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린 '아들'은 누구에게도 본인이 처한 상황을 털어놓지 못하였고, 또한 그의 절박한 상황을 제대로 알아준 학교나 사회도 곁에 없었다. 우리는 언제까지 청소년 자살과 학내 폭력의 규모가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하는가? 나 또한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광명복지소사이어티와 스웨덴 학교 복지 전문가 레나 황(Lena Hwang)
지난 5월, 나는 '스웨덴의 학교 복지'에 관한 뜻깊은 강의를 공동으로 진행했다. 2012년 가을에 시작하여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복지국가 운동 단체인 '광명복지소사이어티'의 제안으로 황선준 현 서울시 교육연구정보원장의 부인인 레나 황(Lena Hwang)을 모시고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인 스웨덴의 학교에서는 어떤 시스템으로 학생들의 학교 생활을 지도하며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지에 대한 특강을 들었다.
레나 황은 스웨덴 스톡홀름 인근의 중·고교에서 20여 년을 전문 상담 교사로 재직한 학교 복지 전문가이다. 이날의 강연은 스웨덴의 학생 관리에 대한 전문 시스템과 정부 및 지역 단체의 적극적인 지원 등을 구체적 사례들과 함께 배울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강연에서 굵직하게 와 닿은 몇 가지만 요약하여 설명해보고자 한다.
▲ 지난해 11월 22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좋은 학교 만들기 학부모 연대 발대식'에 참가한 학부모들이 학교 폭력, '왕따', 자살 등으로 희생된 아이들에게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스웨덴 학교에서 '학생 건강 관리팀'의 협력적 전문 서비스
스웨덴에서는 모든 학교에서 '학생 건강 관리팀'을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 팀은 전문 교육 과정을 거친 다양한 인력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학생들의 심신의 건강을 점검하고 문제가 발견되었을 때는 전문적인 검사를 통해 처방 및 치료를 수행하며 해당 학생이 정상적으로 학교 생활에 복귀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책임지고 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이 '학생 건강 관리팀'의 인력 구성이었다. 여기에는 청소년 전문의사와 보건교사, 심리학자, 심리상담사, 특수교사, 진로 상담교사 등에 학생 대표단까지 5인 1조 많게는 7인 1조가 한 팀을 이루어 모든 초·중·고교에 배치되어 있다. 이들의 역할과 임무 또한 세분되어 있는데, 각각 하는 일과 분야를 살펴보자.
청소년 전문의는 2-3주마다 지역 내 각 학교를 순회하며 예약된 학생들을 직접 만나서 진료한다. 여기서 문제가 발견되거나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학생이 있으면 학생 본인과 부모의 개별 면담을 통하여 향후 치료 과정에 대해 상의하고 본격적인 치료 방향을 제시한다.
보건 교사는 학생들이 가장 부담 없이 찾아가 신체적 불편이나 정신적 고민을 먼저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이다. 보건 교사는 학생과 1차 접촉을 통해 얻은 내용을 토대로 학내의 전문상담사 혹은 심리학자에게 해당 학생을 의뢰하여 더 전문적인 접근과 치료를 유도한다.
심리학자는 해당 학생과 부모에 대한 집중적인 면담을 거쳐 해당 학생이 무슨 문제로 학교 생활을 힘들어하는지에 대하여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한다. 가령, 교우 간의 따돌림이나 폭력, 우울증, 자살 충동, 학습 장애, 가정 내 갈등, 학습 의욕 상실 등을 심층적으로 검사하여 정밀하게 진단을 내린다.
진로 상담사는 학생들의 진로에 관한 전반적인 지도를 담당한다. 적성에 맞는 고교 및 대학의 선택, 그리고 해당 학과에 대한 전문 지식과 졸업 이후의 직업 선택 등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준다. 여기서 독특한 점은 스웨덴에서는 모든 학생이 중학교 2학년이 되면 2주 동안의 필수 코스로 사회 현장에 나가 관심 분야의 직업에 대한 체험 교육을 받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3학년 때 또 한 번 일주일간의 직업 체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함으로써,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응용되고 있는지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심리 상담사는 대학에서 교육학, 법률, 사회방법론, 심리학, 경제학, 사회학에 더해 정치학까지 광범위한 공부를 마치고 배치되는 전문 사회복지사인데, 위에 열거한 보건교사, 심리학자와 더불어 학생들의 문제를 분석하고 진단한다. 이들은 나아가 더 현실적인 법적·제도적 해결 방법을 모색하여 해당 학생들을 전문치료센터나 병원 등에 연계하여 신속하고 정확하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한다. 또한, 평화롭고 바람직한 학교 분위기를 유지하고 폭력이나 '왕따'를 예방하기 위한 다양한 학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작업도 수행한다.
