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에는 자동 운전 방식에 따른 인력 효율화를 명분으로 열차의 맨 앞 운전실에만 기관사가 승무하는 1인 승무 체제가 도입돼서 기관사는 열차 뒷부분에서 벌어진 상황을 제대로 판단할 수가 없었다. 불이 나자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의 승객이 탑승하는 열차에 대해 오직 한 사람이 상황을 판단하고 구호 조치를 해야 하는 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드러났다. 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관제실과 무선으로 교신하며, 승객들에 대한 적절한 안내를 도맡아야 하는 현실에서 기관사가 피해를 줄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당시의 무선 교신 내용을 보면 관제실은 현장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기관사는 점차 악화하는 상황 속에서 속수무책이었다. 마지막 순간에는 전동차를 화재 현장에서 이탈시키려고 움직여 보았으나 이마저도 불가능했다. 이미 화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간파한 승객 중 한 명이 닫힌 문을 수동으로 열고 다른 승객들을 대피시켰기 때문이다. 열차의 안전 회로 구성상 수동 개폐 장치에 의해 문이 열린 상태에서는 다른 조처를 하지 않으면 열차가 움직이지 않는다. 열차 뒤에서 벌어진 이런 상황을 모른 채 기관사는 몇 번의 움직임을 시도하다가 여의치 않자 열차를 이동시키는 일을 포기한다.
▲ 2007년 2월 18일 설과 함께 대구 지하철 참사 4주기를 맞은 희생자 유가족이 대구시민회관에서 열린 추모식 도중 희생자들의 위패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
첨단 기계의 결함은 누가 보완하나?
세계 여러 나라의 열차 사고 시 비상 대처 매뉴얼에는 사고나 중대 결함이 발생하면 열차를 바로 세우고 승객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키게 되어 있다. 기차나 항공기는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는 개념의 페일세이프(fail safe) 개념을 적용한다. 항공기는 문제가 생길 경우에도 비상착륙 시까지 최소한의 기능을 유지하는 게 원칙이고 기차는 이와 반대로 즉시 운행을 정지시키는 페일스톱(fail stop)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승객이 대피할 수 없는 공간이거나, 대피를 한다 해도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는 터널이나 다리 위에서 사고가 났을 때에는 안전한 곳까지 운전할 수 있다. 일본에서도 1972년 호쿠리쿠 터널에서 열차 화재로 30명이 죽고 714명이 다치는 사고가 나자, 터널이나 다리 위에서 화재가 발생할 때는 열차를 운전해 이동시킨 후 승객들을 대피시키도록 규정을 바꾸었다. 바꿔 말하면 터널이나 다리 위에서 난 화재는 그만큼 위험하다는 것이며, 지하철이나 고가형 경전철과 모노레일 등의 교통수단은 상시적 위험 구간 위에서 운행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만큼 더 각별한 사고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철도가 운행된 이래 철도 안전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꾸준히 이어져 왔다. 여기에는 과학 기술의 발전도 크게 기여했다. 차량의 성능 개선에 따른 안전도 향상과 신호 시스템의 발달로 이제는 무인 운전 차량도 운행되는 등 철도에서 인간의 영역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철도 선진국들의 안전 원칙은 사람과 시스템의 조화이다. 열차에서는 기관사가 졸거나 신체적 이상으로 열차 운전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운전자 경계 장치라는 시스템이 동작해 열차를 비상 정차시킨다. 인간의 실수나 오류를 시스템이 제어하는 것이다. 반대로 시스템의 오류는 인간이 교정한다. 이처럼 크로스 체킹식 안전 확보 시스템은 열차 안전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한국은 시스템이 완벽하다는 이유로 사람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철도 운영 기관들은 1인 승무제나 역사 무인화를 앞다퉈 도입하면서 사람을 첨단 자동화 시스템으로 대체했다고 주장한다.
과연 첨단 자동화 시스템은 사람을 대체해 안전을 담보할 수 있을까? 지난 2009년 경기도 연천에서 임진강 물이 갑자기 불어나 강가에서 야영하던 시민 6명이 실종된 사례를 보자. 실종됐던 시민은 결국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통일부는 북한의 수공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계속된 비로 북한의 황강댐이 만수위에 이르러 붕괴 위험에 처해 물을 방류한 정황이 담긴 위성사진이 나와 수공 의혹은 사그라졌다. 사고가 난 이유는 수위 자동 경보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으며, 고장 난 채 방치된 경보 장치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참사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었으며, 앞으로도 또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데 있다.
