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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한 우체국…"짐승처럼 일하고 죽으면 자기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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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비정한 우체국…"짐승처럼 일하고 죽으면 자기 책임"

['신분 사회' 우체국 ③] 집배원들 "산재 신청하면 '공공의 적' 취급"

기상 관측 이래 104년 만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2011년 7월, 한 집배원이 폭우 속에 떠내려가면서 동료에게 우편물을 건네주다 순직했다. 동료들은 그가 우편물을 버리고 두 손으로 버텼다면 살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그의 죽음은 '우체국 미담'이 됐다.

집배원들이 순직할 때마다 언론에는 '고마운 집배원'의 기사가 소개된다. 죽지 않더라도 미담은 많다. 화재를 진압한 집배원, 남몰래 선행한 집배원, 위급한 환자를 구한 집배원들이 종종 나온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우체국 집배원들은 고질적인 열악한 처우와 인력 부족 문제로 신음하고 있다.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의 현실은 좀 더 암울하다. 우편물 분류, 택배, 우편물 배달 등 거의 모든 우체국 업무에는 비정규직과 특수고용직이 있다. '비정규직 백화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적지 않은 규모다. 이들 노동자들은 우체국을 '철저한 신분 사회'라고 말한다. 신분제 아래로 내려갈수록 책임과 위험만 떠안고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프레시안>은 12일 수도권의 모처에서 현직 집배원 4명을 만나 방담을 나눴다. 모인 사람들은 1년차 비정규직부터 20년차 정규직까지 다양했다. 신변 보호를 위해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다. <편집자>


'신분 사회' 우체국
"우체국, 입원 환자에게도 일 시킬 땐 언제고…"
매정한 우체국…"식구라며 신발 갖고 차별하나"

방담자 소개

박우편 : 20년째 정규직 집배원(기능직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20년 전에는 비정규직이라는 고용 형태가 없어서 바로 정규직이 됐다. 나이는 40대 중반.

장규직 : 마찬가지로 수도권 우체국에서 20년차 정규직 집배원으로 일한다. 40대 후반.

지배원 : 정규직 집배원이자 10년차 노동자다. 비정규직으로 5년 근무한 끝에 정규직으로 전환돼 5년째 일하고 있다. 40대 초반.

최상시 : 1년차 우체국 비정규직 노동자다. 정규직이 되는 꿈을 품고 일하고 있다. 갈수록 정규직 신규 채용이 줄어들어서 걱정이다. 30대 중반.

정규직 되려면 피라미드 올라야

프레시안 : 우체국에 그렇게 다양한 비정규직들이 있는 줄 몰랐다. 정규직이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나?

박우편 : 지금은 비정규직인 '상시 집배원'을 거쳐야 정규직이 될 수 있다. 내가 근무(를 시작)할 때(1990년대 초반)는 비정규직 근로 형태가 아예 없었다. 대신 '주재 집배원'이 있었다. 정규직이 되기 전에 거쳐 가는 일종의 수습 기간이다. 빠르면 일주일, 길어야 한 달 정도 지나면 바로 정규직이 됐다.

지배원 : 요즘은 정규직이 되려면 최소 5년은 걸린다. 일단 '단기 대무사역'이라고 택배 '알바'를 해야 한다. 재택 집배원과 '알바'가 우체국 피라미드에서 제일 아래다. 마케팅실에서 일하는 택배원(국제 특송, 기업 우편물 접수 부서)이 그 다음 단계다. 상시 집배원보다 더 못한 비정규직들이 많다. 3-6개월 계약직으로 일해야 상시 집배원이 되고, 상시 집배원을 또 몇 년 거쳐야 기능직 공무원이 된다. 계속 피라미드를 올라가야 한다.

