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4일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던 현대와 기아자동차의 주간 연속 2교대제 시행이 한 달을 맞았습니다. 40년 이상 주야 맞교대로 진행되던 밤샘 근무가 사라지면서 노동자들의 생활이 달라졌습니다. 주말과 휴일 특근에 대한 임금 보전 문제가 남아 있지만 새로운 노동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현대차 노동자들의 근무시간은 1조가 오전 6시 50분에서 오후 3시 30분까지이고, 2조는 오후 3시 30분에서 새벽 1시 30분까지입니다. 기아차는 현대차보다 10분 늦게 시작해 새벽 1시 40분에 끝납니다. 주야 10시간씩 하던 근무가 주간 8시간, 야간 9시간으로 줄어들면서 1조는 오후 시간이, 2조는 오전 시간이 여유로워졌습니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주간 연속 2교대제에 따라 조합원들의 생산적이고 문화적인 삶의 대안과 건강한 가족 공동체를 마련하기 위해 '생태문화학교'를 엽니다. 황토 집짓기, 도시농부학교, 가족기행, 산촌 생활 가족캠프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이 진행됩니다. 출퇴근 시간이 바뀌면서 노동자들이 모이는 집회 시간도 달라지고, 지역의 상권도 큰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아무런 손해도 보지 않은 회사
노동자들은 심야 노동을 하지 않게 됐고, 노동시간이 단축됐으며, 일정하게 임금이 보전됐습니다. 노사는 심야 할증 수당 대신 연속 2교대 전환 수당과 근무능률 향상수당 등으로 평균 임금이 보존되도록 합의했고, 주말과 휴일 특근에 대해서도 임금 보전 방안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전혀 손해를 보지 않았습니다.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생산량이 줄어들고, 생산량을 맞추려면 인원을 늘리거나 노동강도를 높여야 하는데, 노사 간에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노동 강도를 높이기로 합의했기 때문입니다.
주간 연속 2교대가 시행된 3월 현대차는 당초 13만6000대 생산을 예상했으나 14만3000대로 7000대를 초과 생산했고, 기아차는 예상보다 4000대 많은 13만4000대를 생산했습니다. 새벽 시간 하루 5시간씩 공장을 가동하지 않아 비용을 줄이고도 생산량을 맞췄으니 회사는 '남는 장사'를 하게 된 것입니다.
▲ 작업 중인 현대차 노동자 ⓒ연합뉴스 |
노동 강도, 임금 보존, 인원 충원, 안전 교육 등 문제 곳곳에서
그러나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노동 강도가 강화되고, 생산량이 증가한 만큼 인원이 충원되지 않아 노동자들의 고통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신설된 수당은 새로 입사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아 노동자 간의 차별이 생기는 문제점도 드러났고, 안전 교육 시간, 휴게시간, 축소된 점심시간 등으로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심야 노동을 없앤다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1조와 2조 모두 8시간 근무를 해서 밤 12시에는 일을 끝내야 하는데 지금은 2조가 잔업 한 시간을 포함해 9시간을 근무합니다. 그래서 새벽 2시가 되어서야 노동이 마무리되고, 집에 가면 3시가 넘게 됩니다. 자녀들의 등교시간 때문에 숙면을 취하기 힘들고, 가족들과 한 끼의 식사도 같이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이런 주간 연속 2교대를 할 것이었으면 10년 전에도 할 수 있었다"며 불만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옵니다. 임금이 삭감되지 않고 보존되었는지 정규직 노동자들은 4월 10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5일 월급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벽 2시에 일어나 출근해야 하는 식당노동자
더욱 심각한 문제는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입니다. 기아차 화성공장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정정자 조합원은 심야 노동이 없어져서 삶이 질이 향상됐다는 얘기에 분통이 터집니다. 그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새벽 2시에 일어나 출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아차 화성공장에는 7시에 시작되는 1직의 일과 때문에 아침식사를 공장에서 해결하는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이를 위해 회사는 주요 거점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침식사를 만들어야 하는 현대푸드 노동자들은 이를 위해 새벽 4시까지 출근합니다. 외떨어진 곳에 있는 화성공장까지 출근하기 위해서는 2시에 일어나 준비를 해야 합니다. 회사는 3시 40분에 식당노동자들이 공장에 도착하도록 버스 3대를 배차했습니다.
