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소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곳을 공격한다. 먹고살기 힘든 곳에 접근해 핵발전소나 핵폐기물에 돈을 얹어 들이민다. 지역은 찬반의 갈등에 시달리고 피해와 불만을 돈으로 해결하는 물신주의가 지역공동체를 파괴한다.
그리고 핵발전 기술은 핵연료를 만드는 농축 기술과 핵폐기물 재처리 기술 측면에서 핵무기와 연결된다. 핵분열에너지를 이용하는 과학기술은 인류가 발명한 가장 폭력적인 과학기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발전은 핵의 '평화적인 이용'이라고 치장되어왔다. 체르노빌 원전 참사 이후 안전기준을 높였기 때문에 원자력발전소는 폭발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핵발전소가 2년 전 일본 후쿠시마에서 3기가 동시에 폭발했다. 일본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원전에서 대형 사고가 발생할 확률은 1000만 년에 1번꼴이라고 했지만 1000만 년 후가 아닌 2년 전에 발생한 것이다.
핵발전소는 핵연료를 감싸는 피복재부터 강철판이 있는 1.2m 두께의 콘크리트까지 5중 방호벽을 자랑한다. 게다가 안전장치가 2중, 3중으로 서로 독립되어 존재한다. 지진에 대비한 내진 설계도 갖추고 있다. 이런 안전장치들이 동시에 무너지면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것인데, 이론상 계산을 해보면 1000만 년에 한 번 대형사고가 발생할 확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1978년 미국에서 발생한 스리마일 원전 사고, 1986년 구소련에서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 그리고 2011년의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까지, 대형 원전 사고의 발생주기가 1000만 년이 아니라 10년~30년에 불과하다.
원전 사고는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대기와 태평양에 뿌려진 막대한 양의 방사성 물질은 북반구 전체에 퍼졌고 태평양 전체로 확산 중이다. 핵발전소의 폭력이 전 세계로 확산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고가 발생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사고를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1호기와 2호기는 작년에 겨우 내시경을 단 로봇을 들여보냈다. 하지만 강력한 방사능으로 로봇조차 고장이 나버렸다. 3호기는 내부를 추측만 할 뿐 어떤 상태인지 확인할 수도 없다. 1호기에는 겨우 덮개를 덮어서 방사성 물질의 방출을 95% 정도 막고 있는 수준이다.
1, 2, 3호기가 각각 보유하고 있는 사용 후 핵연료의 약 4배에 가까운 사용 후 및 사용 중 핵연료를 보유하고 있는 4호기의 경우 세슘 137(감마선을 내는 강력한 방사성 물질 중의 하나로 반감기가 30년이다)이 방출된 양만 해도 체르노빌 원전 사고 때의 10배나 된다. 특히 1, 2, 3호기와 달리 중간 점검 중에 꺼낸 사용 중 핵연료가 섞여 있어서 발열과 방사능의 세기가 더 강하다. 추가 지진이 발생할 경우 사용 후 핵연료가 담겨 있는 원자로 위의 저장소가 붕괴할 수도 있을 만큼 위험한 상황이다. 그렇게 된다면 일본의 수도 도쿄를 포기하고 3000만 시민이 피난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 지난해 10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반핵 시위의 한 장면. ⓒ연합뉴스 |
그런데 이제 겨우 크레인으로 사용 후 핵연료 저장소에 접근한 정도다. 원전 주변은 방사능 수치가 너무 높아서 접근이 불가능한 지역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접근이 가능한 곳도 잠깐씩 교대하면서 일하다 보니 시간이 무한정 걸린다.
또한, 원전 사고는 사고 당시의 문제가 아니다. 여러 세대를 걸쳐서 오염은 지속되고 피해는 대물림된다. 자연에 방출된 방사성 물질은 먹이사슬을 따라 식품에 해당하는 동식물을 오염시키면서 확산된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27년이 지났지만 반경 30km 지역은 여전히 통제 구역이다. 그 당시 방출된 세슘 137의 반감기가 30년이니 그 양이 아직도 절반으로 줄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웬만큼 줄어들려면 300년은 기다려야 한다. 사용 후 핵연료에 1%가량 들어 있다고 하는, 핵무기의 원료로도 쓰이는 죽음의 물질 플루토늄의 경우는 반감기가 2만4000년이다.