상시 집배원은 정규직과 똑같은 구역을 배정받고 똑같이 일한다. 1년 계약직이고, 연말에 한 번씩 계약을 연장한다. 2년이 넘으면 무기 계약직이 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고용이 보장되거나 월급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최저임금보다 약간 더 받는 정도인데, 호봉제를 인정한다든가 고용을 보장하는 등 핵심적인 제도적 보완책이 없어서 문제다. 무기 계약직이 돼도 그냥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아무 의미가 없다. 일단 기능직이 돼야 공무원이고 정규직이다.

프레시안 : 정규직 집배원과 상시 집배원 간에 임금 수준이 많이 차이 나나?

▲ 상시 집배원은 정규직과 똑같은 구역을 배정받고 똑같이 일한다. 2년이 넘으면 무기 계약직이 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고용이 보장되거나 월급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뉴시스
지배원 : 상시 집배원의 월급은 150만-180만 원 사이다. 예전에는 기본급이 최저임금 수준이었다. 대신 우체국은 12개월 중에 10개월 동안 정기 상여금을 줬다. 그러다 최근 정기 상여금과 기본급을 합산해서 '통상 임금'으로 처리했다.


정규직 집배원이 되면 임금은 공무원에 준해서 받는다. 1년차면 기본급이 150만 원 정도 된다. 시간 외 수당까지 다 합치면 180만-200만 원 정도다. 내가 10년차이고, 정규직 6년차인데 세후 월급이 210만 원이다. 20년차면 세후 월급이 280만-300만 원 정도다. 연봉은 세전 5000만 원 정도이고.

최근에는 우체국에서 초과 근로 수당 통제 지침이 내려왔다. 월 50시간 이상 주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수도권에서 일하는 집배원들은 월 50시간 이상 초과 근무를 할 수밖에 없다. 일한 만큼 시간 외 수당을 다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에 대해 우정사업본부 측은 본부 차원에서 시간 외 수당을 공식적으로 줄이라는 문서를 내려보낸 적은 없으며, 다만 경비 절감 차원에서 가급적 시간 외 수당을 줄이려는 우체국이 일부 있을 수는 있다고 밝혔다. <편집자>)

"짐승처럼 일하고 짐승처럼 귀가한다"

프레시안 : 초과 노동을 많이 할 정도면 노동 강도가 높겠다.

지배원 : 내가 다니는 우체국에 집배원이 100명 넘게 있는데, 40%는 매일 아침 7시까지 출근한다. 원래 9시 출근인데, 2시간 일찍 출근한다. 퇴근은 밤 7-8시에 한다. 13일부터 23일까지 열흘 정도는 밤 9시에도 퇴근한다. 청구서 등 우편물이 밀리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명절 2주 전부터는 폭주 기간이고, 선거 기간에는 선거 홍보물 때문에 '특별 소통 기간'이다. 이럴 때는 주말에도 일한다.

박우편 : 아침 7시에 출근해 봤자 점심시간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길어야 30분, 보통은 10-20분이면 땡이다. 폭주기에는 하루 14시간씩 일하고, 비수기에도 11시간, 12시간씩 일한다. 저녁 때 밥도 안 먹고 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무리 빨라도 오후 7시까지는 일해야 한다. 짐승처럼 일하고 짐승처럼 귀가한다.

지배원 : 하루에 우리한테 떨어지는 물량이 택배 70-80개, 등기 우편 120개, 통상 우편물은 2000통이다. 해가 떠 있는 시간만 작업 시간인데, 사실상 해가 지기 전에 다 배달하지 못한다.

박우편 : 휴가도 제대로 못 쓴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구조다. 한 우체국에서 집배원 100여 명이 1년에 16일씩 휴가 가면 1600일이 넘는다. 여유 인력은 없고, 물량은 할당되는데 어떻게 가나. 연차 휴가를 못 가면 연차 수당을 받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다 받지 못한다. 근로기준법 위반인데, 우리는 공무원이기 때문에 위에서 지침만 내리고 따르라는 식으로 일관한다.

용인 집배원 사망 사건, 막을 수 있었다

프레시안 : 집배원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니 산재도 많이 날 것 같다.

