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추락
한 방송 해설가는 "요즘 기자들이 '한화의 문제가 뭐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질문을 받아도 마땅히 해줄 대답이 없다. 한화는 어디까지나 가진 전력만큼의 성적을 내고 있다. 작년에 꼴찌를 한 팀인데 전력이 더 약해졌다. 투수진의 핵심들이 줄줄이 빠져나갔고 이렇다 할 전력 보강도 없었다."
어디까지나 예고된 추락이라는 얘기다.
한화는 지난 시즌 53승 3무 77패로 전체 8위였다. 프로야구에서 가장 야구를 못하는 팀이 한화였다. 특히 투수진은 최악이었다. 팀 평균 자책 4.56으로 전체 8위, 팀 세이브도 29개로 최하위, 리그에서 가장 많은 홈런(106개)을 허용하고 두 번째로 많은 4사구(556)를 내주며 매 이닝 가장 많은 투구수(16.7)를 기록한 팀이 한화였다.
가뜩이나 없는 살림이 겨우내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나빠졌다. 팀의 기둥 투수인 류현진이 미국으로 떠났다. 팀내 선발 투수 중 3번째로 많은 이닝을 소화한 박찬호가 은퇴했다. 15경기에 선발로 등판했던 양훈은 군에 입대했다. 불펜의 송신영은 특별 지명을 통해 신생 NC로 이적했다. 단순히 산술적으로만 쳐도 지난 시즌 53승에서 '19승'이 한꺼번에 빠져나간 셈이다.
물론 류현진의 이적과 박찬호의 은퇴, 양훈의 입대를 막을 길이 없었던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전력 손실을 메우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전력 보강이 이뤄졌어야 했다. 이에 류현진을 보내고 281억 원의 두둑한 포스팅비를 손에 쥔 한화가 FA 시장에서 보여줄 행보에 눈길이 쏠렸다.
그러나 놀랍게도, 한화는 FA 시장에서 아무도 영입하지 않았다. 자체 FA 마일영을 3년 8억 원에 붙잡은 게 유일한 움직임이었다. 원소속팀과 우선 협상이 결렬되자마자 새벽부터 재빠르게 움직여서 정현욱을 손에 넣은 LG, 이호준을 영입한 NC와는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최대어인 김주찬은 한화와 큰 차이 없는 조건을 제시한 KIA와 사인했다. 선수들도 팀을 가린다는 방증이다. KIA, LG 등 지난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팀들이 속속 전력 보강에 성공할 동안, 한화는 281억 원을 손에 들고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기존 팀들과 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졌다.
외국인 선수 다나 이브랜드 영입은 큰 의미가 없다. 다른 팀들도 외국인 선수 영입은 다 한다. 게다가 요즘 데려오는 선수들을 보면 죄다 메이저리그 출신이다. 이브랜드라고 특별할 것 없다. 군에서 제대한 김태완과 정현석 복귀 효과를 말하지만, 막 전역한 선수들은 자기 앞가림하기에도 바쁘다. 김태완의 경우에는 공익 근무로 복무한 탓에 실전 경기 감각과 체력적인 한계가 분명했고, 포지션도 기존 선수들과 겹쳤다. 무엇보다 요즘 프로야구에 군 제대 선수 한두 명쯤 없는 팀은 드물다.
팀내 좌타 라인에서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장성호는 신인 투수 송창현과 맞바꿨다. 지난해 장성호는 리그에서 7번째로 많은 볼넷(67)을 얻어낸 타자였다. 올해 한화의 팀 볼넷은 30개로 NC와 더불어 최하위다. 스카우터들은 송창현이 1군 수준으로 성장하려면 적어도 2~3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응용 감독의 임기는 2년이다. 그 외 몇 차례의 트레이드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영입 직전까지 갔던 한 젊은 투수는 상대 구단에서 현금을 요구하면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1480승(역대 20위)을 거둔 명장 얼 위버는 말했다. "감독은 이미 12월에 승부를 결정짓는다. 7월에는 패하지 않도록 애를 쓸 뿐이다. 비시즌 기간의 트레이드나 FA의 영입으로 팀을 구성할 때 이미 시즌에서 승패가 결정된다." 한화는 오프시즌 기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얼 위버의 말대로, 한화의 이번 시즌 성패는 이미 지난 겨울에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충격의 13연패는 동정을 살 일이 아니다. 구단이 이런 식으로 팀을 운영하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고 생생한 교훈을 주는 반면교사이자, 사필귀정이고, 자업자득이다.
