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 일정한 조건을 만족시킨 사람 외에는 일정 규모 이상 토지를 살 수 없고 용도별로 2~5년간 허가한 목적대로 사용해야 한다. 이 구역에서는 도시지역 내 녹지지역 200제곱미터(㎡), 도시지역 외 농지는 1000㎡, 임야는 2000㎡, 기타 500㎡를 초과 토지를 거래할 경우, 관할 시·군·구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번 조치로 분당 신도시의 30배가 넘는 지역이 이런 허가를 받을 필요가 사라지게 됐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은 누가 봐도 시장경제에 맞지 않는다. 사람에게 해를 주는 마약과 같은 물건이면 몰라도 생활과 경제활동에 꼭 필요한 토지를 거래하는 데 제한을 둔다는 것은 언뜻 보면 이상하기까지 하다. 구입을 해도 정부가 지정해준 목적에 맞게 사용해야 하고, 거래 면적이 일정 규모를 초과할 경우에는 정부의 허가까지 받아야 한다는 것은 '사유재산권 침해'라고도 할 수도 있다.
국토부의 위와 같은 결정에 대해서 대체적으로 진보개혁 측에서는 썩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다. 우리나라 진보개혁 측은 토지는 시장에 맡겨서는 안 되는 영역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반대로 시장을 옹호하는 자칭 시장주의자들은 당연한 조치라고 환영할 것이다.
그런데 '자유 시장'을 경제제도의 근간으로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이라는 반(反)시장적 제도를 시행해 온 것일까?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지정하는 이유는 토지투기를 억제하기 위함
토지거래를 허가하는 이유는 토지투기 때문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은 토지투기 억제를 위해 지가가 급격히 상승하거나 상승할 우려가 있는 지역 중에서 지정한다. 토지투기가 일게 되면 실수요가 아니라 투기수요가 기승을 부리고 그렇게 되면 땅값이 폭등하여 경제 전체에 부담을 줄뿐 아니라, 토지를 소유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간에 빈부격차가 벌어지게 되고 이로부터 파생하는 수많은 문제를 피할 수 없게 되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어두었다가 지금처럼 토지투기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풀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간단하다. 토지투기를 완전히 제거하면 된다. 그런데 희한한 일은 토지투기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진보개혁 측이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토지투기 때문에 금융이 불안정하고 소득분배가 악화되며 녹지와 농지의 보존이 매우 어렵다는 걸 경험함에도 불구하고 토지투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생각을 '감히' 하지 않는다. 이는 아마도 토지투기를 완전히 차단한다는 것은 결국 현행 제도인 토지사유제 폐지를 의미하는 것인데, 우리가 계획경제라면 모를까 시장경제를 채택하는 이상 지금의 토지사유제는 어쩔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토지사유제를 근본적으로 재고해봐야만 한다. 시장경제와 토지사유제가 과연 어울리는지, 토지사유제가 '시장 윤리'에 부합하는 것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시장경제는 토지사유제를 부정한다!
▲토지사유제는 자유 시장경제도 위협한다. 서울 상공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뉴시스 |
자원배분이 효율적이기 위해서는 "소유자=효율적 사용자"라는 등식이 성립해야 한다. 그런데 토지사유제에서 이 등식이 잘 성립하지 않는다. 토지는 대부분의 경우 일반물자와는 달리 가치가 하락하지 않고 상승한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감가(減價)되는 일반물자의 경우에는 효율적 사용자가 아니면 손해가 되므로 소유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토지처럼 값이 오르는 경우에는 개인 차원에서 이익이 되므로 효율적 사용자가 아니더라도 소유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목적으로 토지를 소유한 자들 중에는 토지를 놀리거나 저밀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더 많은 투기이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토지사유제는 토지의 최선사용을 방해한다.