박우편 : 3-4년 전에 배달하다가 덤프트럭과 부딪쳐 사고로 돌아가신 비정규직이 있다. 2012년 장마철에 한 집배원이 하수구에 빠진 채 동료에게 한 손으로 우편물을 건네주다가 돌아가셨다. 몇 주간 시신을 찾으려고 구조 작업을 했다. 경기도 용인시에서 돌아가셨는데, 얼마나 떠내려갔는지 시신은 한강 다리에서 발견됐다.

최상시 : 폭우가 엄청나게 쏟아지면 안전을 위해 배달을 그만두라고 우체국이 지침을 내렸어야 한다. 막을 수 있었는데 잘못했다.

박우편 : 예전에는 자연 재해나 기상 이변에 대해 구체적인 '작업 중지 매뉴얼'이 없었다. 현장 실장들이 그때그때 판단했다. 대개는 아무리 악천후여도 무조건 나가서 일했다. 그래서 많은 집배원들이 희생당했다. 요즘은 그런 사실이 SNS로 전파되면서 사건이 확대된다. 용인 사고 이후에 자연 재해에 대한 지침이 내려오긴 했다.

지배원 : 안전 요건이 강화됐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네 안전 네가 지켜라'는 식이다. 예를 들어 비가 시간당 200ml 와도 조기 귀가한 적이 없다. 그러면 그다음 날 우편 물량이 더 많아지니까. 우체국에서는 일단 들어오라고 말은 하는데 대안이 없다. 추가 인력을 더 배치하지 않으면 우리는 일할 수밖에 없다. 전체적으로 집배원이 휴가를 못 가는 것도 상시적으로 여유 인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루 노동시간이 평균 12시간 이상 되니 인력이 부족하다.

프레시안 : 장시간 노동 때문에 과로사하는 사람도 있나?

지배원 : 선거 우편물을 돌릴 때, 주변의 대도시 집배원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항상 접했다. 사인은 심장질환, 뇌질환 등이다. (2008년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05년까지 5년 동안 옛 정보통신부에서 과로사 한 공무원 17명 중 10명은 집배원이었다. <편집자>) 그런데 과로사를 인정받은 사람은 드물다. 죽어도 일하다 쓰러져서 안 죽고 집에서 고이 죽는다. '공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어렵다. 사고 나면 무조건 자기 부주의, 개인 질병이라고 한다.

집배원들이 오토바이 타고 그냥 유랑하는 게 아니다. 온갖 신경을 집중하지 않으면 교통사고나 배달 사고 위험이 생긴다. 항상 이 두 가지 사고를 피하려고 긴장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 집배원들은 선거 때마다 동료의 부고를 접한다. 사진은 4. 24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선관위가 발송한 투표 안내문을 우편함에 넣고 있는 집배원. ⓒ연합뉴스

산재 신청하는 집배원은 '공공의 적'?

프레시안 : 과로사는 입증하기 어려울 것 같다. 택배를 나르다가 근골격계 질환이 생기거나 교통사고가 나면 산재(공무상 재해) 신청은 하나?

지배원 : 명확히 산재를 당해도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 공무상 재해를 신청하기 어렵다. 지역마다 산재 발생 건수가 우체국 경영 평가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우정사업본부 측은 상시 집배원의 산재 승인 건수와 경영 평가는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 강원우정청이 재해율, 재해 감소율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안전 경영 연도 평가에서 대상을 받은 적이 있다. <편집자>) 경영 평가에서 하위 고과를 받으면 불이익이 많다. 일단 경영 평가 결과에 따라 성과급이 돈 100만 원씩 차이 난다. 혜택도 다르다. 1등한 국에 교육이나 감사를 두 번 정도 한다면, 꼴등한 국은 매일 같이 감사 내려온다. 다른 국들은 경영 평가에 사활을 건다. 사고가 나면 묵인하거나 은폐한다.

