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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정치, 그런데… '믿을 놈'이 없다

[민미연 리포트-다시 한국을 생각한다]<10>

무능하며 정쟁만 일삼는 기존 정치체제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특히 2008년 9월의 미국 금융위기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지난 3년 동안 세계는 미국을 비롯하여 유럽 국가들의 경제동향에 계속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생각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앞으로 세계경제가 심각한 상황을 겪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하고 있다.

미국은 정부의 부채한도를 늘리는 문제를 둘러싸고 이번 8월 초까지 여야 간에 극한 힘겨루기를 하며 국제적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그 후유증으로 국가 신용등급이 떨어지며 세계 주식시장이 동반 폭락했다.

이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앞으로 2년 동안 금리를 0%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결정을 내렸으나 그 정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또 별 뾰족한 정책수단도 남아 있지 않다. 이런 위기가 몇 차례 되풀이되며 결국 세계경제는 파국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유독 한국의 정치인들은 이런 일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현재의 국제 경제위기는 적당히 극복할 수 있고 다시 태평성대가 올 것처럼 생각한다. 외국 언론이나 은행들조차 세계의 자금경색이 시작되면 한국이 아시아국가 중 가장 위험하다고 걱정하는데도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정치권의 관심사는 오로지 내년의 총선과 대선뿐이다. 국회의원들은 어떻게 하면 공천을 받아 금배지를 한 번 더 다느냐에 목을 걸고 있다. 그래서 벌써부터 유력 인사들에게 줄을 대려고 이합집산을 시작하고 있다. 지난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친이계가 몰락한 것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정당들도 마찬가지이다. 국민이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고 앞으로 한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큰 어려움에 부딪칠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어떻게 내년에 집권하느냐 하는 데에만 골몰하고 있다.

그래서 최근의 무상급식논쟁이나 복지논쟁, 대학의 반값 등록금 논쟁에서 보듯 표를 의식한 표피적인 접근만이 난무한다. 여나 야나 예산은 정밀하게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혜택을 늘리는 것을 능사로 안다. 포퓰리즘 쪽으로 나가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떠드는 여당 인사도 있다.

▲ 2010년 6월2일 교육감선거에서 무상급식 의제가 효과를 보자 그 후 모든 정당이 복지정책을 천명하고 나섰다. 이는 얼마나 속 보이는 태도들인가. ⓒ친환경무상급식연대

오직 하는 일이라고는 지금까지의 타성대로 정쟁이나 일삼는 것이다. 다른 정당의 정책제안에 대해서는 옳건 그르건 무조건 반대가 생리화되어 있다. 당장 긴급한 민생법안들조차 정쟁의 제물이 되고 있다. 합의했다가 뒤집는 일도 어렵지 않다. 무엇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그런데 지금은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되는 상황이다. 임박해 있는 국제경제 파국에 대해 시급히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벌써 늦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야 피해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 또 민생을 지키고 안정시키기 위한 특단의 대책들을 강구하고 시행해야 한다. 이것은 적당히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려면 정쟁을 그만두고 서로 협력해야 한다. 그런데 매우 유감스럽지만, 한국 정치상황에서 그것은 불가능하다. 같이 공멸하더라도 절대로 양보는 하지 않는다. 아마 벼랑에서 굴러떨어지고 난 뒤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상대방을 비난하고 헐뜯기에 바쁠 것이다. 애국심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조차 없다.

▲ 2011년 7월4일의 한나라당 12차 전당대회. 새로 지도부가 구성되었으나 이들이 한나라당을 변화시키면 얼마나 변화시키겠는가. ⓒ프레시안(최형락)

퇴로가 없는 한나라당

그러면 여러 정당 가운데 그래도 한국의 미래를 맡길만한 정당이 있을까? 주된 세 정당을 살펴보자. 한나라당은 이명박 정권의 실정에서 보듯 이미 그 한계가 분명히 드러났다. 신자유주의가 붕괴하는 상황에서도 뭐가 뭔지 모르면서 극단적인 신자유주의적 방향을 계속 추구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의 사회와 경제를 급속히 망가뜨리고 있다.

요즘은 지지율이 떨어지고 다음 총선이나 대선에서 패배할 것 같이 보이자 지난번 전당대회를 계기로 당의 이미지를 대폭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래서 갑자기 재벌이나 대기업을 비판하고 중소기업, 자영업자들을 살려야 한다고 떠들어대고 있다.

