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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용산 개발 방식과 180도 반대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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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원순, 용산 개발 방식과 180도 반대로 가라

[정책쟁점 일문일답] <16> 대규모 개발은 재앙, 소규모 개발이 정답

1. 단군 이래 최대 개발 사업이라는 31조 원 규모의 용산역세권 개발 사업이 좌초 위기에 몰렸습니다. 이 사업이 좌초 위기에 몰린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 원인은 크게 다섯 가지입니다. 첫째는 부동산 경기 침체, 둘째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과욕, 셋째는 코레일의 과욕, 넷째는 봉이 김선달식 사업 행태, 다섯째는 수요와 무관한 대규모 개발 사업이라는 점입니다.

2. 원인을 제대로 규명해야 해법도 제대로 찾을 수 있습니다. 언급한 원인에 대해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이 사업에 관여한 사람들은 부동산 경기 침체를 예상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이런 변명은 설득력이 있는 건가요?
⇨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그런 주장을 하는 것 같은데,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입니다. 용산 개발 사업이 최초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2006년 8월입니다. 당시 건설교통부가 철도공사 경영 정상화 종합 대책을 발표하면서 그 속에 용산역세권 개발을 끼워 넣었습니다. 그러나 2007년에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이 사업에 탐을 내면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결국 2007년 12월에 가서야 사업 시행사인 드림허브가 설립되었습니다.

문제는 2007년 국내외 부동산 시장 상황이 이 사업을 봉이 김선달식으로 추진해도 될 만큼 좋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2007년 서울의 부동산 시장, 특히 아파트 시장은 2006년의 30% 급등기를 지나 정체기에 접어들어 있었습니다. 또 당시 미국의 부동산 시장도 8년간 지속된 급등기를 마감하고 2007년 2분기부터 마이너스로 돌아서, 하락폭이 깊어지고 있었습니다. 또 2007년 8월에는 서브프라임 우려로 전 세계 증시가 크게 흔들리며 글로벌 금융 위기의 전조 현상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 사업을 추진한 사람들은 이런 국내외 부동산 시장 상황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3. 이 사업을 일컬어 봉이 김선달식 사업이라 했는데요, 이 사업을 이렇게 규정할 만한 근거가 있나요?
⇨ 이 사업 시행사가 드림허브인데요. 31조 원 규모의 사업을 추진하는 이 회사의 자본금이 1조 원입니다. 이 회사는 나머지 비용을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즉 담보 없이 사업성만 보고 은행이 빌려준 대출금과 분양 대금으로 조달할 계획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자금 조달 방식의 사업이 부동산 경기 활황기에는 그럭저럭 추진되지만, 부동산 경기 불황기에는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동안 시행사가 국내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투자 유치에 실패한 것은 이 사업이 지뢰밭처럼 위험 요소는 많고 실속은 없는 사업이었기 때문입니다.

4.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이 사업에 서부이촌동을 포함시키지 않았더라면 성공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 오 전 시장의 무리수가 아니었어도 다른 위험 요소들이 많았기 때문에 성공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다만, 오세훈 전 시장이 이 사업에 서부이촌동을 포함하면서 이 사업을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오 전 시장은 주민들의 57%가 찬성했으므로 이것을 존중했다고 하는데, 설령 그것이 법규에 위반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주민 중 43%가 반대하는 사업은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10년 가까이 재산권 행사가 제한되는 사업에 주민 중 43%가 반대한다면, 이런 사업은 추진하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 원리에도 부합합니다.

5. 결국 오 전 시장이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용산 개발 사업에 서부이촌동을 포함시키면서 이해관계가 더 복잡하게 얽히게 되지 않았나요?
⇨ 외국인 투자자들도 용산 개발 사업에 투자하지 않는 주요 이유 중 하나로 이해관계자들이 너무 많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31조 원 규모의 용산 개발 사업 시행사 드림허브의 자본금이 겨우 1조 원인데 출자한 업체가 모두 30개에 이르렀습니다. 거기다 서부이촌동 주민들의 이해관계까지 복잡하게 얽히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불신은 더 깊어졌습니다.