원래 임진강 수위는 지자체인 연천군이 관리했는데 관리 책임이 공기업으로 이전됐다. 국가로부터 이양된 업무는 공기업이 책임지고 수행했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방치되었던 것이다. 공기업!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이명박 정권이 출범할 때부터 '공기업 선진화'라는 이름 아래 최대의 과제는 비용을 줄여 적자를 면하는 것이 되었다. 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쓸데없는 비용을 줄인다는 것인데, 공기업 선진화를 외치는 분들은 쓸데없는 비용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에서 극도의 빈곤함을 드러냈다. 수자원공사에서는 첨단 기법 운운하며 자동 수위 경보 시스템을 거액을 들여 도입했다.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수자원공사 감사가 있을 때 감사 대상자가 디지털 강국인 대한민국에서 막대한 돈을 들여 자동 수위 경보 시스템을 갖추었는데도 사람을 두고 감시를 시켰다면, 그것도 수위를 감시하는 데 정규직 직원을 적지 않은 연봉을 주며 고용했다면, 예산 낭비를 했다며 심각하게 질책당했을 것이다. 자동 감시 시스템이 있는데 사람을 두면 그 사람은 하는 일 없이 돈만 축낸다고 생각하는 게 소위 공기업 선진화를 외치는 분들의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을 우선시하는 여러 선진국은 특히 위험한 분야에서는 인적 감시 시스템을 중요하게 본다. 평상시에는 아무 문제가 없더라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중·삼중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완비되지 않으면 엄청난 재앙이 온다는 것을 상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육체적 한계에 따른 실수를 자동화 기기 장치로 대비하고, 기기 장치의 오류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인간의 대응으로 막아내는 크로스 오버식 이중 안전 시스템은 사회가 고도화·정밀화될수록 더욱 중요해진다. 특히 안전 전문가들은, 시스템과 사람 중 안전을 확보하는 최후의 수단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기업 선진화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비용을 줄이라는 지상 명령이라면, 공기업의 영업 수입이나 가치가 올라갈수록 시민은 사지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난 임진강 참사가 웅변해주고 있다.
예산 절감? 사고 나면 승객이 알아서 생존해야
▲ 열차 맨 뒤에서 승객의 안전을 살피는 일본 지하철 차장. 1인 승무제가 도입된 한국의 상당수 지하철에서는 이런 모습을 볼 수 없다. ⓒ박흥수 |
철도나 지하철의 적자를 줄이겠다며 제일 먼저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사람이다. 철도공사의 비효율을 질타하며 KTX 민영화를 추진하는 국토해양부도 영업비용 대비 과도한 인건비를 줄이는 게 핵심이라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이렇게 사람이 사라지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필자는 왕십리역을 자주 이용한다. 왕십리역에는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운영하는 지하철 5호선과 서울메트로가 담당하는 2호선, 철도공사가 책임을 진 경원선이 교차하며 최근 분당선이 연장 개통되어 이용객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가장 심도가 깊은 지하를 운행하는 5호선에서 지상의 승강장으로 갈아타려면 상당한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그러나 이 왕십리역에서 환승할 때 눈을 씻고 봐도 지하철이나 철도공사의 정규직원을 볼 수가 없다. 지하철 승강장의 길이는 열차 편성에 따라 125-165미터나 되고, 상당수 역은 훨씬 더 긴 200여 미터에 이른다. 만약 이런 공간에서 화재가 발생한다면 끔찍한 참사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해 한 방송국 기자에게 지하철 안전 문제 취재를 협조하기 위해 이 왕십리역의 5호선 승강장을 안내한 적이 있다. 승강장 끝에 서서 "만약 이 자리에서 화재 대피를 해야 하고 연기가 자욱한 상황에서 정전되었다면 살아날 자신이 있겠는가"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조명이 확보된 곳과 암흑 속에서 인간의 대처 능력은 엄청난 차이를 드러낸다. 게다가 지하철 이용 시민은 역의 모든 공간을 익숙하게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도 아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방독면이나 공기 호흡 장치도 승강장 한두 곳에만 설치되어 있는데 당황한 수많은 인파가 어둠 속, 연기 속에서 이런 구조용품을 손쉽게 찾을 수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특히 전원이 없는 상태에서도 신속하게 대피를 유도할 수 있는 야광 띠 안내 표지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일본 지하철, 2인 1조 안전 요원 배치
가까운 일본에서는 웬만한 역 승강장에 철도 직원이 서서 시민을 안내하고 위험을 예방하고 있다. 특히 인파가 몰리는 출퇴근 시간에는 더 많은 직원이 배치된다. 열차의 맨 뒤에 승차한 차장들은 홈에 내려서 승객들의 승하차 과정을 지켜본다. 예컨대 일본에서 왕십리역과 비슷한 규모의 역에서 환승한다면 지상 승강장과 환승 통로, 5호선 승강장에서 지하철 직원과 마주칠 수 있으며, 안전 요원들은 2인 1조로 순회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정말로 단 한 명의 철도나 지하철 직원도 만날 수 없다. 만일의 사태가 정말로 두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비상시 훈련된 직원이 능숙하게 안내하는 지하철 시스템과 관계자가 아무도 보이지 않는 시스템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이며, 천국과 지옥의 차이다.