학생 멘토단은 학급마다 두 명씩 선출된 학생 대표들로 이뤄지며, 교실 내에서 발생하는 교우 간의 갈등이나 문제가 예상되는 학생을 직접 관찰한 내용을 바탕으로 매주 1회씩 학교 건강 관리 센터의 스태프들에게 보고하고 토의한다.
따라서 위에 열거한 청소년 전문 의사, 보건 교사, 심리학자, 심리 상담사, 특수 교사, 진로 상담사, 학생 멘토단은 각각의 세분된 업무를 토대로 매주 전체 회의를 열어 유기적으로 교류하며, 문제 해결 방안을 함께 모색하고 있다.
학교 다니기 싫어하던 학생들, 변하다
이어서 레나 황은 몇몇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학생들이 처한 문제에 대하여 학교 당국과 지역, 심지어 대학 연구소 등에서 어떻게 공동으로 대응하는지에 대하여 네 명의 학생들을 사례로 들어 설명해 주었다.
첫째는 사라(Sara)의 경우이다. 사라는 다른 학교에서 전학을 왔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들과 자주 다투고 폭력을 쓰며 학교에도 종종 안 나오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시내를 배회하곤 했다. 그녀는 친구들을 따라 학교 상담소에 들렀다가 이후 마음을 열고 본격적인 상담을 시작하였다. 상담 과정에서 그녀는 이미 가출을 결심한 상태였고 부모와 관계가 나빠져 이모 집에 머물기를 원한다는 사실이 파악되었다. 진단 결과, 그녀는 과잉 행동 장애와 의사소통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왔다. 이후 1년 반 가까운 기간 동안 학교 상담사와 지속적이고 정기적인 접촉 및 전문 심리 치료 센터를 통해 무사히 중등 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둘째는 마이크(Mike)의 경우이다. 그는 학교에 오는 것을 아주 힘들어할 뿐더러 등교해서도 그날의 수업을 다 마치기도 전에 사라지곤 하였다. 면밀한 진단 결과, 그는 특정 과목들, 특히 스포츠를 아주 싫어하여 그 수업 시간을 몹시 힘겨워하고 있었다. 다만, 그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기를 좋아하여 그 시간에만 높은 흥미를 보였다. 이후 학교 측에서는 그에게 한동안 그가 원하는 일부 과목 수업에만 참여하도록 하고, 해당 과목들을 점차 늘려가는 형식으로 그의 적응력을 높여주었다. 이 과정에서 스톡홀름 대학 심리연구소의 조언도 받아 그는 본인이 잘할 수 있는 영역을 더 강화하고, 자존감도 많이 높여 3학년 때는 거의 모든 교과 필수 과목을 이수할 수 있었다.
셋째는 벨라(Bella)의 경우이다. 그녀는 우울증이 심하여 몸에 자해하고 자살까지 기도한 적이 있는 심각한 상태였다. 정밀 진단 결과, 그녀의 언니 또한 비슷한 증상을 겪어 우울증이 가족력으로 내재한 상태였고, 무엇보다 부모 간의 갈등이 심하여 오랫동안 이혼 위기 상태였다. 이에 벨라는 부모가 이혼하면 본인이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이후 부모는 결국 이혼을 하였지만, 그녀는 엄마와 아빠의 집을 번갈아 다니며 오히려 상태가 호전되었다. 또한, 그녀는 그동안 가두어 두었던 내면의 어려움에 관하여 학교 건강센터의 상담사와 지속적인 대화를 나누었고, 상태가 호전되어 고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넷째는 니세(Nisse)의 경우이다. 학습 발달 장애가 심하여 모든 학교 수업을 독립적으로 따라가지 못하였다. 청소년 전문의의 진단 결과, 그는 지능 테스트에는 문제가 없으며, 다만 주의력 결핍 장애가 있는 것으로 나왔다. 이후 그는 방과 후에 학교 밖의 특수 교육센터에서 별도의 교육을 받으며 학교 수업의 양을 조절하고 수업 보조 교사의 도움을 받으며 점차 학습 능력을 높여 갔다. 그는 자동차 엔진에 관하여 남다른 관심과 재주를 보여 3학년에 올라가서는 졸업 필수 과목을 무사히 이수하고, 자동차 관련 옴니아학교(실업고교)에 성공적으로 진학하여 본인의 재능과 적성을 잘 펼칠 수 있었다.
