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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MB 정부 '철도 민영화' 이어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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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MB 정부 '철도 민영화' 이어받나?

[기고] 제2 철도공사는 민영화로 가는 우회로일 뿐

3월 11일 새 정부의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이 임명되었다. 이제 철도 정책은 박근혜 정부의 몫이 되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지난 한 해는 수서발 KTX 민영화를 둘러싼 문제로 많은 사회적 갈등을 빚었다. 새로 출범하는 정부는 그동안 추진됐던 철도 정책이 갖는 문제가 무엇인지 심도 있게 분석하고 철도가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 하는 과제도 안게 되었다. 그러나 서승환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이 청문회 과정에서 밝힌 내용과 이에 따른 언론의 보도 내용을 보면 정부가 미래지향적 철도 발전 전망을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서승환 장관은 인사 청문회에서 KTX 민영화 추진을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동안 철도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시민들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새 정부의 입장으로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어서 덧붙인 '현재의 체제도 문제가 있는 만큼 제3의 길을 추진하겠다'는 말은 정부의 철도 정책이 변하지 않았다는 우려를 준다. 일부 언론은 벌써 제2의 철도공사를 통한 경쟁 체제 도입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장관이 밝힌 방침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철도 정책의 연장선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의 체제란 철도공사가 철도 운영을 독점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철도의 부실이 경쟁의 부재에 있다는 진단에서 시작하는 논리다. 지난 십여 년간 철도 개혁이란 이름 아래 민영화를 추진해왔던 세력들이 일관되게 유지했던 입장이다.

▲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뉴시스

정책 오류투성이 정부, 철도 운영 기관에 책임 떠넘겨

한국 철도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더 심각한 일은 정부 정책 부서가 협소한 잣대로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거나 한국 철도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서는 철도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의 아전인수식 진단과 대안으로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기까지 했다.

지난 시기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수서발 KTX 민간 경쟁 체제 도입은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이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의 문제로서 민영화 문제이다. 아무리 시장만능주의가 대세라고 해도 한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 공공 부문이 갖는 중요성은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사회 기반 시설인 철도의 공공적 유지는 시장경제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서도 또 서민들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시민 친화적인 보편적 복지로서도 중요성을 갖는다. 이런 사회적 자산을 일부 재벌과 그들에 투자한 외국 투기자본의 몫으로 넘기는 것은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를 희생시키는 반사회적 정책이다.

다른 하나는 철도 산업이 진정한 발전 전망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대전제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 철도의 경영 부실이 경쟁 부재로 인해 발생했다는 잘못된 판단에서 시작하고 있다. 특히 국토교통부의 "경쟁만이 살길이다"라는 일관된 주장은 그동안 누적돼온 정부의 정책 오류까지 교묘하게 철도 운영 기관에 떠넘기고 있다.

포화 상태 도로교통 대안으로 세계 각국에선 철도 떠오르는데…

한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교통 시스템은 사회의 변화 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800년대 하루에 340여 편에 달했던 영국 각지로 떠나는 런던발 우편마차는 철도의 등장으로 소멸해 버린다. 영국 주요 도시의 운하를 이용한 화물 운송도 철도에 밀려 사라졌다. 세계 각국에서 철도가 등장한 이래 철도는 부설된 나라의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었고 절대적인 수송 분담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자동차의 등장과 도로교통의 발달은 철도를 한물 간 교통수단으로 전락시켰고, 나라 전체에 깔린 선로와 역사를 갖고 있는 이 거대한 사회적 장치는 돈 먹는 하마가 되어버렸다. 전 세계적 흐름이었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무시하고 '경쟁을 안 해서 철도가 부실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철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폭로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도로 중심으로 교통체제가 전환되는 시점에는 철도에 경쟁에 경쟁을 더해도 더 큰 손실만 양산할 뿐이다.

사양 산업으로 몰려 애물단지가 되는 듯했던 철도를 기적적으로 환생시킨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철도를 몰락시켰던 도로교통이다. 한때 선진 사회의 상징이었던 도로를 꽉 메운 자동차들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존재로 변했고, 각국 정부는 그 대안으로 철도를 소환하였다. 특히 유럽에서는 도로교통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투자해서 철도의 수송분담률을 높이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KTX가 개통되면서 국내선 항공편이 부진을 면치 못한 이유가 항공사들이 경쟁을 치열하게 하지 않았거나 갑자기 경영이 부실해졌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어도 쉽게 알 수 있다.

동일 기능을 하는 철도 기관 왜 쪼개나? 고위 경영진 자리만 늘어

국토교통부의 입장을 보도하는 언론에 따르면 수서발 KTX를 제2공사에 맡기는 것은 한국공항공사와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예나 서울 지하철의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와 같은 경쟁 체제를 말한다고 한다. 이것이 제3의 길이라면 꽉 막힌 길이다. 네트워크와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거점형으로 운영되는 공항 시스템을 철도와 비교하는 것은 정책 당국의 논리가 얼마나 빈약한지를 증명할 뿐이다.

