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연고가 없는 복지 대상자는 사회복지 담당자인 내가 보호자이다.
새벽 5시 30분, 연고 없는 복지 대상자의 보호자로 하루 시작
보통의 경우 오전 7시 30분이 되면 남편, 고등학생 딸과 함께 집을 나서지만 오늘은 유난히 서둘러 출근한다.
사무실에 도착하여 출근 인사와 동시에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독거노인 장례식 위임, 병원비 정산 등 행정적인 일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다. 이미 9시 이전부터 2-3명의 민원인이 기다리고 있다. 업무 준비도 하기 전에 오는 민원인은 상당한 부담으로 느껴진다.
내가 근무하는 곳에선 사회복지 직원 3명과 행정직 직원 1명이 사회복지 업무를 맡고 있다. 우리 주민 센터가 관장하는 주민 수는 약 3만 명이고 이 중 사회복지 대상자만 1만 명가량 된다.
▲ 19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연 '사회복지 범정부 정책 및 담당 공무원 노동조건 개선 요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
일선 복지 공무원이 해야 하는 일들
나는 일명 민원 창구 앞줄에 앉아 민원인을 첫 대면하며 상대하고 있다. 내가 맡고 있는 업무 범위는 참 넓고 많다. 우선 장애인 등록 관련 위탁 심사와 장애연금, 장애수당, 장애인 차량 관련 표지 발급 등 장애인 복지를 맡는다. 또한 고속도로 할인카드 발급, 근로 가능한 수급자인 자활 대상자(희망리본 사업 대상자) 발굴과 조건 유예자 확인 업무가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근로 능력자에 대한 일제 조사 업무, 이웃 돕기, 문화 이용권, 스포츠 이용권, 초중고 교육비 신청, 무상보육료 지원, 여행 이용권, 사례 관리 등이 줄지어 기다리고, 긴급 지원 차상위 계층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일정 기간에 몰리는 교육비 지원이나 보육료 지원 업무는 태산을 혼자 떠안고 가는 심정이 들게 한다.
복지 민원 개별 사례마다 종합적 사후 관리 필요
복지 업무는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인 사후 관리가 필요한 일이다.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는 개인 문제와 가족 문제, 취업 문제와 경제 문제 또는 건강 문제 등으로 중첩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사례 현안을 해결했다 싶으면 보이지 않던 또 다른 문제가 드러나 답답할 때가 많다. 하나를 벗기면 또 나타나고 또 나타나는 양파와 같다. 아무리 노력해도 완결이 안 되는 복지 업무는 그래서 사후 관리가 중요하다.
초기 상담을 통해 신청 서류를 받고 접수가 완료되면 자격 심사 후 결정 내용과 결정에 따른 복지 혜택을 안내하고 관련 서비스로 연계해 준다. 또한 도시가스와 전기요금 감면 대리 접수, 집 수리나 법적 급여 등 대상자 가정에 제공되는 관련 서비스를 연계하며 이 가정이 가지고 있는 복잡한 욕구를 파악하여 사례별 관리를 해야 한다.
내가 과연 이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실제 얼마나 하고 있을까? 찾아오는 내방 민원인과 복지 상담을 하고 다른 업무를 처리하는 데 온 시간을 써도 모자란다. 정말 어찌할 도리가 없다. 너무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데, 계속 방전될 뿐 충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깔때기 행정, 깔때기 인생
현재 16개 중앙부처 289개의 서비스가 동주민센터로 내려온다. 새로운 민원과 기존 민원을 응대하기조차 버거운 상황에서 업무는 계속 늘어만 간다. 주민 센터 담당자로서 생소한 복지 서비스가 있는지조차 확인할 시간이 없을 정도이다.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복지 공약과 복지 정책이 활성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실행 과정에서 복지 행정 서비스가 폭증함에도 불구하고 복지 담당 공무원 수는 제자리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모든 업무를 오로지 복지 담당 공무원이 전담하는 것이 정상인지 의문이다.
일선 현장의 이러한 현상을 두고 우리 복지 공무원들은 '깔때기 행정'이라고 부른다. 내 인생이 깔때기 인생인가 하는 자괴감도 든다.
민원인의 언어 폭력과 협박
또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민원인의 언어 폭력과 협박 그리고 폭행이다. 알코올 의존이라는 가면을 쓴 이들에게 인간적인 모욕을 당할 때면 나는 자괴감에 빠져든다. 상식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난 오늘도 술을 마신 채 찾아온 민원인에게서 평생에 들을 욕을 한 번에 다 들었다.
얼마 전 다른 지역에서는 수급자가 시너통을 들고 들어와 소란을 피운 적도 있다고 한다. 예민한 취약계층의 삶의 끈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업무 특성상, 사회복지 공무원들이 민원 행정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는 때로는 죽음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우리의 근로안전권과 생명권이 위협받는 현실에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너무도 긴 나의 업무표
아래 표는 나와 같은 사회복지공무원이 담당하고 있는 업무 사항이다. 이 중 빨간색으로 표기한 것은 집중 과부하가 걸린 업무이거나 연금공단, 방송통신위원회, 교육청 등 타 부처에서 요청한 업무들이다.
▲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의 업무들. 다른 부처에서 요청된 업무까지 하다 보면 야근을 해도 시간이 부족하다. |
포기한 가정 복지, 잃어가는 존재감
나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고3과 고1 딸을 둔 엄마이다. 야근을 하고서도 매일 해야 하는 일을 끝내지 못해 허덕이고 있다. 가정 복지마저 포기한 채 하루하루를 보낸다.
가끔은 나의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전투적으로 살아야 할까.
어제는 며칠째 떨어지지 않던 감기와 장염으로 응급실에 갔다가 겨우 정신이 들어 사무실로 나왔다. 오늘은 전날 못한 일을 하러 주말임에도 출근했다.
그사이 내려온 또 공문이 있다. 25일 이후에는 복지 도우미, 임시직 근로자 등 근무 상황부 제출이 있다. 또한 수급자 의사 무능력자 급여 지정 관리 분기 보고, 1분기 자활 근로 일제 조사 결과 제출 등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내 자녀에겐 추천하지 않겠다!
'이것만 끝나면 좋아지겠지' 하며 지난 시간이 벌써 13년째….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참고 일했으니 후배인 너희들도 견디란 말은 차마 못하겠다.
다시 태어난다면…. 그리고 내 자녀에게는 사회복지 공무원을 직업으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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