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서 내정자는 부동산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믿음은 자유지만 사물에 대한 객관적 인식은 과학에 속한다"(<부동산과 시장경제>, 123쪽)고 했는데, 그의 부동산 인식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일까?
토지가 일반 물자와 유사하다?
서 내정자의 책, 논문, 칼럼 등을 살펴보면 부동산, 정확히 말해서 토지를 일반 물자와 유사하게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토지의 천부성(天賦性)과 부증성(不增性)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토지를 일반 물자와 유사하다고 보는 근거는 특정 용도의 토지를 증감시킬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서 내정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토지 시장을 고려할 때 실질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나라의 국토 면적이 얼마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거래되는 도시용 토지의 양이 얼마인가 하는 것이다. 도시용 토지는 비도시용 토지의 용도 전환으로 공급되므로 공급량을 조정할 수 있다. 토지 자체는 신의 창조물이지만 도시용 토지의 공급은 인간이 결정하는 것이다. (<부동산과 시장경제>, 16쪽)
그러므로 서 내정자가 보기에 토지가 신이 만든 특별한 재화이기 때문에, 그리고 전체 양이 불변하기 때문에 공개념(公槪念)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은 '신념'으로 존중받을 수는 있어도 객관적이지 못한 비과학적 태도가 된다. 이런 인식은 일반 물자에 적용되는 사유재산의 원리와 수요·공급의 원리가 토지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부동산 투기가 기승을 부려 가격이 폭등했던 노무현 정부 시기에 그가 공급 부족론을 지속적으로 외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인식에 기반을 뒀기 때문이다. 수요·공급 논리에 따르면 가격 상승은 공급이 부족하다는 시장의 신호이므로 '공급 확대'가 대책이 되어야 한다. 또한 침체된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부동산에 대한 모든 세금(취득세·보유세·양도소득세)을 완화해야 한다는 지금의 정책적 판단도 위와 같은 인식에서 비롯된다. 일반 물자에 대한 중과세가 경제 효율과 시장 기능을 저해하듯이 부동산도 마찬가지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 서 내정자의 이런 인식은 과연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것인가? 아니면 그릇된 신념인가? 필자는 후자라고 판단한다.
비동질성, 토지의 가장 중요한 특질
의도적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서 내정자가 결정적으로 간과한 것은 모든 토지가 서로 다르다는 것, 즉 비동질적(heterogeneous)이라는 점이다. 일반 물자인 자동차는 서울에 있으나 강원도에 있으나 같지만, 다시 말해서 동질적(homogeneous)이지만 서울의 토지와 강원도의 토지는 전혀 다르다. 그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강북의 토지와 강남의 토지가 다르고, 강남에서도 방배동의 토지와 압구정동의 토지가 다르다.
그러면 모든 토지를 다르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위치다. 심지어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사거리 중심의 토지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토지도 서로 다르다. 사거리 중심에 위치한 토지는 접근성이 좋은 토지이고 바로 옆에 있는 토지는 접근성이 그보다 약간 떨어지는 토지다. 그리고 이런 위치의 차이는 가격의 차이로 나타난다. 교통이 편리하고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사거리에 위치한 토지는 비싸고, 교통이 불편한 곳에 위치한 토지는 싸다.
물론 위치가 다르더라도 토지를 이동시킬 수만 있다면 토지의 비동질성이라는 특성은 사라진다. 하지만 토지는 이동시킬 수 없다. 토지는 자동차와 달리 이동이 불가능하다. 서 내정자가 말하듯이 용도를 변경하여 도시용 토지의 공급을 늘릴 수는 있다. 하지만 늘린다고 하여도 기존의 도시용 토지와 변경된 도시용 토지는 전혀 다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은 서 내정자가, 토지가 일반 물자와 구별되는 특징으로 지목한 '외부성'에서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외부성은 토지의 위치고정성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서강대 김경환 교수와 같이 쓴 <도시경제>(홍문사, 2002)라는 책에서도 "토지는 위치가 고정되어 있어서 인접 토지에서 발생하는 외부효과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도심 또는 주요 시설에 대한 접근성과 교통수단의 편이함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는 이질적 재화"(142쪽)라고 정의해놓고 있다.
이런 토지의 위치고정성으로 인한 비동질성을 고려하면, 토지는 일반 물자와 마찬가지로 수요·공급의 원리를 적용해도 된다는 그의 주장은 설 자리를 잃고 만다. 수요·공급의 원리를 적용하려면 공급하는 물자의 동질성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토지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국토해양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
부동산 불로소득과 로또 불로소득이 같다?
토지에서 발생하는 이익이 불로소득이라고 하는 이유는 토지 가치의 발생·상승이 개별 토지 소유자의 노력이 아니라 정부가 도로나 학교 등의 공공시설을 설치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 살기 때문에, 그리고 자연경관이 수려하다는 이유 등으로 인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즉 좋은 위치의 토지, 나쁜 위치의 토지를 결정하는 것은 토지 소유자 개인이 아니라 사회이고, 그렇기 때문에 환수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 내정자는 이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것에도 별로 동의하지 않는 것 같다. 서 내정자의 말을 들어보자.
