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윤여준 평화원장을 지난 8월 29일 만났다. 보수 진영뿐 아니라 진보 진영에서도 합리적 보수로 인정받는 그의 생각과 삶이 궁금했고, 그가 바라는 한국 사회의 보수의 모습과 진보의 모습, 또 미래상은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의 청년시절은 어떠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자유인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만났다. 그리고 이후 '안철수 돌풍'이 불어 닥쳤다.
▲ 윤여준 평화재단 평화연구원장 ⓒ프레시안(최형락) |
최근에 안철수 교수, 박경철 원장과 함께 <청춘콘서트>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분들과 <청춘콘서트>를 함께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평소에 청년들을 많이 만나면서 청년들이 일상화된 무한 경쟁 속에서 무엇엔가 정신없이 쫓기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청년들이 자신이 무엇에 쫓기는지, 왜 쫓기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에게 자신이 왜, 무엇에 쫓기는지, 사회 무엇이 문제인지를 구조적으로 인식하는 눈을 뜨게 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구조적으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해 가지 않으면 현실이 개선되지 않기 때문에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정치권과 국가에 그것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평화재단 리더십 아카데미' 강사로 박경철 원장을 초빙하게 되었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담소를 나눴는데 서로 놀랄 만큼 문제의식이 같았다. 박경철 원장은 안철수 교수도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고, 둘이 몇 년 동안 지방 대학을 돌면서 <청춘콘서트>를 통해 대학생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참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위로와 격려에서 그쳐서는 안 되고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눈과 시민의식을 갖도록 해야 두 분이 짊어지고 있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만 역량이 안 되서 다 못하고 있다고 하기에 나도 함께 돕고 싶다고 했고, 흔쾌히 승낙을 해서 같이 활동을 하게 되었다.
<청춘콘서트>를 하면 정말 열기가 대단하다. 한 예로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청춘콘서트>를 했는데 홀 수용 인원이 5000명이었다. 과연 모일까 했는데 모든 좌석이 다 찼다. 경희대 학생들에게 배정된 1000석을 제외하고 4000석을 인터넷으로 접수를 받았는데 4000석이 몇 초 안에 매진되었다. 현장의 열기도 대단했다. 비가 주룩주룩 오는데 사람들이 두 세 시간 전부터 와서 기다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젊은이들에게 갈증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젊은이들이 자기가 처한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박경철 원장과 안철수 교수의 이야기를 하나의 실낱같은 빛줄기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자신들이 살면서 겪었던 어려움, 그리고 그 어려움을 이겨낸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젊은 사람들이 실감나게 받아드리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의 말과 생애가 정합성이 있으니까 젊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신뢰하는 것이고, 그렇게 인기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우연한 기회인데, 평소에 박경철 원장, 안철수 교수 그리고 내가 공통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박경철 원장과 안철수 교수가 꾸준히 청년들을 위한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그런 우연히 찾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보면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던 것 같다.
근래 안철수 교수를 주목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안철수 교수에 대해 주목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청춘콘서트>를 하면서 안 교수를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고, 안 교수가 학생들에게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사람이 가진 공적인 헌신성에 놀랐다. 정작 공적인 헌신성이 투철해야할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공적헌신성이 의과 대학교수를 하다 IT 벤처기업을 했던 CEO 출신 학자에게서 어떻게 나올 수 있느냐는 생각을 했다. 컴퓨터 바이러스에 대한 제거법이 없던 때 개발한 백신으로 떼돈을 벌수 있었을 텐데 그것을 민간에 무료로 공급하고 바이러스가 진화함에 따라 몇 차례 지속적으로 개발하면서도 이후 7년간 백신을 무료로 공급했다는 것은 대한민국 역사상 찾아 볼 수 없는 공적 헌신성이다.
그런 면을 보고 이 사람이 이런 공적 헌신성이 있으면 차라리 사적인 헌신성이 높은 사람보다 이 사람에게 정치를 맡겨보면 더 낫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이 사람이 정치적 소양이 있나, 없나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없는 것 같기도 해서 아직 판단을 못하겠다. 정작 본인은 정치에 맞지 않다고 하는데 괜히 하는 말이 아니고 정말 본인에게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농담으로 '(정치에) 맞는지 안 맞는지는 본인보다 남이 더 잘 아는 수가 있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서 주목한다는 거다. 한국사회에 지도자가 워낙 없고, 지도자가 가져야할 자질 중에 가장 중요한 공적 헌신성을 갖춘 사람이 없다고 평소 보고 있었기 때문에, 뛰어난 공적 헌신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하나 찾았으니, 이 사람이 정치를 할 소양이 있거나 의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냐 하는 것 때문에 유심히 본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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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화재단'에 대해서 잘 몰랐고 법륜스님은 유명하시니까 그런 분이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일을 다 그만두고 집에서 쉬고 있던 어느 날 '평화재단' 사무총장님으로부터 법륜스님이 만나고 싶어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법륜 스님과 조찬을 하게 됐다. 3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눴는데 법륜 스님이 주로 남북 민족문제에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씀을 들으면서 어떻게 스님이 이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깊이 연구하고 헌신적으로 활동하나 생각하면서 깜짝 놀랐고, 공직의 녹을 먹은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다. 또 그 말씀하신 내용도 대단히 합리적이었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남북 민족문제를 해결하려면 스님께서 하신 말씀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다고 했더니 그러면 나랑 일을 좀 하자고 하셨다. 그런데 당장 '평화재단'이나 '정토회'가 어떤 곳인지 모르니까 일단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는 기자생활 할 때 버릇이 있으니까 '정토회'라는 곳에 가서 이것저것 틈틈이 관찰을 했다.