과거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는 개혁 대안으로 통합을 선택했다. 유사 기능과 중복 기능의 비효율을 통합을 통해서 극복하겠다는 게 그 이유다.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는 유사 기능과 중복 기능이 아니라 동일 기능이다. 똑같이 서울에서 지하철을 운영하는 기관이다. 굳이 분할하지 않아도 되고 통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가 훨씬 크다는 견해도 전문가들에 의해서 제기된다. 서울의 지하철이 분리되었던 이유는 경제 논리 때문이 아니었다. 정치 논리와 노조 무력화의 한 방편으로 시도된 것으로 당시 강성 노조로 이름을 떨쳤던 서울지하철공사노조에 대한 견제책이었다.

더구나 이 두 기관은 경쟁하지 않는다. 요금도 동일하고 서비스 수준도 비슷하며 무엇보다 각 노선은 독자성을 갖고 있어 경쟁이 성립되지 않는다. 수유리에서 과천을 가는 시민은 서울메트로의 4호선을 타야 하고 천호동에서 김포공항까지 가는 승객은 도시철도공사의 5호선을 타야 한다. 경쟁의 전제인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례를 경쟁 사례라고 소개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

현재 서울 지하철의 발전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두 서울 지하철 운영 기관의 통합을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있다. 두 기관으로 나뉜 고위 경영진들의 자리가 줄어드는 만큼 비용이 절감되고 현장 인력 중심의 운영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2기 지하철인 도시철도공사의 경우 깊은 지하 심도만을 운행하는 노선이 많아 기관사들이 공황장애를 호소하는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두 기관의 통합을 통해 순환 근무 시스템을 만든다면 일정 부분 해소될 수 있는 문제다.

제2공사엔 알짜 노선, 철도공사엔 적자 노선 분배가 경쟁 체제?

제2공사를 설립해 수서발 KTX 운영을 맡겨 경쟁을 통한 효율화를 이루겠다는 국토교통부의 입장은 민간 경쟁 체제에서 앞의 두 글자만 지운 것으로 기본적으로 수서발 KTX가 갖는 여러 가지 특혜의 문제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경쟁의 최소한의 전제는 공정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전국의 철도 운영을 책임지는 철도공사와 수익성이 보장된 고속철도만 운영하는 제2공사는 애초에 경쟁 상대가 되지 않는다. 철도에서 진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려면 똑같은 노선을 하나 더 건설해 두 운영 기관의 우열을 가리는 것인데, 천문학적인 철도 건설 비용을 생각한다면 말도 안 되는 발상이다. 제2공사가 철도공사와 공정한 경쟁을 하려면 현재 철도공사가 운영하고 있는 일반 철도의 적자 노선을 똑같이 나누어 운영하거나 적자선만 운영하는 또 다른 공사를 만들어야 한다. 철도 네트워크의 특성을 교란시키는 이런 체제가 효율적인 것인가?

제2공사 추진은 국토교통부가 그동안 민간 경쟁 체제 도입을 주장하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비판한 비효율적인 공기업을 하나 더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도로공사를 효율화하겠다며 똑같은 기능을 하는 도로공사 하나를 더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추진 과정과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은 중복 투자에 따른 예산 낭비, 기관 간의 갈등과 책임 떠넘기기 등 무엇 하나 국민들에게 이로울 게 없는 구조다.

▲ KTX ⓒ연합뉴스

수서발 KTX 노선이 계획된 이유 되새겨야

정부는 수서발 KTX 노선이 왜 계획되었는지 초심으로 돌아가 되새겨봐야 한다. 한국 철도의 비효율을 가중시킨 이유 중의 하나는 수도권 중심의 철도네트워크 때문이다. KTX 수익의 80%, 수송량의 70%가 수도권 이용객이다. 일본의 여러 고속철도 노선 중의 하나인 도카이도 신간센 노선만 해도 도쿄-나고야-오사카라는 거점 대도시를 운행하면서 각각의 도시들이 품고 있는 일반 철도 노선의 이용객들을 흡수하고 있다. 하루 이용객만 해도 40만 명이 넘어 한국 고속철도 전체 이용객의 4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독일의 베를린-프랑크푸르트 노선이나 이와 유사한 유럽의 도시 간 고속노선도 적절하게 이용객이 분산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 철도는 수도권 집중으로 인해 서울-금천 구간의 고속선과 일반선이 만나는 지점의 선로 포화 상태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병목 구간으로 인해 늘어나는 고속열차의 승객을 감당할 수 없어 통로마다 입석으로 가득 찬 KTX가 달린다. 일반 열차를 이용하는 승객들도 대폭 줄어든 일반 열차의 운행 편수가 불만이다. 또 수도권으로부터 연결되어야 탑승률이 높아지는 호남선, 전라선, 장항선 등의 비수익 노선도 선로 용량 한계로 열차 편수를 늘릴 수 없고, 이것은 열차 이용의 편의성을 떨어뜨려 열차 이용을 외면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대안을 찾다가 최종 선택된 방안이 수서-평택 간 고속철도 노선을 신설해 체증 구간을 우회하여 철도의 선로 용량을 대폭 확대하는 안이었다. 서울 동남부와 수도권 동부 지역의 철도 이용을 확대하고 서울역으로 집중된 승객을 분산하게 되면 한국 철도가 고질적으로 안고 있는 열차 좌석 공급 부족이 상당히 해소되기 때문이다.