불로소득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노력을 하나도 들이지 않고 벌어들인 소득, 즉 자기 밑천은 하나도 들이지 않고 공짜로 벌어들인 소득을 말한다. 자수성가해서 땅이나 집을 구입했다면 이는 자기가 피땀 흘려 번 돈으로 구입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부동산을 이용해서 소득을 얻는데 밑천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노력의 결과가 저축에서 부동산으로 바뀐 데 불과하다(<부동산과 시장경제>, 22쪽).
서 내정자는 저축해서 번 소득이나 부동산으로 번 소득이 같은 성질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거기서 더 나아가서 누가 봐도 불로소득이라고 할 수 있는 로또 불로소득에도 33%의 세금을 부과하는데, 1가구 2주택 이상이라고 해서 최소 50% 이상의 양도세를 물리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이냐고 따진다. 토지와 로또가 전혀 다른 재화이지만, 서 내정자는 두 가지가 같은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결국 그것의 환수 여부는 사회적 폐단의 크고 적음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로또 불로소득의 사회적 폐단은 적다. 극소수가 로또 불로소득을 누린다고 하더라도 로또를 구입하지 않은 사람에겐 피해가 없다. 로또가 생활에 있어서 꼭 필요한 재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식도 마찬가지다. 주식 투기에 참여해서 소수가 불로소득을 누린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주식 시장에 참여한 사람들끼리 따고 잃는 것이다. 주식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에겐 거의 피해가 없다. 그리고 주식에는 기업에 자금을 조달하는 순기능도 있다. 그러나 토지 투기로 인한 불로소득은 투기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피해를 준다. 왜냐하면 인간은 토지가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토지 투기로 인해서 지가가 상승하면 생산 활동에도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 그리고 토지 불로소득 때문에 발생하는 토지 거품과 붕괴를 생각하면 토지 불로소득은 환수해야 할 이유가 명확하다고 할 것이다.
토지 불로소득을 노리는 토지 투기는 지대 추구(rent-seeking)의 전형이다. 지대 추구란 부를 창출하는 행위, 다른 말로 하면 국내총생산(GDP)을 증가시키는 행위가 아니라 '이미' 사회에 존재하는 부를 얻기 위해 애쓰는 행위를 뜻한다. 그러므로 지대 추구에 아무리 엄청난 노력을 투입해도 국부(國富)는 전혀 늘어나지 않는다. 토지 투기를 통해서 누가 돈을 벌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돈을 잃었음을 뜻하는 것이지, 국부가 증가했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토지투기에 나서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생각하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토지 불로소득과 로또(혹은 주식) 불로소득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같은 선상에서 비교해 봐도 다른 불로소득은 사회적 폐단이 적을 뿐 아니라 긍정적인 요소도 있지만, 토지 불로소득은 인정한다고 해서 토지가 늘어나는 것이 아닐 뿐더러 투기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에게까지 막대한 피해를 주고 심지어 경제 전체를 마비시키기까지 한다. 그러므로 토지 소유자가 아니라 국민경제 전체에서 생각하는 장관이라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분명하다고 하겠다.
토지 불로소득 인정이 시장주의다?
한국 사회에 정착된 통념 중 하나가 불로소득 환수에 반대하는 입장을 시장주의라고 부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서 내정자를 시장주의자로 부르는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시장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면 토지 불로소득 인정이 토지라는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데 도움이 될까? 아니면 환수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
토지라는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된다'는 주장은 시장에 의해 토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할 사람이 소유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자원 배분이 효율적이기 위해서는 '소유자=효율적 사용자'라는 등식이 성립해야 한다. 그런데 토지 불로소득을 사유화하면 이 등식이 성립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감가(減價)되는 일반 물자의 경우에는 효율적 사용자가 아니면 손해가 되므로 소유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토지처럼 가격이 오르는 경우에는, 즉 토지 불로소득이 예상되면 사적인 차원에서 이익이 되므로 효율적 사용자가 아니더라도 소유하려고 한다. 살지도 않을 집을 소유하는 이유, 농사도 짓지 않는데 강원도 평창이나 강화도에 땅을 소유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잇다. 그뿐 아니라 토지 불로소득을 용인하는 것은 토지 자체를 놀리거나 비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유인하기까지 한다.
반면에 토지 불로소득을 환수하면 토지가 효율적으로 배분된다. 토지 불로소득이 생기지 않는데 사용하지 않을 토지를 소유할 사람은 없다. 일반 물자처럼 토지를 이용할 의사가 없으면 토지를 처분한다. 그리고 토지 소유자는 그 가치에 맞게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애쓰게 된다. 요컨대, 토지 불로소득 환수가 토지의 효율적 배분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엄밀하게 말해서 토지 불로소득을 인정하는 것은 시장주의가 아니다. 불로소득이 생기든 말든 내버려두자는 생각은 '방임주의'로 불려야 할 것이다.