그랬더니 이 수련단체는 다른 단체와 다르더라. 첫째 기복적인 요소가 없다. 법륜 스님이 수련은 실천이라고 하시고 노동이 곧 수련이라고 하시는데 그 정신이 배어 있다. 사무실 집기도 산 것이 하나도 없다. 다 주어온 것이다. 아주 독특한 곳이다. 또 신자 수가 많지 않지만, 신자들이 정신이 투철해서 응집력이 뛰어나고 헌신성이 높고 그렇다. 그래서 다른 단체가 100명으로 하는 일을 30명으로도 할 수 있다. 연중 쉬지 않고 활동을 하지만 예산은 얼마 들지 않는다. 법륜스님이 '평화재단' 말고도 북한 소식 만드는 좋은 벗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시민단체 'JTS(Join Together Society)' 등 많은 일을 하지만 신자 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렇게 관찰해 보니 법륜스님 개인도 그렇고 수련단체도 그렇고 흔히 생각하는 종교단체와는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는 신뢰가 가고 이런 사람들과 일하는 것이 보람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와중에 법륜스님이 자꾸 저에게 일을 넘기면서 "원래 저는 본업이 있는데 장관님 같은 분이 마땅히 해야 될 일임에도 불구하고 안하니까, 나 같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까?" 라면서 '평화재단' 전체를 맡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못한다고 했더니 그러면 연구원장과 교육원장을 맡으라고 하셔서 그것마저 안한다고 할 수 없어서 맡게 되었다.
연구원과 교육원만 해도 일이 굉장히 많다. 연구원은 한반도 평화문제를 연구하는 모임을 꾸준히 진행한다. 60명 가까운 전문가가 5∼6개의 그룹으로 나뉘어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토론한다. 교육원은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서 시민들에게 좋은 강의를 지속적으로 제공한다. 처음에는 '평화 리더십 아카데미' 하나만 했는데 짧은 시간에 청년 아카데미, 대학생, 교사, 여성 등으로 분화되었다. 시간표를 짜고 강사들을 섭외하는 것이 어렵긴 하지만 지금까지는 시간이 안 맞는 게 아니면 거절하는 분이 없어서 우리 아카데미는 누가 봐도 강사가 쟁쟁하다. '평화 리더십 아카데미'는 수강료가 50만 원인데, 처음에는 누가 오겠냐며 걱정을 했다. 그런데 좋은 사람들이 많이 오고 오히려 수강생들이 '대한민국에서 50만 원 내고 이런 강의를 듣는 곳이 없다'고들 한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사는 것 같지만 다 속으로는 모두 의식이 있는 것이다. 그런 의식으로 여기 와서 뭔가 좀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오는 것이 아닌가? 이런 분들이 강의를 수료하고 나면 사람들이 또 굉장히 달라진다. 이번 <청춘콘서트> 진행할 때도 코스 수료한 분들 중에 몇 분이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새벽과 한밤을 가리지 않고 모여 머리를 싸매고 기획에 동참 했다.
그렇게 일하면서 나 스스로도 많이 배우고 젊은 사람들과 계속 대화를 하니까 생각이 많이 젊어진다. 그 길밖에 없다. 나이를 먹으면서 시대를 앞서갈 수는 없지만 따라갈 수는 있다. 계속해서 나오는 책을 보면서 흐름을 따라가고 젊은 사람들 만나서 기탄없이 이야기 하면서 내 생각을 바꾸기도 하고 그러면서 따라가는 거다. 나는 요즘 이런 생활에 대단히 만족한다. 다만 물리적으로 너무 바쁘고 하니 체력이 많이 고갈된 것 같다. 오늘도(8월 29일) 집에서 6시 40분에 나왔는데 밤 12시 넘어서 들어갈 것 같다. 지난번에 밤 11시에 들어갔더니 아내가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들어와요?" 하더라.(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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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재단'에서 '리더십 아카데미'나, <청춘 콘서트> 등을 통해서 청년들을 많이 만나고 있다. 청년 윤여준은 어떠했나?
나는 고등학교 시절을 투병생활로 보냈다. 중 3때부터 진행된 병을 모르고 있다가 고 1때 병을 진단 받았다. 사실 그 때는 6.25사변 때라 웬만한 병은 병으로 취급되지도 못한 때였다. 그저 먹고 살아남는 것이 중요한 때였으니까.(웃음) 선친 친구 분 중 의사들이 있어 진료를 받긴 했지만, 당시 약이 없어서 치료가 불가능했다. 아버지 친구 의사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야! 내가 너 병을 뻔히 알지만 약이 있어야 고쳐주지" 그러시는 거다. 당시 미군 부대 등에서 흘러나오는 약은 주로 군인들에게 지급되는 약이라 외과적인 약이어서 내과적인 질병을 치료할 약이 없었다. 있다면 비타민 정도?(웃음) 그래서 민간요법으로 몸에 좋다는 것은 다 먹고 시골에 가서 쉬기도 하고 그랬다. 그러면서 쉬어야했는데 책을 좋아해서 열심히 읽다보니 병이 낫질 않고 악화가 되어버렸다. 그러다 아버지에게 들켜서 책을 몽땅 다 빼앗기기도 했었다.(웃음) 하여간 그러다가 어느날 의사 선생님께서 "너 이러다가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라고 이야기 하셨다. 왜 그 분께서 어린 나에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셨는지 모르겠는데, 그날 집에 돌아가 의사 선생님께서 하신 이야기를 말씀드렸더니 어머니가 표정은 굉장히 어둡지만 놀라는 기색은 보이지 않으셨다. 아마도 부모님께는 의사선생님이 이미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 같았다. 그런데 죽을 수도 있다는데 뭐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죽는다는 게 뭐냐, 머 그런 철학적 사고를 하기 시작했다.(웃음) 여하튼 그렇게 투병생활을 했다. 살는지 죽는지를 모른다는 상태에서 몇 년을 지냈으니까 뭐, 청년다운 활동을 하거나,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가 민간요법과 한약이 늦게서야 효과를 발휘했는지 대학교 3학년 되는 해 몸이 조금 좋아져 그 해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 때 여름에 하루 종일 앉아서 영어공부를 했는데 땀이 흘러서 엉덩이 살이 물러지곤 했다. 지금도 웬만한 원서는 읽는데 지금 영어 실력이 다 그때 얻은 것이다. 여하튼 그 때 그렇게 공부를 해도 몸이 웬만큼 견디는 걸 보니 회복된 것 아닌가 싶어서 4학년 올라가던 해, 군대를 지원했다. 그때가 5.16이 난 이듬해(1962년)였는데, 5.16 때문에 군대에 안 다녀온 사람은 직장에서 다 쫓겨났다. 쉽게 말해서 군대를 다녀와야 직장엘 취업을 하든 뭐든지 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군대 지원병이 넘쳐나서 오히려 군대 갈 적령기에 있는 사람이 제 때 군대를 갈수가 없었다. 그래서 병무청에 아는 사람에게 돈을 써 가지고 군대에 지원을 했는데 나중에 집에서 그 사실을 알고는 난리가 났다.