6. 이 사업이 수렁에 빠진 데는 코레일의 과욕도 한몫했지요?
⇨ 코레일이 시행사인 드림허브의 최대 주주(지분율 25%)로 나선 것도 문제를 아주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앞에도 말씀드렸듯이 오 전 시장이 서부이촌동을 포함시켜서 이해관계가 복잡해졌는데, 대규모 복합 시설 건설 경험이 없는 코레일이 그들의 토지를 8조 원에 매입하는 시행사의 최대 주주로 참여한 겁니다. 그것도 2500억 원이라는 적은 출자로 시행사 지분의 25%를 점유하여, 책임은 적게 지고 권한은 크게 누리려는 욕심을 드러낸 겁니다. 결국 이 사업은 경험이 없는 코레일이 주도하고, 또 코레일이 과도한 욕심을 드러내면서 대주주들 사이에 갈등과 불신의 씨앗을 뿌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이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뉴시스

7. 용산 개발 사업 규모가 지나치게 크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선진국 대도시의 도심 개발 사례에 비추어 보았을 때, 용산 개발 사업 규모는 어느 정도 수준입니까?
⇨ 용산 개발 사업을 추진한 사람들은 일본 도쿄의 롯폰기힐스나 미드타운을 염두에 두었다고 하는데요. 용산 개발 사업 규모는 롯폰기힐스나 미드타운의 5배에 달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일본 도쿄도의 인구는 3700만 명으로 서울시 인구의 3.7배이고 면적도 서울시의 3.6배라는 사실입니다. 서울시 인구가 도쿄도의 4분의 1 수준인데, 용산 개발 규모를 도쿄 미드타운의 5배로 추진하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규모가 지나치게 큰 것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용산 개발 사업은 도쿄와 서울의 차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졸속 사업이었던 겁니다.

8. 용산 개발 사업이 서울의 사무실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추진되었다는 비판도 있지요?
⇨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서울의 사무실 공실률 자료를 보면 용산 개발 사업이 추진되기 직전인 2002년과 2005년 사이 2.8%에서 6.1%까지 2.2배로 늘어났습니다. 이것은 사업이 추진되기 전 몇 년간 서울에 사무실이 부족한 게 아니라 과잉 공급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용산 개발 사업이 서울의 사무실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추진되었다는 비판은 정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9. 결국 이 사업은 채무불이행 상태, 즉 디폴트 상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디폴트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겁니까?
⇨ 디폴트는 계약서상으로 변제 시기가 정해져 있는 채무의 원금이나 이자를 계약대로 상환할 수 없는 상황을 가리킵니다. 용산 개발 사업의 경우 시행사인 드림허브가 지난 12일 만기를 맞은 기업어음 2000억 원에 대한 선이자 59억 원을 내지 못해 디폴트 상태에 놓였는데요, 디폴트가 발생하면 법률적으로는 채권자들이 상환 기간에 관계없이 빌려준 돈을 회수할 수 있습니다. 다만 불행 중 다행으로 용산 개발 사업의 경우 문제가 된 기업어음에 특별한 조건이 붙어 있어서 부도 사태는 6월 7일까지 유예됩니다.

10. 시행사인 드림허브가 부도가 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 부도 유예 기간까지 채무가 변제되지 못하면 법원은 시행사를 파산시킬 것인지, 아니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개시할 것인지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파산이란 채무를 갚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경우 법원의 선고에 따라 채무자의 재산을 모든 채권자에게 공평하게 변제해주는 절차를 말합니다.