산재 신청하는 집배원은 내부에서 '공공의 적'이 된다. 사고가 일어나면 다들 "너 때문에 경영 평가 점수 0.3점 깎였다"고 몰아세운다. 웬만하게 다쳐서는 자기 비용으로 해결하고, 공무상 재해는 엄두도 못 낸다. 수술할 정도로 큰 사고가 나면 할 수 없이 재해 처리한다. 오토바이를 타면 겨울에 수도 없이 넘어진다. 다리, 어깨 다치면 파스 갈아 붙이고, 근육질환으로 통증도 오는데, 다 자비로 처리한다. 산재 신청 건수를 경영 평가에 적용하는 것은 산재를 은폐하는 악법이다. 폐지해야 한다.

우리는 무거운 물건도 실어 나른다. 그런데도 근골격계 질환은 공무상 재해를 신청할 생각을 못한다. 허리 수술을 받은 사람도 있지만, 우체국에서는 다 개인 질병이라고 하고 본인도 언제부터 나빠졌는지도 모른다. 아내한테 매일 파스 붙여달라고 부탁하다가 얼마 안 가서 병원에서 디스크 판정을 받고 온다. 다들 집에 파스를 쌓아놓고 있다. 노조에서는 산재에 방심하지, 우체국은 말할 것도 없지. 경영 평가 때문에 쉬쉬하지.

프레시안 : 노동조합이 산재에 방심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지배원 : 노조가 조합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앞장서야 하는데 수수방관한다. 산재 사고나 안전 사고에 대해 무감각할 뿐만 아니라, 사고를 묵인하고 방관한다. 매년 우정노조는 우정사업본부, 산업안전보건공단과 협력해서 산재 예방 캠페인과 협력 프로젝트를 하는데, 상황이 예전보다 좋아졌다고 말하지만 내부적으로 들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래도 우리는 비정규직보단 낫다.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산재 신청하기가 더 어렵다. 정규직 채용에 불이익이 갈까봐 산재를 숨긴다. 요즘 정규직 되기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보니 그렇다. 비정규직들은 불만이 있어도 불만을 제기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정규직이면 나같이 진급을 포기한 사람들은 과장 멱살이라도 잡는데, 그렇지 않으면 공무원 조직에서 그렇게 들이받으며 살기는 힘들다. 바른 소리를 하면 밉보인다.


"교통사고나 등기 배달 사고는 운에 맡긴다?"

프레시안 : 화제를 돌려보자. 아찔한 배달 사고 에피소드는 없었나?

지배원 : 집배원들은 한 번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많다. 등기의 종류도 수백 가지다. 꼭 본인에게만 전달해야 하는 우편물, 사고가 터지면 회복할 수 없는 우편물을 베테랑들은 안다. 예를 들어 어느 사장이 회사를 몇 백억 원에 팔면 세무서에서 인증서가 온다. 그런 것을 문 밑으로 넣어놨다가 잃어버려 봐. 큰일 난다.

원래 부재중이면 등기는 도착 안내문을 써서 다음날 다시 방문하고, 법원 등기는 3회 방문하고 반송하게 돼 있다. 집배원들은 항상 긴장감을 갖고 일하지만, 너무 물량이 많아서 사실상 신경을 다 못 쓴다. "에이 사고 터지면 할 수 없지 뭐", "교통사고나 등기 배달 사고는 운에 맡기자" 하는 식이다.

박우편 : 금전적인 손실도 많다. 택배나 등기 고가 우편물 취급하면 뜻하지 않게 분실할 때도 있다. 집배원 과실이 아니어도 99% 집배원이 배상한다. 보상 제도가 있긴 하지만 유명무실하다. 그래봤자 구상권이 들어와서 어차피 우리가 물어내야 한다. 방치하면 민원이 들어오니까 10만 원이든 100만 원이든 물어낸다.