"야! 너가 지금 몸이 어떤데, 오히려 돈을 써서 군대에서 빼와야할 얘가 돈을 써서 군대에 가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아버지가 아주 호되게 야단을 치셨다. 그래서 그때 "몸이 얼마나 회복이 됐는지 정확히 측정할 수도 없고, 어차피 남자면 군대를 다녀와야 되고, 훈련을 받다가 몸이 아프면 거기도 병원이 있으니까 뭐 죽기야 하겠습니까. 그리고 만약 훈련을 이겨내면 내가 상당히 회복됐다는 증거니까 앞으로 모든 일을 자신감을 가지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부모님께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시더니 그런 뜻이면 다녀오라고 허락해 주셨다. 그래서 군대를 가게 됐는데, 마침 가장 모범적인 군대에 배치를 받게 되었다. 그때 모범적인 군대는 매로 만들어진 군대였다.(웃음) 몽둥이로 엄청 기합을 받았다. 그렇게 얼차래도 수십 번 받으며 고생을 많이 했지만, 여기서 낙오되면 끝이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랬는지 한 번도 낙오한 적이 없이 훈련을 잘 마쳤다.
오래 아팠던 터라 매사에 자신감이 없었었는데 그렇게 군대를 잘 마치고 나니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던 어느날 <동아일보> 견습 기자 모집광고를 보고 시험이라도 한번 쳐보자며 지원 했다. 그렇게 별 준비 없이 시험장에 갔는데 시험장 가는 도로가 사람들로 꽉 찼다. 나중에 알고 보니 1000명도 넘게 지원했더라. 그 사실을 알고 나니 기가 확 꺾기더라.(웃음) 준비도 많이 하지 못한 상황에서 시험을 봐서 별 기대 없이 놀고 있었는데 뜻밖에 <동아일보> 1차 시험 합격자 명단 50명에 내 이름이 실려 있었다. 그래서 2차 시험을 보게 되었고, 여러 가지 취재기자 시험과 면접을 마치고 최종 합격자 16명에 들어 <동아일보>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렇게 기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쨌든 지금 되돌아보면 나의 청년시절이라는 것은 병마하고 싸운 기억밖에 없다. 사느냐 죽느냐를 알 수 없는 상황이었고, 산다고 하더라도 온전하게 살 수 있을지, 건강이 회복될 수 있을지 확실치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청년다운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덕분에 엄청난 양의 책을 읽긴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을 가지지 못했던 것이 너무 아쉽다.
청년들을 볼 때마다 이야기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청년이여 시민이 되자!' 물론 우리가 국민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하고, 권리도 주장해야겠지만, 국가는 국민이 늘 감시하고 견제하지 않으면 국민의 이름으로 엉뚱한 일을 하게 되어있다. 한 서양의 학자는 국가가 야만적 속성이 있다고까지 이야기했다. 우리도 경험했지 않은가. 왜 그런 일이 벌어지냐면 국민이 국가를 견제하고 감사하지 않아서 그렇다. 민주국가의 시민의식을 가지고 행동할 줄 아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
나는 죽을지 살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았고, 일생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 것을 믿고 살았다. 그렇게 살아보니 정말 그렇더라.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절망적 상황에서도 반드시 솟아날 구멍은 있다. 그것을 찾아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적 전환점에서 늘 변화를 추동했던 것은 젊은이의 에너지였다. 지금 한국사회가 엄청난 변화를 요구하는 그런 상황인데, 이걸 누가 끌고 가냐. 젊은이들이 끌고 가야지. 그러려면 의식이 있어야 한다. 정말 그 이야기를 청년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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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 더 정치적인 이야기로 넘어가보자.(웃음) 지난 8월 24일 무상급식 관련 주민투표가 있었고 결과에 따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사퇴를 했다. 이후 여야 할 것 없이 우후죽순으로 시장 후보들이 나오고 있다. 서울 시장으로 어떤 사람이 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
서울 시장은 21세기 초에 서울 시민이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되는지에 대한 철학적 비전이 있어야 한다. 그 철학적 비전에 따라서 어젠다와 정책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서울시는 외교, 국방을 빼고는 모든 분야의 행정이 다 있는 복합 행정이고 그 규모도 크니 행정 능력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시의회의 관계를 원활하게 하고 시민을 설득하며 갈등을 잘 조정하는 정치 능력이 있어야 한다. 과거에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지만 최근에 권력은 설득에서 나온다고 한다. 따라서 설득 능력 없이는 권력을 잡을 수가 없다. 설득 능력이라는 것은 말재주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도덕성 등 여러 자질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많은 후보들이 서울 시장을 대권 도전의 발판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국민들이 '저 사람이 서울시를 운영을 잘하니 나라 맡겨도 되겠다'고 생각하면 저절로 대통령감이 될 것이지만 지금 보면 정치인들이 거꾸로 생각하는 것 같다. 자신이 서울시를 운영할 능력이 있는지는 고민하지 않고 시장을 하면, 대권 도전의 발판이 되니까 다투어서 시장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민의 입장에서 볼 때는 아주 위험한 생각이다. 자질을 갖춘 사람이 서울시를 운영하면 국민이 대통령을 만들어 줄 것 인데, 그러기 전에 자신의 능력과 자질을 고민하지 않은 채 대권 도전의 발판으로 생각하고 시장후보로 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단정할 근거는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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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 보수 진보로 싸우는데 이념 정당 아닌가?(웃음) 이게 고질병인데 의외로 답은 쉬운데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평소에는 언론도 이념의 대립의 시대가 지나갔으니 민생을 중심으로 한 정책 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언론부터 어느 정당이 공을 들여서 정책을 내어 놔도 관심이 없다. 국민도 마찬가지다. 어떤 정책을 보고, 이게 국가에 유리한 것인지 나한테 유리한 것인지 관심이 없다. 이렇듯 언론과 시민들이 정책에 대해 무관심하기 때문에 정당도 굳이 정책 정당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정책을 애써 만들어도 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한국 정치가 상당기간 강고한 지역구도로 왔기 때문에 지역 구도를 가진 정당은 지역 주민들의 지역 감정만 자극을 잘하면 자기 당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를 가져갈 수 있다. 호남에 기반을 둔 정당은 영남을 자극해서 결합시키고, 영남에 기반을 둔 정당은 호남을 자극해서 결합시키는 적대적 공생관계가 이미 완고히 뿌리내린 것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왔기 때문에 정당에게 정책 정당이 되라고 주문해도 소용이 없다.
