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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산 사망자 유족 "삼성, 대국민 사과만 하고 우리에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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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산 사망자 유족 "삼성, 대국민 사과만 하고 우리에겐…"

"기계 결함인데 개인 탓…회사 차원 조문 안 해"

슬픔은 분노로 바뀌어 있었다. 이틀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한 유가족들은 눈물이 마른 얼굴로 빈소를 지켰다. 목이 멘 고인의 어머니가 가까스로 말을 꺼냈다. "삼성전자에서 조문을 오지 않아 서운합니다. 사과도 왜 우리한테 안 하고 국민한테 하는지…."

빈소 앞에 놓인 대여섯 개 화환 가운데 삼성전자가 보낸 화환은 없었다. 조문객들도 뜸했다. 30일 오후 3시 삼성전자 반도체 화성공장에서 불산 누출 사고로 숨을 거둔 박 모(34) 씨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강동구 천호동 친구병원 장례식장 풍경이다.

고인의 외삼촌 허 모(51) 씨는 "우리가 28일 삼성전자 담당자에게 사망 경위를 설명해달라고 두 차례 연락했지만 완전히 무시당했다"며 "(고인이 숨진 지) 사흘이 지나도록 삼성에서 조문은커녕 연락도 전혀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동수 삼성전자 사장이 29일 이번 사고에 유감을 표명한 것에 대해서도 유족들은 "유감 표명은 국민에게 했지 우리에게 한 것이 아니다"며 "언론에 유감을 표명하면 뭐하나. 우린 (유감 표명을) 받은 적 없다"고 잘라 말했다. (☞ 관련 기사 : 삼성 반도체 불산 잔류…경찰 수사 난항)

▲ 30일 오후 경기 화성 동탄1동 주민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사업장 불산 가스 누출 사고 관련 주민 설명회에서 삼성 반도체 환경안전팀장 김태성 전무 등 삼성 관계자들과 주민들이 불산 사고로 숨진 고 박 모씨를 위한 묵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박 씨의 유족들은 고인이 떠난 지 이틀 넘게 지나도록 삼성전자 관계자가 빈소 조문은커녕 유족에게 연락조차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뉴시스

"그렇게 목숨 걸고 할 만한 일이었나…"

박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친 뒤 STI서비스에 입사해 10년 넘게 일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성실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고인의 사촌은 박 씨가 "늘 자부심을 가지고 일한다고 말했다"며 "목숨 걸고 일하다 사망했는데, 그렇게 목숨 걸고 할 만한 일이었나…"라고 허탈해했다.

고인의 어머니는 박 씨가 삼성전자에서 일한다고 했을 때 "그렇게 힘들게 일하는 줄"은 몰랐다. 그는 "(아들이) 밤중이고 새벽이고 할 것 없이 나갔다지 않느냐"고 가슴을 쳤다. 또 다른 유족은 "삼성에 들어가서 일한다고만 알았지, 걱정할 거 뻔히 아는데 누가 위험하게 일한다고 가족들에게 얘기하겠느냐"고 반문했다.

STI서비스 관계자도, 삼성전자 관계자도 누구 하나 당시 고인의 작업 환경에 대해 속 시원히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동료들도 대부분 쉬쉬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허 씨는 "STI서비스도 삼성에서 잘릴까 봐 직원들이 초비상인 것 같다"며 "어제 동료 한 분이 손을 붙들고 울더라. 미안하다고. 미안해서 가족에게 아무 말도 못 했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고인의 한 동료는 "(고인은) 주로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보고 현황을 총괄하다가 장비에 이상이 생기면 가서 현장을 관리하고 점검하는 일을 했다"고 말했다. 가스 누출 사고가 얼마나 자주 발생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휴대전화가 언제 고장 날지 모르듯이, 기계가 고장 나는 시점도 불규칙해서 알 수 없다"고 했다.

"기계 결함으로 사람 죽었는데 개인 책임으로 돌리나"

허 씨는 "하청 직원일지라도 10년 넘게 자기들 사업장에서 일했는데, 삼성은 언론에만 (정보를) 유출한다"며 "방송에만 대고 말하지 말고 유족들도 만나서 상황을 설명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더 나아가 "삼성전자가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허 씨는 "우리한테 우호적인 기사가 하나 올라오면, 삼성 측 반박 기사로 포털사이트 기사들이 다 밀린다"며 "우리가 소총을 쏘면 저쪽에서 미사일이 날아오는 격"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고인이) 방제복을 안 입었다고 하다가 우리가 입었다고 반박하니까 언론을 통해 인정했어요. 삼성전자는 밸브를 교체했다고 했는데, 다른 직원 말로는 불산이 새고 있는 상황에서는 (위험해서) 밸브를 교체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 밸브는 노후 밸브라고 하고요. 경찰은 삼성의 브리핑을 인용했습니다."

유족들은 유독 가스가 유출된 것 자체가 잘못이고 사람이 죽었는데, '방제복 착용 논쟁'으로 몰아가는 것이 고인의 죽음을 개인 책임으로 돌리려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기계 문제인데, 기계에 결함이 생겼는데 자기네(삼성전자) 잘못은 따지지 않잖아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92조를 보면, 유해 가스가 누출돼서 노동자가 위험해질 우려가 있을 때 사업자는 기계 가동을 멈추고 유해 가스를 모두 제거한 다음 기계를 정비해야 한다.

장안석 건강한노동세상 사무국장은 "삼성전자는 공장을 계속 가동하기 위해 10시간 동안 가스 누출을 방치했고, 27일 밤 11시에야 가스를 제거하지 않은 채 수리 작업에 들어갔다"며 "삼성전자가 기본 안전 수칙만 지켰어도 노동자가 죽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자 관계자는 "30일 오후 5시 50분에 삼성전자 직원 18명, 오후 6시 27분에 14명이 조문을 갔다"고 31일 해명했다. 고인이 숨진 지 3일이 지나도록 조문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이 관계자는 "3일째에 간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며 "회사 차원에서 조문을 결정한 것은 아니고, 같이 일했던 직원들이 개인적으로 위로하기 위해 갔다"고 말했다.

고인의 외삼촌은 "삼성전자 관계자들이 조문을 왔었는지 몰랐다"며 "삼성전자에서 유족과 대화를 나눴는지 의문"이라고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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