▲ 승강장에서 승객의 안전을 살피는 도쿄 지하철 역무원들. ⓒ박흥수 |
▲ 도쿄 지하철 이케부크로역 개찰구의 역무원. 자동화 기기가 설치되어 있음에도 눈에 잘 띄는 공개된 곳에서 상시적인 근무가 이뤄지고 있다. ⓒ박흥수 |
지난달 대구방송국(TBC)의 한 프로그램이 대구에서 모노레일 방식으로 건설 중인 도시철도 3호선을 다뤘다. 이 프로그램에서 시 관계자는 무인 운전에 따른 경비 절감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대구 모노레일은 공중에 떠서 다니는데, 다른 모노레일과 달리 비상시 승객이 대피할 공간이 없다. 승객이 대피할 수 있는 상판을 만들고 그 위에 레일을 까는 대신, 쾌적한 조망을 위해 레일만으로 운행한다는 것이다. 건설본부 관계자는 화재가 발생할 경우 바로 감지해 자동으로 화재를 진압해주는 첨단 시스템이라 문제가 없다는 태도를 취했다. 그런데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면 이 첨단 화재 진압 장치가 만일 작동하지 않았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문제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얼마 전 용인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청년이 실수로 불을 내서 주차되어 있던 차량 80여 대가 타버리는 피해를 봤다. 이 아파트 주차장에는 스프링클러 시스템이 있어 화재 감지 시 자동으로 소화되어야 하는데, 하필이면 발화지점 밑으로 스프링클러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전기 배선이 지나갔고 이것이 타버리는 바람에 스프링클러는 먹통이 되어 피해를 키웠다.
의정부 경전철이나 대구 모노레일이나 모두 최첨단 자동화 시스템을 자랑한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조심해야 할 지점은 이 첨단 기술 맹신주의이다. 우리 사회는 첨단이란 말을 바람직한 것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물론 신기술을 도입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첨단 기술이 사람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공공의 영역에 도입된다면 문제가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얼리어답터'라고 전자제품과 같은 신제품이 나왔을 때 누구보다 앞서서 비싼 비용을 들여서라도 체험하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사람의 생명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반면 공공 교통수단일 경우에는 다른 차원의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첨단이란 말은 무엇인가? 말 그대로 가장 끝에 와 있다는 것이다. 칼끝에 서 있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달리 보면 검증되지 않았다는 말도 된다. 공공 교통수단에 도입되는 기술은 그 안정성이 충분히 보장되고 입증돼야 한다. 첨단 기술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신기술을 체험하는 '얼리어답터'가 아니라 신기술의 실험대상이 되는 마루타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타이타닉호에서 후쿠시마 원전까지 근대 이후 발생한 끔찍한 사고들의 이면에는 첨단 기술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숨어 있었다.
▲ 2008년 12월 29일 문을 연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의 지하철안전전시관에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당시 중앙로역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연합뉴스 |
지하철을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정부야말로 안전 위협
지하철과 같은 공공 교통시설에 위험인자는 무엇일까?
