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교육열에서라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선다고 자부할 만하다. 과외열풍도 거세게 불고, 가계에서 교육비 부담의 비중도 경이적이다. 대학진학율도 세계 최고라고 한다. 이 교육열이 우리 사회를 유례없이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게 한 동력이라는 사실도 누구나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뜨거운 교육열이 과연 교육의 질을 그만큼 높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교육현장인 교실이 붕괴한다는 소리가 들리니, 교육의 열기와 교육의 수준은 서로 겉돌고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우리 사회에서 신앙의 열기는 불길처럼 뜨거운데, 과연 그 불길로 무슨 바람직한 종교문화를 생산해내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것과 마찬가지이다.
원효대사는 "부지런히 수행하더라도 지혜가 없는 자는 동쪽으로 가고자 하면서도 서쪽으로 가고 있다"고 경고하였던 일이 있다.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올바른 판단을 못하면 완전히 방향착오에 빠져 뜨거운 열정으로 열심히 노력할수록 전혀 엉뚱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제는 우리의 교육열기나 신앙열정도 그 방향이 제대로 된 것인지,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교육의 위기, 한국 사회의 교육은 무엇이 문제인가?
학교에서 무료급식을 하고 대학등록금을 반으로 깎아주겠다는 정책은 어긋난 방향을 바로잡아보겠다는 근본적인 처방은 아닌 것 같다. 병자에게 병의 원인을 찾아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더라도 근원적 치료를 하도록 돕는 데는 관심이 없고, 병자의 욕구를 충족시켜 잠시 즐겁게 해주려는 것이니, 그렇게 한다고 병이 결코 낫지는 않을 것이다. 건강한 상태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아야 병을 치료하기 위한 방향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교육의 문제를 바로잡으려면 교육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지부터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퇴계는 53세때 대사성(大司成)으로 사학(四學)의 스승과 학생들을 훈계하는 글을 지어 보냈던 일이 있다. 여기서 퇴계는 "학교는 풍속을 감화시키는 근원이요, 선(善)의 모범이 되는 자리이며, 선비는 예법과 의리의 근본이요 원기(元氣)가 깃든 곳이다"라고 하였다. 먼저 학교는 그 사회의 기풍을 건전하게 이끌어가는 방법을 밝히는 곳이요, 선의 모범을 제시하는 곳이라고 지적하였다. 교육은 바로 한 사회가 지향하는 문화와 도덕의 기준을 정립하는 것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또한 선비 곧 교육을 받는 학생이란 예법의 행동규범과 의리의 도덕원리를 지키는 주체요, 국가의 생명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 나라가 문화적 품격을 지킬 수 있는지, 그리고 강건한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는 젊은이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았는지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퇴계는 당시 조선사회에서도 교육의 현장인 학교에서 학생은 스승을 공경하여 따라야 하는 본분을 잃어, 스승 보기를 길가는 사람 보듯 하고, 학교 보기를 밥이나 공짜로 먹고 잠시 쉬어가는 주막 보듯 하는 현실을 심각한 위기로 지적하였다. 우리사회에서 이렇게 교육현장이 퇴폐하게 된 원인은 학생의 방종하고 나태한 태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승이 책임을 저버리고 존경심을 잃은 데에도 원인이 있고, 학부모가 이기적이고 탐욕적인데도 원인이 있으며, 학교경영자나 국가가 교육의 목적을 망각하고 외형만 추구해온 데도 그 원인이 있다.
입시제도, 무료 급식, 등록금 내려준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현실이 위기에 놓였다고 인식한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진단하고 어디서부터 바로잡을지 처방하는 대책이 시급하다. 시험과목이나 입시제도만 바꿔본다고 교육이 바른 길을 찾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료급식하고 등록금 내려준다고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것도 아니다.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교육의 목표부터 확인하여야 할 것이다. 사회의 이상과 교육의 목표가 분명하지 않으면서, 지식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으로 교육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면, 애국심도 없는 용병집단의 군대를 유지하는 것이요, 인술(仁術)이나 정의감은 없이 의학이나 법학지식으로 재산과 지위만 추구하는 집단을 만들어놓게 될 것이다.
교육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설 수 있음을 각성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뜨거운 교육열이 제 방향을 찾아 분출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바로 국가의 책임이다. 교육현장에서는 무엇보다 스승의 역할이 중요하다. 스승이 본보기가 되고 성실하여 학생의 존경심을 받을 때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교편을 잡은 교육자가 존경을 받지 못하고 생계를 꾸려가는 하나의 직장인으로 전락하면 교육의 뿌리는 병들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교육자는 교육의 제단에 자신의 인생과 열정을 바치는 성직자가 아닐까. 성직자가 타락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추악하게 보이는 것처럼, 교육자가 타락하면 다른 사람들 보다 더 심한 비난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만큼 교육이 신성하기 때문일 것이다.
* 다산연구소가 발행하는 다산포럼(www.edasan.org) 12일자에 '교육이 바로 서야'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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