이제 많은 것을 바꿀 때다
이상으로 세 시간 가까이 레나 황의 강의를 통역을 맡아 이끌고 들으며, 나는 스웨덴의 교육 환경과 지금 내 아이들이 몸담은 우리의 학교를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우리나라도 거의 모든 학교에 보건교사 및 상담사를 배치하고 있다. 다만 보건교사는 학생들의 신체적 상해나 불편에 대한 응급 처치를 하는 임무를 주로 담당하며, 학생 상담 교사는 주로 이전에 교과목을 가르치던 교사가 단기간의 전문 상담 교육 과정을 거쳐 학교에 재배치되기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학생들이 그러한 상담소를 자발적으로 찾아 고민을 나누고 조언과 해결책을 구하는 데 아주 소극적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스웨덴은 우리나라와 같은 심각한 경쟁을 요구하는 대학 입시의 문제가 없고, 이 때문에 초·중·고등학교 전반의 교육이 왜곡되는 것도 없는 등 근본적인 상황이 다르다. 또한 우리보다 앞서 복지 정책을 일관되게 실천해 온 스웨덴의 오늘 모습을 어찌 우리가 단기간에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들처럼 학교마다 교과 교사 외에 평균 6인의 학생 생활 관리 전문팀이 배치되기에는 상당한 예산과 공간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강의 내내 내게 가장 깊게 각인된 메시지는, 우리는 사후 처방 및 미봉책에 급급해 있지만 그들은 사전 예방에 철저하다는 것이었다. 학생들과 지속적인 대화, 면밀한 관찰, 보고 등을 통하여 학내 폭력, 차별, '왕따', 자살 등을 사전에 감지하여 철저히 예방해 나간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학교 실정에 비추어 본다면, 위에서 예로 든 네 학생들 중 사라는 계속 친구들과 싸우며 거리를 배회하다가 결국 비행 청소년의 길로 흘러갔을 것이요, 마이크와 니세는 학교 수업 시간 내내 엎드려 자거나 전교 꼴찌의 꼬리표를 달고 방치되면서 소중한 청소년기를 보냈을 것이다. 벨라는 우울증을 견디지 못해 일순간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을 개연성이 크다.
세계 최고의 청소년 자살률을 기록하는, 무한 경쟁의 궤도에 내몰려 앞만 보고 달려가야만 하는 대한민국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미래를 약속해 줄 것인가. 저마다의 재능과 관심사는 사장된 채, 오직 '공부 잘하여 좋은 대학 가는 길'만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가르치는 우리 기성세대들이 아이들을 더 폭력적이고 옆 친구를 괴롭히는 것으로 억압을 해소하고 결국 피해자들이 자살이라는 최후의 선택을 하도록 강요해온 건 아닌지, 우리는 통렬히 되돌아보아야 한다.
친구들의 괴롭힘으로 떨고 있을 아이, 가정 결손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홀로 울고 있을 아이, 모든 과목에 골고루 우수할 것을 강요하는 학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숨은 재능을 썩히며 자학하고 있을 아이, 관심의 사각지대에 내팽개쳐진 이 모든 아이를 미리 찾아내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자. 그들이 맘 놓고 아픔과 상처를 털어놓을 수 있는 환경을 법적·제도적으로 더 풍요롭게 마련해주자.
그렇다면, 어느 곳에서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홀로 괴로워하다 결국 부모와 형에게 '먼저 죽어서 미안해요'라는 작별 인사를 남겨놓고 뛰어내린 대구 중학생의 사례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의 노력이 필요하다'라는 옛 속담이 있다. 이는 아이들 개개인은 단지 각 가정의 몫이 아닌 온 이웃, 나아가 그 아이가 살아갈 온 사회의 공동 책임이요 과제라는 의미이다. 이제 많은 것을 바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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