결국 국민이 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평가해서 지지로 연결하는 수준까지 가지 않으면, 정당에 아무리 좋은 말로 권유해도 정책 정당으로 바뀌지 않는다. 모든 것을 국민에게 돌리는 환원주의 같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 민주주의도 정부도 그 국민의 수준에 맞는 것을 가질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국민수준이 결정한다고 봐야 한다. 환원주의라고 해도 할 수 없다.
평소 보수 진영은 물론 진보 진영에서도 인정받는 합리적 보수로 손꼽히곤 한다. 윤여준에게 진보와 보수란 어떤 의미인가?
나에게는 평소에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적 패러다임 자체가 없다. 한국에서 가르는 보수와 진보라는 것은 유럽에서 가르는 것과 다르고, 순전히 북한과 미국의 태도가 그 기준이 된다. 이것을 가지고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싸우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일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보수와 진보가 아니라 균형과 합리성이다. 균형 있는 시각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해서 어떤 정책이 대한민국에 적합하고 필요하다면, 그것이 진보정책인지 보수정책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균형과 합리성으로 판단하면 되는데 이 기준을 뒤로 미뤄놓고 보수와 진보가 이념을 놓고 싸운다는 것은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다. 아마도 모든 문제에 이념적 색깔을 입히면 상대방을 제압, 공격하기 쉽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오세훈 전 시장이 '무상급식 지원 범위에 관한 주민투표'를 붙이면서 이것을 '낙동강 전선'이라고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무상급식 지원 대상을 소득구분을 두고 하느냐 소득구분이 없이 하느냐, 지원 대상 확대 방식을 몇 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하느냐 내년에 전면적으로 하느냐 하는 것이 왜 낙동강 전선인가? 낙동강 전선은 6.25전쟁 당시 마지막 방어선으로, 낙동강 전선을 사수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존립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나온 말이다. 이것은 보통 전선이 아니다. 어차피 무상급식을 하자는 것은 같고, 방법이 좀 다른 것뿐인데 왜 여기에 이념의 옷을 입히는가? 아마도 오세훈 전 시장이 이 문제를 이념 대결로 가져가면 싸움이 쉽다고 생각했거나, 이길 확신이 있다는 생각이 있지 않았냐는 짐작이 가는데 만약 그렇다면 중대한 오판을 한 것이다.
우선, 지금 한국 사회의 이념 지형이 강경보수를 지향해서 이길 수 있는 지형이 아니다. 또한, 아이들한테 열등감이든 우월감이든 차별의식을 심어주지 말자는 것은 교육적 관점이고 진보가 주장했더라도 옳은 주장이다. 다른 쪽 주장은 왜 부자집 아이까지 우리 돈으로 밥을 먹이냐는 것인데 이것은 철저하게 경제적 관점이다. 따라서 무상급식 주민 투표는 교육적 관점과 경제적 관점의 충돌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을 극단적인 이념 대결 구도로 가져가는 것은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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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 사회는 소모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논쟁 수준에서 벗어나야 된다. 물론 분단 현실이 아직 우리 앞에 있다고 하지만, 그럴수록 지식인들은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그걸 자꾸 끌어다가 싸움의 도구로 쓰니 국민들이 얼마나 피곤한가?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 요구되는 보수와 진보의 모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둘 간에 이념적, 감정적 대립이 아닌 상생적,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진보와 보수에 대한 나의 생각이 무엇이든 통념상 분류되는 진보와 보수로 생각을 하고 이야기 한다면 우리나라의 보수는 따뜻한 보수, 인간의 얼굴을 한 보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수는 스스로를 따뜻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많은 서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60년, 그러니까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것은 보수 세력이었다. 그 시간을 지나면서 서민들이 겪었던 것이 있을 텐데, 그 경험 속의 보수가 따뜻하지 않았던 것이다. 소외된 사람을 배려하고 나하고 다른 차이를 포용하는 보수, 따뜻하고 열린 보수가 되어야 보수의 장래가 밝다고 생각한다.
반면, 진보는 현실에 바탕을 두어야 하는데 너무 거대 담론에 빠져있는 것 같다. 거대담론 제시하고 가치만 추구하다가 민생이 망가져서 정권을 뺏긴 것이 아닌가. 그런데 진보는 민생을 소홀히 한 실수도 인정하고 실패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많이 반성도 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진보가 보수보다 자기성찰을 더 잘하는 것 같다.
우리 국민이 민주주의를 존중하고 지키려고 하지만, 그렇다고 가난한 민주주의는 싫어한다. 민생이 망가지면 민주주의를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다. 또 경제적으로 풍요하다고 해서 권위주의를 용인하지도 않는다. 지도자는 이런 국민의 마음을 알고 민주주의와 경제, 민주주의와 민생간의 상관관계를 알아서 균형을 잡아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다.