하나는 사회가 필연적으로 발생시키는 소외로 인한 인간의 고립이다. 그동안 기술의 발달은 열차의 운영 체제에 필요한 여러 가지 안전 요소를 확보해 와서 열차 사고는 웬만해서는 중대한 사고로까지 발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구 지하철 참사에서 밝혀지듯이 사회로부터 고립된 사람들이 극단적 행위를 하는 것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초등생부터 숨 막히는 입시 전쟁에 내몰려야 하고 청년 실업으로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이 기댈 곳이 없어졌다. 50대까지 회사에 다니면 도둑놈 소리를 듣는 사회다. 골목 상권까지 장악해나가는 재벌들에 밀려 수많은 자영업자가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다. 노인들은 사회보장의 언저리에서조차 밀려나 있다. 1대 99의 사회로 불리는 한국 사회 전체가 갈수록 불특정 다수에 대한 원한을 증폭시키는 용광로가 되고 있다. 지난해에도 전철 승강장에서 '묻지 마 칼부림' 사건이 나기도 했다. 승자가 되길 재촉하고 경쟁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있는 한국 사회의 구조와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공공 교통수단에서 위험은 갈수록 증가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무조건 비용 절감이라는 잣대로 재단하는 태도다. 대표적인 것이 지하철 승무 체계를 기관사 혼자 책임지는 1인 승무 시스템을 고집하는 것이다. 1인 승무 시스템은 여러 가지 심각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대구 지하철 참사 같은 사고가 벌어질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없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상적으로 기관사에게 과도한 정신적·육체적 부담을 주어 안전 운행에 커다란 장애가 된다. 기관사들은 흐린 조명이 점점이 벽에 붙어 있는 어둠 속 터널을 전조등에만 의지한 채 달린다. 지하 터널을 받치는 기둥들이 무수히 옆으로 지나다가 갑자기 밝은 빛이 보이면서 승강장이 나타나는 근무 환경은 인간의 정신을 충분히 혼미하게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심도가 깊은 지하에서 오염된 공기와 열차 운행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터널 내의 분진, 고압 전선에 따른 전자파의 영향은 기관사의 피로도를 증가시킨다. 여기에 혼자서 수천 명에 이르는 승객을 책임져야 하는 부담에 사고를 경험하기라도 하면 그 정신적 충격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최근 공황장애나 심신 이상을 겪은 기관사들의 자살 사건이 잇따르고 있는 것은 기관사들의 근무 환경이나 승무 체계를 지금처럼 유지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이다. 특히 공황장애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지난해 공황장애를 앓고 있던 도시철도공사의 기관사가 선로에 뛰어들어 자살한 사건을 두고 많은 다른 기관사들은 자살한 기관사를 비난했다. 선로에 뛰어든 사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기관사들이 사고를 통해 얻는 정신적 트라우마가 얼마나 큰지 잘 아는 기관사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공황장애의 증상이 심각하게 발현된 사람의 경우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고 오직 숨 막히는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도피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극에 달해 극단적 행위를 벌인다고 말한다. 자살한 기관사는 자신을 압박하는 지하 공간과 탈출할 수 없을 것 같은 한 평 남짓한 운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로 위로 뛰어든 것이었다. 노동자의 육체적·정신적 건강이 확보되지 않은 공공 교통수단은 움직이는 시한폭탄이다. 내가 탄 지하철을 모는 기관사가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과속으로 앞서 진행하고 있는 열차와 간격을 좁히는 일이 발생한다면 얼마나 끔찍한가?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하게는 공공 교통수단을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보거나 이윤을 극대화해야 하는 대상으로 간주하는 정부 당국이나 운영 기업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 KTX 민영화를 추진하겠다는 국토부도 결국은 이윤 확보를 최고의 가치로 두고 이를 위해 다른 것들의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모든 지자체의 지하철 운영 기관은 비용 절감을 최대 목표로 정했고, 이 지상 목표 아래 다른 가치들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리고 이런 체제가 오랫동안 유지되다 보니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체제인양 자리 잡았는데 그만큼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대가는 커지고 있다.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우리가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가장 안전해야 할 공공교통을 이용하다가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영문도 모르고 숨져간 사람들과 그 가족들의 고통만 헤아려도 지금의 도시철도 체제를 이대로 놔둬서는 안 된다. 생명이 이윤에 종속되는 사회만큼 불행한 사회가 또 어디 있겠는가? 언제나 생명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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