집배원은 택배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른다. 부재중인 고객이 "바쁘니까 놓고 가도 괜찮다"고 해서 놓고 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물건이 외제 선글라스였다. "놓고 가라"던 고객이 갑만 있고 선글라스는 없다고 물어내라고 해서 몇 십만 원을 물어낸 적이 있다. 이런 일이 1년에 한두 건 있는데 전체 집배원으로 따지면 엄청나다. 월급은 200만 원, 쥐꼬리만큼 주면서. 노조가 이런 것 좀 해결했으면 좋겠는데, 노조는 회사 편이다.

고참들이 아파트보다 단독 주택가 선호하는 이유

프레시안 : 주민들과 정 붙인 에피소드도 들려 달라.

박우편 : 집배원이라면 자기 담당 지역에 애착이 있다. 대도시 아파트로 나가면 덜하고, 농촌 지역이나 단독 주택, 다세대 주택가에 나가면 친분이 많다. 한 구역을 5년 이상 맡다 보니까. 그러면 보는 얼굴들은 부동산 아주머니, 이발소 아저씨, 슈퍼마켓 아주머니…. 맨날 본다.

지배원 : 주민들과 정을 느끼려면 단독 주택 지역으로 간다. 고참들이 옛날 생각해서 집배원의 정을 느끼려고 주로 그런 지역을 원한다. 아파트는 경비 직원 아니면 벽만 보고 일해야 한다. 단독 주택에 가면 다르다. 여름에 더우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얼음물도 주고, 밥 먹고 가라고 하기도 한다.

사실 단독 주택은 노동 조건이 더 안 좋다. 아파트는 비가 오면 피할 수 있지만, 단독 주택은 비를 못 피한다. 겨울철 빙판길 오르기도 힘들다. 주소를 외우기도 어렵다. 최근에는 새 주소가 나오면서 구주소와 신주소가 헷갈린다. 사실 난 아직도 내 구역 신주소를 다 못 외웠다(웃음). 노동 조건의 어려움을 감수하고도 우리는 산동네를 좋아한다. 동네 사람들이 반겨주니까.

밤 12시에 전화해 당장 배달하라고 욕하는 고객

프레시안 : 반대로 '진상 고객'도 있나?

장규직 : 고객이 억지를 부리는 경우가 있다. 등기 우편을 배달하다가 사람이 없어서 다음날 언제 방문하겠다는 안내문을 써 붙였다. 그러면 고객이 "내가 원하는 시간에 갖다 달라"고 억지를 부린다. 못한다고 하면 "실장 바꿔라, 과장, 국장 바꿔라." 민원이라도 들어오면 그 단 한 건을 위해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으로 가야 한다. 그럴 때면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지배원 : 난 물량이 많은 날에는 하루에 등기 우편만 200통을 나른다. 부재중이어서 등기 도착 통지서를 보내면 시도 때도 없이 전화가 온다. 심지어 밤 12시에 전화해서 지금 당장 배달하라는 고객도 있다. 내일 아침에 배달한다고 하면 바로 욕이 날아온다. "야 이 XX야, 뭔 XX야. 갖다 달라면 갖다 줘야지." 어떤 고객은 토요일 밤 10시에 전화해서 "택배 내놔라"라고 한다. 우체국은 "고객과 싸워서 이기지 마라. 무조건 고객이 옳다"고 한다. 집배원도 감정 노동을 한다.

박우편 : '라면 상무'가 항공사 여승무원에게 "왜 라면이 덜 익었느냐"고 질타하듯이 우리한테도 그러는 고객이 있다. 그럼에도 우체국 집배원은 자기 업무와 관련된 모든 걸 책임져야 한다. 무조건 빌 수밖에 없다. 무릎 꿇고 죄송하다고 빈다.

진짜 '갑'은 고객이 아니라 우정사업본부

최상시 : 갑을(甲乙) 관계는 우체국과 비정규직 사이에서 더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위탁 택배원들은 간접 고용 노동자다. 우체국이 하청 업체를 입찰해서 사업자를 정하는데, 하청 업체들이 단가를 깎는다. 후려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위탁 택배원이 받는다. 우체국에서 일하는 특수고용직이 많다. 집중국에 우정 실무원이라고 기간제 비정규직도 있다. (무기 계약직이 되기 전까지는) 3개월 혹은 6개월에 한 번씩 계약을 갱신한다. 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미스 김과 처지가 똑같다. 다만 비자발적 비정규직일 뿐이다.

