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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새로운 토지 개혁, 농지 사유화로 이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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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새로운 토지 개혁, 농지 사유화로 이어지나

[토지+자유 비평]<20> 평등지권에 기초한 경자유전(耕者有田)

최근 중국 언론인 <환구시보(環球時報,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자매지)>가 북한의 농지개혁 소식을 전해왔다. 북측과 자주 접촉하는 단둥의 한 인사의 말에 근거해 "북한 농민들이 토지 경영권을 개인에게 주는 가구 단위 도급 생산 정책이 올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는 내용이었다.

출범한 지 1년 된 김정은 체제가 농지개혁을 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아니고, 단지 주민들이 가구 단위로 농지를 경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희망사항을 보도했다. 보도의 근거와 무게감 치고는 참으로 소소해 보일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해 보이는 '기대'라는 표현에서 북한 농지개혁이 진행된 현대사와 농민들의 오래된 꿈을 읽어 낼 수 있다.

농민 생활 향상과 관련한 북한의 최근 동향

북한 농민들의 기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최근의 북한 동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가깝게는 김정은 체제가 최근 발표하는 정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은 지난 3월 31일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개최해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병진시켜 강성국가 건설을 앞당겨 나갈 데 대하여'라는 결정서를 채택, '경제와 핵의 병진 노선'이라는 새로운 국가전략노선을 제시했다(양문수, 2013).

그런데 이 결정서는 "농업과 경공업에 역량 집중을 통한 인민생활의 안정·향상"이라는 구체적인 과업을 포함하고 있다. 북한이 여전히 농업을 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해 김정은 체제가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공언한 "다시는 인민의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지 않겠다"던 약속은 여전히 살아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환구시보>가 보도에서 말한 북한 농민들의 '기대'는 이러한 정치 경제적인 흐름 속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 주민 사이에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주도할 새로운 토지개혁에 대한 기대감이 퍼지고 있다. 지난달 25일 인민군 창건 81주년을 맞아 김정은 제1위원장이 금수산 태양궁전의 광장에서 '약식 열병행사'를 갖는 모습을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 농민들이 갖는 '기대'의 현대사적 근거

북한 농민들이 기대를 갖는 또 다른 근거는 북한 농지개혁의 현대사적인 흐름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북한은 1946년 3월 5일부터 30일까지 단 한 달 만에 개인 토지를 무상몰수 후 무상분배하는 내용의 토지개혁을 단행했다(1946~1953년). 당시 북한인민위원회는 1946년 3월 5일 <토지개혁에 관한 법령>을 공포하고, 다시금 1946년 3월 8일 <토지개혁 법령에 관한 세칙>을 공포한 후, 그 해 3월 말까지 토지개혁을 완성할 것을 요구했다. 토지사유제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5정보를 넘는 개인 경지를 무상으로 몰수한 후 농민에게 무상분배한 것이다. 이 때 무상몰수한 경지는 101만 정보에 이르며, 북한 총 경지면적 198만 정보의 51%를 차지했다. 이는 원소유자 소유 경지면적의 80%가량에 해당한다. 토지개혁을 완성한 후, 북한 정부는 토지등기부를 소각하였다(박인성·조성찬, 2011).

북한의 농지개혁은 남한의 급속한 농지개혁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남한 정부가 농지개혁을 실시하지 않고서는 남한 농민들의 마음이 북한과 공산주의 쪽으로 쏠릴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남한은 1949년 6월에 농지개혁을 착수하여 1950년 3~5월 사이에 사실상 완료하였다(전강수, 2010). 그리고 헌법 제121조 ①항에서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고 규정함으로써 토지에 대한 농민의 오래된 꿈을 법제화하였다.

북한은 무상몰수·무상분배 개혁조치 이후 사회주의 소유제도 완성을 위한 협동생산방식으로의 농지개혁을 추진했다(1954~1971년). 또 1954년부터 농업협동화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해 1958년에는 기본적으로 완성했다. 이때부터 북한에서 토지사유권이 완전히 사라지고 사회주의 토지소유제도가 자리 잡았다. 이로써 북한 토지소유권은 도시토지의 경우 국가소유로 하며, 농촌토지의 경우 협동농장 소유로 하는 이원 구조로 정착됐다. 이러한 구조는 중국의 국유(전민소유) 및 집체소유와 동일하다.

'가족 단위 농지경영권 분배 개혁'은 중국식 농지개혁 모델

최근 북한 농민의 '기대'는 앞서 살펴본 농지개혁과 이후 추진된 사회주의 토지제도 법적 확립시기(1972~1991년, 1972년 헌법에서 재산의 국유화를 법적으로 확립) 및 제한적인 토지유상사용제도 개혁시기(1992~현재)에 뿌리를 두면서도, 최근 북한이 발표한 일련의 농지개혁 시도에도 근거를 두고 있다.

