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철탑 위 그 친구들, 영정으로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철탑 위 그 친구들, 영정으로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희망 릴레이 기고 ②] 시간이 멈춘 곳, 20m 높이의 독방에 있는 사람들

영화 <올드보이>에서 주인공 오대수는 15년 동안 이유도 모른 채 독방에 갇힌다.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 기약도 없는 징역살이를 해야 한다. 마침내 그는 스스로 묻는다.

'나는 왜 갇혀 있어야 하나.'

6월, 우악스럽던 비바람이 그치고 겨우 텐트에서 얼굴을 내민 서른둘의 청년이 일곱 살 많은 형에게 그렇게 이야기한다.

"독방 있다 나온 것 같아요." (2013.5.29 최병승 트위터)

동생은 225일간 한 치도 떨어지지 않고 곁에 붙어 있던 형에게 오랜만에 본 사람처럼 그렇게 이야기한다. 그들은 지금 독방에 갇혀 있다. 그것도 20m 고공 위 독방에. 사방이 트여 있지만 천막의 사면으로 막혀 있는, 몇 킬로미터 밖에서도 보이지만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고공의 독방. 현대자동차라는 거대한 적에 맞서는 대가로 그들은 갇혀 있다. 비밀리에 갇혀 있는 것도 아니건만 이 사회는 그들을 구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마침내 묻는다.

'왜 우리는 갇혀 있어야 하나.'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질문을 되뇌는 사람들. 인간의 한계를 연일 느끼고 있는 그들은 이미 존재론적 물음에 도달해 있다.

철탑 위의 하루

이 더위 속, 달궈진 철탑 위에서 한여름의 열기를 온몸으로 견디고 있는 두 사람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천의봉(32) 씨, 최병승(39) 씨다. 지난해 10월 20m 철탑에 올랐던 두 노동자는 아직도 거기 있다. 그들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있다. 사계절이 한 번씩 그곳을 거쳐 갔고, 이제 폭염이 그들을 덮치고 있다.

발 디딘 곳보다 낮은 곳에서 해가 떠 그들의 머리 꼭대기까지 올랐다가 다시 발밑으로 해가 사라진다. 해가 움직이는 걸 보면서 시간을 가늠하지만, 텐트 안으로 들어가면 일순간 모든 시간은 멈추어버린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버틸 만한 시간이고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버티기 힘든 시간인지 경계도 모호해진다. 간간이 들려오는 열차의 소음이 아니라면 그곳을 깨우는 것도 별로 없다. 봄은 짧았고, 금세 덥고 습한 공기가 끈적하게 눌어붙었다. 달궈진 철탑 위에 앉아 있으면 시간이 지독히도 천천히 흘렀다.

"차라리 추우면은요, 어떻게든 시간을 보낼 수 있겠는데. 천막 안에 들어가 있으면 바람도 안 통하거든요. 그 안에서 뭔가 하려고 하면은 진짜 죽음이에요. 숨이 막힌다고 표현해야 하나. 와…."

천의봉 씨의 말은 자주 끊겼다. 한마디 꺼내놓고 잠시 뜸을 들였다가 다시 한마디를 꺼내놓는 식이었다. 그의 말투, 숨소리, 억양 등에서 그곳의 힘겨움이 느껴졌다. 오전 11시가 지나면서부터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단다. 그때부턴 그저 시간과 싸움이었다. 독방에 갇힌 것 같다던 그의 말이 이해되었다.

▲ 지난 1월 24일, 철탑 농성 100일을 맞이한 천의봉(왼쪽), 최병승(오른쪽) 씨. 두 노동자의 농성이 280일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연합뉴스

고립, 그리고 그리움

그는 얼마 전 기고한 글에서 "조금만 더 참으라"던 어머니의 말이 야속하게 느껴졌다고 썼다. "차라리 내려오라고 따끔하게 말씀하시면 그냥 미련 없이 내려갈 수도 있는데 하는 서운한 생각이 든다"고도 썼다. 철탑에 오르기 전, 그는 어머니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했단다. 한 달만 올라가 있으면 될 것 같다고. 말릴 줄 알았던 어머니는 의외로 그를 응원해주셨다. (☞ 관련 기사 : '조금만 참으라'는 어머니가 야속한 철탑의 폭염)

"선뜻 하라고 해주시더라고요. '니가 하는 일이면 옳은 거다' 하고."

어머니는 아들이 철탑에 오른 후부터 날씨에 매우 민감해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들의 안부가 생각나 날씨부터 확인했다. 날씨가 궂으면 철탑 위는 어떤지 꼭 그렇게 확인 전화를 했다. 아들은 "괜찮다"라는 말밖에 드릴 말이 없지만 그래도 어머니는 아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안심이 되었다.

"이제까지 참았는데 어떻게 하겠냐, 조금만 더 참으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얼마 전에는 전화로 '보고 싶다' 그런 이야기도 하시고요."

그는 그 이야기를 해놓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300일 가까이 얼굴도 보지 못하고 생이별한 모자의 그리움이야 오죽하랴. 내려오면 제일 먼저 뭘 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다시 어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진짜 집에 가고 싶다, 그런 생각…. 집에 가서 엄마가 해주는 집 밥 먹고 싶어요."