보수와 진보는 사람 '人'자와 같아서 서로 의존해서 같이 가야 한다. 진보가 정권을 잡을 때는 보수가 끊임없이 도전을 해줘야 진보가 건강해지고, 보수가 정권을 잡을 때는 진보가 끊임없이 도전을 해줘야 보수가 건강해진다. 둘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보적인 관계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원수같이 싸운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진보와 보수는 누가 국민을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놓고 어떤 방식이 효과적인지 경쟁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이 선택하는 것이다. 국민의 선택으로 보수가 한동안 집권하다가 어떤 이념, 제도, 정책이든지 모순이 없을 수 없기 때문에 보수의 모순이 생기게 되면 국민이 보수의 모순을 보고 진보에게 권력을 맡긴다. 그러면 진보는 보수의 모순을 해결하고 한동안 집권하지만 그 안에서 또 새로운 모순이 생기게 되고 그러면 국민은 보수에게 권력을 맡긴다. 이런 식으로 진보와 보수가 서로 번갈아 집권해가면서 역사가 발전하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는 역사 발전의 두 수레바퀴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놓고 싸운다. 이유는 분단이라는 우리 현대사 때문이다. 우리 현대사는 대결의 역사이다. 단독정부를 수립해서 분단, 6.25전쟁 등 남북 간에 끊임없는 무력·정치적 대결을 해왔다. 이러다 보니까 남북 간 대결이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이고, 우와 좌의 대결이고,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런 대결 구도가 우리사회에 체질화·내면화 되어버렸다. 서로 경쟁하는 두개의 수레바퀴, 비행물체의 양 날개가 원수가 되면 물체가 어떻게 전진을 하겠나. 싸우지 않고 경쟁하면 되고, 국민이 선택하면 되는데, 경쟁에 자신이 없으니 서로 투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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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은 금방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통일을 향해 가는 긴 과정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과정에서 우선은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남북한이 군사적으로 국제법상 종전상태를 만들고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그 기반 위에 경제적으로 협력하는 공동체를 만들고 평화와 경제 번영을 위해서 함께 노력하다보면 어느 때 가서는 우리 이러느니 정치적으로 단일 체제를 만들자고 하는 때가 오지 않겠는가. 어느 상태를 통일로 보느냐에 대해서는 단일 정치 체제를 통일로 보는 분도 있고, 사실상의 통일을 이야기하는 분도 있는데 어떤 통일이든 간에 내년, 내후년에 통일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평화체제를 만드는 것만 해도 쉽게 되지 않을 것이다. 상당히 많은 장애가 있고 많은 논란이 있을 것이고 그 과정을 거쳐 평화체제를 만들어도 그 바탕 위에 경제 협력을 어떻게 해 갈 것이냐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하나씩 단계를 밟아가는 것이 통일의 과정이다. 언제 통일이 되겠냐 하는 것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다만 크게 나누면 앞서 말한 두 단계를 거쳐서 통일로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희망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미래상이 있다면?
우리가 앞으로 남북통일을 하려면 궁극적으로는 북한 주민의 선택이 중요하다. 독일 통일도 사실상 흡수통일이지만 형식과 과정은 합류통일 즉, 동독 주민이 투표로 서독체제를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북한 주민이 남한 사회를 선택하지 않고 분단된 상태 그대로 살겠다고 선택하거나, 중국 사회를 선택할 수도 있는 일이다. 절대 다수의 북한 주민이 남한 사회를 선택하게 하려면 우리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북한 주민이 볼 때 동경할만한 사회여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이 통일한국의 바람직한 미래상이라고 할 수 있는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통일한국의 바람직한 미래상이 되려면 한국 사회를 총체적으로 바꿔야 한다. 흔히 말하는 개혁이 되었든 선진화가 되었든 한국 사회를 총체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한국 사회를 북한 주민이 동경할만한 사회로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모순이 무엇인가? 바로 양극화이다. 양극화를 완화하지 않으면 체제가 폭발할지도 모른다. 정치적으로는 제법 평등을 누리고 있지만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불평등이 심각한 상황이다. 이런 불평등이 완화되어서 한국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서민들이 한국사회가 불공정사회, 불공평사회라고 생각하지 않게 해야 한다.
이런 상태로는 통일도 어렵고, 굳이 통일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 국민들이 이런 사회를 더 이상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면 시장경제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양극화 구조를 만든 사람들이 계속 시장에 맡기라고 한다고 한들 국민들이 어떻게 시장을 신뢰하겠는가? 경제정의, 경제민주화가 전제 되어 있지 않으면 시장경제는 약육강식의 사회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나라 시장은 소수의 기업이 독과점하고 있는데 이것은 건전한 시장경제가 아닐 뿐 더러 국민들이 장기적으로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심각한 모순구조를 빨리 바꿔야 한국 사회도 건강하게 발전하고 북한 주민들도 기꺼이 남한체제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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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은 공동체 다수를 점하는 사람들의 희망 요구 기대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국 사회를 이끌어갈 시대정신은 '공생'이 아닐까. 똑같이 살자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 다소 추상적일 수 있지만 그런 사회를 모두가 바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공생하는 사회는 나누지 않으면 만들 수 없다. 권력과 부와 기회를 모두 나누어서 사회가 연대의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 국가는 정치 공동체인데 정치 공동체는 구성하는 사람들 사이에 유대가 없으면 형성 및 유지가 되지 않는다. 그 유대는 공공성이 만든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공생이 시대정신이라고 본다.