아침 식사를 제공하고 나면 11시에 시작되는 점심식사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오후 3시 40분 하루의 노동을 모두 마치고 나서 집에 돌아가면 5시가 넘습니다. 아이들이 돌아와 가족끼리 식사를 같이하고 나서 10시에 잠들어도 4시간 만에 다시 일어나야 하는 실정입니다.
오후에 출근하는 노동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노동자들도 심야노동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후 3시 40분까지 출근해 새벽 2시 40분까지 일하고 새벽 4시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하면 아이들이 등교하는 시간 때문에 세 시간도 잠을 잘 수 없게 됩니다.
야간 노동을 줄이기 위해서, 노동자의 건강권을 지키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주간 2교대가 시행됐는데 비정규직인 식당 노동자들은 이중의 차별과 고통을 떠안고 있는 것입니다.
▲ 기아자동차 식당노동자 근무시간(노동시간은 식사시간 제외) |
버스에 침낭 깔고 자야 하는 버스노동자
버스노동자들의 고통도 마찬가지입니다. 2조 노동자들이 새벽 1시 40분 일과를 마치면 새벽 2시 퇴근버스를 운행해 3시경 일을 마칩니다. 버스 안 바닥에 침낭을 깔고 잠깐 눈을 부친 후 다시 1조 출근을 위해 배차 장소로 이동해 새벽 5시 30분 회사로 출발합니다.
아침 7시 차고지로 돌아와 조금 쉬었다가 다시 오후 1시부터 2조 출근과 1조 퇴근시간을 마치는 5시까지 버스를 운전합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기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다시 운행을 위해 일어나야 합니다.
임금도 열악합니다. 하루 7시간 기준으로 근무해서 받는 임금이 130만 원 정도입니다. 새벽 2시 근무까지 하면 야간 할증수당이 붙어 4월부터는 30만 원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몸이 견뎌내기 힘들 뿐만 아니라 가족과 함께 저녁시간조차 보낼 수 없는 '뒤죽박죽 근무시간'으로 고통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버스노동자들이 기아나 현대차 소속도 아니고, 관광회사의 직접 고용도 아닌 지입차주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주간 연속 2교대제 시행으로 삶의 질이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고통스런 밤샘 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 기아자동차 통근버스 운전 노동자 근무시간 |
현대자동차는 식당, 청소, 운전노동자들이 자기들의 직원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의 근무시간에 따라 식당의 운영시간이나 청소시간, 통근버스의 운행시간이 전면적으로 변화되고, 정규직 노동자들의 심야노동을 없애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심야노동을 해야 하는 이중의 차별이 벌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현대, 기아차와 무관한 노동자들입니까?
버스 노동자들이 운행을 중단하면 자동차를 만들 수 없습니다. 식당 노동자들이 음식을 만들지 않으면 공장이 제대로 가동되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정규직보다 훨씬 낮은 임금과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주간연속 2교대로 더욱 고통을 받고 있다면 당연히 현대와 기아차에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정규직노조도 마찬가지입니다. 주간 연속 2교대제 시행에 따라 식당, 청소, 시설, 경비, 운전을 담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 시간, 노동 강도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에 대해 제대로 된 조사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노동운동은 낮은 곳을 향해야 합니다. 더 열악한 조건에서 더 힘들게 노동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회사가 해결하지 않는다면 정규직 노조가 나서야 합니다. 무엇보다 정규직과 같은 공장에서 같이 일하고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신속한 실태 조사와 대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정규직 노동자의 밤샘 노동을 없애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가 심야 노동을 해야 하는, 이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는 노동조합을 어느 누가 민주노조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 이 글은 <레디앙>, <오마이뉴스>, <참세상>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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