11. 시행사인 드림허브가 디폴트 상태에 놓이자, 코레일이 지난 15일 용산 개발 사업 정상화 방안을 내놓았는데요. 주요 내용은 어떤 겁니까?
⇨ 15일 코레일이 29개 출자사에 제안한 용산 개발 사업 정상화 방안의 주요 골자는 출자자 사이의 협약을 모두 폐지하고 사업계획서를 전면 수정한다는 것입니다. 즉, 출자자들에게 기득권 백지화를 요구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대신 코레일은 민간 출자자 전원이 요구에 동의하면 올해 말까지 사업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경비 2600억 원을 지원합니다. 코레일은 이 방안에 대해 21일까지 의견을 수렴해 합의서를 확정한 후 다음달 1일까지 수용 여부를 확인할 계획입니다. 그러나 만약 21일까지 합의를 못하면 파산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12. 코레일이 제안한 용산 개발 사업 정상화 방안의 핵심은 출자자들에게 기득권 백지화를 요구한 것입니다. 출자자들의 기득권이란 어떤 겁니까?
⇨ 건국대 유선종 교수팀이 2009년에 발표한 연구 보고서, '용산역세권 국제업무지구의 개발 사례 분석'에 따르면 이 사업에 투자한 30여 개 출자사는 총 1조 원을 출자해서 개발 후 예상되는 개발 이익 2조5986억 원을 출자 지분 비율에 따라 분배할 계획을 세워 두고 있었습니다. 또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외에도 삼성물산은 1조4000억 원 규모의 랜드마크 빌딩 시공권을, GS건설 등 건설 투자자들은 시행사 지분(20%)별로 용산 사업 시공권을 나눠 갖고 있습니다. 코레일은 이것을 경쟁입찰에 붙여 사업비를 절감한다는 계획입니다.

13. 코레일의 사업 정상화 방안에 대해 다른 출자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나요?
⇨ 코레일이 출자자들 사이의 협약을 모두 폐지하고 부도를 내든 회생을 시키든 자신들이 사업을 주도하겠다고 하자 출자자들은 상당히 곤혹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코레일의 정상화 방안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파산은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출자자들도 결국에는 코레일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합니다.

14. 서울시가 좌초 위기에 몰린 용산 개발 사업 정상화를 위해 비상대책반을 구성했다고요?
⇨ 당초에 서울시는 사업 표류 문제를 민간 사업자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보고 적극 개입을 꺼렸습니다. 그러나 채무 불이행으로 사업이 장기 표류하면 서부이촌동 주민과 일대 영세 상인들이 상당한 고통을 겪게 되고, 또 오세훈 전 시장의 잘못이란 이유로 서부이촌동 문제를 방치하는 것이 서울시의 책임 있는 태도도 아니기 때문에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 같습니다.

15. 코레일은 15일 용산 사업 정상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서울시에 몇 가지 협조 요청을 했는데, 시는 이 요청에 대해 입장을 어떻게 정리했습니까?
⇨ 코레일이 시에 요청한 것은 크게 네 가지인데요. 첫째는 통합·분리 개발을 두고 갈등이 큰 서부이촌동 주민 여론을 6월까지 수렴하고 사업 변동 시 개발 요건을 완화해 달라는 것이고, 둘째는 개발 계획 변경이나 실시 계획 인가 등 인허가 절차를 신속히 진행해 달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시유지 매각 대금을 토지상환채권으로 받아달라는 것이고, 넷째는 광역 교통 개선 부담금을 감면해 달라는 것입니다. 서울시는 이 요청에 대해 18일 보도자료를 내고 관련 법령의 범위 내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16. 출자자들이 코레일의 제안 사항을 그대로 수용하여 사업 계획이 전면 수정될 경우, 사업 내용 중 어떤 내용들이 바뀌게 됩니까?
⇨ 코레일은 기존 방식대로 사업을 하면 수익을 낼 수 없다고 보고 랜드마크 빌딩을 111층에서 80층 정도로 낮추고 상업 시설을 줄이는 대신, 중소형 주택 등 주거 시설을 좀 더 늘리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합니다. 공급 과잉이 우려되는 오피스와 상업 시설을 축소하고 대신 주거 시설을 늘려 사업성을 확보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출자자들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17. 그러나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데요. 출자자들이 코레일 제안에 동의하고 서울시가 지원한다 해도 자금 조달 문제는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죠?
⇨ 3월 16일자 <매일경제>에 따르면 코레일은 수권자본금을 현재의 1조4000억 원에서 5조 원으로 늘리고 정부를 설득해 2조6000억 원 상당의 땅을 출자 전환할 것이라 합니다. 대신 나머지 1조4000억 원은 현재 출자자들이 추가로 증자하거나 제3의 외부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식으로 조달하는 방안이 유력합니다. 일단 코레일 돈으로 부도를 막아도 향후 필요한 자금은 코레일 이외의 출자자들이 거의 다 대야 하는데, 이 문제가 어떻게 풀릴지는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18. 사업성 악화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비싼 땅값' 문제에 대해 코레일은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나요?
⇨ 2005년 정부는 코레일 출범 당시 4조5000억 원의 고속철도 부채 해결용으로 용산 철도정비창 부지를 떼어 줬습니다. 당시 철도정비창 땅값은 8000억 원대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부동산 활황기 용산 개발 사업의 사업성이 높다고 과신한 건설사들이 입찰 경쟁을 벌인 끝에 삼성물산 컨소시엄이 8조 원에 낙찰받았습니다. 현재 가치는 4조 원 수준입니다. 코레일 측은 이에 대해 땅값도 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지만, 어느 정도까지 땅값을 내릴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19. 8조 원의 땅값은 시행사인 드림허브가 코레일에 지급하도록 약정되어 있습니다. 코레일이 땅값을 많이 내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나요?
⇨ 코레일이 시행사의 자본금을 5조 원까지 늘린다고 하지만, 여전히 자본금 중 1조4000억 원은 외부 투자자에게 의존해야 하고, 또 31조 원 규모의 사업비 대부분을 차입금과 분양 대금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코레일이 땅값을 많이 내리지 않는다면 사업 추진에 상당한 차질이 있을 것입니다. 코레일이 다른 출자자들로 하여금 시공권을 반납하게 하고 경쟁입찰을 추진하는 것도 땅값을 많이 내리지 않고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됩니다.