'코끼리'가 '독수리'를 구할 수 있나
한화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한국시리즈 10회 우승, 통산 1476승에 빛나는 명장 김응용 감독을 새 사령탑에 영입했다. '코끼리' 김 감독의 관록이라면 약체인 한화를 구해줄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생각해볼 점이 있다. 한화는 김응용 감독 영입에 앞서 고양 원더스 김성근 감독을 영입하려고 접촉했다. 그러나 김 감독이 고양과 재계약을 택하며 무산됐다. 프로구단보다 독립구단을 택한 김성근 감독의 선택에서 한화의 현주소가 드러난다는 이야기는 접어두자. 그보다 궁금한 것은, 한화의 감독을 고르는 선택 기준이다. 김응용 감독과 김성근 감독은 노장 감독이고 프로야구에서 많은 승수를 쌓은 명장이라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전혀 없다. 추구하는 야구관과 리더십이 서로 정반대에 가깝다. 지금까지 감독으로서 걸어온 길도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한화는 한번은 김성근 감독에게, 다음에는 김응용 감독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어쩌면 한화는 팀의 현 상황에서 어떤 감독이 필요한지, 앞으로 어떤 팀을 만들어야 할지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단순히 경험 많은 노장 감독만 데려오면 팀이 지닌 수백 가지 문제가 어떻게든 해결될 거라고 여겼다면, 야구를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다.
김응용 감독은 프로 경력 내내 해태와 삼성이라는 강팀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1983년 부임 당시 해태는 광주 지역 출신 스타들이 매년 10여 명씩 새롭게 입단하는 팀이었다. 선수 구성도 좋았지만, 호남 지역 고교와 대학 시절부터 이어지는 선후배 간 기강이 자연스럽게 해태의 팀 컬러로 흡수됐다.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는 팀이었다. 선동열이 빠진 1996년과 1997년에도 여전히 '야구 잘하는' 선수들이 라인업에 가득했다. 삼성도 구단의 적극적인 지원과 화려한 선수 구성이 김응용 야구를 뒷받침했다.
반면 한화는 그렇지가 못하다. 야구 잘하는 몇몇 스타 선수들은 있지만, 나머지 멤버들과 격차가 매우 크다. 노장 선수들이 한꺼번에 팀을 떠나면서 팀을 이끌어가는 구심점도 마땅치가 않은 상태다. 구단의 지원은 9개 구단 중 최하위권이다. 김응용 감독이 그간 이끌어온 팀들과는 차이가 크다. 노감독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게다가 김 감독은 2004년 이후 무려 8년이나 현장에서 떠나 있었다. 1년 사이에도 현직 감독 절반이 바뀌는 게 요즘 프로야구다. 김성근 감독도 2002년 이후 4년 공백이 있긴 했지만, 한국에 돌아오기 전 일본 프로야구에서 꾸준히 '업데이트'를 거친 뒤에 SK 감독직을 맡았다.
김 감독 영입 후 한화는 선수단 운영 대부분을 감독에게 맡겼다. 김 감독의 제의를 받아들여 대전구장 외야를 대폭 확장했다. 투수력이 약하니 외야를 넓혀야 한다는 의견을 그대로 수용했다. 내야에는 천연 잔디를 깔았다. 결과적으로 이는 가뜩이나 약한 한화의 전력을 바닥까지 떨어뜨리는 결과로 돌아왔다.