시장주의에 부합하는 부동산 정책
잘 알려져 있듯이 서 내정자는 종합부동산세 및 다주택자와 비업무용 토지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인 발언을 해왔다. 아마도 이것은 부동산 불로소득이 다른 불로소득과 구별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구분할 필요도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하는 방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서 내정자의 부동산 인식에는 결정적인 결함이 내포되어 있고,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것이 오히려 시장주의에 부합한다.
시장주의에 부합하는 부동산 세제는 보유세를 통해서 불로소득을 완전히 환수하면서 취득세는 완화하고 양도소득세는 일반세율로 변경하는 것이다. 여기서 관건은 보유세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인데, 좋은 방안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먼저는 과세 대상을 건물에서 토지로 전환한다. 부동산 문제의 진원지는 건물이 아니라 토지이고, 건물에 세금을 부과하면 건물을 새로 짓거나 보수하는 생산 활동이 위축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과세표준을 지가(land price)에서 '지대(land rent)'로 바꾸고, 지대에서 현재 지가의 이자 부분을 공제하고 나머지 부분을 세금으로 환수한다. 이렇게 하면 공제받는 이자가 일정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지가는 고정되어 부동산 가격의 급락도 차단할 수 있고, 지대는 사회 발전에 따라 계속 증가하기 때문에 보유세 강화라는 목표도 달성할 수 있다.
서 내정자도 2000년에 쓴 "토지보유세 강화의 논리"(<감정평가논집>, 제10집)라는 논문에서 한국의 "부동산 보유세의 실효세율이 매우 낮"다고 하면서 과세의 형평성 차원에서 보유세를 강화해야 하고 보유세 강화는 "정책적 의지"에 달려 있다는 것을 주장한 바 있다. 또한 김경환 교수와 같이 쓴 책에서도 모든 용도의 토지에 대해 일률적으로 부과되는 토지세는 자원 배분의 비효율을 초래하지 않는 효율적인 세금(<도시경제>, 153~155쪽)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방금 위에서 제시한 보유세 강화 방안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장 원리에 부합하도록 세제를 잘 설계하면 점차적으로 부동산 시장은 정상화된다. 또한 이렇게 하면 분양가 상한제를 해제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금융 규제도 완화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지금 올스톱된 도심지 재개발 재건축도 해법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거래가 활성화되어 하우스푸어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고, 정부도 주거 복지 정책을 더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서 내정자는 불로소득을 환수하게 되면 건설업자들이 주택을 잘 공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즉 "적절한 개발 이익이 보장되어야 주택 공급도 가능"("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비판적 검토", <응용경제>, 2007, 제9권 제2호 201쪽)하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닐 뿐 아니라 나라 경제에도 좋지 않은 생각이다. 건설사가 관공서 등을 지어서 공공에 납품하는 관급 공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유는 토지에서 발생하는 개발 이익이 생겨서가 아니다. 건설사는 건물 생산에서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면 건물을 공급한다. 자동차 회사가 적절한 이익이 예상되면 자동차를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오히려 개발 이익이 예상되면 실수요에 대한 면밀한 조사 없이 과잉으로 공급하고 침체 국면에서는 과소하게 공급하는 문제를 야기한다.
방임주의가 아니라 시장주의로 가야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토지는 천부성과 부증성뿐만 아니라 위치고정성에서 기인하는 비동질성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반 물자와 전혀 다르다고 인식하는 것이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며, 토지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것이 시장주의에 더 부합한다. 토지 불로소득이 생기든 말든 내버려두자는 것은 방임주의다. 서 내정자가 시장은 방임해야 잘 작동한다고 보는 것 같은데 토지 불로소득, 부동산 투기, 전세 대란 등은 그게 아니라는 걸 입증한다.
서 내정자는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평가하면서 "부동산 정책의 목표는 주택, 토지 등 부동산의 시장 기능 강화, 서민 주거 생활 안정, 국민 주거 복지의 향상, 국가 경쟁력 제고"('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비판적 검토', 112쪽)에 두어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 기능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환수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종합부동산세가 잘못 태어났다고 하면('잘못 태어난 종부세', <세계일보> 2008년 9월 25일), 비판만 하지 말고 더 시장 원리에 충실한 세제를 설계해서 제시해야 한다. 부동산에 제대로 된 시장 원리가 적용되어야 서민들의 주거 생활이 안정되고 금융권의 자금들이 부동산으로 몰려가는 것도 차단해서 금융 불안정을 해소할 수 있으며, 주거 복지 수준을 향상시키기도 쉽고, 국가 경쟁력 제고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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