20. 코레일은 또 출자자들에게 제안한 정상화 방안에서 '손해배상 청구권 포기' 조항을 집어넣기도 했었지요?
⇨ 코레일은 사업 정상화 이후 사업에 차질이 생겨 부도가 나거나 사업을 접을 경우 일절 손해배상 청구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출자자들에게 요구했습니다. 코레일도 사업 해제 시 배상 책임을 묻지 않을 테니 출자자들도 청구권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21. 출자자들이 코레일의 이런 요구를 거부할 경우, 시행사인 드림허브는 어떻게 되나요?
⇨ 파산 절차를 밟게 됩니다. 파산하면 법원 선고에 따라 드림허브의 재산이 모든 채권자에게 공평하게 나뉩니다.

22. 용산 개발 사업 좌초 위기를 지켜보면서 '초고층의 저주'라는 가설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초고층의 저주'라는 가설은 설득력이 있는 것인가요?
⇨ 초고층 빌딩이 등장하면 경제 위기가 뒤따라온다는 것이 '초고층의 저주'라는 가설입니다. 이에 따르면 1931년 미국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381m)이 들어선 시점에 대공황이 발생했고, 1970년대 중반 미국 시카고 시어스타워(442m)가 세계 최고 빌딩으로 올라선 이후 오일 쇼크가 발생했습니다. 또 1997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페트로나스타워(452m)가 시어스타워의 기록을 경신하자 아시아에 경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이것을 우연의 일치로도 볼 수 있으나, 경제 주체들의 과도한 자신감과 허세가 초고층 건물 건축을 부르고 경제에 거품을 가져온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23. 1980년대 일본에서 거품이 확대된 주요 원인이 과도한 자신감과 허세에 있었다는 분석도 많았지요?
⇨ 가장 큰 원인은 금융 규제 완화였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과도한 자신감과 허세도 거품이 커지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985년 일본 국토청은 수도 개조 계획을 발표하고, 도쿄의 국제적인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외국 기업들과 금융 기관들이 도쿄로 진출해 2000년까지 도쿄에 5140만m²(63빌딩 연면적 16.6만m² 의 309배 면적)의 신규 사무실 면적이 필요할 것이라 전망했습니다. 결국 일본 국토청의 황당한 전망은 수도권의 상업 지역 토지 가격을 천정부지로 끌어올려 거품 확대의 주요 원인이 되었습니다.

