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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축구 뒤흔든 승부 조작, 몸통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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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축구 뒤흔든 승부 조작, 몸통은 따로 있다

[올댓풋볼] 스포츠의 가치 어지럽히는 배후 세력 소탕해야

세계 축구의 중심, 유럽 축구계가 벌벌 떨고 있다. 리그별로 본격적인 순위 싸움에 돌입하고, 유럽 축구의 정수라 할 수 있는 클럽 대항전인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전 시작을 앞두고 승부 조작 스캔들에 휘말렸다. 과거 이탈리아, 터키, 크로아티아, 벨기에 등에서 이미 수차례 일어났던 일이지만 이번엔 규모 자체가 다르다.

유럽연합(EU) 산하의 공동 경찰기구인 유로폴은 지난 4일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본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적으로 680경기에서 조직적인 불법 승부 조작이 일어났다"고 발표했다. 승부 조작 청정 구역이라 자신하던 '축구 종가' 잉글랜드에서 벌어진 범죄도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대부분의 승부 조작이 관심이 적은 하부 리그를 중심으로 벌어진 것과 달리, 이번 유로폴의 수사 대상에는 월드컵 예선, 챔피언스리그 같은 굵직한 경기도 포함됐다. 자칫 판 자체가 엎어질 수도 있는 대형 스캔들이다.

승부 조작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2011년 대한민국 스포츠는 승부 조작의 광풍에 휘말렸다. 프로 축구를 시작으로 프로 배구, 프로 야구까지 그 범위가 확산됐다. 그 과정에서 스포츠 전체에 승부 조작이 만연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승부 조작은 스포츠계에서 약물과 더불어 공공연한 비밀로 통한다. 야구의 배리 본즈, 사이클의 랜스 암스트롱, 격투기의 알리스타 오브레임 등은 약물 투여 사실이 알려지며 인간 한계에 도전한 영웅에서 악마와 손잡은 악당으로 추락했다. 더 슬픈 사실은 약물에 의존해 괴력을 발휘하는 것이 저들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승부 조작 역시 순수한 열정과 땀으로 경쟁한다는 스포츠의 최우선 가치를 파괴한다. 마치 영화처럼 짜인 각본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는 건 팬들로서 가장 큰 배신감을 느낄 부분이다.

승부 조작은 어떻게 이뤄질까? 대체로 승부 조작을 원하는 집단은 스포츠계와 거리가 있다. 그들은 조작을 통해 이득을 취하려는 범죄 집단이다. 대부분 자금력을 지닌 조직폭력배들로 알려졌다. 조작을 위해 조종할 수 있는 그라운드 위의 존재를 매수하는 것이 그들의 첫 임무다. 이를 위해 브로커가 영입된다. 브로커는 전·현직 선수, 그리고 그들과 끈이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브로커는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포지션을 중심으로 매수에 들어간다. 축구의 경우 주요 타깃은 골을 넣는 스트라이커, 그리고 골을 막는 골키퍼다. 야구는 투수에 해당한다. 그들은 의도에 따라 결과를 다른 방향으로 가져갈 수 있다. 스트라이커는 의도적으로 골 찬스를 놓치면 되고, 골키퍼는 막을 수 있는 상황에서 판단 미스를 가장해 실수를 하면 된다. 투수는 스트라이크와 볼의 배합으로 경기를 컨트롤한다. 그들의 의도를 파악하지 않고 본다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이다.

또 하나, 여러 승부 조작에서 확인 가능한 공통점은 비중이 낮고 관심이 적은 경기에 집중된다는 사실이다. TV중계를 통해 안방으로 전달되는 경기에서는 의도된 승부 조작을 하기가 어렵다. 관심에서 멀어질수록 조작하기 용이하다. 과거 프로 축구의 경우 승부 조작에 휩쓸린 선수 대부분이 하위권 팀 혹은 재정적으로 열악한 시민구단, 군팀 등에 속했다. 이번에 유로폴이 조사하고 있는 경기들도 중계 시스템이 확보되고 관심도가 높은 서유럽 리그보다는 중부·동부 유럽 국가의 하부 리그를 중심으로 펼쳐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일 유로폴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유럽 축구가 승부 조작에 오염됐다는 놀라운 사실을 폭로했다. ⓒAP=연합뉴스