또 다른 이유는 현행 토지사유제가 '시장 윤리'와 충돌한다. 언뜻 보기에 시장은 윤리와 거리가 먼 것 같지만, 사실 시장은 윤리가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시장 윤리 중 하나는 "'먼저' 기여하고 '나중에' 대가를 가져간다"는 것이다. 노동자가 임금을 받는 것은 노동력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자본소유자가 자본사용의 대가를 가져가는 것도 그가 자본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토지투기를 통해서 버는 돈은 어떤 기여에 대한 대가일까? 토지소유자는 아무 기여도 하지 않았다. 투기이익은 기여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생산한 것 중에 일부를 가져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투기행위가 개인에게 이익이 될 수는 있어도 나라 전체에는, 즉 국부(國富)를 늘리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를 준다.
세 번째로 토지사유제는 경제 전체를 불안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찾아온 경제위기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 변수는 단연 토지투기다. 즉, 토지가격의 거품 생성과 붕괴(boom and bust)가 경제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는 주된 변수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 사태를 금융 시스템 자체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사태의 본질은 토지거품의 생성과 붕괴였다. 이름도 생소한 수많은 파생금융상품들이 토지거품이라는 모래위에 지어진 것이어서 토지거품이 붕괴하자 금융위기가 초래된 것이다. 그뿐 아니라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일어난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금융위기,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장기불황도 바로 토지거품 생성과 붕괴가 낳은 결과였다. 이렇게 토지사유제는 경제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다.
이제 토지사유제 극복을 이야기하자!
그러므로 진정한 시장주의자라면 토지사유제 극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토지사유제가 경제 전체를 불안하게 만들고 토지라는 한정된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배분하며 시장 윤리에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분배주의자라면 토지사유제를 극복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두가 알고 있듯이 지금의 토지사유제가 소득분배 악화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또한 환경주의자들도 토지사유제 극복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왜냐하면 토지사유제 하에서는 농지와 녹지가 개발에 잠식당하기 쉽고 난개발과 막개발을 막는 것도 한계가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제민주화론자들도 토지사유제를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의 토지사유제는 토지를 별로 소유하지 못했거나 빌려 쓰는 중소기업과 신규기업에게는 매우 불리하게 작용하는 반면 재벌 및 대기업에게 매우 유리하게 작용하고, 노동자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하는 반면 사용자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현행 토지사유제 극복 방안은 의외로 간단하다. 많은 사람들이 '토지사유제 극복'을 이야기하면 토지를 무상으로 몰수하여 무상으로 나눠주고 거래를 금지하는 것을 떠올리는데, 그런 것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재 토지가격을 인정해주는 세제를 도입하는 것과 함께 정부가 점진적으로 토지의 국공유비율을 높이면서 시장가치에 맞게 임대하는 공공토지임대제를 확대하는 것이다.
매년 발생하는 지대(land rent)에서 현재지가의 이자 부분만 제하고 나머지를 환수하면 토지가격은 고정되는데, 이렇게 되면 투기수요는 사라진다. 마찬가지로 국공유토지를 임대하고 임대료를 제대로 환수하면 토지시장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투기수요가 사라지게 되면, 즉 시장에 일반물자처럼 실수요만 등장하면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지정할 필요도 없어진다. 정부가 실수요인지 투기수요인지를 구분하기 위한 항목을 만들 필요도 없다. 외지인들이 농지를 사는 것을 의심의 눈초리로 볼 필요도 사라진다. 고위공직자의 보유 토지가 투기용인지 아닌지를 캐내기 위한 방송과 언론의 탐사보도도 불필요해진다.
이제 토지사유제 극복을 이야기하자. 현재의 토지사유제 하에서 소득분배 개선은 쉽지 않고, 주택건설 과정에 항상 등장하는 비리문제와 재개발·재건축에서 불거져 나오는 각종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어려우며, 자연환경을 잘 보존하여 후손에게 물려주기도 쉽지 않다. 토지사유제는 정의롭지 않다. 토지사유제는 시장경제와도 맞지 않는다. 인간사유제가 극복되었듯이 토지사유제도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
* [토지+자유 비평]은 토지+자유연구소에서 시사적인 이슈에 대해 쓴 글을 <프레시안>에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토지+자유연구소는 토지정의 철학의 현실적 적용을 위해 노력하는 비영리 독립 연구기관으로, 후원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운영됩니다. (☞바로 가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