내년 선거에서 아마도 '복지'가 대세를 가르는 큰 이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복지도 공생과 직결되는 것이다. 헌법 제 34조 1항이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인간다운 생활은 정신적인 풍요와 물질적인 풍요가 균형 있게 잘 갖춰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통령 직을 맡은 사람은 "헌법에 인간다운 생활할 권리가 명시되어 있는데 제가 생각하는 인간다운 생활의 조건은 이런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그것을 위해서 이런 정책을 펴겠습니다"라고 국민에게 보고하고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여태껏 어떤 대통령도 이런 일을 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만해도 한국 사회에서 복지는 개인과 가정이 담당할 몫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가정이 복지를 감당하기가 어려워졌다. 예를 들어, 중산층 가정이 한 자녀의 대학등록금을 감당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주거, 교육, 의료 등 이 모든 것을 가정이 어떻게 다 감당할 수 있는가? 그렇기 때문에 국민이 이제는 '국가가 복지의 상당부분의 몫을 감당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그렇게 하고 있는 선진국들을 보게 되면서, 복지에 있어 국가가 해야 할 몫이 있다고 국민 스스로가 눈을 뜬 것이다. 그랬으면 국가는 이를 당연히 수용해야 한다. 복지는 헌법상 국민의 당연한 권리이고, 국민의 복지를 챙기라는 것이 헌법상 의무 조항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국가 지도자는 일차적으로 이를 수용해야 하고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예컨대, 국가의 경제능력 밖의 복지는 할 수 없으니 우리가 예상하는 경제 발전단계로 봐서 이상적인 수준의 복지가 가능하려면 얼마만큼 시간이 걸리는지 전문가들과 같이 예측하고, 그때까지 몇 단계를 거쳐야 하는지 또 당장 내년, 내후년에는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등을 전문가와 여야 정치권, 정부가 같이 토론하고 고민해야한다. 그래서 국정의 우선 순위에서 복지를 이전보다 높은 순위로 끌어올려서 실질적인 노력을 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국민들이 그 과정을 보고 그것을 지지 또는 반대하면서 공론화 과정을 거칠 수 있다.
그런데 한나라당의 몇몇 인사들이 국민들의 복지확대 요구를 '망국 풍조다, 포퓰리즘이다' 하면서 발길질을 해 버렸다. 그것은 원칙으로도 맞지 않고 전략적으로도 현명하지 않다. 요는 '공생이라는 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권력과 부과 기회를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나눔의 정신으로 살아야 공생이 가능하다. 나는 공생이 시대정신이 되어야 한다고 보고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를 비롯하여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대선 후보자들이 출현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미래 한국을 이끌어 갈 리더로 어떠한 인물상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세대에 필요한 리더십은 어떤 리더십인가?
사회에는 여러 부문의 리더와 리더십이 있는데 국가의 리더십은 그런 리더십과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이다. 국가는 여타 공동체와 다른 고유의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사람들이 이것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CEO 리더십이 가장 이상적인 리더십이라고 얼마나 떠들어 댔는가? 이명박 대통령이 그 덕을 좀 봤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CEO는 부문의 리더십이고 국가 리더십은 아니다. 국가의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상당한 자질을 갖추어야 된다. 우선 국가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국가가 어떤 특성을 가졌는지, 국가를 끌어가려면 어떤 자질이 있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있다. 어떤 자리를 원하면 그 자리에 맞는 자질을 키우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그런 것은 안하고 야망과 욕심만 키운다. 과연 역대 대통령 중에 우리 헌법을 제대로 읽어본 대통령이 몇이나 될까?
우리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이다. 이는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추구하는 나라라는 뜻이다. 최소한 대통령이 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고, 그 유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공화주의의 원리는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공화주의라는 것은 인민이 다스리는 나라라는 말로, 군주주의의 반대말이고 그 정신은 공공성을 존중하고 추구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통령들 중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성장시키고 성숙시킨 분이 몇이나 있었나? 물론 본인들은 모두가 그것을 한다고 했겠지만 지금에 와서 우리가 평가해 볼 때 민주주의 정신과 가치, 공화주의 정신과 가치를 충실하게 구현하려고 애쓴 대통령이 있었는가?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야망이 있다면 야망에 부응하는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 자질 없이 권력에 대한 욕심만 가지고 권력 그 자체를 목적으로 추구하니, 정말 문제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있어도 정치인이 스스로 각성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제부터는 유권자인 국민이 그런 지도자를 뽑지 않아야 한다. 찍고 나서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우선 민주주의 국가의 주권자인 국민들이 지도자를 선출할 때 사적인 연고, 이를테면 동향, 동창, 친척, 친구 등의 이유로 선택하지 말고 공적인 기준으로 선택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국가가 당면한 과제를 해결해갈만한 자질과 능력과 경험을 갖추었는지를 보고 선택해야한다. 그래야 공공성이 살고 공동체가 살 수 있다. 또 환원주의가 되어 버렸는데 모든 것이 국민으로 출발해서 국민으로 돌아간다. 근본주의, 환원주의라는 비판을 받을 지도 모르겠지만 나의 짧은 생의 체험으로는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인다. 정치인 스스로 각성하여 갑자기 딴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적은 기적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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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터뷰의 제목이 '自由人' 인터뷰다.(웃음) 매번 꼭 물어보는 질문인데 자유주의란 무엇인가? 더불어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유주의 논쟁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자유주의 역사가 길고 복잡해서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자유주의는 쉽게 말하면 '인간의 자유를 구현하기 위한 이론적인 체계'라고 말할 수 있다. 자유의 사상은 플라톤으로부터 내려 왔는데 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로 바뀐 것은 서구의 계몽 시대이다. 존 롤스, 로버트 로직, 하이예크, 프리드만, 최근에 마이크 센델 등 수많은 정치철학자들이 각기 다양한 이론을 전개해 왔다.
서양의 자유주의 역사가 어찌 됐든 문제는 우리 사회가 가진 자유주의 역사이다. 대한민국은 현대에 들어와서 자유민주주의를 도입했다. 6.25 전쟁을 치르면서 우리는 공산주의 침략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많은 피를 흘렸다. 이런 면이 우리 자유민주주의가 가진 역사성이다. 이 역사성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나라의 자유주의가 반공자유주의였기 때문에 반공의 이름으로 자유주의가 자유를 탄압하고, 민주주의가 민주를 탄압하는 역사가 있었다. 이것 또한 우리 자유민주주의의 역사성이다. 대중들은 헌법에 자유민주주의가 명시되어 있고 정치인들도 입만 열면 자유민주주의를 이야기하지만,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자유를 탄압하고 독재하는 것을 보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게 된 것이다.