유럽에서 터진 이번 승부 조작 파문에는 심판까지 개입했다. 물론 과거에도 여러 차례 심판들이 승부 조작에 가담한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심판은 골에 대한 판단 권한을 가진 것은 물론, 페널티킥처럼 득실점에 직접 관여해 반칙을 조종할 수 있다. 심판까지 확보한다면 승부 조작은 더 용이하게 이뤄질 수 있다.

중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의 승부 조작자는 감독은 물론 협회 수뇌부까지 매수했다. 한국 지도자로서 중국 축구계에서 가장 성공한 이장수 감독은 "과거 이런 일이 있었다. 리그 막바지가 되면 호텔 방으로 전화가 와서 '돈을 줄 테니 협조하라'고 한다. 출전 라인업을 허술하게 짜라는 것이다. 선수들과는 이미 합의가 됐다고 했다. 그 얘길 듣고 의욕 넘치는 선수들을 출전시켜 이겨버렸다. 협박 전화를 계속 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경질됐다"며 중국 축구계에 퍼진 승부 조작의 심각성을 전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관심이 적은데 어떻게 거액의 베팅이 몰릴 수 있느냐'고 묻는다. 인기와 승부 조작은 전혀 상관이 없다. 승부 조작이 자행되는 스포츠 도박은 스포츠토토처럼 정부와 기업에 의해 운영되는 양성화된 스포츠 도박의 정반대에 위치한 음성적 지역을 무대로 한다. 누구도 관심이 없을 법한 동네 경기에조차 베팅이 걸리면 돈이 모인다. 그렇기 때문에 하부 리그를 대상으로도 승부 조작에 들어가는 게 용이하다. 인터넷 발달로 전 세계의 축구 정보를 잇는 라인이 더욱 빨라지고 좁아지면서 생긴 일이다. 한국에서도 불법 사이트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국내외의 다양한 경기들을 대상으로 실시간 베팅이 진행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승부 조작의 자금줄은 주로 아시아에서 온다. 동남아시아와 중국은 축구를 중심으로 한 스포츠 도박의 천국이자 몸통이다. 2011년 국내에서 벌어진 승부 조작 사태에도 중국의 범죄 조직이 가담했고, 그것을 모델로 국내의 조직폭력배들이 가세하며 벌어진 일이었다. 이번에 유로폴이 밝힌 승부 조작 사태의 배후에도 싱가포르의 범죄 조직이 관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도박을 유달리 좋아하는 중국과 동남아에서 스포츠를 대상으로 한 도박은 점점 몸집을 불려가고 있다. 수백억 단위의 베팅도 벌어진다. 1950-1960년대 아시아 축구의 강자였던 미얀마(당시 버마), 말레이시아 등이 몰락한 가장 큰 이유도 스포츠 도박을 위한 승부 조작 사태였다. 해당 국가에서는 현재도 자국뿐만 아니라 해외 축구에 대한 열기가 뜨거운데, 그 이면에서 불법 스포츠 도박이 횡행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당장은 승부 조작이 자행된 것이 어느 경기였는지, 어느 리그와 어느 국가, 그리고 어느 정도의 스타 플레이어들이 가세했는가와 같은 축구 자체의 문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인터폴이 가장 원하는 건 배후 세력의 소탕이다.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 때도 그랬지만, 승부 조작에 가담하는 선수들은 고작 수백만 원, 수천만 원에 이용되는 체스의 말과 같은 존재일 뿐이다. 빙산의 일각을 볼 게 아니라 수면 아래에 있는 거대한 정체를 찾아야 한다. 수백억 원, 수천억 원을 쥐고 스포츠의 참된 가치를 흔들려는 이들을 말이다. 이번 사건은 국제 범죄다. 유럽을 넘어 전 세계의 축구, 그리고 스포츠 전체의 자정 작용을 위한 중요한 계기가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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