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4월 1일 처음 발표한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 시장 정상화 종합 대책(4.1 대책)'에서도 이러한 기조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런데 4.1 부동산 대책에서 제시한 정책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왜 부동산 문제의 또 다른 감자인 뉴타운·재개발(이하, 도시 재정비)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원칙과 대책을 제시하지 않는 것일까? 똑같은 부동산 문제인데도 말이다.
주민들의 강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도시 재정비 대책이 제시되지 않는 이유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는 도시 재정비 지역 주민들은 특히 매몰 비용 문제 처리와 관련하여 지방정부 및 중앙정부에 강력하게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매몰 비용 처리는 물론이고 도시 재정비 문제 해결을 위한 원칙 및 향후 방향에 대해 이렇다 할 방안들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정부가 제시한 부동산 거래 활성화 대책과 주거 안정 대책을 살펴보면 도시 재정비 대책과 뚜렷한 차이점이 발견된다. 첫째로 그 차이점은 부동산 거래 활성화 대책과 하우스푸어 대책의 수혜자가 누구인지에서 드러난다. 4.1 부동산 대책의 수혜자는 바로 아파트 소유자와 아파트 건설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누려온 건설업체 및 금융권이다. 한때 사두기만 하면 오르던 아파트의 이해관계자가 이명박 정부는 물론이고 박근혜 정부가 제시한 부동산 거래 활성화 대책과 주거 안정 대책의 실제 주인공이다.
그러면 도시 재정비 지역은? 이곳 역시 한때는 단독 주택과 연립 주택이 아파트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토지에서 막대한 개발 이익이 발생할 것으로 기대돼, 정치권은 물론 건설업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그런데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고 저성장 기조가 지속되면서 개발 이익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자, 아파트로 갈아타려던 도시 재정비 사업은 대부분 중단된 상태다. 이제는 정치권에서도 아무런 관심이 없다. 재산권 문제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오로지 지역 주민과 관련 공무원 및 건설업체 간에 뜨거운 공방이 지속되고 있을 뿐이다. 도시 재정비 지역 노후 주택이 아파트로 전환될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다.
둘째, 박근혜 정부가 제시한 부동산 거래 활성화 및 주거 안정 대책과 도시 재생 대책 간의 뚜렷한 차이점은 '공간이라는 속성을 포함하고 있느냐'의 여부에서 찾을 수 있다. 전자는 공간을 배제한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대책인 반면, 후자는 공간을 포함하는 지역 공동체를 대상으로 하는 대책이다.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대책은 가구만 고려하면 되기 때문에 정책을 구상하고 펼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만약 정책이 실패하더라도 불만을 품은 가구들이 단절되어 있어 연대가 어렵고,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지역이라는 공간을 대상으로 하는 대책은 전혀 다르다. 우선 공간을 대상으로 하는 대책은 복잡하다. 각 가구들의 특정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면 다른 문제가 감자 넝쿨처럼 따라온다. 따라서 지역 공간의 복잡성을 정확히 이해해야만 정책을 제대로 설계할 수 있다. 고위 공직자와 일반 공무원 중에서 지역의 복잡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 의문이다. 그리고 어렵사리 정책을 설계해서 추진한다 하더라도 복잡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문제가 발생하면, 지역 주민들은 곧바로 연대해 투쟁에 나선다. 뉴타운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자 이에 격분한 주민들이 지방정부와 건설사를 상태로 투쟁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 그 증거다. 지역 공간이 갖는 복잡성에 대한 두려움이 그 두 번째 이유다.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도시 재정비 사업을 민간 사업으로 본다는 점이다. 이러한 입장은 서울시 도시 재정비 사업 방식의 변화 단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시 도시 재정비 사업 방식은 크게 5단계의 변화 과정을 거쳐 오고 있다. 3단계까지는 지방정부의 역할이 핵심적이었다. 그런데 4단계부터 변화가 일어났다. 4단계(1970년대, 1980년대 초)에서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통해 도로, 공원, 기반 시설은 서울시가 공급하고, 민간은 자력으로 주택을 건립하는 방식을 추진했다. 그런데 전면 철거가 쉽지 않고, 저소득층이 자력으로 이주하거나 주택을 건립하는 것이 어렵게 되면서 사업이 장기화되고 민원이 발생하였다.
이처럼 재정 문제로 사업이 지연되면서 서울시는 재정 문제를 해결할 획기적인 방안으로 1983년도에 합동 재개발 방식을 도입하였다. 이 방식은 토지 등 소유자가 조합을 구성하여 법정 시행자로서 토지를 공급하고, 주택 건설 사업자가 순수 도급자 또는 공동 시행자가 되어 자금과 시공을 책임지게 되었다. 한마디로 정부 사업이었던 도시 재정비 사업이 법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민간 사업이 된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현재 문제가 불거진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에서도 이어져오고 있다.
개발 이익을 창출하는 아파트로 변신하는 것의 어려움, 복잡성을 갖는 지역 공간, 민간 사업으로 분류되는 도시 재정비 사업. 이러한 요인이 도시 재정비 문제 대책을 제시하지 않는 박근혜 정부에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다.