24. 우리나라에서도 '건설족'은 대규모 개발에 대한 집착이 강한데요, 그 이유가 뭔가요?
⇨ 아파트에 한정지어 말씀드리면 대규모 단지 아파트 가격은 오르는데 소규모 단지 아파트 가격은 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비슷한 의미로 대규모 단지에서는 고분양가가 가능하지만 소규모 단지에서는 고분양가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25. 강남이나 대규모 단지 아파트 가격이 많이 오르는 이유가 뭔가요?
⇨ 강남의 아파트 가격이 많이 오른 이유는 부자들이 모여 살기 때문입니다. 또 부자들이 강남에 모여 사는 이유는 얼마 전까지 경제 권력의 심장인 기획재정부나 국토해양부 등이 과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나라나 부자들은 한곳에 모여 살고 싶어 합니다. 그것도 경제 권력이 집중된 곳에. 또 대규모 단지 아파트에 살아야 정치인들이나 공무원들에게 힘을 과시할 수 있고, 수많은 도시 기반 시설들을 유치할 수 있습니다. 정치인에게 좋은 도로를 깔아달라고 압력을 가할 수도 있고, 복지관·도서관·박물관 등 별별 시설을 유치해 달라고 압력을 가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부자들이 모여 살고, 도시 기반 시설이 모여들면 그 지역 아파트 가격은 미래 기대가치가 높아져 지속적으로 오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강남 아파트 가격 상승 요인에는 이 외에도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26. 소규모 단지 아파트는 어떤가요?
⇨ 이런 곳에는 부자나 정치인, 그리고 공무원이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이곳의 거주자들은 힘이 없어 좋은 도로를 깔아달라고 압력을 가할 수도 없고, 복지관·도서관·박물관을 유치해 달라고 압력을 가할 수도 없습니다. 실력자들이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소규모 아파트 단지, 가격이 오를 수가 없습니다.

27. 그렇다면 가격 상승을 수반하지 않고 아파트를 공급하려면 소규모 단지로 공급하면 되겠네요?
⇨ 정답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감스럽게도 과거 몇 십 년 동안 이 명쾌한 정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쪽에서는 공급만이 살길이라고 우겼고, 다른 쪽에서는 공급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우겼습니다. 그 어느 쪽도 정답은 아닙니다.

28. 용산 개발 사업의 좌초 위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뭡니까?
⇨ 봉이 김선달식 대규모 개발 사업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고층 건물을 짓더라도 충분한 수요조사를 하고 나서 지어야 합니다.

29. 박원순 서울시장이 용산 개발 사업에서 충분한 교훈을 얻어 이를 주택 정책에 활용하면 값이 싸면서도 질 좋은 고급 주택을 무주택 서민들에게 안길 수 있겠군요.
⇨ 앞서 말했다시피 무작정 '아파트 추가 공급을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20대, 30대 무주택 서민들도 아파트와 같은 고급 주택에서 살 권리가 있습니다. 반대로 보수 진영 학자처럼 아무렇게나 공급을 확대해도 된다고 우겨서도 안 됩니다. 수요 억제 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공급과 뉴타운과 같은 대규모 개발 방식은 재앙을 부릅니다.

30. 왜 대규모 개발 방식에서 비용이 많이 듭니까?
⇨ 판교 신도시 개발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판교 신도시의 토지매입가는 3.3㎡당 88만 원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도시 기반 시설 구축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간 결과, 나중에는 분양 대상 토지 가격이 3.3㎡당 1000만 원을 넘어섰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도시 기반 시설 구축 비용이 거의 들어가지 않은 소규모 개발 방식을 지향하면 이 문제가 해결됩니다. 전문가들은 잘 모르는데 평범한 주부들은 너무나도 잘 아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규모 단지 아파트 가격은 오르는데 아파트 건물이 한두 동에 불과한 소규모 단지 아파트 가격은 오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박원순 시장이 이 부분에 착목하면 주택 정책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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