그는 또 한동안 말이 없었다.

우리가 싸우고 있는 이유

두 청년이 300일 가까이 이 극한의 상황을 견디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현대자동차의 '불법 파견 인정'과 '모든 사내 하청 정규직화'를 외치며 20m 철탑에 올랐다. 그들은 없는 것을 있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2010년 7월, 최병승 씨는 사내 하청 노동자를 대표하여 '현대차의 사내 하청이 불법 파견이고, 2년 이상 근무한 자는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냈다. 이 판결로부터 촉발된 2010년 CTS공장 점거 파업은 25일 만에 끝이 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개처럼 두들겨 맞으며 끌려나왔다. 그리고 파업에 참가한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징계 또는 해고를 당했다. 현대차는 '법을 지키라'는 너무도 당연한 노동자들의 요구를 무참하게 짓밟았다.

그리고 선심 쓰듯 내놓은 것이 3000명 신규 채용안이었다. 전체 1만6000명 비정규직 노동자들 가운데 3000명을 엄선해서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사실상 현대차가 불법 파견 사실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불법을 저지른 것도 피해가면서 1만3000명을 정규직화해야 하는 비용도 절감하고, 엄선 과정에서 노동조합원들을 배제할 수도 있으니 회사로선 최고의 꼼수를 내놓은 셈이다. 자본은 영리했다.

더 늦기 전에 응당 정규직이 되어야 하는 나머지 1만300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 했다. 서른여덟의 형이 이제 막 서른을 넘긴 동생에게 한 달만 해보자 했다. 사람의 피를 마르게 한다는 15만 볼트의 고압 전류도 그들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 혼자만을 위해 시작한 싸움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서른다섯에 열사가 된 친구

고공의 어느 때, 두 청년은 비보 하나를 접했다. 푹푹 찌는 한낮이었다. 잘못 봤나 하고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얼굴 하나가 스치고 지나갔다. 매번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하던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떠올랐다. 믿을 수가 없었다.

"열사 돌아가시기 이틀 전이었어요. 무심결에 생각난 건데,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안부 전화 한 번 할까. 그런 마음을 먹었었거든요. 그러다 못했는데, 마지막 목소리도 못 들어보고 이렇게 보냈네요. 그때 전화할 걸. 후회가 막심합니다."

천의봉 씨는 열사를 너무 착하고 여렸던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전화하려다 못했던 사람은 바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비정규직지회 박정식 사무장(35)이었다. 최병승 씨는 "죄인이 무슨 말을 하겠느냐"며 인터뷰를 고사했다. 그가 왜 미안해해야 하는지, 왜 죄스러워해야 하는지…. 그를 죄인으로 만드는 세상에 대한 원망이 불쑥 올라왔다. 그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철탑 아래 있던 내내 최병승 씨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지난 7월 16일, 현대차 울산공장 비정규직지회 사무실 앞에서 서른다섯의 열사 추모제가 열렸다. 퇴근하고 온 노동자와 4시간 파업하고 온 노동자들이 열사의 영정 앞에 모여 앉았다. 사진 속 청년은 웃고 있었다. 너무 환하고, 싱그럽고, 아까운 청춘이었다.

"한진중공업의 최강서 열사는 나이가 서른여섯입니다. 이운남 열사는 올해 40대 초반입니다. 기아자동차 윤주형 열사는 올해 서른일곱입니다. 그리고 아산 공장 박정식 사무장은 1979년생으로 올해 서른다섯입니다. 2013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추모제에서 울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이도한 총무부장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젊은 청년들이 열사가 되고 있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안부를 묻던 친구의 얼굴을 열사의 영정으로 마주해야 하는 이들. 그들의 심정을 감히 헤아릴 수도 없었다.

살아서 싸우자

열사가 돌아가신 날, 늙은 형은 고공의 청년들이 걱정되어 어느 밤 긴 문자를 꾹꾹 눌러 보낸다. 꼭 살아서 이기자고. 서른다섯에 열사가 된 청년의 영정을 보면서, "너를 사진으로 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한다. "더럽더라도 질긴 목숨 끝까지 이어가자" 한다. 몸 건강하라고, 몸 건강하라고. 같은 당부를 열댓 번은 한다. (천의봉 페이스북에서)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제 300일에 다가서고 있다. 기약도 없는 싸움은 그들을 자꾸만 지치게 만든다. 거대한 현대자동차 자본은, 그리고 정몽구 회장은 박근혜 정권을 배후에 둔 채 꼼짝도 않고 있으니 더욱 기가 막힐 노릇이다. 고공의 청년들을 홀로 두어선 안 된다. 7월 20일, 그들에게로 출발하는 희망버스는 우리 스스로 희망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꿈쩍 않는 이 사회를 조금 움직여내는 것이다. 국민을 기만하는 이 정권과 재벌,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에게 우리 아직 살아 있다고 외치는 것이다. 그리고 서른둘, 서른아홉의 청년들에게,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 절대 죽지 말고, 함께 살아서 싸우자고 함께 손을 맞잡는 것이다.

희망버스는 7월 20일 저항이 일상이 된 그곳, 대한문에서 출발한다.

* 이 글은 <참세상>에도 게재됐습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