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화성동부경찰서는 29일 불산 제공업체인 STI서비스 대표와 안전 관리 책임자들을 상대로 사고를 즉시 신고하지 않은 이유를 조사했다. 협력업체 관계자들은 "현장 처리에 급급해 경황이 없어 신고할 생각을 미처 못했다"고 진술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불산 누출 사실이 알려진 28일 해명자료를 통해 "협력업체를 불러 통상적인 유지·보수를 했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가 심각한 유출 사고를 '통상적인 유지·보수'로 축소 발표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삼성전자 측은 또한 사고가 외부에 알려진 28일 "유출된 불산은 2-3ℓ의 극미량이어서 별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서울 한강성심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박모 씨 등 불산 누출 피해자들은 "27일 사고 현장에 도착해 보니 불산 탱크 밸브 누출 지점을 임시로 막아놓은 비닐에 불산이 흘러넘치고 있었다"고 29일 진술했다. 경찰이 이날 확인한 사고 현장 안 CCTV 화면에서도 희뿌연 연기가 바닥을 뒤덮어 앞이 탁해질 정도로 상황이 급박했다. 환경부는 불산 누출량을 약 10ℓ로 추정했다.
삼성전자의 진술 번복도 도마에 올랐다. 삼성전자는 28일 사상자 5명 가운데 숨진 박모 씨만 방제복을 입지 않아 사망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유족들이 "고인은 사고 초반을 제외하고 줄곧 방제복을 입고 있었다"고 항의하자, 삼성전자는 29일 "다시 확인해 보니 유족 주장이 일부 맞다"고 번복했다.
삼성전자가 늦장 대응한 탓에 소방차의 현장 도착 시간이 40여 분가량 늦어지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불산이 누출되는 밸브를 10시간 넘게 비닐봉지로 막아놓고 현장 직원들에게 사고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결국 사고가 난 지 하루가 지난 28일 오후 4시 30분께 뒤늦게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차는 공장 안을 헤매다 5시 10분에야 현장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안 직원들이 사고 발생 지점을 모른 탓이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는 '보안 절차'를 이유로 수사에 착수한 경찰의 사고 현장 출입을 지연시켰다. 경기 화성동부경찰서 관계자는 "수사팀을 급파했지만 정문에서 보안 절차를 내세우는 바람에 1시간 넘게 현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고 <한겨레>가 보도했다. 사고 현장을 수사하려는 공권력을 기업체가 막아선 것이다. 이는 "관계 당국의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전동수 삼성전자 사장의 공식 입장과도 배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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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앞으로 삼성전자 측이 수사에 적극 협조하더라도 진상을 규명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은 "재해 발생 원인을 규명할 수 있도록 재해 현장을 보존하는 절차 역시 진행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며 "2차 누출이 있던 28일 5시경부터 정부 당국이 조사에 들어간 16시까지 11시간은 모든 것을 은폐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비판했다.
경찰은 피해자를 후송한 삼성전자 응급팀도 수사에 비협조적이었다고 지적했다. 화성동부경찰서 관계자는 29일 "피해자들이 치료를 이유로 진술을 거부하고, 현장에서 부상자를 호송한 삼성전자 응급팀(GCS) 측이 수사에 협조하지 않아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허술한 안전 관리도 도마에 올랐다. 삼성전자는 불산 가스가 누출된 후에도 공장 가동을 멈추지 않았고, 잔류 가스조차 빼지 않고 수리 작업을 허용했다. 반올림은 "누출 사고를 막기 위해서라도 가스 배관 교체 작업은 밸브를 잠그고 잔류 물질을 뺀 뒤에 진행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지적했다.
은폐 의혹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애초에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파악한 내용을 발표했지만, 관계 당국에서 다른 조사 결과가 나왔고 (삼성전자가) 일부러 은폐하지는 않았다"며 "지금은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중이고, 조사 결과가 나오면 그에 따라 협조를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반올림은 30일 삼성전자 반도체 화성공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 반도체에서 벌어진 백혈병 산재 사건에서 삼성은 항상 가스 누출과 노후화된 설비가 없다고 주장했다"며 "정부는 이번 불산 누출 재해에 대한 삼성전자의 과실과 책임을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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