보수는 공산주의로부터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온 세력으로 자부를 하는데 그런 자부심은 가질 만하다. 그런데 그 면을 한국 보수 세력의 빛이라고 한다면,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자유를 탄압하고, 민주주의 이름으로 민주를 탄압한 어두움도 있었다. 그 어두움의 역사를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 보수 세력은 인정을 해야 한다. "우리가 자유주의를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리며 투쟁했다. 그 점은 훌륭하다. 하지만 우리의 자유주의가 반공 자유주의다 보니 공산당과의 싸움에서 당장 이겨야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인해 인권을 탄압했다"라고 지난날의 과오에 대해 인정하고, 그 부분에 대해서 국민들에게 참회해야 한다. 그러면 한국의 보수가 도덕적 권위를 회복할 수 있다.
이미 지난 역사이고 과(過)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산업화나 경제개발과 같은 공(功)도 있었으니 어두움을 인정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런데 한국 보수 세력은 그 부분에 대한 자기 성찰을 하지 않고 빛의 부분만 이야기 한다. 상당수 사람들이 이 어두움을 기억하고 있는데 빛만 이야기하고 어두움을 인정을 하지 않으니, 보수가 자꾸 소수가 되어가고 소수가 될수록 완고해지고 완고해질수록 사람들에게 멀어지는 것이다. 강경 보수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싫어하지만,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어두움을 인정하자고 말한다. 누구에게나 과오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사복을 채우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는 이 길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한 것인데 그게 왜 부끄러운 일인가? 지금이라도 국민에게 사죄하면 국민이 그것을 양해해 줄 것이고 도덕적 권위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도덕적 권위를 회복하지 못하면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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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교육과학기술부가 '사회과 교육과정'을 고시하여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사회, 역사 등의 과목들에서 '민주주의' 라는 개념 대신 자유민주주의를 사용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이로 인해 논란이 있었는데 이 모든 것이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의 역사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우리나라 헌법은 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이다. 그런데 우리 헌법은 제119조 2항 같은 사회민주주의적인 가치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라고 표기하는 것을 불편해 하는 사람들은 주로 과거에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권력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얼마나 탄압했는지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자유주의라는 것을 떼고 싶어 한다.
반면 자유민주주의라는 표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로 족하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 여러 가지 형태의 민주주의 중에 특별히 인민민주주의라 불리는 공산주의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 걸고 싸운 사람들로서는 공산주의와 선을 그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한국 사회 특유의 자유민주주의의 역사성 때문에 양측이 서로를 의심하고 불신한다. 이러한 의심과 불신은 피차 이야기를 하면서 해소해 가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분들은 우리가 이야기 하는 자유주의는 사회민주주의적 가치를 배제하는 편협한 자유민주주주의가 아니라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리고 교과서에 실린 '민주주의'란 용어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려는 의도가 '사실은 교과서 개정 후 헌법 개정을 통해 사회민주주의적 가치를 가진 헌법 제119조 2항을 삭제하기 위한 전초전이 아니냐'는 데 대한 의구심을 풀어줘야 한다. 또한 자유민주주의 대신 그대로 민주주의라고 표기할 것을 주장하는 분들은 자신들의 진의가 인민민주주의나 민중민주주의를 국가 체제로 선택하자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이야기해주면 된다. 그런데 그것을 서로가 안한다. 서로가 불신하고 의심하기 때문이다.
정말 의미 없는 소모전이다. 한국 특유의 자유민주주의의 역사성에서 나오는 서로의 의구심들을 풀어내고 피차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면 되는데, 사사건건 싸우니 사회가 안 그래도 다원화 돼서 갈등이 많은데 국민들이 얼마나 피곤한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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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준에게 자유란?
국가 안에서의 자유(liberty in state), 국가를 통한 자유(liberty through state), 국가로부터의 자유(liberty from state), 즉, 독재 권력으로부터의 자유가 있다. 그런데 개인적 의미의 자유도 있지만 사회적 의미의 자유도 중요하다. 사회적 의미의 자유 측면에서 생각해 볼 때 내가 생각하는 자유는 국가 권력으로부터의 자유(liberty from state)다. 그런데 요즘에는 국가만이 아니라 자본권력으로부터의 자유도 굉장히 중요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요즘은 자본권력이 국가권력을 압도하지 않나. 그런 자유를 늘 존중하고 그런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투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식이 시민의식이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자본의 편에서 자본을 보호해야한다고 하는데, 지금 이야기를 들어보면 굉장히 진보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본으로부터 자유를 찾을 수 있어야 자본을 보호할 수 있다. <조용한 접수(The Silent Takeover)>라는 책의 저자인 노리나 허츠(Noreena Hertz) 교수는 자본이 국가를 접수했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외국에서도 이미 자본권력이 정치권력을 제압한 것은 오래 됐고 이제 국가권력이 자본권력에 압도당하는 상황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재임 기간에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라고 하지 않았나. 그 이야기를 듣고 "이런 무책임한 대통령이 있나. 빼앗겨 놓고서 푸념을 하면 어떻게 하나. 안 뺏겼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렇듯 국가는 특정기업의 이익이 아니라 공공성을 추구해야하고 다수 국민의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공동체인데, 특정 기업,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이런 상황은 심각한 문제를 가져온다.
앞으로는 지식기반 경제 정보산업의 혁명으로 20% 지식근로자가 경제 전체를 이끌고 노동자 대다수인 80%가 도태되는 20대 80의 사회가 된다고들 한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80%에 속한 사람에게도 한 표, 20% 사람에게도 한 표를 준다. 그런데 어떻게 80%의 사람을 무시하고 20%의 사람만이 살 수 있는가? 그 체제를 80%의 사람이 용납하겠는가? 예를 들어 안철수 교수가 대기업을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그것은 대기업을 때려 부수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계속 그렇게 가면 결국 대기업도 죽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그 약탈적 경영을 언제까지 서민이 참을 수 있겠는가? 이것을 고쳐야 대기업도 살고 시장경제도 건강해지고, 자본주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본권력이 거대해지면 기업, 자본을 위해서 좋지 않다. 자본을 살리자고 자본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건데 그런 면에서 나는 보수다.(웃음) 그리고 사실 표현 몇 가지, 개념 몇 가지 등으로 진보, 보수를 가르고 구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싶다.(웃음)
다시 개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평소 전략가로 유명하다. 한국에서 손꼽을 만한 전략가가 있다면 누가 있을까?