또 뜬금없이 대학의 반값 등록금이나 무상보육 같은 의제들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그러려면 처음부터 그래야지 지금 와서 그러는 것이 무슨 효과가 있을까? 당내 일부에서는 아예 당의 이름까지 바꾸자는 이야기가 있는 모양인데 그런 것들이 다 국민을 우습게 보는 태도이다. 아무 생각 없이 촐랑대는 경망스런 태도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강령에서 선진화를 내세우고 있다. 그래서 중진국과 선진국의 기로에서 표류하는 나라를 선진화하는데 모든 당력을 집중하겠다고 한다. 말하자면 한국을 선진국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 같은 모습의 선진국이 지구 상 어디에 있나. 몰라도 너무 모르고 알고도 그런다면 정말 낯 두꺼운 일이다.

혹시 박근혜 씨가 집권을 하면 달라질까? 박근혜 씨는 이명박 씨보다 더 보수적으로 보이는 인물인데 달라지면 얼마나 달라질까. 부친의 후광에나 힘입은 데다, 1960·70년대적인 단순한 사고를 가지고 21세기 정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개인적인 장점도 있기는 하나 세상은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묘해졌다.

반성이 없고 무기력한 민주당

그러면 민주당은 어떨까? 믿을만한 정당일까? 한나라당의 대안으로서 현실적으로 가장 유력한 정당이니 사람들이 민주당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정당통합 논의건 야당과 관련된 모든 논의가 민주당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민주당이 과연 국민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정당이냐 하는 문제에 부딪히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마디로 민주당은 그럴 능력이 없다. 우선 민생을 안정시킬 정책대안이 빈약하다. 그것은 민주당이 한나라당보다는 좀 낫지만, 기본적으로 보수정당이기 때문이다.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이라고 주장하나 실제로는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고 있으며 따라서 현재의 사회경제적 상황에 대한 비판적 태도도 크게 부족하다.

실제로 민주당은 열린우리당 시절에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추구해 왔고 정권을 잃은 다음에도 그것에 대한 치열한 반성이 없다. 정동영 씨 등 일부 인사가 개인적으로 과거 정권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취한 것을 반성한다고 했지만 그것뿐이다.

그래서 그 강령에는 신자유주의란 단어가 한마디도 들어가 있지 않다. 아마 일부러 집어넣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우리 현실의 많은 고통이 신자유주의에서 비롯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에 대한 아무 언급이 없다는 것은 핵심을 잃은 것이다. 그래서 여러 정책에서 비판적 수사를 동원하기는 해도 논리성도 떨어지고 절실하게 마음에 와 닿지는 않는다.

만약 다시 집권을 하겠다고 하는 정당이라면 열린우리당 시절의 실정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치밀하게 검토하고 그것을 전면적으로 고치는 노력이 선행해야 한다. 별 반성도 없이 다시 표를 주시오 하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다.

이런 무반성적 태도는 주된 정책을 다루는 데서도 나타난다. 강령에는 주된 정책 30개가 포함되어 있는데 구구절절이 옳은 소리뿐이다. 마치 바른 생활 교과서와도 같이 그럴듯하다. 그러나 대체로 탁상공론으로 별로 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또 강령 앞부분에서 일자리, 교육, 의료, 주거, 노후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한다고 선언했음에도 실제로는 30개 정책이 평면적으로 나열되어 무엇이 중요한지,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이것은 민주당 사람들에게 강렬한 문제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엇이 국민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인지 잘 모르고, 문제를 모르니 해결할 방안도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정책대안들이 부실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의 노동 현실에서 매우 중요한 비정규직 대책을 보자. 민주당은 2010년 3월7일에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민주당의 지상과제다>라는 16페이지짜리 문건을 발표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내세운 것은 노동시장의 유연 안정성 모델을 정립하는 것과 비정규직을 매년 20만 명씩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고용시장을 유연하게 하되 안정성을 확보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노·사 간, 정규직·비정규직 간, 대기업·중소기업 간, 정부·노사 간에 긴밀한 협의와 사회적 타협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긴밀한 협의는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타협은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하자고 하면 모든 세력이 쌍수를 들고 환영할까? 사실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 시절에도 노사정위원회가 있었지만 사회적 타협은 불가능했다. 그 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으면 이것은 하나 마나 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비정규직을 매년 20만 명씩 5년간 100만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법으로는 기업에 전환지원금을 1인당 25~50만 원씩 지급하고, 비정규직 많이 쓰는 기업은 정부발주 공사에서 불이익을 주며, (가칭)비정규직 전환촉진법을 만들고, 비정규직 남용에 대해 고용보험료 차등 부과 등 경제적 제재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법들을 통해 한 해 20만 명씩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기업주들이 돈 몇 푼 받는다고 생각을 바꿀까. 상식적으로도 누구나 이런 미적지근한 방법들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또 전환금 지급에 소용되는 예산의 정확한 내역이나, 정부발주 공사에 불이익을 주면 그것이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전환촉진법의 내용은 무엇인지 아무 언급도 없다. 최소한의 구체적인 내용도 빠져 있다.

