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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자녀 우선 채용, 비정규직 분신…서글픈 노동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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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정규직 자녀 우선 채용, 비정규직 분신…서글픈 노동절

[박점규의 동행] 기아차 정규직 노조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비정규직 사내 하청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김승주(48) 씨는 전 세계 노동자의 기념일인 5월 1일 노동절이 행복하기는커녕 우울하고 속상합니다. 그가 가장 아끼고 좋아했던 후배 김학종(37) 조직부장이 "아이들에게 비정규직을 물려줄 수 없다"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한강성심병원 중환자실에서 지옥 같은 고통을 견디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승주 씨는 꼬박 10년 동안 기아차 광주공장에서 스포티지 문짝을 부착하는 일을 했습니다. 사내 하청 노동자 8명이 한 조가 되어 4개의 문짝을 다는 동안 정규직 노동자는 기아자동차 마크를 붙이거나 워셔액을 넣거나 윈도 브러시를 끼우는 일을 합니다. 또 다른 정규직은 핸들을 끼우거나 차 키를 입력합니다.

한마디로 무거운 문짝을 들어 조립하는 일은 비정규직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 하고, 힘이 덜 들고 손쉬운 일은 정규직 노동자가 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많이 오르긴 했지만 비정규직 월급으로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아이들의 학비를 대기 힘들어 그의 아내도 맞벌이를 합니다.

기아차 스포티지를 10년 만든 노동자

그가 가장 좋아했던 후배는 1공장에서 7년 이상 카렌스와 소울을 만들었습니다. 노동조합 경험이 전혀 없었지만, 현대자동차 사내 하청은 불법 파견이기 때문에 정규직이라는 대법원 판결을 보고 그는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겠다고 마음먹고 후배와 함께 비정규직 노조의 간부를 맡았습니다.

그가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한 10년, 기아자동차의 성장은 놀라웠습니다. 2003년 12조8000억 원이었던 매출액과 7500억 원이었던 순이익은 2012년 47조2000억 원과 3조 8000억 원으로 늘었습니다. 매출액은 4배로, 순이익은 5배로 늘어난 것입니다.

기아자동차 3개 공장에서는 3328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고, 광주공장에는 534명이 있습니다. 올해 기아차 광주공장은 62만 대로 증산을 하기로 했습니다. 300명가량의 인원이 필요하다고 했고, 조합원들의 기대는 컸습니다. 노조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신규 채용을 강행했습니다. 신규 채용에는 3만2000여 명이 몰렸습니다.

기아차에서 10년 동안 청춘을 바쳐 일했던 사내 하청 노동자들은 나이 제한 29세를 지난 지 오래였습니다. 사내 하청 노동자의 나이 제한을 35세로 늘린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기아차 매출액 4배, 순이익 5배로 늘었지만

여기에 기름을 부은 건 회사와 기아차 정규직 노조의 합의였습니다. 기아차 회사는 신규 채용을 거부하고 '모든 사내 하청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고립시키기 위해 광주공장에서 신규 채용을 강행하면서 '고용 지옥' 시대에 자식을 정규직으로 입사시키고 싶은 정규직 노동자들을 이용했습니다.

4월 12일 기아차지부와 회사는 '신규 채용 시 정년퇴직자 및 25년 이상 장기근속자의 직계자녀 1인에 한해 채용 규정상 적합한 경우 우선 채용함을 원칙으로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적용한다'며 △서류 전형 우대 25% 할당 △면접 적용 우대 5% 가점 부여 △총 동점자 우선 채용을 합의했습니다.

몇 해 전이었습니다. 철도차량을 만드는 현대로템의 장기근속 노동자들이 노조에 끈질기게 자녀 채용을 요구해 아들을 입사시켰습니다. 대신 아버지가 퇴직하는 조건이었습니다. 정년이 5년 남은 아버지는 퇴직금을 포함해 6~7억 원을 포기하면서까지 아들을 정규직으로 취업시켰습니다.

