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신문은 철도를 타고 뉴스를 전달했고 사람들은 어젯밤에 300킬로미터나 떨어진 글래스고나 맨체스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바로 알게 되었다.

인쇄기술과 철도의 만남이 가져온 변화는 신문구독뿐만 아니라 독서에도 영향을 미쳤다. 1866년 프랑스 의학 연례회의는 열차안의 독서가 일반적 현상임을 보고했다. 마차 여행의 환경에서 책을 읽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열차에서는 책 읽는 것이 가능했다. 독서는 창밖에 펼쳐지는 자연의 파노라마가 지루해질 즈음이나 앞에 앉은 사람과의 어색한 대화를 더 이상 이어 가기 힘들 때 적절한 이유를 대지 않아도 자신만의 공간으로 도피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게다가 막 깨어난 근대는 진화론에서 공산주의까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역사와 철학, 경제, 과학, 추리소설, 연애소설, SF들이 쏟아져 나왔다.

버밍엄 노선에서 최초로 서적과 신문 판매 허가를 얻은 스미스는 런던의 유스턴 역에 첫 서점을 열었다. 1849년의 패딩턴 역에는 1000권이 넘는 책을 갖춘 서점이 운영됐다. 현재 서울, 부산, 용산, 동대구에서는 노트북 대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4000-5000원을 주고 열차 안에서 노트북을 사용한 뒤 반납하는 서비스다. 이런 서비스는 19세기 패딩턴역에서 시작된 유래가 깊은 방식이다. 대합실에 있는 서점에 들른 여행자들은 1페니를 내고 열차가 출발하기 전까지 책을 골라 읽는다. 돈을 더 내면 책을 빌려 열차 안에서 읽을 수 있다. 다 읽은 책은 도착하는 역의 서점에 반납하면 된다.

▲ 보스턴 남역사 안의 서점, 철도는 독서의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 냈다. ⓒ구글

이렇게 열차를 이용하면서 책을 편리하게 읽을 수 있도록 책의 디자인도 바뀌었다. 문고판의 등장이다. 근대 이전의 독서는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화려한 가발을 쓰고 두꺼운 표지에 둘러싸인 책들을 커다란 책 받침대에 놓고 읽었다. 철도 여행자들은 양장 표지의 대형 판형 책들을 읽을 수가 없었다. 마차보다 흔들림이 훨씬 적다고는 하지만 계속되는 진동 속에 커다란 책을 두 손으로 받쳐 읽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얇은 표지와 작아진 판형은 철도 여행자에게 전혀 부담을 주지 않았고 인쇄비도 많이 들지 않아 제작자들도 만족스러웠다. 철도를 타고 독서가 계급의 칸막이를 뛰어넘어 근대의 새로운 주인이 된 부르주아지들의 몫으로 확장되었다.

일반적으로 장거리 이동을 앞둔 여행자들은 가벼운 소재의 읽을거리들을 챙기게 된다. 요즈음은 스마트폰이 독서를 대체 했지만 80-90년대 군부대가 몰려있는 지역의 시외버스 터미널에서는 단돈 1000원에서 2000원 정도면 세권의 주간지를 세트로 묶어서 팔았다. <주간만화>, <사건과 진실>류의 잡지들이었는데 휴가 군인 뿐 아니라 한창 호기심이 충만한 중고생이나 중년 남성까지 여러 권의 주간지들 중에 가장 야한 표지가 있는 것을 세 권식 골랐다. <샘터>나 <리더스 다이제스트> 같은 것들은 주로 여성 여행자들의 몫이었다.

19세기 혁명과 전쟁의 출입문이 열리다

그러나 19세기의 철도역에서 판매되거나 대여된 책들은 소설류의 문학 작품뿐만 아니라 고전문학, 지리학, 고고학, 농경문화와 산업, 과학 등 다양하고 전문적인 책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주로 책을 빌리는 여행자들이 2등 객실 이상을 이용하는 부르주아지들이나 지식인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층민들이 주로 이용한 3,4등 객실은 끊이지 않은 대화와 웃음으로 책 읽을 틈이 없었다. 근대는 교양의 시대였다. 인류가 이루어낸 지적인 성과들을 집대성한 백과사전들이 앞 다투어 만들어지고 여러 분야의 전문 서적들이 선을 보였다. 독서는 이제까지 살아온 인류의 모습과 현실에서 진행되는 기계 문명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 대한 교양으로 가득 찬 보물창고로서 인텔리겐차들이 미래를 주시하는 시공간이었다. 새롭게 등장한 계급이 획득한 교양의 뒤를 이어 거대하게 탄생되는 계급,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전이되면서 19세기는 혁명과 전쟁의 출입문을 열게 된다. 힘차게 달리는 열차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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