이런 것을 보면 이 정책은 몇 사람이 책상에 앉아 적당히 작성한 것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별로 고민한 흔적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제1야당의 정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실한 이런 정책을 도대체 어떻게 시행하겠다는 것인가.

비정규직 대책만이 아니다. 다른 중요한 정책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사여구만 나열하고 있을 뿐 정책을 현실화하려는 의지나 열정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민주당의 주장을 국민이 무게 있게 받아들이지 않고 당에 지도력도 생기지 않는 것이다.

민주당 대표의 지지율이 친노 인사들 보다도 낮은 수준에 머무는 것은 개인적인 이유도 있겠으나 이렇게 전반적으로 당이 시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차기에 정권을 잡으면 뭐하나. 다 헛짓일 뿐이다.

계급 틀 속에 갇힌 민노당

민주노동당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인식을 하고 있으며 한국사회의 문제들을 나름으로 잘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국민을 설득할 힘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왜 지지율이 한계 이상을 넘어서지 못할까?

그것은 기본적으로 계급 정당의 성격 때문이다. 노동자, 농민 등 민중의 힘과 지혜를 모아 일하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열어간다고 하니 여기에 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지지를 보내기 어렵다.

80년대 노동투쟁 속에서 만들어졌으므로 계급 투쟁적인 성격이 강하나 현재의 한국은 중산층이 매우 확대된 사회이므로 이런 단순 접근으로는 한계가 크다. 서유럽의 좌파정당들이 1950년대 이후 어떻게 변신하여 대중정당이 되었고 집권까지 하게 되었는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더 큰 한계는 노동계급 내부에 있다. 민노당은 주로 민주노총에 기대고 있는데 노동운동을 양분하고 있는 한국노총은 오히려 한나라당과 정책연합을 하고 있다. 그러니 조직노동의 근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지지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민주노총 자체가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는데 이들은 자기들의 이익만을 지키려고 하지 같은 사업장 안의 비정규직에 대해서도 차별행위들을 하고 있다. 그러니 비정규직이 민주노총을 지지할 리가 없다.

그런데도 민노당은 대체로 민노총의 정치적 대리인 노릇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노동계급 사람들조차 민노당이 일부 특권적인 노동자들의 정당이지 자신들을 위해 일하는 정당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일반 국민이야 오죽하랴.

민노당의 또 하나의 문제는 북한에 대한 태도이다. 북한에 대해 지속적으로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이것이 반대세력들로부터 '종북주의'라는 매우 정치적인 공격과 비난을 받는 빌미가 되고 있다. 진보신당과의 분당에도 이 문제가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난번 대선 직전에도 당 지도부가 평양을 방문했는데 민노당으로서는 이념적인 면에서 그래야 할 필요가 꼭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외부인이 볼 때는 국내정치적으로 별로 이득이 없을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남한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아직도 북에 대해 매우 복잡한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 연합정치의 한 단계로 진보세력의 통합논의를 하고 있는 당사자들인 진보신당의 조승수 대표. 민노당의 이정희 대표,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대표. ⓒ연합

'무조건 집권하자'는 연합정치론

이렇게 기존 정치세력들은 뭐가 뭔지도 잘 모른다. 대체로 문제의식이 미약하다. 또 문제의식이 있어도 그것을 현실화시킬 능력이 부족하다. 이렇게 기존 정치세력들이 신자유주의적 상황에 무력하므로 한국사회에는 실업자, 비정규직, 자영업자, 농어민, 청년실업자를 포함하여 국민의 절반 이상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버림받고 있다.

이들은 한국인은 한국인이로되 진정한 한국인은 아니다. 그야말로 한국사회의 아웃사이더들이다. 그러니 국제경제 상황이 매우 악화할 때 이들의 처지가 어떻게 될지는 뻔한 일이다. 이들을 계속 이런 상태로 방치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 정치가 지금 정말로 고민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그런데도 야권에서는 현재 이런 문제에 별 관심 없이 연합정치론이 유행하고 있다. 야권 세력이 한데 힘을 합쳐 집권하자는 것이다. 아예 야당세력이 모두 하나의 정당으로 뭉치자는 이야기도 있고 선거연합 형태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이렇게 야당이 하나로 힘을 합치면 51:49로 박빙의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말하자면 '무조건 집권하자' 주의이다. 여당을 해보니 달콤했는데 야당을 해보니 못살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무조건 다시 여당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거기에 빠진 것은 '왜'라는 물음표이다. 왜 집권을 해야 하나. 왜 반드시 집권해야 하나라는 질문이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인지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도 잘 모르면서 권력을 잡겠다고 하면 되겠나. 그것처럼 무책임한 태도도 없을 것이다. 국민을 잘살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다음에 어느 정당이 정권을 잡느냐,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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