▲ 우편집중국 ⓒ프레시안(김윤나영)

프레시안 : 최근에 CJ대한통운택배에서 일하는 택배원들이 파업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박우편 : 백배 공감한다. 하지만 아마 여기 있는 사람들만 공감할 것이다. 대다수 집배원들은 택배원이 파업하면 힘들어 한다. 우체국에도 위탁 택배원이 있다. 우린 정규직이고, 택배는 특수고용직이다. 택배원이 파업하면 집배원한테 그 물량이 다 온다. 안 그래도 힘든데, 왜 파업하느냐고 할 것이다. (같이 파업하면 되지 않나?) 우리는 파업 못하지. 겁이 많으니까.

휴일 근로 제한, 정규직은 웃고 비정규직은 울고

프레시안 :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경우가 있나?

지배원 : 상시 집배원들은 울분이 있다. 일은 똑같이 하면서 정규직보다 임금을 덜 받는다. 시간 외 수당을 사실상 50시간 이상 청구하기 어렵게 되자, 상시 집배원들이 "우리는 월급이 적어서 휴일 근무를 더 하고 싶은데 우체국이 더 못하게 막았다"고 호소하더라. "내가 정규직 물량 받아서 일하겠다는데 왜 못하게 막느냐? 하루라도 일을 더하면 돈 더 버는데"라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뜨끔했다. 우리 정규직은 "휴일에 노니까 좋다. 내 근무를 얘(상시 집배원)가 서주니까 좋다." 그런 생각만 했는데, 상시 집배원 생각은 미처 못 했다.

박우편 : 상시 집배원은 시간 외 수당을 정규직보다 더 받는다. 10년 일한 정규직 집배원보다 상시 집배원의 시간 외 수당이 더 세다.

지배원 : 정규직과 상시 집배원을 합쳐 토요일 근무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다. 20%는 일하고 싶다고 하고, 80%는 쉬고 싶다고 했다. 물론 정규직 중에도 자식 있고 돈 많이 나가는 사람은 주말에 일하려고 한다. 하지만 대체로 정규직은 쉬고 싶어 한다. 월급이 적어도 집배 일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토요일 쉰다니까 너무도 좋아들 했다. 비정규직들이 일 더하려고 한다니까 가슴이 뜨끔했다.

박우편 : 대부분 여성인 재택 위탁 집배원은 월급 70만-80만 원 받는데, 우정사업본부에서 사업 소득세를 뗀다고 한다. 인건비 아낀다고 비정규직을 쓰면서, 시간 외 수당은 덜 주려고 하면서, 다양한 비정규직들이 수두룩한데….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정리 말씀 부탁한다. 집배원이 바라는 처우 개선안이 무엇인가.

장규직 : 우체국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 권리를 못 찾고 있다. 민원 문제, 장시간 노동, 복지 포인트 삭감 등 우체국 내에서 처지가 열악하다. 억눌려 있는 사람들이 자기 권리를 주장해야 하는데, 노조가 있음에도 못하는 게 쌓이다 보니까 또 하나의 스트레스다. 일터에서 보람을 못 느끼는 현실이다. 물론 뜻있는 사람들을 모아 해결하려는 소수도 있다. 노조가 기득권, 자기 안위만 지키다 보니 그 짐이, 싸워야 할 일이 생각이 건강한 노동자들에게 넘어왔다.

박우편 : 우리는 부품이 아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답게 일하는 직장이었으면 한다.

지배원 : 많은 집배원들이 일터에서 다치고, 장시간 일해서 질병을 앓아도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다. 치료 받을 시간적 여유도 없다. 다쳐도 치료는 고사하고 휴가 자체를 못 낸다. 그런 문제가 해결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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