과거 북한은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해 1992년 <외국인투자법>을 공포하고, 15조에서 외국 투자기업 또는 개인투자자에게 토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으며, 이듬해인 1993년에는 아예 국유토지 사용의 기본법인 <토지임대법>(1999년 수정)을 제정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전면적으로 내국인들이 토지를 임대하여 경작하거나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은 아니다.

농민들이 농지사용료를 지불하면서 농지를 사용할 수 있게 한 대책은 2002년 공포한 '경제관리개선조치'를 통해 이뤄졌다. 이 조치를 보통 '7.1 조치'라고 부른다. '7.1 조치'는 가격·환율·임금·재정·기업관리·시장 등 경제 전반에 관한 폭넓은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시행됐다. 농지사용에 있어서 '7.1 조치'가 갖는 핵심적인 의의는 북한이 재정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국영기업의 순소득에 의존하던 구조에서 탈피, 기업소뿐만 아니라 협동농장을 통해서도 재정 적자를 만회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7.1 조치가 중요한 이유는, 북한 당국이 북한 체제 내에서 시장 부문의 위상을 사실상 인정하고 용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 스스로 1940년대의 토지개혁(무상몰수, 무상분배를 통한 지주제 철폐)에 버금가는 사건이라고 평가했던 7.1 조치는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사실상 실패하게 된다.

7.1 조치 실패 이후 10년 후인 2012년 '6.28. 신(新)경제관리개선조치'가 발표된다. '6.28 조치'의 핵심은 "국가가 따로 생산품목이나 계획을 정해주지 않고 공장기업소들이 독자적으로 생산하고 생산물의 가격과 판매방법도 자체로 정하는 것"으로, 농업분야에서는 '국가 생산계획과는 관계없이 전체 수확량에서 70%는 당국이, 나머지 30%는 농민이 갖는 개혁조치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협동농장에서 농사를 짓는 기본 단위인 분조(分組) 규모를 현재 10~25명에서 4~6명으로 줄여 일정 토지와 농기구, 비료 등을 더 작은 분조 단위로 나눠주고, 생산한 농작물에 대한 자율 처분권을 대폭 늘려 생산 의욕을 높이려 했다.

그런데 6.28 조치가 제대로 추진되지도 못하고 소규모 분조 단위의 경작방식도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하는 사이, 북한 당국이 중국이 개혁개방 당시 농업 분야에 처음 적용했던 승포제(承包制)와 비슷한 '가족 단위 경작제'를 2013년부터 암묵적으로 허용할 방침이라는 기사(2012.9.24)가 흘러나왔다. 이는 작게 나눈 분조가 다시 가구별로 땅을 나눠도 문제 삼지 않겠다는 것으로, 사실상 '공동생산 공동분배'라는 사회주의 농업 시스템을 탈피해 '가족 또는 개인 책임 생산 및 잉여생산물 자유 처분'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묵인하겠다는 의미다. 최근 농민들의 새로운 '기대'는 바로 이러한 흐름에 서 있다. 농민들은 김정은 체제가 새롭게 제시한 정책 방향에 대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중국 농지개혁 모델의 중요한 특징

북한 농민이 기대하고 있는 중국식 '가구 단위 농지경영권 분배 개혁'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중요한 특징을 갖고 있다. 다만 북한 농민이 이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첫째, 중국이 실시한 가구 단위 농지경영권 분배 개혁은 실은 위로부터의 개혁이 아닌 민초들로부터의 개혁이었다는 점이다. 문화대혁명과 인민공사 시절을 거치며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중국 농민들 -토지를 가구별로 분배하여 경작했던 경험을 간직하고 있는 농민들- 이 외부에 비밀로 한 채 인민공사 소유 농지를 분배하여 경작하는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만약 이러한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엄한 처벌을 받아야 했기에 이들은 '생사협약서'를 맺기도 했다. 바로 중국이 공식적으로 농지개혁의 출발점으로 인정하고 있는 안훼이성 샤오강촌 이야기다(박인성·조성찬, 2011). 서둘러 개혁적인 조치를 취해야 했던 중국 공산당과 중앙정부는 이러한 성공적인 실험을 '추인'하고 전국에 확대 실시하는 역할을 감당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새로운 농지개혁 조치를 '기대'하고 있는 북한 농민과, 새로운 '모험'을 주체적으로 자발적으로 실험한 중국 농민은 출발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가정별 도급 경작을 몰래 결의한 안훼이성 샤오강촌 생산대 농민들의 생사협약서. ⓒ샤오강촌 대보간 기념관, 사진 박인성