전략통이 되려면 정치와 정책을 알아야 되고 거시적인 안목과 미시적인 안목이 다 있어야 하고 분석능력과 종합능력도 다 갖춰야 하기에 전략가가 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전략가 근처에도 갈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그런 기준으로 보면 적합한 사람이 많지 않지만 나의 비교적 짧고 좁은 체험으로 보면 국무총리를 했던 이해찬 씨가 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해찬 씨는 선거 전략이 뛰어난 사람이고 우리나라 정치인 중에 그 만큼 정책을 많이 아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이전에 한나라당에 있을 때 저런 사람이 한나라당에 한 명만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분이 국무총리를 하면서 오만한 태도를 보여서 국민들한테 많은 지탄을 받아서 지금에 와서 그런 말을 공개적으로 하기가 조심스럽다. 평소에 만나볼 때는 그런 분이 전혀 아니었는데 의도적으로 그렇게 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국무총리가 되어서 보여준 모습은 평소에 알던 모습과는 굉장히 달랐다. 하지만 전략가로서 그만한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
ⓒ프레시안(최형락) |
정치인이나 정책전문가, 선거전략가 되고 싶어 하는 청년들이 많은데 전략가가 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면?
우선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독서량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나는 정치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한 사람의 교양인으로 성장하려면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듯이 지식도 광범위하게 섭취해야 균형 잡힌 사람이 되겠다 싶어서 책을 광범위하게 정말 많이 읽었다.
기자 생활을 시작할 때는 정치학이론을 주로 공부했다. 또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을 기르기 위해 문학 평론을 열심히 읽었다. 문학평론에는 논리의 단계가 면도칼처럼 치밀하게 쪼개져 있어 논리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고 어휘력도 길러진다. 그러다 내가 하는 일이 황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시를 많이 읽었다. 시에는 가장 정련된 언어가 있고 시심을 기를 수 있어서 좋다. 인문학이나 역사학 쪽만 읽는가 싶어서 양자물리학 책을 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개념도 못 잡고 어렵기도 했지만, 쭉 읽어 나가면서 사고의 충격을 경험했다. 특히, 주관이나 객관의 구분이 없고 모든 것이 관찰자의 주관이라는 것을 양자물리학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그 깨달음을 준 대표적인 것이 빛이다. 빛은 입자인 동시에 파장이고, 파장인 동시에 입자이다. 관찰자가 언제 관찰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그렇게 보면 객관은 없다.
선친께서 가르쳐 주신 교훈이 목표를 정하고 최선을 다해 추구하되,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어려서는 그 의미를 잘 몰랐는데 커서 그 의미를 알게 됐다. 사람이 결과에 집착을 하면, 야비하거나 비굴하거나 치사한 짓을 하게 되니까 결과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씀이셨다. 최선을 다하고 나면 이루어지고 안 이루어지는 것은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정말 그런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는 공직에 있을 때 남들처럼 전혀 사교를 하지 않았고, 시간이 있으면 책을 보거나 가족들하고 시간을 보냈다. 그 시절 내 위치, 내 나이에 골프 안 치는 사람이 없었다. 동료친구들이 그러다가 출세 못한다고 온갖 협박과 회유를 했지만 그럴 때면 "세상에서는 무엇을 얻으면 무엇을 잃게 마련이고 인생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 것이냐 하는 선택이다. 너는 골프를 쳐서 사교, 출세를 얻고, 나는 그것을 잃는 대신에 가정과 지식을 얻겠다. 그래야 공평한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나는 평생을 살면서 출세를 우선 순위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이 십여 년이 지나고 나니, 제가 그 사람들보다 출세를 더해 있더라. 그래서 "어허! 이거 참! 이것은 무슨 이치야!" 하고 웃었다.
지금 가장 바라고 소망하는 것이 있다면?
한국 대학도 아름답지만 미국 대학 캠퍼스를 가면, 캠퍼스의 분위기가 너무 좋다. 캠퍼스가 참 아름답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자유로움 그런 것이 참 좋다. 그리고 그 학생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그래서 지금도 꿈이 하나 있다. 집 사람 보고 내년까지는 바쁠 거 같은데, 내후년에 미국에 가서 2년만 살다 오자고 이야기를 한다. 몇 번 약속했다가 못 지켜서 아내는 헛소리 한다고 하지만(웃음), 캠퍼스를 어슬렁거리면서 젊은 대학생들하고 이야기도 좀하고, 좋은 강의도 듣고 도서관에서 책도 보고, 영화관에도 가고, 여행도 가고, 그러고 살다 가고 싶다. 청년 때 못해 봤던 낭만이랄까 그런 것을 정말 한번 맛보고 싶다.
(인터뷰 및 정리: 김경미, 양태성, 임지은 정치경영연구소 연구원)
정치경영연구소가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를 정치 및 정책적 맥락에서 찾아내는 일입니다. 과연 자유는 진보적인 걸까요? 그렇다면 그 구체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진보적 의미의 자유를 스스로 누리고 있거나 타인을 위하여 퍼트리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나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자유, 그리고 자유와 평등은 상호 어떠한 관계에 있어야 하는 걸까요? 정치경영연구소의 청년 연구원들이 자유와 관련된 이 많은 문제들을 현실에서 해결 또는 극복해가고 있는 분들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작정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자유 이론가 혹은 실천가 분들께 (자신과 타인을 위한) 자유를 실천하는 방식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여쭤보겠다는 겁니다. 아마도 그분들은 젊은 저희들에게 자신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겁니다. 앞으로 모든 인터뷰 내용은 잘 정리하여 여기 이 자리에 항상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저희와 함께 이 자유의 향연을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 이 연재는 한림국제대학원대 정치경영연구소의 기획, 취재, 집필에 의해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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