▲전면 개발의 시대는 끝났다. 도시 재생을 고민해야 할 때다. ⓒ뉴시스 |
물리적인 도시 재정비 사업에서 종합적인 도시 재생 사업으로 변화
기존의 도시 재정비 사업은 주로 물리적 주거 환경 개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물리적 주거 환경 개선도 전면 철거 중심의 개선이었지, 있던 환경을 수선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이러한 방식은 건설 자본의 이윤 추구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주택 소유주들도 헌 집을 주고 새 집을 받는데, 거기에 개발 이익까지 덤으로 준다니 찬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건설 자본의 적극적인 구애에 따른 반응이었다. 이러한 방식에서는 그 지역이 오랜 시간 구축한 지역 문화와 공동체성, 그리고 저렴한 주택은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이제 상황이 변했다. 기존 전면 철거 중심의 도시 재정비 사업 방식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도시 재정비 사업이 새로운 철학 및 이론에 기초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필요성이 분명해졌다. 그리고 개념적 틀도 '도시 재정비 사업'이라는 물리적 주거 환경 개선 중심의 사업에서 벗어나 주택 및 지역이 노후하게 된 원인을 사회, 문화, 경제, 생태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접근할 필요성이 부각되었다. 그러한 변화는 '도시 재생'이라는 용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죽어가는 도시와 지역을 다시 살리자는 것이다.
상생 도시를 위한 도시 재생 원칙
<뉴욕타임스>가 "지리학자 이상의 학자"라고 칭한 조엘 코트킨은 자신의 저서 <도시의 역사>에서 5000년 전의 메소포타미아 고대 도시에서 시작해 현대의 대도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도시의 생성과 발전을 뒤적이면서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발견해 냈다. '신성함', '안전함', 그리고 활발한 경제 활동에 근거한 '번화함'이다. 이 중에서 코트킨이 가장 중요시한 것은 바로 '신성함'이다. 여기서 '신성함'은 종교적인 가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공동체를 하나의 지향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도덕적 가치와 의식을 의미한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시민들의 '안전함'을 확보하고, 활발하고 개방적인 경제활동에 근거한 '번화함'을 만들어갈 때 도시는 건강한 모습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코트킨이 말한 세 가지 공통분모인 '신성함', '안전함', '번화함'을 도시재생 원칙을 도출하는 출발점으로 사용하면 어떨까? 우선 도시 공동체를 하나의 지향으로 이끌 수 있는 도덕적 가치와 의식에 해당하는 '신성함'으로 '상생'을 제시할 수 있다. 도시는 하나의 유기체다. 유기체의 중요한 특성은 한 곳이 아프면 전체가 통증을 느낀다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유기체인 도시 공동체를 하나의 지향으로 이끌 수 있는 도덕적 가치로 '상생'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상생 도시'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안전함'이 '상생 도시를 위한 도시 재생'에서 핵심적으로 갖는 의미로 '재산의 안전함', '사용의 안전함', '지역 공동체의 안전함'을 생각할 수 있다. '재산의 안전함'이란 도시 재생 과정에서 자기 재산권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용의 안전함'이란 도시 재생 과정에서 자기 소유 부동산이 없는 주거세입자나 상가 세입자가 중대한 손실을 입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의 안전함'이란 도시 재생 과정에서 지역 공동체가 파괴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재산의 안전함', '사용의 안전함', '지역 공동체의 안전함'이 지켜져야 상생 도시가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번화함'이 '상생 도시'를 위한 도시 재생에서 갖는 의미는 저성장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사회적 경제(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비영리단체, 공동체 기업 같은 사회적 목적을 띈 조직들이 영위하는 경제활동)에서 찾을 수 있다. 국내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사회적 경제의 움직임들이 더 활성화되고 체계를 갖추게 되면 한국식 자본주의는 그동안의 '번잡함으로서 번화함'에서 탈피해 '성숙함으로서 번화함'을 띠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번화함은 상생 도시가 건강하게 지속되는 원동력을 제공할 것이다.
앞서 살펴본 내용들을 '도시 재생의 원칙'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신성함 : 도시 재생은 '상생 도시'를 지향한다. ❚ 안전함 o 재산 소유의 안전함 : 자기의 정당한 재산권이 보호된다. 다만 개발 이익은 환수한다. o 재산 사용의 안전함 : 주거 세입자와 상가 세입자의 부동산 사용권을 보호한다. o 지역 공동체의 안전함 : 지역 공동체가 파괴되지 않도록 보호한다. ❚ 번화함 : 도시 재생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사회적 경제가 원동력이 되도록 한다. |
결론 : 이제 상생 도시를 위한 도시 재생을 추진하자
새로운 도시 재생 패러다임은 토지 등 소유자의 이익, 대규모 건설 자본의 이익, 금융권의 이익만을 주로 대변해 왔던 기존 도시 재정비 사업 방식에서 탈피할 것을 요구한다. 이제는 기존 재산권자의 '정당한' 권리와 주택 및 상가 세입자의 보호받지 못했던 권리가 상생하며, 지역 공동체가 파괴되지 않고,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를 활성화하여 '착한' 도시 재생을 추진하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이러한 변화에 부응하여 박근혜 정부는 ①부동산 시장 정상화 방안(다만 투기적 가수요 촉진책을 제거할 것)과 ②주거 복지 확대 방안에 더해 ③상생 도시를 위한 도시 재생 원칙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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