둘째, 중국 정부는, 북한 농민이 기대하는 농지개혁 모델을 종착점이 아닌 중간역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문화대혁명 시기 인민공사에 이르기 전의 농지개혁 과정에서 초급농업합작사(初级农业合作社)라는 과정을 거쳤다. 재산권 구조는, 초기 농지개혁을 통해 토지'소유권'을 획득한 농민들이 자신의 농지를 농업합작사에 '출자'하고, 출자한 토지면적에 따라 이익을 분배받는 구조였다. 농업합작사의 진입과 퇴출은 개인의 선택이었다. 자료에 따르면 이 당시의 농업생산율 증가속도가 1955년의 경우 10.9%로 매우 높았다고 한다. 그런데 사회주의 전체 소유로의 개혁에 매진했던 중국은 초급농업합작사라는 과정에서 더 나아가 과도하게 개인의 농지재산권을 모두 집체화하는 인민공사 단계로 접어들면서 농민의 자발적인 생산의욕을 꺾어버렸다. 농민들이 재산은 물론 노동 의욕까지 상실한 문화대혁명 시기의 궁핌함은 더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 이후 '가구 단위 농지경영권 분배 개혁'을 실시하지만 새로운 한계에 접하게 된다. 농민들이 소규모 농지경영권을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권리마저 불완전하여 대규모 농업생산방식을 적용하기 어려웠으며, 그 결과 생산성 증가속도가 정체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1985년부터 현재까지 농업 발전속도가 둔화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중국 정부는 다시금 새로운 실험을 전개하고 있는데, 바로 농업합작사(농업협동조합) 실험이다. 이는 앞서 설명한 초기농업합작사와 유사한 구조인데, 차이점은 농지는 마을공동체가 공유하며, 개혁개방 당시 농지'경영권'을 획득한 가구가 자발적으로 농지경영권을 출자하여 농업합작사를 결성한 후 공동생산하는 방식이다. 한 마디로, 가구 단위로 농지경영권을 보유하고 있는 농민들이 농지'경영권'을 출자하여 공동 생산하는 농업협동조합 방식으로 전환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 농민이 현재 기대하고 있는 중국식 모델은 사실은 변증법적인 변화과정에 있는 중간 모델일 수도 있다. 북한은 아직 이를 인식하고 있지는 못한 것으로 보이지만, 협동조합 방식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가구 단위 농지경영권 분배 개혁', 농지 사유화의 출발 신호?

농지를 포함한 토지를 다루는 문화와 제도가 어떠한가는 그 문명의 수준을 판가름하는 지표다. 즉, 토지제도는 문명의 출발이자 마지막이다. 북한이 만약 가구 단위로 농지경영권을 분배하게 되면 이후에는 농지 사유화가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남한 중심의 통일이 전개될 경우, 그러한 남한 주민의 '기대'는 단순한 기대를 넘어 '욕망'으로 변질될 것이 분명하다. 그래야만 토지 불로소득에 중독된 남한 주민들이 새로운 블루오션인 북한에서도 동일한 욕망을 충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가구 단위 농지경영권 분배 개혁'을 실시한 후 다시 중국식 농업합작사 단계로 접어들지 말지는 중요하지가 않다. 중요한 것은 경자유전의 원칙에 기초하면서도 농지에서의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데 있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농지 이용방식 전환은 나중 문제다. 농지를 영구히 사유화하게 되면 결국에 가서는 경자유전의 원칙이 무너질 뿐만 아니라 농민들의 평등한 권리도 부정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남한의 농지소유 전개과정에서 목도하고 있으며, 최근 <추적 60분>이 방영한대로, 현직 국회의원의 5분의 1이 농지법을 위반하면서 농지투기를 저지른 실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개성공단 중단으로 남북경협은 물론 대화창구가 막힌 현 상황에서, 필자는 김정은 체제가 <환구시보>가 전달한 북한 농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여기에 더해 중국 농지개혁의 흐름을 파악해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농지이용 방식을 고민하길 바라며, 무엇보다 '가구 단위 농지경영권 분배 개혁'이 농지 사유화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오해를 주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평등지권에 기초한 경자유전 원칙은 사회주의 체제건 자본주의 체제건 불변의 법칙이다. 농민의 오래된 꿈은 정치체제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 하나누리 [한반도 현안 톺아보기](2013.5.8)에 기고한 기사를 수정·보완한 원고입니다.

[토지+자유 비평]은 토지+자유연구소에서 시사적인 이슈에 대해 쓴 글을 <프레시안>에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토지+자유연구소는 토지정의 철학의 현실적 적용을 위해 노력하는 비영리 독립 연구기관으로, 후원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운영됩니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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