결국 수서-평택 노선은 한국의 사회적·역사적 특성 때문에 기형적으로 발달한 한국 철도를 제대로 세우는 일이고 철도네트워크의 자기 완결성을 갖도록 하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수서-평택 간 노선으로 선로 용량의 여유가 생기면 그동안 답보 상태에 빠졌던 일반 철도 노선의 준고속화 사업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현재 시속 140km가 최고인 서울-대전 구간의 새마을호나 무궁화호의 일반 열차 운행 시간은 1시간 55분 정도인데, 이것을 시속 180km~200km 정도로 올리면 1시간 20분 내외로 운행할 수 있다. 1시간 정도 걸리는 KTX보다는 느리지만 150km~200km 이내의 중단거리 노선은 일반 열차를 이용해도 빠르고 쾌적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KTX의 좌석 보유율을 높여 쾌적한 장거리 여행을 보장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한국 철도를 낙후한 일반 철도와 고급형 고속 철도로 분리해 소득 수준에 따라 차별적으로 열차를 선택하게끔 하는 게 아니라, 열차의 기능과 용도에 따른 철도 선진국형 이용 체제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시점이다. 철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부재와 정부의 도로 중심 교통 정책, 선로 용량의 한계로 열차 운용의 탄력성을 발휘할 수 없는 문제를 극복하고 이제야 철도 운영의 본모습을 찾을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다. 식민지 철도로 시작한 한국 철도가 비로소 자기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철도 쪼개기, 한국 철도 앞길에 쐐기 박는 일

이런 시점에서 경쟁 체제를 통한 효율화를 명분으로 제2 철도공사를 추진하는 것은 한국 철도의 앞길에 쐐기를 박는 일이다. 철도공사와 제2철도공사의 경쟁 구도는 수익성 높은 고속선을 독점한 제2공사와 철도공사의 무리한 경쟁만 촉발한다. 철도공사는 현재처럼 고속철도 운영 위주로 편성해 일반 열차와 고속열차의 동반 성장은 요원해진다.

분명히 밝히고 싶은 것은 한국 철도의 노선을 제2공사체제로 나누기에는 너무도 협소한 규모라는 점이다. 철도가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네트워크의 유기적 완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4000-5000km의 운영 노선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3500여 km의 영업 거리를 가지고 있는 한국 철도를 경쟁을 빌미로 잘게 쪼개는 것은 국가의 장기적 발전 전망에 비추어 보아도 부적절하다.

특히 제2공사가 문제가 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정부가 밝히고 있는 미래 철도 정책에 따른 신설 노선들에서 광범위한 민영화를 도입하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5년간 철도에 투자될 예산은, 22조 원이 투입되었다는 4대강 예산의 두 배가 훨씬 넘는 규모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대비한 강원권 노선을 비롯한 많은 철도 노선도 신설될 계획인데, 이 노선들에 대해 민간 투자 사업 도입이나 운영권 임대를 통한 민영화도 진작부터 고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명박 정권 시절 무리하게 추진하다 제동이 걸린 관제권에 대한 회수 시도도 제2공사가 설립되면 공정 경쟁을 이유로 손쉽게 성사시킬 수 있다.

지금 한국 철도에 필요한 것은 잘못된 진단을 근거로 한 경쟁 체제의 도입이 아니다. 철도 네트워크가 철도 안에서 그리고 다른 교통수단과 조화를 통해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제2공사로 얻는 이익은 국토교통부의 산하 기관이 늘어 몸집을 불리는 것 외에 특별히 보이지 않는다. 새로 채워내야 할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 감사 자리 등 고위 관료들의 퇴직 후 일자리 창출이나 정치인들의 영전 자리가 늘어나는 것을 바라는 국민은 없다.

박근혜 정부는 무엇보다 국민과 소통하는 것을 중요시하고 사회의 여러 목소리를 경청하겠다고 누누이 밝혀왔다. 대통령의 뜻이 제대로 구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도 부처의 정책을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반대 여론을 비롯한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는 데 힘을 기울여줄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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