▲ 13일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와 LG의 경기. 한화 김응용 감독이 9회초 한화의 수비 때 1사 만루 위기에 처하자 머리를 숙이고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
만일 한화가 두산이나 SK처럼 외야가 강한 팀이라면 외야를 넓히는 시도가 바람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화는 김태완과 최진행이 외야를 보는 팀이다. 홈런은 줄어들지 몰라도, 외야수들 사이로 빠져나가는 2루타와 3루타는 더욱 늘어난다. 14일 현재 한화 투수진은 9개 구단 중 가장 많은 5개의 3루타를 허용했다. 반면 그나마 한화가 장점으로 내세우던 중심 타선의 홈런포는 실종됐다. 13경기를 치르도록 팀 홈런은 1개뿐이다. 김태균은 교타자로 변신했고, 다른 타자들의 홈런포도 터지지 않고 있다. 홈런이 터지지 않으면 도루라도 해야 공격이 될 텐데, 한화의 팀도루는 6개로 전체 팀 중 8위다. 한화는 애초에 뛰는 야구가 불가능한 선수 구성이었다. 펜스를 뒤로 물렀는데도 한화의 팀 평균 자책은 6.95로 최하위다. 사실 한화 투수진의 문제는 경험 부족과 제구 불안이지 피홈런이 아니었다.
천연 잔디 교체도 한화의 불안한 내야 수비를 감안하면 이로울 게 없다. 급작스러운 홈 구장의 변혁은 한화의 홈그라운드 이점을 사라지게 했다. 한화에겐 매 경기가 다 방문 경기다. 방문팀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홈 구장에 익숙해지려 애쓰면서 시즌을 치러야 한다. 한 해설위원은 "감독이 선수 구성과 팀 전력에 대한 파악이 덜되었던 것이 아닌가. 막연히 투수력이 약하니까 구장이 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싶다. 펜스를 이동시킨 결정은 좀처럼 납득하기 힘들다"고 했다. 구장 개보수에는 한화가 류현진을 보내고 받은 281억 원 중 일부가 사용됐다. 류현진을 보낸 대가가 팀 전력 강화가 아닌, 팀 전력을 약화시키는 데만 사용된 셈이다. 아이러니다.
'잃어버린 3년'은 되풀이될까
한화는 지난 2010년 한대화 감독을 사령탑에 선임했다. 감독 선임과 함께 팀 리빌딩을 이야기했다. 2013년 현재, 한화의 팀 전력은 3년 전과 비교해서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투수진에 김혁민과 안승민, 유창식 등 새 얼굴이 등장하긴 했지만 다른 팀의 신진 투수들과 비교하면 안정감이 떨어진다. 타자 쪽에서는 이대수, 한상훈, 김경언 등이 여전히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다. 리빌딩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잃어버린 3년'이다.
2011 시즌 후반기 질주로 6위를 차지한 게 독이 됐다. 구단에서 팀의 역량을 실제보다 과대평가하는 결과를 낳았다. 지난 시즌을 앞두고 일본에서 돌아온 김태균과 FA 송신영, 박찬호 등을 영입하고는 '4강'을 이야기했다. 한대화 감독은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 전력으로 4강이 가능하다고 착각한 한화 구단은 시즌 전부터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에 성적 부담을 떠안겼다. 그러나 야구 전문가들 중에 한화의 4강 진출이 가능하다고 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한화는 시즌 내내 최하위에 머물렀다. 팀 전력은 한대화 감독 영입 전보다도 뒷걸음질쳤다.
이번 시즌 전까지만 해도 김응용 감독은 젊은 선수들을 대거 기용해서 세대교체를 할 뜻을 드러냈다. 한승택, 조지훈, 임기영, 이태양 등 신인 선수들을 중용할 뜻을 밝혔다. 그러나 막상 시즌이 시작되고 연패가 이어지자 사정이 달라졌다. 당장 1승이 급해진 상황에 신인을 기용할 여유는 사라졌다. 팀이 비상 체제로 가동되며 투수 로테이션도 백지화됐다. 이 상태라면 김응용 감독의 2년 또한 '잃어버린 2년'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한 해설위원은 "한화의 기존 선수들을 데리고 할 수 있는 야구에는 한계가 분명하다"며 "신인 선수들이 예상치를 뛰어넘는 활약을 해서 한화의 팀 전력이 향상되어야 희망을 가져볼 수 있다. 그러려면 빨리 1승을 해서 팀이 정상화되는 것이 우선"이라 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미국처럼 '제로 베이스'에서 새로 시작하는 리빌딩을 하기 어렵다. 선수 이동이 미국처럼 활발하지 않고, 신인 드래프트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도 대동소이하다. 한화가 지난해 드래프트에서 좋은 선수들을 뽑은 건 사실이지만, 그 선수들이 곧장 1군에서 통한다면 다른 팀이 뽑은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선수단 전력을 전혀 보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신인들에게 기회를 준다고 리빌딩이 되는 게 아니다. 지면서 리빌딩하는 팀은 10년이 지나도 계속 리빌딩만 하게 된다. 기둥이 되는 선수들을 중심으로 이기는 경기를 하면서, 그 틈새에서 젊은 선수들의 성장을 통해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를 해야 한다. 실제 삼성, 두산, SK 등 강팀들은 매년 꾸준히 4강에 드는 좋은 성적을 내면서 세대교체에도 성공하고 있다. 반면 LG나 넥센 등은 늘 리빌딩을 외치지만 성적은 하위권이다. 한화의 경우는 세대교체도 전혀 이루지 못하고, 성적도 하위권이다. 한화가 지난 수년간 실패를 거듭한 이유다.