2011년 현대자동차 노사는 '고용 세습'이라는 사회적 비난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투쟁으로 조합원 자녀 우선 채용을 진전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기아차에서 똑같은 조건이라면 25년 넘게 회사를 위해 일한 노동자의 자녀에게 우선권을 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요구에서 더 나아가, 정규직 조합원의 자녀는 서류 심사만 문제가 없으면 신규 채용에서 절대적인 혜택을 받도록 합의한 것이었습니다.

연대 무너뜨리는 정규직 자녀 우선 채용

기아차 회사가 온갖 사회적 비난을 무릅쓰고 '정규직 자녀 우선 채용'에 합의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자녀 우선 채용으로 회사에 대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충성심을 높이고, 비정규직과 연대를 깨뜨려 '모든 사내 하청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무너뜨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기아차 정규직 노조는 정규직 조합원들의 요구라는 이유로 합의서에 서명했고, '사내 하청 우선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두 달 넘게 천막 농성을 벌이던 김 조직부장은 비정규직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 배제되는 신규 채용에 분신으로 항거했습니다.

그는 몸에 불이 타오르는 순간에도 '비정규직 철폐'를 외쳤고, 불이 꺼진 후에도 무릎을 꿇고 구호를 외쳤습니다.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서도 '비정규직 철폐 연대가'를 불렀습니다. 광주 병원에서는 치료가 어려워 그는 서울로 후송돼 한강성심병원 화상중환자실에 입원했습니다.

김승주 부장은 후배가 분신으로 항거한 지난 4월 16일부터 열흘 동안 한강성심병원에서 김 조직부장의 곁을 지켰습니다. 세 딸아이의 아빠가 몸을 불사르며 외쳤던 "아이들에게 비정규직을 물려줄 수 없다"는 말이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몸 불사르며 절규…"아이들에게 비정규직을 물려줄 수 없다"

그러나 기아자동차는 너무나 조용합니다. 금속노조, 민주노총을 넘어 시민사회단체 전체로 구성되어야 할 분신대책위는 기아차 공장 안에서 조용히 구성되었고 분신 후 열흘이 지나서야 첫 회의가 열렸습니다.

김 조직부장이 분신으로 요구했던 정규직화는 치료비와 생계비 등 분신 관련 교섭과 특별 교섭으로 분리됐고, 기아차 회사는 치료비와 생계비를 먼저 타결시키고, 정규직화는 현대차 특별 교섭이 끝나길 기다리며 시간만 질질 끌고 있습니다.

분신 2주가 흐르는 동안 광주공장에서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몇 차례 잔업 거부가 있었을 뿐 기아차 전 공장 차원에서는 단 한 시간의 작업 거부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희망은 연대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기아차 화성공장의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내 하청 대책위원회' 100여 개의 노동사회단체들이 현대기아차 본사와 한강성심병원 앞에서 촛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철탑 농성 200일이 되는 오는 5월 4일에는 울산과 서울에서 문화제가 열립니다.

▲ 전국금속노조가 4월 18일 기아차 광주 사내 하청 조합원 분신 사태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있다. ⓒ연합뉴스

5월 4일 현대차 비정규직 철탑 농성 200일 연대의 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세 딸아이의 아빠가 화염에 휩싸여서도 목 놓아 외쳤던 그 간절한 바람은 모든 사내 하청 정규직 전환을 통해 아이들에게 비정규직 인생을 물려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는 최근 병문안을 간 동료에게 "이 싸움에서 꼭 승리해 달라"고 했습니다.

신규 채용에서 회사를 위해 평생 일한 장기근속 노동자를 배려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같은 공장에서 절반의 임금을 받으며 10년을 일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가장 먼저 배려해야 합니다.

내 자식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일하는 일터부터 비정규직 일자리를 정규직으로 바꿔야 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고, 비정규직 노예법인 사내하도급법을 막기 위해 함께해야 합니다.

세계 노동절 123주년인 2013년 5월 1일, 자신의 몸을 불사른 비정규직 노동자가 병상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간절히 호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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