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생활이 힘든 이유가 고참과 졸병이라는 계급 관계 때문이듯이, 사회생활이 힘든 이유는 대개 시장에서 맺어지는 갑-을 관계 때문이다. 최근 불거진 갑-을 문제는 이런 측면에서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한 좋은 질문을 던진다.
자본-임노동 관계 이상으로 갑-을 관계가 더 중요해진 현대 자본주의
자본주의를 정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생산관계'로 정의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임노동 관계'가 곧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를 직접 체험하다 보면 자본-임노동 관계 이상으로 갑-을 관계가 더 중요한 특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유는 현대 자본주의가 점점 '영업 자본주의'의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생산'보다는 '영업'이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다. 생산력이 발달하다 보니, '어느 공장에서 생산할 것인가?'의 문제는 점점 중요성이 떨어지고, '누구한테 일거리를 넘길 것인가?'라는 문제가 더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품질의 차이가 없을 수는 없지만, 전반적으로 생산의 질이 평준화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미국 자동차나 일본 자동차나 어차피 도로를 달리는 것은 마찬가지이고, 아이폰이건 삼성폰이건 어차피 전화가 잘 걸리긴 매한가지다. 세상에 공장은 이미 널리고 널렸기 때문에 생산 측면의 위상이 점점 약해지는 자본주의가 되고 있다는 얘기다.
자본가의 입지도 점점 축소되고 있다. 많은 경우 남아도는 게 자본이기 때문이다. 특히 저금리가 일반화되고 은행 제도가 정착한 상황에서는 자본력보다는 영업력이 훨씬 더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에 따라 시장 주체들의 위상도 달라졌다. '노동자'나 '자본가'보다 '영업자'의 역할이 커지게 되었고, 유통이 생산을 지배하는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자본가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닌, 영업자가 시장의 강자가 되는 것이다.
최근 재벌그룹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데, 일감 몰아주기 역시 이런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일감 몰아주기의 본질은 현대 자본주의의 최고 무기인 '영업력'을 몰아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재벌들의 상속 전략도 단순히 현재의 자금력을 상속하는 것이 아니라 안정된 '갑'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 영업력을 상속하는 전략으로 바뀌고 있다.
이렇듯 갑-을 관계의 중요성은 영업 자본주의의 한복판에서 더 확대된다. 일거리를 발주하는 발주자(갑)의 수주자(을)에 대한 무한권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갑-을 관계는 초기 자본-임노동 관계 이상의 권력 관계가 된다.
▲ 남양유업 임직원들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9일 오후 서울 중구 남양유업 본사 앞에서 남양유업대리점협의회 회원들이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사회 분업 체계의 모든 곳에서 반복 재생산되는 갑-을 관계
본질적으로 인간관계는 갑-을 관계를 초월한다. 보통의 사람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예절'과 '신의의 원칙'을 갖고 사람을 대한다. 그러나 갑-을 관계 속에서 인간관계는 왜곡된다. 갑은 돈을 주고 을의 서비스를 갈취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고 생각하며, 을은 뭔가 갑의 앞에서 찌그러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식을 갖게 된다.
식당에 가면 '손님은 왕'이라는 생각을 하듯이, 돈을 냈기 때문에 누군가를 부려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의식, 누군가를 막 대해도 된다는 의식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쪽에서는 그렇게 당해도 당연하다는 인식이 형성된다.
이러한 의식은 사회 분업 체계 안에서 반복 재생산된다. 직장에서 하루 8시간 넘게 '을'이던 사람이 퇴근 후에 자신이 '갑'인 상황이 되면 자기가 당한 만큼 더 심하게 '갑'의 행세를 하려고 한다. 이러한 갑-을 관계는 우리 삶의 모든 곳에서 반복되고 있고, 우리의 삶을 불행하게 한다.
갑-을 관계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독특한 의식은 한마디로 자본주의적인 의식이다. 본래의 인간관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화폐관계를 동반할 때 나타나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최근 불거진 '을의 항변'은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한 위협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정치와 민주주의를 통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인격적 예속을 초래하지 않는 사회적 분업 관계로서 갑-을 관계
갑-을 문제가 정치권으로 넘어갔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국회에서 갑-을 문제를 최우선으로 처리하겠다고 경쟁적으로 공언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을의 눈물을 닦아주는 민주당'임을 전면에 내세우고, 이 문제를 경제 민주화의 핵심 이슈로 삼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 역시 '경제 민주화 실천 모임' 주도로 공정거래법 개정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갑-을 관계를 폐지하고 무조건 '을'의 이익을 보호하는 단순한 대안을 설정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일단 갑-을 관계 자체는 불가피하다는 점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갑-을 관계 자체는 인간 세상에서 폐지할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2500년 전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는 "다른 사람의 녹을 먹게 되면 다른 사람의 일에 정성을 쏟아야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요즘 말로 하면, "돈 주는 사람에게 충성해라"라는 얘기다. 갑-을 관계는 이미 춘추시대에도 존재했던 것이다.
갑-을 관계는 사회가 분업의 연쇄 사슬을 통해 매우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개념이다. 우리는 대개 '을'이면서 동시에 '갑'인 존재들이다. 사회는 결국 수많은 갑과 을의 연쇄 관계 속에서 움직인다.
중요한 것은 갑-을 관계를 어떻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재설정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상적인 갑-을 관계란 인격적 예속을 초래하지 않는 사회적 분업 관계로서 갑-을 관계이다. 갑-을 관계를 지배-피지배의 관계가 아닌 사회적 분업의 설계와 참여로 이해하고 설정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를 통해 갑-을 관계가 인격 예속을 초래하는 억압적 자본 관계로까지 확대되는 것을 차단하고, '사회적 합의'에 기반을 둔 분업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한 방법론으로 가장 먼저 제시되는 것은 '규제'다. 물론 국가가 복잡한 규제를 통해 '갑-을 관계' 자체를 직접 제약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는 을에 대한 사회·경제적 보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간접적인 해법이 더 바람직한 방법으로 보인다.
갑-을 문제의 궁극적인 해법은 복지국가 건설이다
한국 사람들이 갑-을 관계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바로 그 관계의 향방에 따라 자신은 물론 가족의 미래까지 좌우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안정적 '갑'의 지위를 확보하려는 '을'의 처절한 노력은 더 절박할 수밖에 없다. 이 처절함이 절박하면 절박할수록 갑의 불필요한 권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만약 강력한 사회 안전망이 확보되어 해당 갑-을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도 자신과 가족의 안전이 크게 위협받지 않는다면, 갑-을 관계는 지금과 같은 권력 관계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사회적 분업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근본적인 조건을 확보하게 된다. 갑의 입장에서 볼 때도 을의 과도한 접대가 사라지면, '손님은 왕'이라는 식의 왜곡된 의식에서 해방될 수 있다. 사회 안전망을 통해 갑과 을 모두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이다.
국가가 '을'을 보호하기 위해 해당 사안별로 제도적 장벽을 구축하는 것은 '복잡한 해법'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갑의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규제 안에 묶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기업 활동 및 사회적 분업의 활성화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결국 갑-을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자본 관계가 인격적 예속을 초래할 수 없도록 자본의 속성을 견제하는 총체적 사회 안전망이 필요하다. 이 총체적 사회 안전망을 우리는 복지국가라고 불러왔다. 갑과 을로 표현되는 사회의 분업 사슬이 인격의 예속을 초래하지 않는 새로운 단계의 자본주의로 넘어가기 위해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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