물론 긍정적인 변화도 있다. 한화는 지난해부터 스카우트 팀을 대폭 확충했다. 스카우트에 투자하지 않고는 좋은 성적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서산에 새로운 2군 경기장도 세웠다. 매년 드래프트에서 좋은 선수를 발굴하고, 2군에서 착실하게 키워낸다면 몇 년 뒤에는 지금보다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는 장기적인 계획과 인내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 야구 관계자는 "몇 년 전 1라운드에서 뽑은 선수를 두고 한화 구단 내에서는 '그 몸값 받을 선수는 아니다'라며 깎아내리는 이들이 있었다. 심지어는 선수 면전에서 '네가 그만한 실력이 있어서 그 돈을 준 게 아니다'고 하기까지 했다"며 "자신들이 뽑은 선수를 그렇게 취급하는 건 제 얼굴에 침 뱉기"라고 꼬집었다. 또 기껏 뽑아놓은 대어급 신인을 1군에서 대주자, 대수비로 찔끔찔끔 내보내다 다시 2군으로 내리는 식의 행태로는 신인들이 제대로 성장하기 어렵다.
한화 출신의 한 야구인은 "한화는 구단 운영에 '매뉴얼'이 없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두산 같은 구단은 오랜 기간 구단을 운영하며 축적된 노하우가 있고,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매뉴얼이 있어서 사장이나 단장이 바뀌어도 구단이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반면 한화는 이런 매뉴얼이 없다. 몇 년 구단에서 경험을 쌓아도 사람이 바뀌면 새로운 사람이 와서 또 우왕좌왕하다 시간만 지나간다. 구단 운영이 지속성을 갖고 체계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한화 이글스는 어떤 야구를 할 것인가? 투수력 중심의 야구인가, 장타 중심의 야구인가, 아니면 뛰는 야구인가. 한화는 어떤 야구를 할지 확신이 없었고, 그래서 김성근과 김응용 사이에서 극과 극의 선택을 오갔다. 그리고 팀 전력과는 전혀 관계없는 구장 확장 공사를 벌였다. 선수 보강은 전혀 없었고, 군 제대 선수와 신인들 중심으로 안이하게 리빌딩에 접근했다. 그리고 13연패를 당한 지금은, '내일이 없는 야구'를 하고 있다. 당장의 1승과 그 뒤의 더 많은 패배를 맞바꾸게 될지도 모르는 게 현재 한화의 처지다.
미국의 칼럼니스트 조나 케리는 '그들은 어떻게 뉴욕 양키스를 이겼을까'(The Extra 2%)에서 이렇게 썼다. "탬파베이는 100번을 지는 대신 99번 지는데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위해 젊은 선수 대신 베테랑 선수를 선발함으로써 장기 계획을 흩트려놓은 셈이 됐다." 책에서는 탬파베이 창단 초기 단장을 역임한 척 라마의 이런 말도 나온다. "돌이켜보면 63승을 하든 65승을 하든, 그도 아니면 67승을 하든 누가 신경이나 씁니까?"
한화가 100번 지는 대신 99번 지는데 의미를 부여할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 한화는 정확하게 팀이 가진 전력만큼의 야구를 하고 있다. 전력이 그 정도인데 그만큼의 성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문제는 앞으로 어떤 야구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잘못은 구단이 했는데, 삭발은 선수들이 했다. 문제는 구단에 있는데, 피해는 한화 팬들이 보고 있다. 한화의 책임이 크다.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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