후쿠시마 원전 인근 반경 20km도 통제구역이고 8개 현(우리나라의 '도')이 일본 정부의 공식 제염 대상 지역이다. 이런 지역의 방사성 물질 제거 작업은 토양을 30cm가량 걷어내고 건물에 고압수를 뿌려 제거하는 것이다. 하지만 제거 작업 대상은 관공서, 학교, 주거지, 도로 정도에 불과하고 드넓은 농지와 숲을 제염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그렇게 걷어낸 오염된 토양의 처리도 골치 아프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발생하는 하루 500여 톤의 방사능 오염수도 그동안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방사능 오염수가 쌓여서 24만 톤이 넘었다. 후쿠시마 원전 부지 인근의 숲을 제거하고 물탱크를 쌓아놓고 있지만 더 이상 둘 곳도 찾지 못하고 있고 처리할 방법이 없다. 현장 소장은 사고를 수습하는 데 30~40년이 걸릴 것이라고 고백했지만 그마저도 가능할 것인지 의문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원전 안전 신화는 무너졌다. 원전을 가동하면 대형 사고를 예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원전 사고가 나면 그동안의 안전을 위한 노력은 모두 소용이 없다. 결국, 원전은 안전할 때 문을 닫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세계적으로 전기 소비를 줄이고 재생 가능 에너지로 원전의 전기 생산을 대체할 수 있음이 확인된 마당에 원전 산업의 이해관계 문제가 아니라면 원전을 고집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기후변화 문제로 원전 폐기를 번복하거나 추가 건설하려던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다시 원전 폐기로 방향을 바꿨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의 나라들의 대응과 달리 후쿠시마 원전에 인접한 한국, 중국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중국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안전 규제를 강화하고 신규 원전에 대한 승인을 미뤄왔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다시 승인을 재개했다.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이 18기, 건설 중인 원전이 28기인데 2020년까지 총 60기 이상의 원전을 가동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세계에서 가장 처음으로 신규 원전 부지를 결정했다. 현재도 원전 밀집도가 세계 최대인데다가, 5기가 건설 중이고 6기가 계획 중인데 추가 12기를 더 건설할 수 있는 신규 부지를 확정한 것이다.
한국형 원전의 대형 사고 확률은 100만 년에 한 번이라고 한다. 그래서 방사성환경영향평가서는 대형 사고를 전제하지 않았다. 피난 구역도 8~10km에 불과하고 방재 훈련, 약품, 물품도 턱없이 부족하다.
동북아 한중일 3개국은 여전히 경제성장을 위해서 원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국가의 기본 역할은 국민의 안전과 먹거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원전은 그 모든 것을 위협하고 있다.
일본은 원전 사고 수습을 위해 수백조 원의 경제적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강력한 힘을 동경하는 이들은 핵발전을 원한다. 동북아시아에서 중국, 한국, 북한, 일본 모두 핵발전을 추구한다. 이들은 핵무기도 추구한다. 중국은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일본은 재처리로 핵무기 연료인 플루토늄을 45톤 이상 보유하고 있다(1945년 일본 나가사키 원폭에 사용된 플루토늄은 1.2kg 정도였다).
그동안 한반도에서는 비핵화 선언으로 동북아의 핵무기 경쟁과 군비 경쟁을 겨우 막아왔다. 하지만 대화의 단절과 압박으로 북한은 핵실험을 하고 미국과 한국은 유엔을 이용해서 제재를 재차 결의하더니, 결국에는 북한이 정전협정을 폐기하겠다는 발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한반도 전쟁 위협은 경제성장 지상주의를 비롯한 강력한 힘을 동경하는 데에 근원이 있다. 핵발전을 가진 나라는 핵무기도 추구한다. 핵무기를 갖게 되면 더 많은 핵무기를 갖기 위해 경쟁한다. 더 첨단의 무기를 갖기 위한 군비경쟁에 돌입한다. 강력한 힘이란 상대적이다. 안전과 먹거리를 폭력과 무기로 바꾸는 시작이 핵발전과 핵무기다.
힘에 대한 동경과 성장주의가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파국에 눈감고 있다. 경쟁의 정글에 적응하지 못하는 약자는 도태돼도 어쩔 수 없다는 논리다. 그런데 그 약자가 바로 우리 아이들이고 우리의 미래다. 우리는 결국 현재의 욕심에 미래를 제물로 삼고 있다. 무기를 버리고 평화를 원하는 시작은 핵발전소의 폐기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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